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만발발자 유지에 대한 민족지리학적 추단(추단)
Ⅱ. 토갱석곽묘, 석관묘와 대석개묘, 대석개적석묘, 계단적석묘가 공존하고 있다는 것은 혼강 중상류에 맥족과 다른 다른 문화가 남북에서 교차되었다는 것을 반영하는 것이다.
Ⅲ,만발발자(만발발자)유지의 도기 구성은 "맥계" 위주이고 "예계"도 가해진 유형의 특징을 갖는다.
Ⅱ. 토갱석곽묘, 석관묘와 대석개묘, 대석개적석묘, 계단적석묘가 공존하고 있다는 것은 혼강 중상류에 맥족과 다른 다른 문화가 남북에서 교차되었다는 것을 반영하는 것이다.
Ⅲ,만발발자(만발발자)유지의 도기 구성은 "맥계" 위주이고 "예계"도 가해진 유형의 특징을 갖는다.
본문내용
' 유적이 반영한 고구려 건국 전 혼하의 실제사회 상황이다. 동시에 고고발견과 문헌기재 두 방면에서 국내외 일부 분석자들이 주몽이 남하하여 혼하유역에 '건국'하기 전에 이미 '옛 구려국(고구려국)' 하나가 존재하였다는 논리는 문헌 근거와 고고학적 증명이 부족한 것이다.
오'2강'과 '2하' 상류 '고구려 선대문화'의 발굴과 분석을 중시해야 한다.
본문 제1절에서 '2강'(압록강, 혼강)와 '2하'(태자하, 혼하) 상류를 중심으로 한 요동 청동기문화, 즉 필자가 10년 전에 제출한 고구려 건국 전 그의 선조인 요동 '맥'족의 '고이'문화를 지적하였다. 이 문화는 전형적인 요동 청동기문화의 지역특징을 구비하였다. 적석묘,석개묘,석관묘를 위주로 하고 화장습속을 동반한 협사조갈도계의 '청동문화'는 근년에 이르러 환인 오녀산산성, 통화의 만발발자와 집안 장천 등 여러 곳에서 '전 고구려시기' 고고유적이 연속해서 발견됨에 따라 점차 인정되고 있다. 이 지역의 청동시대 고고문화는 유적의 특징을 볼 때 천산산맥 남쪽의 여대지구, 합달령지구, 용강산맥 북쪽 송화강 상류의 '서단산문화'가 모두 선진 '동이'문화 계통에 속하지만 깊숙한 문화내함을 보면 비교적 큰 차이가 존재한다. 지역성 민족고고학적 관점에서 볼 때 이 토착 청동문화는 적어도 아래와 같은 몇 가지 문제에서 국내외 분석자들의 주목을 불러일으킨다.
(1) 오늘날 확인할 수 있는 고고발견을 놓고 볼 때 상술한 '2강'과 '2하' 상류를 중심으로 한 청동문화는 마침 중국 고대문헌에 기록된 '대수맥', '소수맥', '양맥'과 지역적으로 부합된다. 게다가 문화작으로 선후 계승관계를 갖고 있다. 문화특성과 시대는 상주로부터 시작하여 춘추, 전국, 서한 이전의 청동시대 발전시기를 경과하였다. 고고유적상 전기는 '동, 석을 섞어 사용하였다'고 할 수 있고, 후기는 요동식 '청동단검'과 마제석검, 돌촉, 석관묘를 대표로 한 비교적 발달한 청동문화라고 할 수 있다.
(2) '2강', '2하' 유역의 '전 고구려시기' 청동문화를 도기, 동기와 장례습속으로 놓고 볼 때 토착문화의 성질이 뚜렷하다. 이런 문화는 중국 북방 소수민족이 신석기시대 말기로부터 청동기까지 공통적으로 지닌 특징이다. 예를 들면 '위호'를 주요 형식으로 한 중심취락유지와 초기 석성터, 석관묘 등이며 특수성이 매우 뚜렷하다. 이 논문 몇 개 절에서 열거한 증명과 같다. 예를 들면 무덤 중에 "고인돌(석붕)"과 "적석묘"에서 발전된 대석개묘, 석개적석묘, 적석을 덮개로 한 초기 석관묘와 석실묘 ; 도기 중에서 협사갈도를 위주로 하고 "삼족기"가 없는 평저(평저),다이비문관(다이비문관)과 주전자; 장법과 적석묘가 공존하는 화장습속 및 독특한 요동 "맥계" 청동단검, 쌍공석도 등이다. 위에서 본 고고문화 특징은 개별유형과 유지에만 있는 것이 "2강", "2하" 상류의 "고구려 선대문화" 전체에 공존한다. 이는 고구려 선대민족의 기원, 종속 및 문화성질을 탐구하는데 기타 지구와 비할 바 없는 전형성을 구비하고 있다.
(3) 근년에 "2강", "2하" 유역에서 "환산위구"와 "석원취락"이 발견된 것은 비록 양이 적지만 의의가 아주 크다. 이런 "환산위구"와 "석원취락"은 사실 고구려가 공식적으로 산성을 수축하기 전, "2강"과 "2하"지구 초기 예맥부족(맥족 위주)이 산에서 거주하는 "씨족부락"에서 정식 산성으로 넘어가는 과도기적 형식 또는 원형이다. 비교적 이른 요서 "하가점하층문화(하가점하층문화)"의 부족 가운데 예를 들면 대전자,사분지,적봉 동산저 같은 유지에서 이미 분산된 "환호취락"과 집중적인 초기 산성이 동시에 존재하는 현상이 많이 발견되었다. 통화의 만발발자 와 집안의 장천유지의 발견을 참고하면 이는 옳지 않은 설이다. "환호취락" 혹은 "환호위호(원)"으로부터 석성취락으로의 발전은 아마 중국 북방민족 특히 서한 전 요동의 "2강", "2하" 상류 산지민족의 보편적인 발전규칙이다
) 王綿厚, 『東北古族古國古文化硏究』(中卷), 黑龍江敎育出版社, 2000, 132쪽
.
종합해 보면 통화 만발발자유지에 대한 고고학적 고찰과 초보적인 분석은 고고유형학과 문헌을 볼 때 "2강" 유역의 "고구려 선대문화"를 깊이 분석하는데 전형적인 사례라는 의의를 가지고 있다. 현재 이런 유형의 유적 발견이 많지 않아 일부 유적의 성질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만 관련 있는 고고유적과 유물의 끊임없는 발견을 통해 이 지역 고고문화 특성에 대한 인식이 보다 깊어져 공인을 받게 될 것이다.
오'2강'과 '2하' 상류 '고구려 선대문화'의 발굴과 분석을 중시해야 한다.
본문 제1절에서 '2강'(압록강, 혼강)와 '2하'(태자하, 혼하) 상류를 중심으로 한 요동 청동기문화, 즉 필자가 10년 전에 제출한 고구려 건국 전 그의 선조인 요동 '맥'족의 '고이'문화를 지적하였다. 이 문화는 전형적인 요동 청동기문화의 지역특징을 구비하였다. 적석묘,석개묘,석관묘를 위주로 하고 화장습속을 동반한 협사조갈도계의 '청동문화'는 근년에 이르러 환인 오녀산산성, 통화의 만발발자와 집안 장천 등 여러 곳에서 '전 고구려시기' 고고유적이 연속해서 발견됨에 따라 점차 인정되고 있다. 이 지역의 청동시대 고고문화는 유적의 특징을 볼 때 천산산맥 남쪽의 여대지구, 합달령지구, 용강산맥 북쪽 송화강 상류의 '서단산문화'가 모두 선진 '동이'문화 계통에 속하지만 깊숙한 문화내함을 보면 비교적 큰 차이가 존재한다. 지역성 민족고고학적 관점에서 볼 때 이 토착 청동문화는 적어도 아래와 같은 몇 가지 문제에서 국내외 분석자들의 주목을 불러일으킨다.
(1) 오늘날 확인할 수 있는 고고발견을 놓고 볼 때 상술한 '2강'과 '2하' 상류를 중심으로 한 청동문화는 마침 중국 고대문헌에 기록된 '대수맥', '소수맥', '양맥'과 지역적으로 부합된다. 게다가 문화작으로 선후 계승관계를 갖고 있다. 문화특성과 시대는 상주로부터 시작하여 춘추, 전국, 서한 이전의 청동시대 발전시기를 경과하였다. 고고유적상 전기는 '동, 석을 섞어 사용하였다'고 할 수 있고, 후기는 요동식 '청동단검'과 마제석검, 돌촉, 석관묘를 대표로 한 비교적 발달한 청동문화라고 할 수 있다.
(2) '2강', '2하' 유역의 '전 고구려시기' 청동문화를 도기, 동기와 장례습속으로 놓고 볼 때 토착문화의 성질이 뚜렷하다. 이런 문화는 중국 북방 소수민족이 신석기시대 말기로부터 청동기까지 공통적으로 지닌 특징이다. 예를 들면 '위호'를 주요 형식으로 한 중심취락유지와 초기 석성터, 석관묘 등이며 특수성이 매우 뚜렷하다. 이 논문 몇 개 절에서 열거한 증명과 같다. 예를 들면 무덤 중에 "고인돌(석붕)"과 "적석묘"에서 발전된 대석개묘, 석개적석묘, 적석을 덮개로 한 초기 석관묘와 석실묘 ; 도기 중에서 협사갈도를 위주로 하고 "삼족기"가 없는 평저(평저),다이비문관(다이비문관)과 주전자; 장법과 적석묘가 공존하는 화장습속 및 독특한 요동 "맥계" 청동단검, 쌍공석도 등이다. 위에서 본 고고문화 특징은 개별유형과 유지에만 있는 것이 "2강", "2하" 상류의 "고구려 선대문화" 전체에 공존한다. 이는 고구려 선대민족의 기원, 종속 및 문화성질을 탐구하는데 기타 지구와 비할 바 없는 전형성을 구비하고 있다.
(3) 근년에 "2강", "2하" 유역에서 "환산위구"와 "석원취락"이 발견된 것은 비록 양이 적지만 의의가 아주 크다. 이런 "환산위구"와 "석원취락"은 사실 고구려가 공식적으로 산성을 수축하기 전, "2강"과 "2하"지구 초기 예맥부족(맥족 위주)이 산에서 거주하는 "씨족부락"에서 정식 산성으로 넘어가는 과도기적 형식 또는 원형이다. 비교적 이른 요서 "하가점하층문화(하가점하층문화)"의 부족 가운데 예를 들면 대전자,사분지,적봉 동산저 같은 유지에서 이미 분산된 "환호취락"과 집중적인 초기 산성이 동시에 존재하는 현상이 많이 발견되었다. 통화의 만발발자 와 집안의 장천유지의 발견을 참고하면 이는 옳지 않은 설이다. "환호취락" 혹은 "환호위호(원)"으로부터 석성취락으로의 발전은 아마 중국 북방민족 특히 서한 전 요동의 "2강", "2하" 상류 산지민족의 보편적인 발전규칙이다
) 王綿厚, 『東北古族古國古文化硏究』(中卷), 黑龍江敎育出版社, 2000, 13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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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해 보면 통화 만발발자유지에 대한 고고학적 고찰과 초보적인 분석은 고고유형학과 문헌을 볼 때 "2강" 유역의 "고구려 선대문화"를 깊이 분석하는데 전형적인 사례라는 의의를 가지고 있다. 현재 이런 유형의 유적 발견이 많지 않아 일부 유적의 성질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만 관련 있는 고고유적과 유물의 끊임없는 발견을 통해 이 지역 고고문화 특성에 대한 인식이 보다 깊어져 공인을 받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