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Opening
Ⅱ. Developing
-ⅰ. 인종문제란...
-ⅱ. 남북 관계를 통해 본 미국의 구조적 모순
-ⅲ. 말콤 엑스
-ⅳ. 마틴 루터 킹
-ⅴ. 스파이크 리
Ⅲ. Closing
Ⅱ. Developing
-ⅰ. 인종문제란...
-ⅱ. 남북 관계를 통해 본 미국의 구조적 모순
-ⅲ. 말콤 엑스
-ⅳ. 마틴 루터 킹
-ⅴ. 스파이크 리
Ⅲ. Closing
본문내용
사와는 달리, 그 정도로 무슨 용서와 화해냐며, 경쟁력도 없이 무조건 같이 버스자리 앉고, 학교 다니는 것에 만족할 때가 아니라, 흑인 스스로의 자부심을 갖고, 독립할 수 있는 기반만 있다면 흑인은 흑인끼리 분리되어 자치구로 살아도 된다는 서로의 입장차로 반목했던 두 사람이었다.
끝까지 살아 남아서 더 많은 합법적인 투쟁을 전개하려 했던 킹 목사나, 언젠가 백인이나 백인이 사주한 흑인의 손에 죽을 것이라며 거침없이 독설을 퍼붓던 말콤엑스, 모두 괴한의 총탄에 의해 세상을 떠났다. 누구의 노선이 결과적으로 옳았는지를 떠나서, 두 사람이 흑인인권운동에 끼친 영향은 지대하다. 흑인인권운동(Black Civil Right’s Movement)이었지만 오늘날 미국에서 여러 인종이 제 목소리를 내며, 살아나갈 수 있는 데는 말콤엑스와 마틴루터 킹을 비롯한 흑인들의 처절한 투쟁과 희생의 대가였던 것 아닌가? 그네들의 흘린 피값에 유색인종인 우리 한인들이 분명 감사해야 할 부분이 있는 것이다.
차라리 '백인문제'라고 바꿔 부르자고, 이러한 미국이 무슨 권리로 남의 나라 인권을 참견할 자격이 있냐며 반드시 U.N에 고발해야만 한다고 Malcolm X가 주장했었고 그토록 외쳐왔던 흑인문제는 아직도 그리 간단해 보이지 않았다. 여전히 흑인 빈민가 할렘에는 백인 마피아에 의해 수입되고 마약이 체계적인 조직을 통해 미국 어느 지역보다도 느슨한 경찰의 단속을 피해 공공연히 거래되어 흑인들의 신체와 정신과 가정을 황폐화시킬 뿐 만 아니라 얼마 안 되는 실업수당마저 고스란히 백인들에게 되돌려지는 악순환은 수 십년이 지난 지금도 별로 달라진 것이 없다. 이제는 흑인도 술과 마약 등의 유혹을 뿌리치고 열심히 노력한다면 부와 명예를 차지하고 성공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음은 전세계의 우상이 되어버린 마이클 조던이나 마이클 잭슨을 통해 증명된다. 하지만 이로 인해 변호사로, 선생님으로, 공무원, 경찰관, 엔지니어등의 직업을 가져 안정된 소득을 통해 가정을 꾸려 아직도 하류층의 대부분을 이루는 이들이 전반적인 지위향상을 위해 사회 곳곳으로 진출할 수 있도록, 맡은 바 학업에 열심히 몰두해야 할 젊은 흑인 청소년들이 다들 제2,제3의 조던이나 타이슨을 꿈꾸며 농구공을 던지느라, 샌드백을 두드리거나 연예인 광대가 되기 위해 인생을 걸고 백인들의 뜻대로, 가진 자의 의도한 바대로 확률 없는 도박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외적으로의 모든 차별은 철폐되었다고 하지만 아직도 기숙사 입관원서에는 원하는 룸메이트의 Color를 고르는 는 이들이 있다. 백인은 백인, 흑은 흑끼리, 동양인끼리 방을 주는 게 상례라서 기껏 말을 배우러 갔더니 한국인끼리 방을 쓰다가 왔다고 불평들을 하지만 그래도 막상 흑인과 한방을 배정 받으면 깜둥이 룸메이트는 결단코 안 된다고들 한다. 그들이 아프리카 말을 쓰는 것이 아닌 이상 영어를 더 배우고 쓰기 위해 한국사람이 아닌 미국 학생과 룸메이트를 원한다고 했다가 흑인이라고 거절하는 것을 제3자 입장에서 보면 분명 인종차별이다. 그러면서 백인들이 같은 방을 꺼리거나 룸메이트가 김치냄새라도 불평을 하면 뭐 인종차별을 당했다고 분개해 한다.
영어선생으로 온 백인들에겐 지나칠 정도로 환대를 해주지만 우리가 맨 처음 타국 땅에서 이민역사를 이루어 나갈 때처럼 한국에서 우리가 마다하는 고된 일을 대신 하는 동남아 근로자들에겐 따뜻한 격려와 보살핌 대신 혹독한 멸시와 푸대접이 있음은 부끄러운 일 정도를 넘어서 이들이 각자의 고국에 귀국하여 반 한국단체를 구성하기에 이르렀다. 뿐만 아니라 그래도 동남아 근로자들보다 환대를 받았던 백인들조차도 ETACK(English Teachers Attacking Corrupt Korea ; 부패한 한국을 고발하는 영어 선생들의 모임)란 단체를 결성해서 현재 인터넷에 등록되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아무리 비싼 미제 농구화를 신어도 덩크슛은 불가능한 것인데 NBA하이라이트와 함께 보여지는 상업광고에 이 나라 청소년들은 자연스레 농구화뿐만 아닌 미국상품의 열렬한 구매자로 커가고 있다. 94년 미국 월드컵 축구 중계를 주관한 유럽 연합 방송사는 그들의 문화를 미국 상업주의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상업 광고물을 의도적으로 안 비추고 그 대신 여러 민족의 고유한 모습을 보여주려 했단다. 덕분에 콧털 김흥국 아저씨 응원하는 모습도 전 세계 매스컴을 탔었고 태극기도 더 많이 볼 수 있었다.
이번 과제는 과거로의 여행이기도 했다. 그들의 모습은 곧 전쟁직후 우리 할머니, 어머니의 모습은 아니었던가. 같은 공장이라도 외국인 회사라면 보수도 많았기에 너도나도 선호하였고 아는 사람이라도 있어 미군 P.X.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이 뭐 큰 벼슬이라도 특권이라도 되는 듯 부러워하고 양주 한병씩 들 부탁하지 않았던가. 미국 비자를 가졌다는 것이 사회적 신분을 말해주던 때가 있었다.
지금은 어떤가. 한번이라도 비자 발급을 위해 미국 대사관 인터뷰를 가본 사람은 느끼는 것이 있었을 것이다. 비자발급 면접심사를 시행하는 나라는 전세계에 몇 되지도 않는다는데 자기 돈 들여 관광 가고 유학 가는 사람들이 뭐 그리 퇴짜맞지는 않을까 전전긍긍하는지, 거기서 일하는 한국 직원들조차 뭐 그리 거만하고 오만불손한지. 미국 한번 방문할 수 있는 허가증이 비자인데 거기에 보증인을 내세우고 재정보증을 위해 일정액 이상이 있는 통장까지 보여주어야 하는 서류심사와 새벽부터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하는 까다롭고 번거로운 면접 절차에 분통이 터지기는 하지만 중국에 거주하는 조선족에게도 똑같은 상황으로 시행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을 땐 할말을 잃고 만다.
또, 언제부터인지 모르는 사이에 군대만 다녀오면 지역감정이 뿌리를 내려가고 있는 것 발견한다. 선거 때가 되면 지역 패권주의 운운하며 지역감정이 정치판에 악용되고 만다. 흑백도 더불어 잘 살자고는 하지만 풀리기는커녕 점점 감정의 골은 더더욱 깊어지고 굳어지는 흑백문제 못지 않게 한쪽이 너무 기울어져서 그 정도가 심화되는 날에는 우리 사회도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 폭탄을 안고 살게 될 날이 있진 않을까 우리도 강 건너 불 구경해도 될 것 같지 않아 긴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끝까지 살아 남아서 더 많은 합법적인 투쟁을 전개하려 했던 킹 목사나, 언젠가 백인이나 백인이 사주한 흑인의 손에 죽을 것이라며 거침없이 독설을 퍼붓던 말콤엑스, 모두 괴한의 총탄에 의해 세상을 떠났다. 누구의 노선이 결과적으로 옳았는지를 떠나서, 두 사람이 흑인인권운동에 끼친 영향은 지대하다. 흑인인권운동(Black Civil Right’s Movement)이었지만 오늘날 미국에서 여러 인종이 제 목소리를 내며, 살아나갈 수 있는 데는 말콤엑스와 마틴루터 킹을 비롯한 흑인들의 처절한 투쟁과 희생의 대가였던 것 아닌가? 그네들의 흘린 피값에 유색인종인 우리 한인들이 분명 감사해야 할 부분이 있는 것이다.
차라리 '백인문제'라고 바꿔 부르자고, 이러한 미국이 무슨 권리로 남의 나라 인권을 참견할 자격이 있냐며 반드시 U.N에 고발해야만 한다고 Malcolm X가 주장했었고 그토록 외쳐왔던 흑인문제는 아직도 그리 간단해 보이지 않았다. 여전히 흑인 빈민가 할렘에는 백인 마피아에 의해 수입되고 마약이 체계적인 조직을 통해 미국 어느 지역보다도 느슨한 경찰의 단속을 피해 공공연히 거래되어 흑인들의 신체와 정신과 가정을 황폐화시킬 뿐 만 아니라 얼마 안 되는 실업수당마저 고스란히 백인들에게 되돌려지는 악순환은 수 십년이 지난 지금도 별로 달라진 것이 없다. 이제는 흑인도 술과 마약 등의 유혹을 뿌리치고 열심히 노력한다면 부와 명예를 차지하고 성공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음은 전세계의 우상이 되어버린 마이클 조던이나 마이클 잭슨을 통해 증명된다. 하지만 이로 인해 변호사로, 선생님으로, 공무원, 경찰관, 엔지니어등의 직업을 가져 안정된 소득을 통해 가정을 꾸려 아직도 하류층의 대부분을 이루는 이들이 전반적인 지위향상을 위해 사회 곳곳으로 진출할 수 있도록, 맡은 바 학업에 열심히 몰두해야 할 젊은 흑인 청소년들이 다들 제2,제3의 조던이나 타이슨을 꿈꾸며 농구공을 던지느라, 샌드백을 두드리거나 연예인 광대가 되기 위해 인생을 걸고 백인들의 뜻대로, 가진 자의 의도한 바대로 확률 없는 도박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외적으로의 모든 차별은 철폐되었다고 하지만 아직도 기숙사 입관원서에는 원하는 룸메이트의 Color를 고르는 는 이들이 있다. 백인은 백인, 흑은 흑끼리, 동양인끼리 방을 주는 게 상례라서 기껏 말을 배우러 갔더니 한국인끼리 방을 쓰다가 왔다고 불평들을 하지만 그래도 막상 흑인과 한방을 배정 받으면 깜둥이 룸메이트는 결단코 안 된다고들 한다. 그들이 아프리카 말을 쓰는 것이 아닌 이상 영어를 더 배우고 쓰기 위해 한국사람이 아닌 미국 학생과 룸메이트를 원한다고 했다가 흑인이라고 거절하는 것을 제3자 입장에서 보면 분명 인종차별이다. 그러면서 백인들이 같은 방을 꺼리거나 룸메이트가 김치냄새라도 불평을 하면 뭐 인종차별을 당했다고 분개해 한다.
영어선생으로 온 백인들에겐 지나칠 정도로 환대를 해주지만 우리가 맨 처음 타국 땅에서 이민역사를 이루어 나갈 때처럼 한국에서 우리가 마다하는 고된 일을 대신 하는 동남아 근로자들에겐 따뜻한 격려와 보살핌 대신 혹독한 멸시와 푸대접이 있음은 부끄러운 일 정도를 넘어서 이들이 각자의 고국에 귀국하여 반 한국단체를 구성하기에 이르렀다. 뿐만 아니라 그래도 동남아 근로자들보다 환대를 받았던 백인들조차도 ETACK(English Teachers Attacking Corrupt Korea ; 부패한 한국을 고발하는 영어 선생들의 모임)란 단체를 결성해서 현재 인터넷에 등록되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아무리 비싼 미제 농구화를 신어도 덩크슛은 불가능한 것인데 NBA하이라이트와 함께 보여지는 상업광고에 이 나라 청소년들은 자연스레 농구화뿐만 아닌 미국상품의 열렬한 구매자로 커가고 있다. 94년 미국 월드컵 축구 중계를 주관한 유럽 연합 방송사는 그들의 문화를 미국 상업주의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상업 광고물을 의도적으로 안 비추고 그 대신 여러 민족의 고유한 모습을 보여주려 했단다. 덕분에 콧털 김흥국 아저씨 응원하는 모습도 전 세계 매스컴을 탔었고 태극기도 더 많이 볼 수 있었다.
이번 과제는 과거로의 여행이기도 했다. 그들의 모습은 곧 전쟁직후 우리 할머니, 어머니의 모습은 아니었던가. 같은 공장이라도 외국인 회사라면 보수도 많았기에 너도나도 선호하였고 아는 사람이라도 있어 미군 P.X.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이 뭐 큰 벼슬이라도 특권이라도 되는 듯 부러워하고 양주 한병씩 들 부탁하지 않았던가. 미국 비자를 가졌다는 것이 사회적 신분을 말해주던 때가 있었다.
지금은 어떤가. 한번이라도 비자 발급을 위해 미국 대사관 인터뷰를 가본 사람은 느끼는 것이 있었을 것이다. 비자발급 면접심사를 시행하는 나라는 전세계에 몇 되지도 않는다는데 자기 돈 들여 관광 가고 유학 가는 사람들이 뭐 그리 퇴짜맞지는 않을까 전전긍긍하는지, 거기서 일하는 한국 직원들조차 뭐 그리 거만하고 오만불손한지. 미국 한번 방문할 수 있는 허가증이 비자인데 거기에 보증인을 내세우고 재정보증을 위해 일정액 이상이 있는 통장까지 보여주어야 하는 서류심사와 새벽부터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하는 까다롭고 번거로운 면접 절차에 분통이 터지기는 하지만 중국에 거주하는 조선족에게도 똑같은 상황으로 시행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을 땐 할말을 잃고 만다.
또, 언제부터인지 모르는 사이에 군대만 다녀오면 지역감정이 뿌리를 내려가고 있는 것 발견한다. 선거 때가 되면 지역 패권주의 운운하며 지역감정이 정치판에 악용되고 만다. 흑백도 더불어 잘 살자고는 하지만 풀리기는커녕 점점 감정의 골은 더더욱 깊어지고 굳어지는 흑백문제 못지 않게 한쪽이 너무 기울어져서 그 정도가 심화되는 날에는 우리 사회도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 폭탄을 안고 살게 될 날이 있진 않을까 우리도 강 건너 불 구경해도 될 것 같지 않아 긴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소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