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의 정치제도 연구 - 재상의 위상으로 살펴본 고려의 정치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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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머리말

Ⅱ. 고려 초기 정치체제의 변화

Ⅲ. 재상의 기능과 역할
1) 중서문하성의 재상
(1)중서문하성의 기능
(2)중서문하성의 재상
2) 상서성
(1)상서성의 구성과 기능
(2)상서성의 재상
3) 중추원
(1)중추원의 구성과 기능
(2)중추원의 재상

Ⅳ. 재상의 지위
1) 경제적 지위
2) 사회적 지위

Ⅴ. 고려 후기 재상권의 변화

Ⅵ. 맺음말

본문내용

살펴보았다. 그러나 반드시 기억할 것은 전술한 내용들이 고려의 전 시기에 걸쳐 일괄되게 이루어져 왔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특히 관직을 제수하는 인원이나 관직명, 관직의 반차는 시기에 따라 조금씩 변동하였기 때문에 이를 기억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마지막으로는 이러한 세부적인 것에 연연하지 않고 좀 더 넓게 고려정치에 있어서의 재상의 위치를 파악해보려 한다. 즉, 시대가 변함에 따라서 조금씩 재상의 권한은 어떻게 변화되어 왔고, 이러한 변화들이 조선시기로 넘어가서는 어떠한 모습으로 나타나는지 간략하게 살펴보고자 한다.
고려사회는 무신란을 계기로 일대변화를 겪게 되고, 그 후 다시 원과의 관계는 고려 사회를 변화시키는 한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이러한 사회적 변화는 당연히 정치체제의 변화를 불러일으켰고, 이에 재상권도 크게 변질되었다.
고려후기 정치체제는 크게 바뀌었다. 중앙에는 종래의 3성 6부에 대신하여 도평의사사가 도당(都堂)으로서 최고정무기관으로 자리 잡았고, 5도 양계가 중간기구로 대두하는 변화가 일어났다. 특히 도당은 처음 임시적인 국방, 군사문제의 회의기구에 불과하였던 도병마사가 변질되었던 것으로 후기에 도평의사사로 개칭되면서 재상전원이 합좌하여 국사전반을 의결하는 일원적 집권기구로 성장하였다. 뿐만 아니라 도당에 참가하는 재상들은 국정회의와 더불어 직접 모든 시령을 발하고 국가행정까지 관장하여 중앙의 백사와 지방의 5도 양계에 하달하는 체제까지 갖추었으니 모든 왕명은 반드시 도당을 거쳐가게 되었다.
邊太燮, 1976,앞의 논문, 33~34쪽.
따라서 종래의 3성 6부를 기반으로 하던 관료체제는 무너지고 왕권을 실추되었음이 당연한 일이다.
이러한 재상권의 성장은 조선시대의 정치구조의 형성과 무관하지 않다고 본다. 조선은 기본적으로 유교정치 이념을 채택하여 이러한 사상이 통치질서에 반영되었다고 할 수 있다. 예컨대 정도전의 재상정치론에 따르면 군주는 하나의 상징적인 구심점으로 천명을 대행하고 왕정을 이끌어가는 최고의 통치자이다. 그러나 이러한 군주의 권한(왕권)은 어디까지나 상징적인 것이요, 관념적인 것이라서 실제적으로 왕이 하는 일은 재상을 임명하고 재상과 정사를 협의 결정하는 일뿐이라는 것이다.
『三峯集』券 7,「朝鮮經國典」上 宰相年表 "人主之職 在擇一相",
『三峯集』券 7,「朝鮮經國典」上 治典摠序 "人主之職, 在論一相"
따라서 정사를 처리하는 실제적인 업무에 있어서는 재상의 권한이 커질 수밖에 없었다. 정도전은 주자의 말을 인용하여 재상이 정책의 결정과 집행에 최고의 실권을 가지고 백관을 통솔하며 만민을 다스리는 실질적인 정치운영의 주체여야 한다고 했다.
정도전은 재상정치론에 있어서『周禮』와 같은 유교경전이나 중국 역대왕조의 정치론을 많이 참조 했는데 특히 주자의 견해를 많이 활용하였다. (도현철, 2000, 정도전의 정치체제 구상과 재상정치론」『한국사학보』9, 고려사학회, 184쪽.)
또한 왕실경비의 지출권에 있어서도 재상이 장악하였는데 결국 왕은 관념상으로는 최고 최대의 부의 소유자이지만 실질적으로는 국가의 경비지출에 의하여 생계를 지탱해 나가는 일종의 녹봉수결자 였고, 이러한 녹봉을 관리하는 것이 재상이었으니 실권은 재상이 쥐고 있었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이처럼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유교정치 이념을 바탕으로 재상의 실권은 더욱 확대되었으며 재상을 정점으로 하는 관료통치체제가 형성되었다고 할 수 있겠다.
Ⅵ. 맺음말
지금까지 고려시대 재상의 모습을 살펴보았다. 고려시대의 재상은 위로는 국왕을 보좌하고 국왕과 함께 국정 전반에 관해서 회의, 결정하는 권한을 가지는 동시에 아래로는 6부와 같은 실제 행정업무까지 관할하는 실로 중요한 위치에 있었다고 하겠다. 따라서 그 역할의 비중이 무거웠던 만큼 경제적, 사회적으로도 특권을 누릴 수 있었으며, 고려후기 일대 변란을 겪고 조선시대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그 권력은 더욱 강화되었다고 할 수 있다.
한편 처음 고려시대의 정치체제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재상을 그 주제로 잡았을 때에는 고려시대에 관한 사료들을 통해 실제의 재상의 모습을 다각도에서 살펴보고 싶은 욕심이 있었으나, 역시나 능력부족으로 고려정치체제를 정리하는 수준에서 그친 것 같아 안타깝다. 그러나 고려시대 정치체제도 워낙 방대한 분량이라 그 중에서 재상만을 정리하는 것도 쉽지 않은 작업이었다. 더욱 아쉬운 것이 있다면 정리하는 것에 연연한 나머지 아무런 문제의식을 갖지 못했다는 것이다. 재상에 대하여 살펴보는 과정에서 이해 부족으로 인해 생기는 의문점 외에는 어떠한 논리적 모순이나 생각해 볼 것들을 도출해 내지 못하고, 다만 아직 학자들 사이에서 이견들이 분분한 상황들만 조금 파악했을 따름이다.
비록 재상에 대하여 정리해 논 성과물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기는 하지만, 이번 주제를 살펴보는 과정에서 고려의 정치구조에 대해 좀 더 깊은 이해를 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큰 성과라 믿는다.
■ 참고 문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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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현철, 2000, 정도전의 정치체제 구상과 재상정치론」『한국사학보』9, 고려사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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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3.12.05
  • 저작시기20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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