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다. (살인자는 벌금형에 처해진 반면, 도둑은 사형이었다.) 물론 교회는 이런 관습을 바로 잡아 사람의 생명을 좀더 중시하는 관행을 뿌리내리게 하려 애썼지만, 이것이 자리잡는 데는 아주 긴 세월이 필요했다. (조셉 캠벨은 기독교 교회의 나쁜 점만 부각시키려 애썼지만, 우리는 여기서 정반대의 평가를 보게 된다.)
그밖에도 중세의 많은 관행과 사건들, 이를테면 울타리를 중시하는 것, 메로빙거 왕조 말기의 재산 모으기 열풍, 은둔자가 겪는 위험, 같이 식사한 사람을 존중해야 하는 것, 대가족 제도, 동족결혼의 성행, 여성 무시, 여성의 순결에 대한 강박, 복수의 의무화, 잔혹한 복수를 방해하는 것의 금지 등등 여러 가지가 사생활 중시와 폭력의 횡행이라는 관점에서 설명 가능하다.
그리고 이런 기본틀 아래, 중세인들의 생활도 세부적으로 자세히 설명된다. 그들이 어떤 집에서 살았는지, 무엇을 어떻게 먹었는지 (일시적이고 국부적인 현상인지는 모르겠지만, 카롤링거 시대 수도사는 하루에 6000칼로리 가량 섭취했다고 보고된다), 어떤 옷을 입고, 어떤 장신구를 하고 있었는지, 머리 모양, 수염관리까지 자세히 나와 있다. 조금만 얘기하자면 옷 모양은 모두 비슷해서, 천이 얼마나 좋은지 어떤 장신구를 했는지를 보고 신분을 알 수 있었으며, (프랑크 족의 경우) 자유인은 머리를 길렀고 노예와 (주님의 노예인) 성직자는 짧게 잘랐다.
어디서나 그랬지만 법이 처음에는 지배계층의 독점적 지식으로 '라솅부르(rachimbourgs)'라고 불리는 전문가들의 기억에 따라 집행되었다는 것도 재미있는 사실이다. (마치 희랍 서사시 전통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구송시(oral poetry)'를 보는 듯하다.) 당시의 법들은 당시 사람들의 가치관을 보여주는데, 특히 범죄에 매겨진 벌금들은 사람들이 어떤 범죄를 더 무겁게 생각했는지를 양적으로 보여주며, 참회규정서도 마찬가지이다. 여기에도 보속(補贖)을 위한 형벌기준이 나오기 때문이다. 가령 거짓맹세는 참회규정서의 맨 앞에 놓여 있는데 이것은 당시가 젊음이 지배하는 사회로, 상황이 바뀌면 이전의 (그러니까 늙은이들의, 그리고 그 자체로 늙은) 맹세들을 무시하고 새로운 관계들을 추구했기 때문이다. 사회가 폭력적인 만큼 서로 지켜주는 소집단들이 융성했었고, 이것이 길드 전통으로 성장하기도 했다.
저자는 교회와 수도원의 역할을 긍정적으로 보고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는데, 당시 사회를 구성하던 주요 집단 중 하나인 수도원은 폭력의 세계 속에 거의 유일하게 평화와 안식이 있는 곳이었고, '불쌍한 사람들'의 도피처요, 버려진 아이들의 보육원이었다. 교회는 사람들의 의식에도 많은 변화를 이루었는데, 교회가 이룩한 것 중 하나가, 장례를 성사(聖事)로 만들어 교회와 마을 안으로 끌어들인 것이다. 이전에는 장례의 핵심개념이, 죽은 자를 산 자들로부터 가능한 한 멀리 격리하여 저승의 존재들이 산사람에게 해를 끼치지 못하게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교회는 묘지를 교회 마당, 혹은 지하로 끌어들여, 사적인 죽음이 가져다주는 불안감을 공적인 죽음의 평온함으로 바꾸어 놓았다. 수도원의 기여 중 인상적인 것은 내면생활과 침묵의 발견이다. 위에 말했던 사적인 고해, 기도, 노동과 명상 같은 것이 모두 내면을 강조하는 것이었는데, 이는 "위험에 직면하여 본능적이고 주관적으로 대응하는 것과는 정반대"로 내적 확신을 행동의 근원으로 삼는 것이었다. 특히 성 베네딕투스는 수도사들에게 여름에는 하루 두 시간씩, 겨울에는 세 시간씩 독서를 하게 하였는데, 그것도 당시의 관행에 어긋나게 묵독을 권하고 의무화하기까지 했다. (이것은 아직 침묵에 익숙하지 않은 당시 사람들에게 큰 고통이었다 한다.)
저자는 이 중세초기를 한 마디로 "다신교와 기독교가 가족과 성생활과 죽음을 놓고 싸우던 시대"로 규정한다. 이 시대를 거치면서 인간도 새로워지는데, 그것은 "세상에 대한 두려움으로 시작해서 세상을 멸시하는 과정을 거쳐 마침내 세상을 정복하러 나서"는 단계로의 변화이다.
비잔티움의 10-11세기를 다루는 제 5부에 대해서는 그리 할 말이 없다. 몇몇 마음에 안 드는 표현들을 빼고는 별달리 틀린 곳도 눈에 띄지 않으며(내가 이 분야에 무지해서인지도 모르지만), 내용도 제 2부와의 연속성이 너무 강해서인지 별로 특별하단 인상은 아니다. 물론 '새로운 신학자' 쉬메온이라든지, 육체를 거부하고 교회의 제도와 형식들을 부정하는 '보고밀주의' 같이 새로운 정보도 있지만, 수도원이 중심이 된, 그리고 여자들에게는 여러 가지 제약이 있었던 사회의 모습은 너무나 짐작 대로이고, 수도원 운영방식, 수도사의 규율과 실제생활, 수도사들이 남긴 글에서 드러나는 내면과 육체에 대한 고찰, 개인들의 출가 방식, 여성들의 종교활동 같은 것에 대한 언급은, 이런 것들이 서방에서처럼 사회와 충돌하여 우리의 관심을 끌만한 사건과 발전들의 계기를 이루지는 않아 너무 밋밋한 느낌이다. (이것은 아마도 이 책이 정치를 한사코 피해가려 하기 때문일 것이다.)
아주 훌륭한 책에 대해 너무 재미없다는 인상을 주는 듯해서 미안한데, 나로서는 1부, 3부, 4부가 재미있고 얻은 것도 많았다. 사실 비잔티움도 희랍-로마의 후예이니 좀더 관심을 갖고 보아야겠지만, 공부가 부족해서 그저 보통의 독자 수준으로 읽는 수 밖에 없었다. 이 분야에 관심이 있고 좀더 사전 지식을 갖춘 분들은 더 재미있고 아기자기하게 읽을 수도 있으니 이 무식한 독자의 판단을 너무 믿지는 마시기 바란다.
여러 가지 불평을 하고 트집을 잡았지만, 아주 훌륭한 책이고 전체적으로 번역도 잘 되었다. 900쪽 가까이 되는 책을 이 정도로 해냈다는 것은 당연히 칭찬 받을 만한 일이지만, 나로서는 애당초 이런 큰 책을 번역할 마음을 먹었다는 것부터 놀랍고 존경스럽다. 역자들의 수고에 경의를 표한다. 책 자체도 아주 잘 만들어졌다. 특히 도판이 아주 좋은데, 영어판보다는 조금 못하지만 독일어판과는 거의 같거나, 오히려 조금 낫게 인쇄되었다. 더구나 다른 판들이 빼먹은 도판까지도 다 실어주었으니 정말 고마운 일이다. 많은 이들이 이 좋은 책을 읽고 이용하여, 역자들의 수고에 보답했으면 한다.
그밖에도 중세의 많은 관행과 사건들, 이를테면 울타리를 중시하는 것, 메로빙거 왕조 말기의 재산 모으기 열풍, 은둔자가 겪는 위험, 같이 식사한 사람을 존중해야 하는 것, 대가족 제도, 동족결혼의 성행, 여성 무시, 여성의 순결에 대한 강박, 복수의 의무화, 잔혹한 복수를 방해하는 것의 금지 등등 여러 가지가 사생활 중시와 폭력의 횡행이라는 관점에서 설명 가능하다.
그리고 이런 기본틀 아래, 중세인들의 생활도 세부적으로 자세히 설명된다. 그들이 어떤 집에서 살았는지, 무엇을 어떻게 먹었는지 (일시적이고 국부적인 현상인지는 모르겠지만, 카롤링거 시대 수도사는 하루에 6000칼로리 가량 섭취했다고 보고된다), 어떤 옷을 입고, 어떤 장신구를 하고 있었는지, 머리 모양, 수염관리까지 자세히 나와 있다. 조금만 얘기하자면 옷 모양은 모두 비슷해서, 천이 얼마나 좋은지 어떤 장신구를 했는지를 보고 신분을 알 수 있었으며, (프랑크 족의 경우) 자유인은 머리를 길렀고 노예와 (주님의 노예인) 성직자는 짧게 잘랐다.
어디서나 그랬지만 법이 처음에는 지배계층의 독점적 지식으로 '라솅부르(rachimbourgs)'라고 불리는 전문가들의 기억에 따라 집행되었다는 것도 재미있는 사실이다. (마치 희랍 서사시 전통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구송시(oral poetry)'를 보는 듯하다.) 당시의 법들은 당시 사람들의 가치관을 보여주는데, 특히 범죄에 매겨진 벌금들은 사람들이 어떤 범죄를 더 무겁게 생각했는지를 양적으로 보여주며, 참회규정서도 마찬가지이다. 여기에도 보속(補贖)을 위한 형벌기준이 나오기 때문이다. 가령 거짓맹세는 참회규정서의 맨 앞에 놓여 있는데 이것은 당시가 젊음이 지배하는 사회로, 상황이 바뀌면 이전의 (그러니까 늙은이들의, 그리고 그 자체로 늙은) 맹세들을 무시하고 새로운 관계들을 추구했기 때문이다. 사회가 폭력적인 만큼 서로 지켜주는 소집단들이 융성했었고, 이것이 길드 전통으로 성장하기도 했다.
저자는 교회와 수도원의 역할을 긍정적으로 보고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는데, 당시 사회를 구성하던 주요 집단 중 하나인 수도원은 폭력의 세계 속에 거의 유일하게 평화와 안식이 있는 곳이었고, '불쌍한 사람들'의 도피처요, 버려진 아이들의 보육원이었다. 교회는 사람들의 의식에도 많은 변화를 이루었는데, 교회가 이룩한 것 중 하나가, 장례를 성사(聖事)로 만들어 교회와 마을 안으로 끌어들인 것이다. 이전에는 장례의 핵심개념이, 죽은 자를 산 자들로부터 가능한 한 멀리 격리하여 저승의 존재들이 산사람에게 해를 끼치지 못하게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교회는 묘지를 교회 마당, 혹은 지하로 끌어들여, 사적인 죽음이 가져다주는 불안감을 공적인 죽음의 평온함으로 바꾸어 놓았다. 수도원의 기여 중 인상적인 것은 내면생활과 침묵의 발견이다. 위에 말했던 사적인 고해, 기도, 노동과 명상 같은 것이 모두 내면을 강조하는 것이었는데, 이는 "위험에 직면하여 본능적이고 주관적으로 대응하는 것과는 정반대"로 내적 확신을 행동의 근원으로 삼는 것이었다. 특히 성 베네딕투스는 수도사들에게 여름에는 하루 두 시간씩, 겨울에는 세 시간씩 독서를 하게 하였는데, 그것도 당시의 관행에 어긋나게 묵독을 권하고 의무화하기까지 했다. (이것은 아직 침묵에 익숙하지 않은 당시 사람들에게 큰 고통이었다 한다.)
저자는 이 중세초기를 한 마디로 "다신교와 기독교가 가족과 성생활과 죽음을 놓고 싸우던 시대"로 규정한다. 이 시대를 거치면서 인간도 새로워지는데, 그것은 "세상에 대한 두려움으로 시작해서 세상을 멸시하는 과정을 거쳐 마침내 세상을 정복하러 나서"는 단계로의 변화이다.
비잔티움의 10-11세기를 다루는 제 5부에 대해서는 그리 할 말이 없다. 몇몇 마음에 안 드는 표현들을 빼고는 별달리 틀린 곳도 눈에 띄지 않으며(내가 이 분야에 무지해서인지도 모르지만), 내용도 제 2부와의 연속성이 너무 강해서인지 별로 특별하단 인상은 아니다. 물론 '새로운 신학자' 쉬메온이라든지, 육체를 거부하고 교회의 제도와 형식들을 부정하는 '보고밀주의' 같이 새로운 정보도 있지만, 수도원이 중심이 된, 그리고 여자들에게는 여러 가지 제약이 있었던 사회의 모습은 너무나 짐작 대로이고, 수도원 운영방식, 수도사의 규율과 실제생활, 수도사들이 남긴 글에서 드러나는 내면과 육체에 대한 고찰, 개인들의 출가 방식, 여성들의 종교활동 같은 것에 대한 언급은, 이런 것들이 서방에서처럼 사회와 충돌하여 우리의 관심을 끌만한 사건과 발전들의 계기를 이루지는 않아 너무 밋밋한 느낌이다. (이것은 아마도 이 책이 정치를 한사코 피해가려 하기 때문일 것이다.)
아주 훌륭한 책에 대해 너무 재미없다는 인상을 주는 듯해서 미안한데, 나로서는 1부, 3부, 4부가 재미있고 얻은 것도 많았다. 사실 비잔티움도 희랍-로마의 후예이니 좀더 관심을 갖고 보아야겠지만, 공부가 부족해서 그저 보통의 독자 수준으로 읽는 수 밖에 없었다. 이 분야에 관심이 있고 좀더 사전 지식을 갖춘 분들은 더 재미있고 아기자기하게 읽을 수도 있으니 이 무식한 독자의 판단을 너무 믿지는 마시기 바란다.
여러 가지 불평을 하고 트집을 잡았지만, 아주 훌륭한 책이고 전체적으로 번역도 잘 되었다. 900쪽 가까이 되는 책을 이 정도로 해냈다는 것은 당연히 칭찬 받을 만한 일이지만, 나로서는 애당초 이런 큰 책을 번역할 마음을 먹었다는 것부터 놀랍고 존경스럽다. 역자들의 수고에 경의를 표한다. 책 자체도 아주 잘 만들어졌다. 특히 도판이 아주 좋은데, 영어판보다는 조금 못하지만 독일어판과는 거의 같거나, 오히려 조금 낫게 인쇄되었다. 더구나 다른 판들이 빼먹은 도판까지도 다 실어주었으니 정말 고마운 일이다. 많은 이들이 이 좋은 책을 읽고 이용하여, 역자들의 수고에 보답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