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서론
2. 파블로 피카소 <Pablo Picasso 1881 ∼ 1973>
3. 스페인 내전과 게르니카 폭격
4. 게르니카의 내용분석
2. 파블로 피카소 <Pablo Picasso 1881 ∼ 1973>
3. 스페인 내전과 게르니카 폭격
4. 게르니카의 내용분석
본문내용
해 오히려 극단적인 순수성과 무지, 그리고 그로 인한 파괴의 형상물인 것이다. 따러서 '게르니카'의 황소는 힌두교를 보는 의식의 이중적인 양면성을 표상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작품 중간에 위치하는 말은 두 개의 커다란 극을 왔다갔다하고 있다. 그 중 한 극은 그 당시의 입체파적인 비전이 계속하여 구체화하고 있었던 존재와 사물들의 전혀 새로운 접근이며, 다른 한 극은 인류문명의 역사보다 더 먼 곳에서 오는 회고주의의 고풍스런 작업 방법이다. 1937년 5월 1일 그려졌던 네 번째 습작을 보면 마치 종이를 접어 만든 것 같이 빈약했던 엄청나게 큰 목을 비로소 쳐들게 된 것은 고통과 죽음을 극단적으로 형상화하려는 피카소의 의지의 반영이라 할 수 있다.
3) 인물
'게르니카' 전작에 있어서 그 비극성을 가장 직접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것은 구도의 왼쪽에 치우친 살이 완전히 너덜너덜해진 아이를 품에 안고 절규하는 어머니이다. 가장 비극적인 표현인 비명을 내지르는 어머니의 열린 입과 바로 그녀 위에서 포효하고 있는 황소의 아가리 사이에는 밀접한 관계가 형성되어 있다. 어머니는 그녀의 희미한 형상을 밀어내려는 듯한 황소의 어두움과 일체가 된 듯 보인다.특히 어머니의 형상 전체는 아무리 입체파적인 제작 배경 속에서 그려졌다 하더라도 다른 소재들에 비해 휠씬 더 일그러진 모습으로 그 비극성을 심화시킨다. 자세히 살펴보면 이마의 머리카락, 눈썹, 속눈썹, 눈알, 콧구멍, 칼날처럼 굳어진 혀 등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붙어있지 못하다.
고대의 미술작품에서 달리는 말발굽 아래에 놓인 형상은 승리를 상징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피카소는 '게르니카'에서 이러한 전형을 여지없이 무너뜨린다. 말 아래에 자리잡은 부러진 칼과 꽃을 들고 있는 사람은 전쟁에 나선 전사라기 보다는 오히려 패배한 투우사의 모습에 가깝다. 전작에 등장하는 유일한 남성인 그는 짓밟히고 쓰러져 만신창이가 된 채 패배의 길로 향하고 있던 당시의 스페인 역사 그 자체인지도 모른다.
작품 중간에서 상처 입은 자신의 몸을 넋이 나간 듯 이끌고 있는 여인은 그녀의 내적인 고통을 다소 과장해 드려내려 하고 있으며 오른쪽 끝에서 불길에 휩싸여 가는 여인과 함께 변명의 기회의 모두 박탈당한 채, 자신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재난의 중심에서 빠져나온 것이 아니라 그 쪽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불타는 자기 집의 페허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는 여인은 신화적인 관점에서 볼 때 지옥의 아가리 속으로 뛰쳐들어가며 속죄하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따라서 여인이 쓰러져 있는 지붕 무너진 곳의 가장자리를 핥고 있는 불꽃은 그 여인을 삼키고 있는 거대한 어떤 턱의 이빨들로 설명될 수 도 있다. 또 하나 짚고 넘어갈 것은 그 불꽃들의 숫자가 위에 네 개, 밑에 세 개라는 점인데 그 숫자들을 차례대로 합하면 7, 34 혹은 43이 되며 이는 악마론의 표준 수들과 일치한다.
특히 작품 전체를 비추는 횃불은 이성(理性)을 그것을 든 여성은 순결을 상징하는 것으로 횃불에 비춰진 황소는 얼마간 고통스러운 듯한 표정을 짓고 있다.
작품 중간에 위치하는 말은 두 개의 커다란 극을 왔다갔다하고 있다. 그 중 한 극은 그 당시의 입체파적인 비전이 계속하여 구체화하고 있었던 존재와 사물들의 전혀 새로운 접근이며, 다른 한 극은 인류문명의 역사보다 더 먼 곳에서 오는 회고주의의 고풍스런 작업 방법이다. 1937년 5월 1일 그려졌던 네 번째 습작을 보면 마치 종이를 접어 만든 것 같이 빈약했던 엄청나게 큰 목을 비로소 쳐들게 된 것은 고통과 죽음을 극단적으로 형상화하려는 피카소의 의지의 반영이라 할 수 있다.
3) 인물
'게르니카' 전작에 있어서 그 비극성을 가장 직접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것은 구도의 왼쪽에 치우친 살이 완전히 너덜너덜해진 아이를 품에 안고 절규하는 어머니이다. 가장 비극적인 표현인 비명을 내지르는 어머니의 열린 입과 바로 그녀 위에서 포효하고 있는 황소의 아가리 사이에는 밀접한 관계가 형성되어 있다. 어머니는 그녀의 희미한 형상을 밀어내려는 듯한 황소의 어두움과 일체가 된 듯 보인다.특히 어머니의 형상 전체는 아무리 입체파적인 제작 배경 속에서 그려졌다 하더라도 다른 소재들에 비해 휠씬 더 일그러진 모습으로 그 비극성을 심화시킨다. 자세히 살펴보면 이마의 머리카락, 눈썹, 속눈썹, 눈알, 콧구멍, 칼날처럼 굳어진 혀 등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붙어있지 못하다.
고대의 미술작품에서 달리는 말발굽 아래에 놓인 형상은 승리를 상징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피카소는 '게르니카'에서 이러한 전형을 여지없이 무너뜨린다. 말 아래에 자리잡은 부러진 칼과 꽃을 들고 있는 사람은 전쟁에 나선 전사라기 보다는 오히려 패배한 투우사의 모습에 가깝다. 전작에 등장하는 유일한 남성인 그는 짓밟히고 쓰러져 만신창이가 된 채 패배의 길로 향하고 있던 당시의 스페인 역사 그 자체인지도 모른다.
작품 중간에서 상처 입은 자신의 몸을 넋이 나간 듯 이끌고 있는 여인은 그녀의 내적인 고통을 다소 과장해 드려내려 하고 있으며 오른쪽 끝에서 불길에 휩싸여 가는 여인과 함께 변명의 기회의 모두 박탈당한 채, 자신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재난의 중심에서 빠져나온 것이 아니라 그 쪽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불타는 자기 집의 페허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는 여인은 신화적인 관점에서 볼 때 지옥의 아가리 속으로 뛰쳐들어가며 속죄하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따라서 여인이 쓰러져 있는 지붕 무너진 곳의 가장자리를 핥고 있는 불꽃은 그 여인을 삼키고 있는 거대한 어떤 턱의 이빨들로 설명될 수 도 있다. 또 하나 짚고 넘어갈 것은 그 불꽃들의 숫자가 위에 네 개, 밑에 세 개라는 점인데 그 숫자들을 차례대로 합하면 7, 34 혹은 43이 되며 이는 악마론의 표준 수들과 일치한다.
특히 작품 전체를 비추는 횃불은 이성(理性)을 그것을 든 여성은 순결을 상징하는 것으로 횃불에 비춰진 황소는 얼마간 고통스러운 듯한 표정을 짓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