민주주의와 신자유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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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신자유주의의 개념

2.신자유주의의 대두배경과 주창논리

3.신자유주의가 한국에 미친 영향

1) 신자유주의와 민주주의
2)한국에 있어서 신자유주의
3)앞으로의 신자유주의에 대한 비판적 시각


*내용미리보기*
1. 신자유주의의 개념
자유주의와 민주주의 신자유주의는 전후 세계자본주의를 이끌어온 복지국가 케인즈주의 포드주의(포드주의적 국가독점자본주의)의 위기 속에서 위기 타파를 위해 추진되는 자본의 공세로서, 그간의 국가 개입과 규제에 반대하여 규제로부터 자유로운 자유시장만이 자원의 효율적 배분에 적합하다고 주장하는 경제이데올로기이다. 이같은 신자유주의의 민주주의적 함의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역사적 시각을 통해 신자유주의의 원조인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의 관계를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자유주의는 신자유주의와 마찬가지로, 사유재산권과 시장의 효용에 대한 맹신에 기초해 경제적 자유를 중심으로 국가의 개입에 반대하고 개인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생겨난 정치사상이다.

본문내용

으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이 용어의 진정한 정치적 내용은 무엇인가? 만약 부르조아 민주주의적 급진주의의 역사적 기획이 적어도 서유럽에서는 대체로 성공적으로 실현되었다면, 노동자계급의 사회주의는 실패했다. 이는 쏘비에뜨 공산주의뿐만 아니라 복지국가의 사회민주주의적 전망에도 해당된다. 급진적 민주주의의 가치와 사회주의 원칙의 단순한 기계적 결합을 좌파의 전략적 관점으로 상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특히 그러한 결합이 이미 오랫동안 전형적인 사회주의운동이었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싸미르 아민(Samir Amin)은 발흥하는 '제3의 사회주의'를 최근 과학기술의 변동 및 경제의 세계화 과정에 대한 노동자의 대응으로 설명한다. 아민에 따르면, '제1의 사회주의'는 증기와 철도의 시대에 나타났으며, '제2의 사회주의'는 컨베이어벨트 생산과 자동차 보급 및 냉전시대에 나타났다. '제3의 사회주의'는 컴퓨터와 통합된 전지구적 자본주의의 시대에 생겨난다는 것이다.
싸미르 아민은 스웨덴의 사회학자 안더스 스테판슨(Anders Stephanson)의 비판을 받았는데, 스테판슨은 이론가들이 지구화의 정도를 지나치게 과장했다고 주장했다. 세계의 실제 변화에도 불구하고 국가와 지역의 차원에서 중대한 변화가 발생할 수 있는 실질적 가능성은 남아 있다. 이런 의미에서 '지구화' 테제는 사람들을 혼란스럽게 하고 심지어 기회주의와 무기력의 구실로 이용될 수 있는 것이다.
'새로운 시대'나 '새로운 과학기술'과 같은 말을 사용하는 데 조심해야 한다. 역사발전의 새로운 요소의 등장은 분명히 실제로 일어난 현상이지만, 그것은 전통적 관계와 모순들을 아직 몰아내지 못했다. 과학기술의 근대화에도 불구하고 전통적 산업과 노동계급은 앞으로 오랫동안 제2, 3세계뿐 아니라 서구에서도 존재할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전통적 국민국가의 역할이 매우 중요할 것이며, 결과적으로 전통적 사회주의의 이데올로기적 공간과 국유화 및 국가통제의 객관적 가능성은 남게 될 것이다. 산업주의 시대의 구조와 관계들은 종종 공룡에 비유되지만, 사람들은 많은 생물들이 공룡 시대부터 지금까지 사실상 변치 않고 생존해왔다는 사실을 망각한다. 좋든 싫든 악어들은 사멸할 조짐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우리는 특정 전통노선이 좌파에게 이로움을 준다고 결론내리지 않을 수 없다. 어떤 경우든 전통노선은 쇄신을 배제하지 않는다. 역사의 많은 혁신운동은 전통주의 운동으로서 시작했다. 마르틴 루터는 기독교의 혁신이 아니라 그 뿌리로 돌아갈 것을 요구했다. 비록 그의 전통주의적 포교가 교회를 급진적으로 쇄신하는 결과를 초래했지만 말이다. 같은 의미에서, 새로운 전략적 공식을 꿈꾸거나 낯선 과거에 대해 변명을 늘어놓으면서 오늘의 당면과제를 한쪽 방향으로만 밀고 나갈 필요는 없다. 원칙을 고수하게 하고 이데올로기의 공세를 지속하게 하는 전통적 사회주의는 특히 신자유주의가 명백히 위기에 빠진 상황에서는 필수불가결한 것이기도 하다.
좌파의 전통적 프로그램은 진정한 대안일 뿐만 아니라 유일한 대안이기도 하다. 이제 체제는 너무나 혼란에 빠져 있기 때문에 난제의 매듭을 푸는 유일한 방법은 매듭을 아예 끊어버리는 것이다. 부분적 개혁과 점진적 개선은 사회와 경제 전 영역의 근본적인 변화의 결과로서만 가능하다. 사유자본의 광범위한 국유화(약탈자의 재산 몰수)와 '자유시장'의 극복 없이는 보건제도를 최소한도로 개량하는 일마저 불가능하며 사회복지를 개선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그러나 대부분의 좌파 정당들이 그들 자신의 전통만큼 두려워하는 것도 없다. 국유화가 오늘날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논의하는 대신 그들은 어떤 국유화도 없을 것임을 지배계급에게 입증하는 데 시간을 소모하고 있다. 반면 지배계급은 이러한 약속을 별로 신뢰하지 않으며, 좌파가 전적인 정치적 무능력을 보여주지 않는 한 현실권력의 지렛대로 그들이 다가가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대안의 부재는 모든 형태의 대의민주주의가 훼손되는 상황을 초래한다. 그러나 이 경우 민주주의의 위기는 1920년대의 유럽이나 1970년대의 라틴아메리카의 경우와 달리 민주주의 제도의 빠른 붕괴로 귀착되지 않는다. 그 대신 이 제도들은 천천히 퇴화하여 사멸하고 있다. 그것들은 경제의 의사결정 과정뿐 아니라 정치과정 자체에 의해서도 점점 더 외면당한다.
유럽에서 파시즘의 재등장은 위기의 중요한 징후이다. 그러나 이와 관련된 문제는 단순히 극우조직의 발흥만은 아니다. 정치조직 자체가 끊임없이 권위주의적 인민주의(populism)로 오염되고 있다. 이는 대의민주주의 제도에 대한 믿음이 훼손된 상황에서 자연스런 현상일 뿐이다.
대안이 없는 위기 상황은 충격이 임박했다는 징표이다. 이런 의미에서 르완다의 파국은 인류에게 경고한다. 서방세계는 주변부 국가의 기아, 유혈, 경제붕괴가 중심부에 영향을 끼치지 못하리라는 희망으로 스스로를 위로해서는 안될 것이다.
고대문명의 몰락 또한 주변부의 붕괴와 함께 시작되었다. 이런 점에서 과거는 우리에게 끔찍한 교훈을 준다. '역사의 종말'은 헤겔을 너무 많이 읽은 논자의 어리석은 농담이 아니라 실제 가능한 것이다. 물론 위험에 처한 것은 우리 자신의 역사와 현시대의 사회일 뿐이다. 인류는 여러 문명의 몰락으로부터 살아남은 생물학적 종이다. 인류는 또한 우리 시대의 전지구적인 부르조아 문명의 붕괴를 견뎌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직화된 정치세력과 전통적 제도들과 일반적으로 인정된 엘리뜨들이 완전히 파산한 곳에서조차 해결책을 찾아내고야 마는 여러 사회의 종종 증명된 능력을 볼 때, 낙관의 근거는 있다. 그러한 상황에서 '아래로부터의' 모순의 자발적 해결은 이러한 모든 제도와 엘리트의 몰락을 수반한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1914~45년에 이르는 불운한 시대에 겪은 것과 맞먹는 규모의 충격들이다.
20년 전이라면 가장 완고한 비관주의자조차도 이같은 낙관적 시나리오를 상상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신자유주의적 개혁이 이룬 '성공'의 전지구적 · 역사적 결과를 나타내는 것이 바로 이러한 시나리오이다. 대다수의 인류에게 사회의 대격변만이 앞으로 남은 유일한 희망인 것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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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2.10.08
  • 저작시기20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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