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68 혁명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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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부르주아 권력을 붕괴시킬 가능성, 노동자들을 위한 새로운 민주적 권리들과 자유를 획득할 가능성, 자본주의적 발전의 목표들과 양시들을 재검토할 가능성이 제기되었다. 총파업은 제 5공화국 구조 자체에 의문을 제기한 것이다. 그는 패배에 대한 책임을 운동 전체가 아니라 노동운동에서의 개량주의적 리더쉽에서 찾아야했다. 그리고 그는 운동의 장기적 전폭적 효과를 인식하지 못한다. 68혁명 이후 부르주아지와 프롤레타리아트 사이의 힘의 균형은 보다 노동자들에게 유리해졌다. 이 힘의 균형은 프랑스 부르주아지의 헤게모니의 위기를 악화시키고 있다. 그들의 이익을 지속적으로 관철시키기 위한 그들의 계획에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 그의 논쟁의 핵심에는 서유럽이 국제 노동분업에서 지배적 지위를 계속적으로 차지하고 제 3세계로부터 부를 빼앗는 일을 계속하는 한, 서유럽에서는 아무리 사소하고 전례가 없는 혁명적 전망도 존재할 수 없다고 확신한다. 제 3세계에 존재하는 착취가 제국주의적 부르주아지에게 기반이 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것이 서구에서 임금 노동자에 대한 착취, 자본주의 생산양식에 내재한 모순이 없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식민지제국의 소유가 양차 대전 사이의 수년간의 불황, 실업과 기아로부터 선진자본주의 국가를 구해주지는 않았다. 투쟁과 사회적 폭발을 잠재하고 있는 것은 제국주의의 중심부 프랑스에서도 마찬가지인 것이다.
③ 세계사적 의의
프랑스 혁명은 꼬뮌
) 프랑스 중세의 주민자치제 12세기에 북프랑스를 중심으로 급속하게 성립되었다. 본래 서로 평화를 서약한 주민의 공동체로서, 사회의 혼란이나 영주권(領主權)의 남용에 대해서 사회질서의 안정을 도모하기 위해, 주민이 상호부조를 명세하고 단결하며 왕 또는 영주로부터 특별히 사회단체로 인정을 받은 것이다.
을 추구한 프롤레타리아의 패배로 끝을 맺었다. 그러나 이 패배는 이후의 역사에서 보면 계급간의 싸움에 있어 서전에 불과하다. 5월의 노동자투쟁은 학생의 카드제시로 시작하여 드골의 또 다른 카드제시로 끝났다. 그러나 5월혁명에서 승리한 프랑스 부르주아지는 전후 제국주의의 경제적 세계체제의 막바지에서 프랑스자본주의가 부딪친 문제를 조금도 해결하지 못했으며 따라서 그것을 둘러 싼 대립에서 결정적인 승리를 했다고 보기 힘들게 한다.
5월혁명은 선진자본주의국 내부의 진정한 투쟁이 공장점거반란으로 들고 일어선 노동자대중과 지배계급·국가권력사이에서가 아니라 오히려 노동자대중 내부의 혁명 파와 질서파 사이에서 벌어지고 있음을 예리하게 폭로했다. 즉 노동자에게 자기 자신들 속의 질서파, 조합적·회의적 개량파를 무력화하지 않고서는 지배계급·국가권력에게 승리할 수 없다는 사실을 새삼 깨우쳐 주었다.
또 하나 혁명의 전위에게 요구되는 것은 부르주아적 노동자당과 싸울 수 있어야 하며 조합주의적인 캠페인은 지양해야 한다는 것이다.
Ⅳ. 결론
68년 5월은 프랑스의 사회를 완전히 뒤바꿔 놓았다.
첫째, 도덕적 가치관에 대한 일대 혁명으로, 이때부터 학교와 가정, 사회 전반에 걸쳐 권위주의가 사라지게 되었다. 권위의 해체는 곧 다양성의 인정, 타자에 대한 인식, 자유분방함 등으로 이어졌다. 또한 여권 신장과 여성 해방 운동이 활성화된 것도 이 때였으며, 권력과 체제에 대한 회의, 좌파에 대한 반성도 왕성하게 나타났다. 또한 혁명 당시 구호중 '드골도 미테랑도 반대한다 권력을 인민에게' 라는 것이 있는데, 이것은 인간 위에 군림하는 자본주의, 사회주의 양대 권위주의적 체제 모두를 거부한다는 뜻으로 해석 할 수 있다. 학생뿐만이 아니라 대다수 국민들이 자신들의 체제에 대하여 보다 진지한 검토가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새로운 시대에 걸맞은 새로운 시대 조류나 철학의 요청으로 푸코, 레비 스트로스, 라캉, 알튀세, 데리다, 드뢰즈, 가타리, 부르디외, 장 보드리야르 등 포스트모더니스트들에의해 현대 프랑스 철학이 발전하게 되었다.
둘째, 68혁명의 경험으로 시민 사회가 강화되고 저항 세력이 뚜렷한 주류세력으로 자리잡되었다. 사회의 주인은 시민들 자신이고 기성세대를 뒤바꿔 놓을 유일한 권리 또한 시민들에게 있다는 것을 인식하면서, 이들은 기존 좌파들과는 차별 화된 운동을 시작하였다. 구좌파가 노동계급을 중심으로 정치 권력을 목표로 하는 사회 변혁 운동을 벌였다면 이들은 기존 노동 조직과 정당을 벗어나서 그 밖에〈일상적 영역에 있어서의 참여와 가치〉를 추구하며 새로운 삶의 양식과 자아실현이라는 질적 가치를 추구해가기 시작하였다. 이른바 〈민주주의의 일상화〉, 새로운 형태의 사회 운동이 일어난 것이다. 그 이념은 반핵 평화 운동과 생태주의, 페미니즘, 환경 운동, 지역 자치 운동 등으로 오늘날까지도 그 영향력은 지금까지도 막대하며 이런 의미로 68혁명을 '신 사회 문화운동의 발원지'로 평가하고 있다.
68혁명 이후 새롭게 성장한 세대들은 그 권위주의적 지배에도 순순히 응하지 않았으며, 동·서·남·북을 규제할 수 있는 능력은 제한되었고 신세대, 여성, 소수 인종집단, 소수 민족 집단 등의 종속적 지위집단들은 지배적인 지위집단들(연장자 세대, 남성, 다수인종집단, 다수 민족 집단등)의 통제에 대하여 반항적으로 변모하였다. 그리고 국가 권력의 통제에 대해 68세대들은 이전보다 훨씬 덜 순응적이 되었다. 이러한 점들을 고려할 때 68혁명은 전 세계의 사회체제 내의 세력균형을 종속집단들에게 유리한 쪽으로 바꾸려 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 참고문헌 ■
편집부 편, [프랑스 5월 혁명], 백산서당
정수복, [새로운 사회운동과 참여민주주의], 문학과 지성사
월러스틴, '1989, 1968년의 연속', [반체제운동], 창작과 비평사
이가진, "연재기획 - 30주년 맞는 프랑스 68혁명의 오늘" [길], 1998년 1월-3월
신진욱, 허준석, '1968: 거부된 과거, 감추어진 미래', [학회평론] 11호, 1995.
뤽 페리, 알랭 르노, [68사상과 현대 프랑스 철학], 인간사랑
편집부 편, 읽을꺼리 2호, 카피레프트모임, 1998
http://galmuri.co.kr/jhjoe (프랑스 68혁명, 신자유주의, 그리고 오늘날의 사회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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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4.08.26
  • 저작시기20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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