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츠오 바쇼의 작품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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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마츠오 바쇼의 작품세계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서론

Ⅱ. 본론
(1) 마츠오바쇼의 일생
(2) 노자라시여행 번역
(3) 노자라시여행의 여정
(4)기존 번역본과의 평가와 비교
(5)마츠오바쇼의 기행문의 성격

Ⅲ. 결론
(1) 맺음말

본문내용

을 가린 것)『가이오호이』를 봉납했다. 이로써 하이카이 시인으로서 출발하는 스스로의 결의와 성공을 신사에 기원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봄, 에도에서 『가이오호이』를 출판했다.
30세부터 37세까지는 주로 에도에서 생활하면서 당시에 유행하던 단린 하이카이(교토를 중심으로 한 언어 유희적인 경향의 하이카이)에 탐닉해 있었다. 31세 때, 교토의 하이카이 종장 기타무라 기긴(北村季吟)으로부터 렌가 하이카이 작법의 비전서(秘書) 『우모레기』를 전수 받았다. 이 비전서를 전수 받았다고 하는 것은 하이카이 시인으로서, 그리고 그것을 업으로 하는 하이카이 지도자로서 독립을 인정받았다는 것을 의미했다. 또한 33세 때 하이카이 친구 소도와 함께 출판한 『에도양음집(江陰陽集)』에 수록된 작품들은 바쇼가 당시에 유행하던 단린 하이카이에 탐닉해 있었음을 엿보게 한다. 37살이 되던 해인 1680년, 시정을 벗어나 후카가와에서 은둔 생활을 시작했다. 다음 해 제자인 리카(李下)가 그가 머물던 오두막의 정원에 파초를 심었던 것에서 후카가와의 오두막을 ‘바쇼 암(庵)’이라고 불렀으며, 그의 호가 바쇼인 것도 여기에서 유래한다. 또 바쇼 암 근처에 임재종 묘심사 파의 숙박소인 임제암이 있었는데, 그곳에 가시마 곤폰 사(鹿島 根本寺)의 주지승 붓초가 머물렀던 인연으로, 이 즈음 그로부터 참선을 배웠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후 4년여 동안 이곳에서 생활하면서 특히 노자와 장자, 이백, 두보, 한산, 백낙천, 소동파 등의 중국 시인의 시와 사이교 등 일본의 전통 시가에 심취해 있었으며, 이 시기의 그의 하이카이의 특징은 노장(老)취미와 한시조를 도입한 격조 높은 새로움에 있었다.
41살이 되던 1684년, 바쇼는 <들판의 해골로/뒹굴리라 다짐코 떠나가자니/바람은 살을 에이는도다> 라는 하이쿠를 읊으며, 이제까지의 은둔 생활을 박차고 『노자라시 여행』의 길을 떠났다. 이 후 1687년 8월 『가시마 모데(鹿島詣)』 여행, 10월 『오이노 고부미(おいの小文)』, 1688년 『사라시나 기행(更科紀行)』, 1689년 『오쿠노호소미치(おくのほそ道)』에 이르기까지, 그의 생활은 거의 여행과 은둔의 연속이었다. 이들 여행 속에서 그는 각지의 하이카이 시인들과의 만남의 장을 열어, 자신의 하이카이를 전파해 갔다.
5개월이 더 걸려 6000여리의 『오쿠노호소미치(おくのほそ道)』의 긴 여행을 끝낸 바쇼는, 이 여행이 끝나고 나서 2년도 더 지난 다음 에도로 돌아왔다. 이 동안 쇠약해진 몸으로 교토와 오사카 등지를 전전하면서 많은 문하생들을 맞아들이는 한편, 그들과의 교류를 활발히 함과 동시에 여행을 통해 체득한 자신의 하이카이를 작품화했다. 그러던 1694년 10월14일, <여행길에 병드니/황량한 들녘 저편을/꿈은 헤메는도다>라는 하이카이를 세상에 남기고, 여행지였던 오사카에서 51세의 나이로 임종을 맞았다.
(2) 노자라시여행(野ざらし紀行) 번역
千里に旅立て, 路糧を包まず, 「三更月下無何に入る」と云けむ, 昔の人の杖にすがりて, 貞亨甲子秋八月, 江上の破屋をいづるほど, 風の, そぞろ寒也
천리 먼 길 여행을 떠나는데, 중도의 식량을 준비하지도 않고, 깊은 밤 달빛을 받으며 자연 그대로의 이상향으로 들어간다라고 생각하며, 옛 사람들의 정신을 따라 여행길을 떠나려 한다. 1684년 음력 8월 가을, 스미다 강가의 근처의 누추한 집을 떠나려 하니 바람의 소리도 어쩐지 차갑게 느껴진다.
들판 해골로 남아
뒹굴어지어라
살에는 바람
(野 ざ ら し を 心 に 風 の し む 身 か な)
≫‘길가에 뒹구는 해골이 되더라도’ 라고 각오하고 여행을 떠나려 하니 가을 바람이 몸에 배어 오는구나
♣방랑하다 쓰러져 들판에 나뒹구는 해골이 될 각오를 하고 길을 떠나니 차가운 가을 바람이 휑하니 몸을 스치고 지나간다.<들판의 해골>이라는 의미의<노자라시>여행길을 나서며 읊은 구이다. 서(序)에 『장자』의 소요유가 인용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장자의 영향이 짙다. 세속의 모든 연을 끊고 절대 자유의 무하유(無何有)의 세계에 노닐고자 길을 떠나며 해골이 될 각오를 새기니 뼛골을 스치고 지나가는 가을 바람은 마치 천뢰(天:자연의 속삭임)와도 같이 들린다.
가을 십년에
에도를 가리키며
고향이라네
(秋 十 と せ 却 て 江 を 指 故 )
≫정들어 벌써 10년, 지금 고향을 향하면서도, 오히려 에도가 그립고, 진정한 고향처럼 느껴진다.
こゆる日は雨降て, 山皆雲にかくれたり.
하코네 관을 넘던 날은, 비가 내린 탓에 어느 산이나 모두 구름에 가려져 있었다.
안개비 속에
모습 감춘 후지산
각별하여라
(霧 し ぐ れ 富 士 を 見 ぬ 日 ぞ お も し ろ き)
≫안개비가 내려, 주위는 흐려있고, 언제나 보이던 후지산의 모습도 오늘은 구름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저 편의 후지산을 생각하며 여행하는 것도 또한 재미있다.
何某ちりと云けるは, このたび道の助けとなりて, よろづいたはり, 心をしはべる. 常に莫逆の交り深く, 朋友信有かな, この人.
치리라는 사람은 이번 여행에 나의 길동무가 되어, 여러 가지로 나를 위로해주며, 마음을 다해 주었다. 평소부터 마음을 열어 사귐이 깊으니, 친구에 대한 진실이 있는 사람이구나! 이 사람은
후카가와여
파초를 후지산에
맡기고 가네
(深 川 や 芭 蕉 を 富 士 に 預 行)
≫ 深川草庵의 파초는 아쉬움이 남지만 잠시 그 앞에서부터 바라보는 후지산에 맡기고 여행을 떠나자꾸나
富士川のほとりを行くに, 三つばかりなる捨子の哀げに泣く有. この川の早にかけて, 浮世の波をしのぐにたえず, 露ばかりの命待まと, 捨置けむ. 小萩がもとの秋の風, こよひやちるらん, あすやしほれんと, 袂より食物投げてとをるに,
후지강 부근에 이르렀을 때, 3살 정도의 버려진 아이가 너무나도 슬프게 울고 있었다. 이 강의 급류에 아이를 버리고 자신들만 이 세상 풍파를 살아가고자 한다는 것은 견딜 수 없다. 그래도 결국 이슬이 마를 때까지의 덧없는 운명인 것을 알면서도, 이렇게 강가에 버려 둔 것 일 것이다. 이 작은 싸리에 부는 찬 바람에 약한 생명이 오늘 져버릴까, 내일 져버릴까 하는 애처러운 마음에, 소매자락에서 먹을 것을 꺼내 주고 갈려고 할 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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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4.07.11
  • 저작시기20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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