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 그리스에서 비롯된 수사학의 세 원천
§ 체계로서의 수사학
♤ 문채
§단어의 문체
§ 의미의 문체
§ 구문의 문채
§ 사고의 문채
♤ 논증과 설득의 원리
§ 논증과 증명
§ 논증의 여러 유형
§ 설명적 환원 불가능의 원리
§ 폐쇄성의 원리
§ 전이의 원리
♤ 수사학의 철학
§ 수사학과 언어
§ 수사학과 성실성
§ 수사학과 철학
§ 맺음말
§ 체계로서의 수사학
♤ 문채
§단어의 문체
§ 의미의 문체
§ 구문의 문채
§ 사고의 문채
♤ 논증과 설득의 원리
§ 논증과 증명
§ 논증의 여러 유형
§ 설명적 환원 불가능의 원리
§ 폐쇄성의 원리
§ 전이의 원리
♤ 수사학의 철학
§ 수사학과 언어
§ 수사학과 성실성
§ 수사학과 철학
§ 맺음말
본문내용
호이다. 그리스 수사학자들이 황금률로 삼았던 것은 '그리스화하는 것'이었고, 로마인들에게는 참된 라틴어였다. 랑그라는 약호에서 일탈하기는커녕 연설자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것을 완벽에 도달하게 하는 것이었다. 요컨대 수사학은 그 문체론적인 면에서 선례를 통해 문채의 쓰임을 허용하면서 동시에 전언의 명확함과 효율성을 보존하기 위해 문채의 자유를 제한하는 약호이다. 이것이 랑그라는 약호처럼 혁신자와 창조자들에 의해 발전한다는 것은 두말한 나의 없는 사실이다. 바로 이와 같은 이유로 우리는 문채를 일탈이 아니라 선택이라고 정의하고자 한다. 이 경우 선택이란 단어의 선택, 문채의 선택, 리듬의 선택, 그리고 구문의 선택을 말한다. 일탈이라는 개념을 상대화시키는 조건으로 부득이한 경우에 일탈이혼을 취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런데 수사학의 일탈은 어떤 미신적인 '영도'로부터의 일탈이 아니라 다른 유형의 담화, 즉 타인을 설득시키는 것을 지향하지 않는 담화로부터의 일탈이다. 고대인들이 수사학에 대해서 취했던 입장도 그러한 것이었다. 수사학은 일상적인 산문뿐 아니라 시로부터도 일탈한다. 수사학의 산문적 특징을 알아보자. 수사적 산문의 특징은 우선 단어의 선택에 있다. 수사학은 상대방에게 이해되는 것을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시와 똑같은 효과를 얻는다. 따라서 수사학은 사람들이 많이 사용하는, 하지만 선별된 단어와 명확한 문채에 만족해야 한다. 수사적 산문의 또 다른 특징은 그 고유한 리듬에 있다. 수사적 산문은 '균형이 잡혀 있거나' 인상적이다. 그 리듬은 눈에 띄게 드러나지 않으면서 청중이 모르게 작용하게 하는 것을 가장 중요한 규칙으로 삼고 있다. 요컨대 담화에는 여러 유형이 있으며, 각각의 담화는 다른 담화들과 구분된다. 그렇다고 해서 이러한 일탈이 위반은 아니다. 이 일탈은 담화의 기능 자체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 수사학과 성실성
수사학은 '효용적인 기술'이라고 말한다. 타인을 설득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는 수사적 담화는 언어 일반의 규칙에서 벗어나지는 않지만 성실성을 나타내는 '자연스럽고 가식 없는' 언어에서는 벗어난다. 수사학의 가장 중요한 규칙은, 자신은 수사를 늘어놓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면서 성실하게 보이는 것이다. 더욱이 어순도치나 자문적인 표현, 환어법 같은 성실성을 나타내는 문채들도 있다. 이러한 문채들은 겉으로는 담화를 불완전해 보이게 하면서도 보다 자연스럽고 믿음직스럽게 만든다. 이에 대한 예를 들어보자. "왜냐하면 프랑스는 고립되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프랑스는 고립되어 있지 않습니다1 프랑스는 고립되어 있지 않습니다!" 반복어법은 강렬하고 억누를 수 없는 감정을 암시한다. 하지만 여기서 반복어법은 의도적이다. 또 다른 이유에서 성실성과 수사학을 연관시킬 수 있다. 성실하다는 것은 자기가 생각하고 느끼는 것을 설명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수사학적인 기술이 없으면 성실성은 진부함이나 과장에 빠지고 말 것이다. 그렇게 되면 가장 나쁜 의미에서의 공허한 '수사학'이 되고 말 것이다. 불론 성실성이란 존재하지 않는다거나 수사학적인 인위성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다. 참된 성실성과 단지 겉으로만 그렇게 보이는 성실성이 존재하는 것이다. 다만 이를 구분하는 것은 담화 그 자체에서는 찾을 수 없다. 이 문제에 대해 우리가 할 수 있는 말은 성실성은 수사학을 필요로 한다는 것뿐이다.
§ 수사학과 철학
철학의 본문은 진리를 찾는 데 있다. 그런데 수사학의 가치는 정당함, 효용성, 아름다움이다. 수사학에서 진리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다. 그러나 프렐망에 따르면 수사학은 애당초 철학의 방법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데카르트 이후에 논리-수학적인 방법이 실존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자멸적인 생각에 사로잡힌 나머지 철학-수사학적 방법을 버리고 말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철학은 아무 수사학이나, 이를테면 특별한 청자를 설득시키는 것을 목표로 삼는 변호사가 사용하는 것과 같은 수사학을 사용하지는 않는다. 이와달리 수사학은 '보편적인 청중'을 설득시키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고대의 수사학이든 새로운 수사학이든 실상 수사학은 가치를 발견하고 증명하기 위한 방법이 아니라, 고작해야 자기가 확보하고 있다고 믿고 있는 가치를 타인에게 설득시키는 방법임을 알아야 한다. 프렐망의 수사학은 그 영역이 넓고 풍부하지만, 그가 수사학에 기대하고 있는 도움을 철학에 주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그의 수사학은 순응주의나 순응주의의 역에 지나지 않는 회의주의에 도달할 뿐이다. 수사학과 철학의 관계를 세 가지로 알아보자. 첫째, 우선 프렐망이 지적한 것처럼 이제 철학은 형식논리 아니면 비논리적인 것이라는 식으로 경직된 양자택일에서 벗어나는 일이 필요하다. 둘째, 철학은 자기 고유의 수사학을 자각해야 한다. 셋째, 철학은 교육의 대상이기 때문에 아무리 철학이 합리적인 것이라도 수사학을 필요로 하지 않을 수 없다. 모든 위대한 철학자들은 자신의 생각을 전달하기 위해 수사학을 사용했다.
§ 맺음말
수사학은 그리스인의 발명품이며, 그리스인의 창안으로서의 수사학은 헬레니즘 문화의 커다란 두 공리에 의해 설명된다. 하나는 이성과 언어를 완전히 별개의 것으로 구분하는 거에 대한 거부이다. 이러한 거부는 '로고스(logos:이성 및 언어, 말, 명제)'라는 단어의 다의성에 의해 잘 표현되고 있다. 또 하나는 진리와 미(美)를 구분하는 것에 대한 거부이다. 미는 로티노스가 말한 것처럼 '진리의 화려한 빛'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고가 언어를 거친다고 한다면 화술은 사고의 논리적인 선결조건이자 교육의 선결조건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설사 '아름다움 말'이 반드시 진실한 것은 아니더라도 제대로 표현되지 않은 말은 거짓 같은 인상을 준다. 수사학에 대해 행해질 수 있는 윤리적인 비난은 본질적으로 ① 수사학은 진실임직한 것에 바탕을 두고 있다. ② 수사학은 근본적으로 논쟁적이다. ③ 수사학은 사람을 조종한다. ④ 수사학은 감정적인 것과 합리적인 것을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뒤섞는다.
수사학은 평화를 위한 도구, 명석함을 위한 도구, 문화의 도구이다. 수사학이 아니면 야만이 있을 뿐이다.
§ 수사학과 성실성
수사학은 '효용적인 기술'이라고 말한다. 타인을 설득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는 수사적 담화는 언어 일반의 규칙에서 벗어나지는 않지만 성실성을 나타내는 '자연스럽고 가식 없는' 언어에서는 벗어난다. 수사학의 가장 중요한 규칙은, 자신은 수사를 늘어놓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면서 성실하게 보이는 것이다. 더욱이 어순도치나 자문적인 표현, 환어법 같은 성실성을 나타내는 문채들도 있다. 이러한 문채들은 겉으로는 담화를 불완전해 보이게 하면서도 보다 자연스럽고 믿음직스럽게 만든다. 이에 대한 예를 들어보자. "왜냐하면 프랑스는 고립되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프랑스는 고립되어 있지 않습니다1 프랑스는 고립되어 있지 않습니다!" 반복어법은 강렬하고 억누를 수 없는 감정을 암시한다. 하지만 여기서 반복어법은 의도적이다. 또 다른 이유에서 성실성과 수사학을 연관시킬 수 있다. 성실하다는 것은 자기가 생각하고 느끼는 것을 설명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수사학적인 기술이 없으면 성실성은 진부함이나 과장에 빠지고 말 것이다. 그렇게 되면 가장 나쁜 의미에서의 공허한 '수사학'이 되고 말 것이다. 불론 성실성이란 존재하지 않는다거나 수사학적인 인위성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다. 참된 성실성과 단지 겉으로만 그렇게 보이는 성실성이 존재하는 것이다. 다만 이를 구분하는 것은 담화 그 자체에서는 찾을 수 없다. 이 문제에 대해 우리가 할 수 있는 말은 성실성은 수사학을 필요로 한다는 것뿐이다.
§ 수사학과 철학
철학의 본문은 진리를 찾는 데 있다. 그런데 수사학의 가치는 정당함, 효용성, 아름다움이다. 수사학에서 진리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다. 그러나 프렐망에 따르면 수사학은 애당초 철학의 방법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데카르트 이후에 논리-수학적인 방법이 실존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자멸적인 생각에 사로잡힌 나머지 철학-수사학적 방법을 버리고 말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철학은 아무 수사학이나, 이를테면 특별한 청자를 설득시키는 것을 목표로 삼는 변호사가 사용하는 것과 같은 수사학을 사용하지는 않는다. 이와달리 수사학은 '보편적인 청중'을 설득시키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고대의 수사학이든 새로운 수사학이든 실상 수사학은 가치를 발견하고 증명하기 위한 방법이 아니라, 고작해야 자기가 확보하고 있다고 믿고 있는 가치를 타인에게 설득시키는 방법임을 알아야 한다. 프렐망의 수사학은 그 영역이 넓고 풍부하지만, 그가 수사학에 기대하고 있는 도움을 철학에 주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그의 수사학은 순응주의나 순응주의의 역에 지나지 않는 회의주의에 도달할 뿐이다. 수사학과 철학의 관계를 세 가지로 알아보자. 첫째, 우선 프렐망이 지적한 것처럼 이제 철학은 형식논리 아니면 비논리적인 것이라는 식으로 경직된 양자택일에서 벗어나는 일이 필요하다. 둘째, 철학은 자기 고유의 수사학을 자각해야 한다. 셋째, 철학은 교육의 대상이기 때문에 아무리 철학이 합리적인 것이라도 수사학을 필요로 하지 않을 수 없다. 모든 위대한 철학자들은 자신의 생각을 전달하기 위해 수사학을 사용했다.
§ 맺음말
수사학은 그리스인의 발명품이며, 그리스인의 창안으로서의 수사학은 헬레니즘 문화의 커다란 두 공리에 의해 설명된다. 하나는 이성과 언어를 완전히 별개의 것으로 구분하는 거에 대한 거부이다. 이러한 거부는 '로고스(logos:이성 및 언어, 말, 명제)'라는 단어의 다의성에 의해 잘 표현되고 있다. 또 하나는 진리와 미(美)를 구분하는 것에 대한 거부이다. 미는 로티노스가 말한 것처럼 '진리의 화려한 빛'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고가 언어를 거친다고 한다면 화술은 사고의 논리적인 선결조건이자 교육의 선결조건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설사 '아름다움 말'이 반드시 진실한 것은 아니더라도 제대로 표현되지 않은 말은 거짓 같은 인상을 준다. 수사학에 대해 행해질 수 있는 윤리적인 비난은 본질적으로 ① 수사학은 진실임직한 것에 바탕을 두고 있다. ② 수사학은 근본적으로 논쟁적이다. ③ 수사학은 사람을 조종한다. ④ 수사학은 감정적인 것과 합리적인 것을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뒤섞는다.
수사학은 평화를 위한 도구, 명석함을 위한 도구, 문화의 도구이다. 수사학이 아니면 야만이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