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① 여성과 매스미디어 (1) 매스미디어에 나타난 성역할
② 여성과 매스미디어 (2) 매스미디어와 여성문제해결
③ 여성해방론 (1) 보수주의
④ 가부장제 사회에서의 여성과 광고
⑤ 사랑의 사회학(민주주의와 에로티시즘의 융합을 위하여)
⑥ [김학준의 성의 정치학] 성희롱의 역사
② 여성과 매스미디어 (2) 매스미디어와 여성문제해결
③ 여성해방론 (1) 보수주의
④ 가부장제 사회에서의 여성과 광고
⑤ 사랑의 사회학(민주주의와 에로티시즘의 융합을 위하여)
⑥ [김학준의 성의 정치학] 성희롱의 역사
본문내용
렀으며, 조형적 성의 발전이 모성과 여성의 결합을 해체하고 동성애를 대규모로 발전시켰으며, 애로티시즘은 모든 인구대중으로 확산되었고, 창녀와 숙녀의 구별이 깨어지고 모든 아내가 전통적 수동성을 벗어나 요염해졌으며, 성적 만족이 친밀한 관계 유지의 관건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융합적 사랑은 순수한 관계, 즉 관계 자체가 목적이고 관계 자체가 관계 유지의 관건이 되는 관계로 나아가는 것이다.
그러나 친밀한 관계가 순순한 관계가 되면 될수록, 즉 관계의 유지가 관계 내부에서만 결정되고, 결혼조차도 상호 헌신의 제도적 계약이 아니라 헌신의 의사표시 정도로 약화되면 될수록, 관계는 두 가지 위험에 직면한다. 하나는 관계에 대한 헌신(commitment) 의 위험이 증가한다는 것이다. 이 위험은 현대성의 모든 제도와 마찬가지로 불가피한 것이며, 성찰성의 증가와 동시 성장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국제 사회에는 영원한 친구도 영원한 적도 없다는 진술은 우리들의 일상적 삶에도 적용되는 것이다. '오늘의 아내가 내일의 아내'라는 확실성은 사라진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오늘의 아내를 내일의 아내'로 삼아야하는 숙명에 처한 것도 아니다. 오늘의 아내가 내일의 아내이기도 한가는 전적으로 나의, 그리고 아내의 성찰적 기획의 성격에 달려 있는 것이다. 따라서 관계는 역설적인 위험에 빠진다. 관계의 유지는 나의 헌신에 근거하는데, 문제는 나의 헌신이 파트너의 헌신을 보증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그것은 상대의 반성적 기획의 몫인 것이다.물론 깊은 물질적·감정적 헌신이 다시 그런 깊은 헌신으로 보상받는 것은 객관적으로 개연성 있는 일이지만, 헌신이 깊을수록 관계가 깨질때의 감정적 상처가 깊어진다는 점에서 위험은 커지는 것이다.그리고 더욱 역설적인 것은 위험의 객관적 평가가 도리어 친밀성이 깨어질 위험을 증가시킨다는 것이다. 배우자에 대한 신뢰와 의부(처)증의 거리는 그리 먼 것이 아니다. 그러나 물론 대다수의 사람은 차를 몰고 가다가 교통사고를 목도할 경우 잠시 속도를 줄이지만, 잠시 후에는 다시 엑셀레이터를 밟게 마련이다.
민주주의와 에로티시즘의 융합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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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하나는 역전된 성찰성(the reverse reflexivity)의 위험이다. 관계가 중독적인 관계, 공동의존 관계가 될 위험이 커진다는 것이다. 확실히 내부 준거적 체계(internally referential system) 가 된 사랑에서는 루만의 지적대로 "타자의 근거 없는 공포, 자기훼손적 관점, 생명위협적 습관도 채택하고 인정하고 긍정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이 등장한다. 그리고 그것은 관계를 위해서 성찰성을 희생할 때 언제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 된다. 상대가 없는 세상을 생각할 수 없는 공포(이 자체가 친밀성이 반성적 기획이기를 그쳤음을 의미한다) 는 언제나
우리를 상대방에 대한 강박적인 집착에 빠지게 하고, 감정적 무절제를 야기하며, 열광과 공포가 융합하고, 상호기대의 순환속에서 자율적능력을 서로 상실해가는 과정을 일으킬 수도 있는 것이다. 사랑은 나선형의 상승일수도 나선형의 하강일 수도 있기 때문이며, 그가 나의 이름을 불러주는 희열일 수도 있지만, 그가 불러 주는대로 자신을 왜곡해야 하는 고통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기든스의 논의대로 자아의 성찰성은 병리적 과정을 방어하는 필수적인 요소가 된다.
기든스는 중독적인 공동의존에 대립하는 것으로서 자율성 원리에 입각한 친밀한 관계를 친밀성의 생활정치의 이념으로 제시한다. 그런 이념 속에서 민주주의는 이제 우리들의 친밀성의 한가운데에 초대되는 것이다. 일상 생활의 민주화는 우리를 성적 불평등으로부터 방어하고 소통적 실천을 개시한다. 민주주의 안에서는 성적 분업은 일어나도 그것은 소통적 합의의 생산성이지 편견의 강요나 불평등하게 배분되어 있는 자원의 강요는 아닌 것이다.그리고 이러한 친밀성의 세계 안에서 성은 사랑을 구성하는 매체로서 성찰적으로 도입된다. 에로티시즘이 이제 더이상 문명의 안티 테제로서가 아니라 자아의 반성적 기획의 한 처방으로서 친밀성 안에 도입되는 것이다. 민주주의와 에로티시즘. 일견 역설적인 이 두 항의 융합이 고도 현대성 속에 열려 있는 사랑의 길인 것이다.
지면의 제약상 기든스의 풍부한 논의와 함의가 제대로 전달되었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이제 논의를 정리하자. 지금까지 서술된 기든스의 논의는 우리의 경험을 이론화한 것이 아닐뿐 아니라 서구의 경우에서도 사랑에 대한 최종적 이론은 아니다. 따라서 우리 사회의 사랑에 대한 연구는 더 많은 지적 노고를 요구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기든스의 논의가 한국사회의 현재 상황에 대해서도 대단히 풍부한 암시를 제공하며, 앞으로의 연구에 중요한 참조점이 될 것이라는 점은 분명한 것 같다. 그리고 푸코, 루만에 이어지는 기든스의 논의는 전통적인 의미에서 가족사회학으로는 현대의 경험을 수용하기에 역부족이라는 것이 분명 해졌음을 함축하고 있으며, 그런 의미에서 사랑이 현대사회 일상인들의 초미의 관심사라는 것의 예증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확실히 사랑은 어려운 것이 되고있다. 예전보다 만나고 입맞추고 껴안고 섹스를 하기가 어려워 졌다는 뜻에서 그런 것이 아니라, 푸코의 표현을 빌리자면 사랑이 온갖 권력이 교차하는 지점이 되었으며, 루만의 표현을 빌리자면 매체로서의 사랑은 투명하지만 사랑 안에 들어가는 우리는 투명하지 못하기 때문이며, 기든스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것이 위험과의 성찰적 게임이 되었기 때문이다. 민주주주의도 에로티시즘도 간단한 일이 아니다.그러나 우리는 사랑없이 살 수는 없다. 어머니의 젖이 텅 빈 위장을 채울 때 입술에 성적 쾌락의 흔적을 남겼기 때문이다. 사랑은 생존과의 혼동 속에서 탄생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랑을 연구하는 것은 고통스러운 사적 삶의 커튼을 들어 올리는 것이다.그것은 이론적 관음증이 아니라 이론의 기초인 고통에의 감수성이다. 그러므로 만일 사회학이 일상인의 삶에 대한 계몽적인 효과를 통해서 고통을 감소시키려 하는 학문이라면 미장원 탁자 위의 여성잡지의 영토를 탈환하는 것은 이데올로기적 국가기구와의 투쟁만큼이나 시급한 과제일 것이다.
그러나 친밀한 관계가 순순한 관계가 되면 될수록, 즉 관계의 유지가 관계 내부에서만 결정되고, 결혼조차도 상호 헌신의 제도적 계약이 아니라 헌신의 의사표시 정도로 약화되면 될수록, 관계는 두 가지 위험에 직면한다. 하나는 관계에 대한 헌신(commitment) 의 위험이 증가한다는 것이다. 이 위험은 현대성의 모든 제도와 마찬가지로 불가피한 것이며, 성찰성의 증가와 동시 성장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국제 사회에는 영원한 친구도 영원한 적도 없다는 진술은 우리들의 일상적 삶에도 적용되는 것이다. '오늘의 아내가 내일의 아내'라는 확실성은 사라진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오늘의 아내를 내일의 아내'로 삼아야하는 숙명에 처한 것도 아니다. 오늘의 아내가 내일의 아내이기도 한가는 전적으로 나의, 그리고 아내의 성찰적 기획의 성격에 달려 있는 것이다. 따라서 관계는 역설적인 위험에 빠진다. 관계의 유지는 나의 헌신에 근거하는데, 문제는 나의 헌신이 파트너의 헌신을 보증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그것은 상대의 반성적 기획의 몫인 것이다.물론 깊은 물질적·감정적 헌신이 다시 그런 깊은 헌신으로 보상받는 것은 객관적으로 개연성 있는 일이지만, 헌신이 깊을수록 관계가 깨질때의 감정적 상처가 깊어진다는 점에서 위험은 커지는 것이다.그리고 더욱 역설적인 것은 위험의 객관적 평가가 도리어 친밀성이 깨어질 위험을 증가시킨다는 것이다. 배우자에 대한 신뢰와 의부(처)증의 거리는 그리 먼 것이 아니다. 그러나 물론 대다수의 사람은 차를 몰고 가다가 교통사고를 목도할 경우 잠시 속도를 줄이지만, 잠시 후에는 다시 엑셀레이터를 밟게 마련이다.
민주주의와 에로티시즘의 융합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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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하나는 역전된 성찰성(the reverse reflexivity)의 위험이다. 관계가 중독적인 관계, 공동의존 관계가 될 위험이 커진다는 것이다. 확실히 내부 준거적 체계(internally referential system) 가 된 사랑에서는 루만의 지적대로 "타자의 근거 없는 공포, 자기훼손적 관점, 생명위협적 습관도 채택하고 인정하고 긍정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이 등장한다. 그리고 그것은 관계를 위해서 성찰성을 희생할 때 언제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 된다. 상대가 없는 세상을 생각할 수 없는 공포(이 자체가 친밀성이 반성적 기획이기를 그쳤음을 의미한다) 는 언제나
우리를 상대방에 대한 강박적인 집착에 빠지게 하고, 감정적 무절제를 야기하며, 열광과 공포가 융합하고, 상호기대의 순환속에서 자율적능력을 서로 상실해가는 과정을 일으킬 수도 있는 것이다. 사랑은 나선형의 상승일수도 나선형의 하강일 수도 있기 때문이며, 그가 나의 이름을 불러주는 희열일 수도 있지만, 그가 불러 주는대로 자신을 왜곡해야 하는 고통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기든스의 논의대로 자아의 성찰성은 병리적 과정을 방어하는 필수적인 요소가 된다.
기든스는 중독적인 공동의존에 대립하는 것으로서 자율성 원리에 입각한 친밀한 관계를 친밀성의 생활정치의 이념으로 제시한다. 그런 이념 속에서 민주주의는 이제 우리들의 친밀성의 한가운데에 초대되는 것이다. 일상 생활의 민주화는 우리를 성적 불평등으로부터 방어하고 소통적 실천을 개시한다. 민주주의 안에서는 성적 분업은 일어나도 그것은 소통적 합의의 생산성이지 편견의 강요나 불평등하게 배분되어 있는 자원의 강요는 아닌 것이다.그리고 이러한 친밀성의 세계 안에서 성은 사랑을 구성하는 매체로서 성찰적으로 도입된다. 에로티시즘이 이제 더이상 문명의 안티 테제로서가 아니라 자아의 반성적 기획의 한 처방으로서 친밀성 안에 도입되는 것이다. 민주주의와 에로티시즘. 일견 역설적인 이 두 항의 융합이 고도 현대성 속에 열려 있는 사랑의 길인 것이다.
지면의 제약상 기든스의 풍부한 논의와 함의가 제대로 전달되었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이제 논의를 정리하자. 지금까지 서술된 기든스의 논의는 우리의 경험을 이론화한 것이 아닐뿐 아니라 서구의 경우에서도 사랑에 대한 최종적 이론은 아니다. 따라서 우리 사회의 사랑에 대한 연구는 더 많은 지적 노고를 요구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기든스의 논의가 한국사회의 현재 상황에 대해서도 대단히 풍부한 암시를 제공하며, 앞으로의 연구에 중요한 참조점이 될 것이라는 점은 분명한 것 같다. 그리고 푸코, 루만에 이어지는 기든스의 논의는 전통적인 의미에서 가족사회학으로는 현대의 경험을 수용하기에 역부족이라는 것이 분명 해졌음을 함축하고 있으며, 그런 의미에서 사랑이 현대사회 일상인들의 초미의 관심사라는 것의 예증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확실히 사랑은 어려운 것이 되고있다. 예전보다 만나고 입맞추고 껴안고 섹스를 하기가 어려워 졌다는 뜻에서 그런 것이 아니라, 푸코의 표현을 빌리자면 사랑이 온갖 권력이 교차하는 지점이 되었으며, 루만의 표현을 빌리자면 매체로서의 사랑은 투명하지만 사랑 안에 들어가는 우리는 투명하지 못하기 때문이며, 기든스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것이 위험과의 성찰적 게임이 되었기 때문이다. 민주주주의도 에로티시즘도 간단한 일이 아니다.그러나 우리는 사랑없이 살 수는 없다. 어머니의 젖이 텅 빈 위장을 채울 때 입술에 성적 쾌락의 흔적을 남겼기 때문이다. 사랑은 생존과의 혼동 속에서 탄생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랑을 연구하는 것은 고통스러운 사적 삶의 커튼을 들어 올리는 것이다.그것은 이론적 관음증이 아니라 이론의 기초인 고통에의 감수성이다. 그러므로 만일 사회학이 일상인의 삶에 대한 계몽적인 효과를 통해서 고통을 감소시키려 하는 학문이라면 미장원 탁자 위의 여성잡지의 영토를 탈환하는 것은 이데올로기적 국가기구와의 투쟁만큼이나 시급한 과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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