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한국전쟁의 배경
2. 남침설, 북침설과 남침 유도설, 그 논의의 역사성
3. 북의 남한 점령정책
4. 한국전쟁은 우리에게 무엇이었나?
5. 한국전쟁이 남긴 것은 무엇인가?
2. 남침설, 북침설과 남침 유도설, 그 논의의 역사성
3. 북의 남한 점령정책
4. 한국전쟁은 우리에게 무엇이었나?
5. 한국전쟁이 남긴 것은 무엇인가?
본문내용
휴전회담, 양측의 포로명단을 교환
유엔군측 포로수 발표 (유엔군측 억류 : 북한군 111,754명 / 중공군 20,720명)
(공산군측 억류 : 한국군 7,142명 / 미군 3,198명 / 기타 유엔군 1,216명)
1952년
1월 2일
휴전회담, 포로 전원 교환에 합의
1월 13일
휴전회담, 유엔군측은 자유의사에 의한 포로송환 주장, 공산군측은 강제송환 주장
2월 15일
한.일 회담 1차 본회담 시작
2월 16일
휴전회담에서 공산군측, 중립국감시단으로 소련,체코,폴란드 지명(유엔군측 ,소련참가거부)
2월 18일
거제도 포로수용소에서 폭동사건 발생
4월 28일
휴전회담, 중립국 감시위원단 구성 (스위스,스웨덴,폴란드,체코)에 합의
6월 10일
거제도 포로수용소에서 폭동 격화 (포로 1백 60명, 미군 14명 사상)
6월 25일
부산 충무로 6.25 2주년 식장에서 李대통령 저격사건 발생, 현장에서 범인 柳時泰 체포
7월 7일
수도고지 지형능선전투, 휴전회담으로 쌍방간에 제한된 목표에 대한 공방전이 전개 되자
수도사단이 중공 제 12군의 공격을 받고 3개월간 방어(~10월 14일)
8월 5일
정부, 정부통령 선거 (대통령에 이승만,부통령에 함태영 당선)
9월 6일
고양대 전투, 연천 북방의 임진강 북안에 방어진지를 구축하고 있던 국군 제 1사 단이
고양대 일대 (니키고지, 테시고지, 노리고지, 베티고지) 에서 중공군 제 47군과 방어전투
전개(~12월13일)
9월 20일
유엔군사령부, 민간인 억류자 1만 1천명 석방결정 발표
9월 23일
제주도 포로수용소에서 중공군 포로들 시위 (포로 49명 부상)
10월 1일
유엔군사령부, 북한내에 소련군 7천~1만2천명이 주둔하여 대공포 임무를 담당하고 있다
고 언명
10월 6일
백마고지전투 : 철원 북방의 백마고지(395)를 확보하고 있던 국군이 중공군 공격을 격퇴
10월 21일
정부, 북한군 포로 1만1천명 석방 결정
10월 23일
밴플리트 8군사령관, 한국군은 수적 열세로 단독으로는 공산군과 대전 불가능 하다고
日 동경에서 언명
10월 31일
거제도 포로수용소에서 폭동사건 (1백78명 부상)
1953년
1월 11일
유엔군사령부, 한국전 이래 52년 11월까지 원조액이 5억9천만달러라고 발표
3월 30일
유엔군사령부, 포로 13만2천3백4명중 부상포로는 2천6백19명이라고 발표
4월 11일
휴전회담, 부상포로 교환협정 정식조인
李대통령, 휴전반대 단독북진 성명
4월 20일
유엔군 및 공산군측, 부상포로 교환 개시 유엔군측, 1백명 인수
공산군측, 5백명 인수(총 10회에 걸쳐 유엔군측 6백84명 인수,공산군측 6천6백70명 인수)
4월 26일
휴전회담 본회의 6개월만에 개재
5월 19일
정부, 서울로 환도
6월 4일
한국파병 16개국, 美국무부에서 한국전쟁에 관한 비밀회의 개최
날 짜
내 용
6월 5일
마산 포로수용소에서 북한 반공포로 2천명이 유엔측안 반대데모 전개
6월 8일
휴전회담 유엔군 및 공산군측, 포로송환협정 조인
李대통령, 전투계속 결의 재천명
6월 9일
정부, 휴전거부 결의
6월 10일
M-1고지 전투, 휴전 직전 국군 제20사단이 백석산과 어은산 중간의 전초진기 (M-1 고지)
방어중 중공군이 22회 공격, 제 20사단이 진지를 확보(~23일)
6월 18일
정부, 반공 애국포로 2만 7천명 석방
유엔군사령부, 2만7천명의 반공포로가 탈주하였는바 18일 14:30까지 9백71명이 재수용되었
다고 발표
6월 24일
북한군사령부, 한국전쟁 3년간의 종합전과 발표, 유엔군 사상 및 포로 98만 9천3백 91명
(미군 38만7백73명, 한국군 58만6백44명, 기타 2만9천9백74명)
美국무부, 한국전쟁 3년간의 실상 발표
① 유엔군은 공산군의 10분의 1의 희생으로 6회의 대공세를 격퇴
② 미국의 전쟁비 사용(1백50억 달러)
③ 공산군 전사상자 1백34만7천명 이상
7월 11일
휴전회담 20일만에 재개, 비밀회담 개최
7월 13일
금성전투, 휴전직전 정치적 목적과 중부전선에 돌출되어 있는 위협을 제거할 목적으로
중공군 12개 사단이 국군 5개 사단의 방어지역인 중부 전선의 금성지역을 공격,
국군 약 40㎞ 철수(~20일)
7월 19일
휴전회담 쌍방대표, 휴전협정 조인에 동의
7월 27일
판문점에서 휴전협정 조인(오전 10시) 全戰 오후 10시를 기해 전투중지(휴전선으로철수)
李대통령, 휴전조인에 즈음한 성명 발표
군사정전위원회 제1차 본회의 개최
7월 30일
美8군사령부, 전전선의 유엔군은 30일 21시까지 비무장지대 철수완료 발표
3. 북의 남한 점령정책
1) 점령 시기 구분
한국전쟁을 4개의 시기로 구분하면 제 1기는 1950년 6월 25일 전쟁의 발발로부터 9월 중순까지로 북한군의 공세기간이고, 제 2기는 1950년 9월 중순부터 11월 말 까지로 남한군과 유엔군의 공세기이다. 제 3기는 1950년 11월 말부터 1951년 6월 초까지로 북한군과 중국군의 공세기이며 제 4기는 1951년 6얼 초부터 7월 27일까지의 전선교착과 휴전협상기이다.
이중 북한군이 남한을 점령한 시기는 제 1기와 3기인데 여기서는 1기로 고찰대상을 한정하기로 한다.
2) 점령정책
북한의 점령 정책은 기본적으로 반제 반봉건적 성격을 가지고 있다. 이는 소련이나 동구보다 중국의 혁명과 유사하다. 북한의 점령정책의 핵심내용은 정치적인 차원에서는 이승만정권에 협력한 세력을 제거하는 것이었고, 경제적으로는 ‘진정한 민주주의정권을 수립하기 위해 필요한 실질적인 조건’인 토지개혁을 남한에 실시하여 ‘인민정권’의 지지기반을 창출하는 것이었다.
3) 토지개혁
북은 새로운 토지소유관계를 수립하지 않고서는 근로농민(소작민)들을 해방시킬수 없다는 생각을 전제로 토지개혁을 실시하였다. 개혁은 각 지역마다 농촌위원회를 구성하고, 농민총회를 거쳐 인민위원회의 승인을 받는 순서로 이루어졌다.
토지개혁 내용을 살펴보면, 무상몰수, 무상분여를 원칙으로 한다. 몰수 대상은 미제국주의자와 정부의 토지, 지주소유의 토지이고 분배대상은 토지가 (거의)없는 농민층이다. 이전에 남한에서도 토지개혁의 움직임이 있었으나, 유상매상 ,유상분배였고, 지주에게 유리하게 진행
유엔군측 포로수 발표 (유엔군측 억류 : 북한군 111,754명 / 중공군 20,720명)
(공산군측 억류 : 한국군 7,142명 / 미군 3,198명 / 기타 유엔군 1,216명)
1952년
1월 2일
휴전회담, 포로 전원 교환에 합의
1월 13일
휴전회담, 유엔군측은 자유의사에 의한 포로송환 주장, 공산군측은 강제송환 주장
2월 15일
한.일 회담 1차 본회담 시작
2월 16일
휴전회담에서 공산군측, 중립국감시단으로 소련,체코,폴란드 지명(유엔군측 ,소련참가거부)
2월 18일
거제도 포로수용소에서 폭동사건 발생
4월 28일
휴전회담, 중립국 감시위원단 구성 (스위스,스웨덴,폴란드,체코)에 합의
6월 10일
거제도 포로수용소에서 폭동 격화 (포로 1백 60명, 미군 14명 사상)
6월 25일
부산 충무로 6.25 2주년 식장에서 李대통령 저격사건 발생, 현장에서 범인 柳時泰 체포
7월 7일
수도고지 지형능선전투, 휴전회담으로 쌍방간에 제한된 목표에 대한 공방전이 전개 되자
수도사단이 중공 제 12군의 공격을 받고 3개월간 방어(~10월 14일)
8월 5일
정부, 정부통령 선거 (대통령에 이승만,부통령에 함태영 당선)
9월 6일
고양대 전투, 연천 북방의 임진강 북안에 방어진지를 구축하고 있던 국군 제 1사 단이
고양대 일대 (니키고지, 테시고지, 노리고지, 베티고지) 에서 중공군 제 47군과 방어전투
전개(~12월13일)
9월 20일
유엔군사령부, 민간인 억류자 1만 1천명 석방결정 발표
9월 23일
제주도 포로수용소에서 중공군 포로들 시위 (포로 49명 부상)
10월 1일
유엔군사령부, 북한내에 소련군 7천~1만2천명이 주둔하여 대공포 임무를 담당하고 있다
고 언명
10월 6일
백마고지전투 : 철원 북방의 백마고지(395)를 확보하고 있던 국군이 중공군 공격을 격퇴
10월 21일
정부, 북한군 포로 1만1천명 석방 결정
10월 23일
밴플리트 8군사령관, 한국군은 수적 열세로 단독으로는 공산군과 대전 불가능 하다고
日 동경에서 언명
10월 31일
거제도 포로수용소에서 폭동사건 (1백78명 부상)
1953년
1월 11일
유엔군사령부, 한국전 이래 52년 11월까지 원조액이 5억9천만달러라고 발표
3월 30일
유엔군사령부, 포로 13만2천3백4명중 부상포로는 2천6백19명이라고 발표
4월 11일
휴전회담, 부상포로 교환협정 정식조인
李대통령, 휴전반대 단독북진 성명
4월 20일
유엔군 및 공산군측, 부상포로 교환 개시 유엔군측, 1백명 인수
공산군측, 5백명 인수(총 10회에 걸쳐 유엔군측 6백84명 인수,공산군측 6천6백70명 인수)
4월 26일
휴전회담 본회의 6개월만에 개재
5월 19일
정부, 서울로 환도
6월 4일
한국파병 16개국, 美국무부에서 한국전쟁에 관한 비밀회의 개최
날 짜
내 용
6월 5일
마산 포로수용소에서 북한 반공포로 2천명이 유엔측안 반대데모 전개
6월 8일
휴전회담 유엔군 및 공산군측, 포로송환협정 조인
李대통령, 전투계속 결의 재천명
6월 9일
정부, 휴전거부 결의
6월 10일
M-1고지 전투, 휴전 직전 국군 제20사단이 백석산과 어은산 중간의 전초진기 (M-1 고지)
방어중 중공군이 22회 공격, 제 20사단이 진지를 확보(~23일)
6월 18일
정부, 반공 애국포로 2만 7천명 석방
유엔군사령부, 2만7천명의 반공포로가 탈주하였는바 18일 14:30까지 9백71명이 재수용되었
다고 발표
6월 24일
북한군사령부, 한국전쟁 3년간의 종합전과 발표, 유엔군 사상 및 포로 98만 9천3백 91명
(미군 38만7백73명, 한국군 58만6백44명, 기타 2만9천9백74명)
美국무부, 한국전쟁 3년간의 실상 발표
① 유엔군은 공산군의 10분의 1의 희생으로 6회의 대공세를 격퇴
② 미국의 전쟁비 사용(1백50억 달러)
③ 공산군 전사상자 1백34만7천명 이상
7월 11일
휴전회담 20일만에 재개, 비밀회담 개최
7월 13일
금성전투, 휴전직전 정치적 목적과 중부전선에 돌출되어 있는 위협을 제거할 목적으로
중공군 12개 사단이 국군 5개 사단의 방어지역인 중부 전선의 금성지역을 공격,
국군 약 40㎞ 철수(~20일)
7월 19일
휴전회담 쌍방대표, 휴전협정 조인에 동의
7월 27일
판문점에서 휴전협정 조인(오전 10시) 全戰 오후 10시를 기해 전투중지(휴전선으로철수)
李대통령, 휴전조인에 즈음한 성명 발표
군사정전위원회 제1차 본회의 개최
7월 30일
美8군사령부, 전전선의 유엔군은 30일 21시까지 비무장지대 철수완료 발표
3. 북의 남한 점령정책
1) 점령 시기 구분
한국전쟁을 4개의 시기로 구분하면 제 1기는 1950년 6월 25일 전쟁의 발발로부터 9월 중순까지로 북한군의 공세기간이고, 제 2기는 1950년 9월 중순부터 11월 말 까지로 남한군과 유엔군의 공세기이다. 제 3기는 1950년 11월 말부터 1951년 6월 초까지로 북한군과 중국군의 공세기이며 제 4기는 1951년 6얼 초부터 7월 27일까지의 전선교착과 휴전협상기이다.
이중 북한군이 남한을 점령한 시기는 제 1기와 3기인데 여기서는 1기로 고찰대상을 한정하기로 한다.
2) 점령정책
북한의 점령 정책은 기본적으로 반제 반봉건적 성격을 가지고 있다. 이는 소련이나 동구보다 중국의 혁명과 유사하다. 북한의 점령정책의 핵심내용은 정치적인 차원에서는 이승만정권에 협력한 세력을 제거하는 것이었고, 경제적으로는 ‘진정한 민주주의정권을 수립하기 위해 필요한 실질적인 조건’인 토지개혁을 남한에 실시하여 ‘인민정권’의 지지기반을 창출하는 것이었다.
3) 토지개혁
북은 새로운 토지소유관계를 수립하지 않고서는 근로농민(소작민)들을 해방시킬수 없다는 생각을 전제로 토지개혁을 실시하였다. 개혁은 각 지역마다 농촌위원회를 구성하고, 농민총회를 거쳐 인민위원회의 승인을 받는 순서로 이루어졌다.
토지개혁 내용을 살펴보면, 무상몰수, 무상분여를 원칙으로 한다. 몰수 대상은 미제국주의자와 정부의 토지, 지주소유의 토지이고 분배대상은 토지가 (거의)없는 농민층이다. 이전에 남한에서도 토지개혁의 움직임이 있었으나, 유상매상 ,유상분배였고, 지주에게 유리하게 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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