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목 차
들어가면서.............................. 1
1. 김우중의 약력.................. 1
2. 김우중의 기업이념.......... 1
3. 김우중의 경영이념
1)성취욕이 강한기업............. 1
2)공존공생을 중시하는 기업. 1
3)미래 지향적인 기업............ 2
4. 기업성장 과정상
한국경제의 배경..... 2
5. 김우중의 성공과 실패
1)성공과정과 배경
김우중의 대우실업 창업............. 5
대우실업의 동남아시장 진출과 현황.. 5
미국진출 과정과 배경................ 7
사업의 다각화와 특징................10
대우의 외형적 성장과정과 의의...11
변화하는 세계경제속에서의 세계경영.13
2)실패의 과정과 배경
자동차 노사분규......................17
조선 노사분규.........................18
다구구적 기업의 도산 과정과 배경....18
6. 교훈 .........................................22
들어가면서.............................. 1
1. 김우중의 약력.................. 1
2. 김우중의 기업이념.......... 1
3. 김우중의 경영이념
1)성취욕이 강한기업............. 1
2)공존공생을 중시하는 기업. 1
3)미래 지향적인 기업............ 2
4. 기업성장 과정상
한국경제의 배경..... 2
5. 김우중의 성공과 실패
1)성공과정과 배경
김우중의 대우실업 창업............. 5
대우실업의 동남아시장 진출과 현황.. 5
미국진출 과정과 배경................ 7
사업의 다각화와 특징................10
대우의 외형적 성장과정과 의의...11
변화하는 세계경제속에서의 세계경영.13
2)실패의 과정과 배경
자동차 노사분규......................17
조선 노사분규.........................18
다구구적 기업의 도산 과정과 배경....18
6. 교훈 .........................................22
본문내용
자동차 산업의 정비와 정부가 바라는 그룹의 구조조정을, 그리고 의도적으로 봉쇄되고 있는 자금의 숨통을 터나간다는 복안 아래 기아차 인수에 총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사활을 건 인수전은 일부 자금을 지원키로 한 삼성이 막바지에 이르던 9월 말(3차 입찰 공고일은 9월25일), (초종 낙찰일은 10월19일), 입찰안 제시 사흘을 앞두고 당시 구조조정 본부장이던 이학수 사장을 통해 “참여가 곤란하다”는 의사를 전달해 온다. 결국 이로 인해 자금력에 밀린 대우가 현대의 7조8천 억 원보다 6천억 원이 낮은 금액을 써넣음으로써 또 하나의 돌파구를 놓치고 마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특히 10월은 정부(금감위)가 자금시장과 시중에 대우에 대한 사실상의 사형집행 의지를 공표한 때로, 그 과정은 빠르고 치밀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기아 인수가 무산된 10월 말경 금감위의 기업구조조정 담당 서근우는 현대, 대우, LG 3사의 실무 임원들을 불러 기업 구조조정과 관련해 계열사간 지급보증해소와 출자전환 문제를 협의했으나, 그 자리는 출자전환에 따른 지배구조변화에 대한 참석자의 반발로 결론을 맺지 못한 채 흐지부지 끝났다. 이후 정부의 의도된 해체 의지가 당시 해외 출장중이던 김우중에게 미처 전달되기도 전인 10월27일, 금융감독위원회는 사실상 자금시장에 대한 사형선고인 회사채(장기자금 조달) 발행한도 제한조치를 취함으로써 大宇의 구조조정은 물론, 생존의 길을 원천적으로 봉쇄하고 만다. 이 충격으로 김우중은 뇌혈관 파열로 인한 ‘뇌경막하혈종’으로 쓰러져 수술을 받게 된다.
같은 해 11월과 12월은 삼성차와 대우전자의 빅딜, 대우계열사41개를 9개로 구조조정하는 방향으로 당시의 장단기 자금유입 문제를 해결하려고 김우중은 동분서주 한다. 그러나 삼성차의 법정관리 신청으로 삼성차와의 빅딜은 무산되고 금감원으로부터 회사채 발행규제 조치를 받으므로 인해서 더욱더 자금 압박에 시달리게 된다.
삼성차의 일방적 법정관리 신청으로 빅딜이 무산되자 그간 빅딜을 빙자해 D/A 수출자금의 자금지원을 지연시켜오던 정부를 향해 대우는 이 문제에 대한 협의 재개를 요청하고 나섰다. 이에 금감위는 대우가 독자적 법정관리를 신청할 경우, 대우의 처리가 자신들의 의도대로가 아니라 법원의 의도대로 시행된다는 점을 우려한 때문인지 그간 대우의 지원요청을 외면해오던 태도를 180도 바꿔 “정말 얼마가 필요 하느냐?”며 자금지원 논의 재개 의사를 밝혀 오게 된다. 그러나 이것이 바로 7월19일 ‘유동성개선을 위한 대우의 자구계획안‘발표의 단초이자 ’해체‘로 내몰리는 운명의 순간이었다.
당시 금감위와의 협상을 생존을 위한 마지막 승부수라고 생각한 대우는 ‘필요자금 6조5천억 원의 지원과 시설재 수출분40억 달러(수출입은행의 장기자금 대출 처리가 됐어야하는 부분)와 D/A 수출분 50억 달러의 NEGO지원을 전제로 10조원의 담보를 제시하겠다’는 입장을 제시한다. 그러나 금감위측은 ‘우선 4조를 지원하고 이후 추가로 2조를 지원하되 D/A NEGO는 단계적으로 처리해준다’ 는 입장 아래, 4조 여신의 담보로 방배동자택과 아들 묘지가 있는 안산의 농장을 제외한 (이헌재 위원장의 동의를 받음) 김우중 자신의 전 재산과 그룹내 부동산 및 유가증권 등 10조원의 담보를 제시할 것을 요구해왔다. 이때 금감위가 요구한 담보율은 은행의 평균 담보율인 130%가 아니라 250%에 달하는 상식을 초월하는 요구였으나, 대우가 이를 받아들이기로 한 데는 당시의 다급한 자금상황 때문이었으며, 이를 계기로 자금시장에 ‘정부의 대우 지원 재개‘라는 긍정적 신호를 보낼 수 있다고 생각한 때문이었다. 그러나 당시 금감위의 애매한 태도에 김우중은 ‘금감위가 명확하게 대우의 요구사항을 들어주지 않으면 담보물 제공각서에 Sign을 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결국 7월19일이 한참 지난 뒤 제일은행 이호근 상무가 수차례의 독촉방문을 한 끝에 Sign 시점을 소급하지 않고 Sign 당일 날짜를 명기하는 조건으로 김우중의 Sign을 받아내게 된다.
결국, 어렵게 지원을 받기로 한 4조는 Sign한 후로부터 1주일이 지난 7월 26일에 지원돼 투입시기를 놓치고, 금융권의 지속적인 여신회수를 막아주지 않음으로써 불과 4-5일 만에 금융권으로 도로 회수되는 해프닝이 벌어진다. 그 결과 마지막 승부수로 던졌던 대우와 김우중의 결단은 물거품이 되고, 대우의 생존을 위해 동원할 수 있는 수단이라고는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되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1999년 8월은 마침내 대우그룹이 우리 경제사의 저편으로 스러지는 달로, 반 강제적으로 정부가 기획한 워크아웃에 신청서를 제출하는 것으로 장식하게 된다.
워크아웃에 강제편입 시키기 위해 정부가 대우그룹 각 사별 공략을 강화는 가운데, 대우경영진들은 “이럴 바엔 차라리 법정관리로 가자”는 기류가 강하게 형성돼 있었다. 8월20일 경부터 워크아웃 신청서 양식과 내용을 수시로 바꾸며 신청을 종용해온 금감위는 마침내 8월26일을 D-day로 잡고 신청서에 Sign을 해서 갖고 들어오라는 통보를 해왔다. 이에 당시 장병주(주)대우사장과 정주호 구조조정 본부장이 함께 26일 오전 금감위의 서근우를 만나 신청 거부의사를 분명하게 전달한다. 그러나 서근우는 이미 오후 4시에 채권단회의를 소집해 놓고 있어 안 된다며, 예정된 수순을 밟았다. 어쩔 수없이 이날 오후 4시30분 신청서 양식을 Fax로 금감위에 보냄으로써 30년 한결같이 한국경제의 세계화에 앞장서온 대우그룹은 사실상 문을 닫게 된다.
6. 교훈
먼저 그동안 김우중 회장의 노고와 그룹해체 당시 겪어야 했을 고통에 대해서 감사와 위로를 드리는 바 입니다.
이번과제를 수행하면서 기업가의 자질과 순간적인 판단, 또한 모든 발생가능한 문제에 대한 대처능력이 얼마나 중요한 가를 알게되었다. 김우중회장은 누구보다 뛰어난 기업가였으나, IMF라는 극한 상황속에서 적절한 대처를 하지 못함으로써 유동성을 악화시키는 빌미를 만들고, 나아가서는 대우라는 거대기업을 망하게 하는 우를 범하고 말았다. 이러한 점에서 기업가로써 냉철하고 객관적으로 현실 직시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다소 아쉬움이 남는다.
기아 인수가 무산된 10월 말경 금감위의 기업구조조정 담당 서근우는 현대, 대우, LG 3사의 실무 임원들을 불러 기업 구조조정과 관련해 계열사간 지급보증해소와 출자전환 문제를 협의했으나, 그 자리는 출자전환에 따른 지배구조변화에 대한 참석자의 반발로 결론을 맺지 못한 채 흐지부지 끝났다. 이후 정부의 의도된 해체 의지가 당시 해외 출장중이던 김우중에게 미처 전달되기도 전인 10월27일, 금융감독위원회는 사실상 자금시장에 대한 사형선고인 회사채(장기자금 조달) 발행한도 제한조치를 취함으로써 大宇의 구조조정은 물론, 생존의 길을 원천적으로 봉쇄하고 만다. 이 충격으로 김우중은 뇌혈관 파열로 인한 ‘뇌경막하혈종’으로 쓰러져 수술을 받게 된다.
같은 해 11월과 12월은 삼성차와 대우전자의 빅딜, 대우계열사41개를 9개로 구조조정하는 방향으로 당시의 장단기 자금유입 문제를 해결하려고 김우중은 동분서주 한다. 그러나 삼성차의 법정관리 신청으로 삼성차와의 빅딜은 무산되고 금감원으로부터 회사채 발행규제 조치를 받으므로 인해서 더욱더 자금 압박에 시달리게 된다.
삼성차의 일방적 법정관리 신청으로 빅딜이 무산되자 그간 빅딜을 빙자해 D/A 수출자금의 자금지원을 지연시켜오던 정부를 향해 대우는 이 문제에 대한 협의 재개를 요청하고 나섰다. 이에 금감위는 대우가 독자적 법정관리를 신청할 경우, 대우의 처리가 자신들의 의도대로가 아니라 법원의 의도대로 시행된다는 점을 우려한 때문인지 그간 대우의 지원요청을 외면해오던 태도를 180도 바꿔 “정말 얼마가 필요 하느냐?”며 자금지원 논의 재개 의사를 밝혀 오게 된다. 그러나 이것이 바로 7월19일 ‘유동성개선을 위한 대우의 자구계획안‘발표의 단초이자 ’해체‘로 내몰리는 운명의 순간이었다.
당시 금감위와의 협상을 생존을 위한 마지막 승부수라고 생각한 대우는 ‘필요자금 6조5천억 원의 지원과 시설재 수출분40억 달러(수출입은행의 장기자금 대출 처리가 됐어야하는 부분)와 D/A 수출분 50억 달러의 NEGO지원을 전제로 10조원의 담보를 제시하겠다’는 입장을 제시한다. 그러나 금감위측은 ‘우선 4조를 지원하고 이후 추가로 2조를 지원하되 D/A NEGO는 단계적으로 처리해준다’ 는 입장 아래, 4조 여신의 담보로 방배동자택과 아들 묘지가 있는 안산의 농장을 제외한 (이헌재 위원장의 동의를 받음) 김우중 자신의 전 재산과 그룹내 부동산 및 유가증권 등 10조원의 담보를 제시할 것을 요구해왔다. 이때 금감위가 요구한 담보율은 은행의 평균 담보율인 130%가 아니라 250%에 달하는 상식을 초월하는 요구였으나, 대우가 이를 받아들이기로 한 데는 당시의 다급한 자금상황 때문이었으며, 이를 계기로 자금시장에 ‘정부의 대우 지원 재개‘라는 긍정적 신호를 보낼 수 있다고 생각한 때문이었다. 그러나 당시 금감위의 애매한 태도에 김우중은 ‘금감위가 명확하게 대우의 요구사항을 들어주지 않으면 담보물 제공각서에 Sign을 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결국 7월19일이 한참 지난 뒤 제일은행 이호근 상무가 수차례의 독촉방문을 한 끝에 Sign 시점을 소급하지 않고 Sign 당일 날짜를 명기하는 조건으로 김우중의 Sign을 받아내게 된다.
결국, 어렵게 지원을 받기로 한 4조는 Sign한 후로부터 1주일이 지난 7월 26일에 지원돼 투입시기를 놓치고, 금융권의 지속적인 여신회수를 막아주지 않음으로써 불과 4-5일 만에 금융권으로 도로 회수되는 해프닝이 벌어진다. 그 결과 마지막 승부수로 던졌던 대우와 김우중의 결단은 물거품이 되고, 대우의 생존을 위해 동원할 수 있는 수단이라고는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되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1999년 8월은 마침내 대우그룹이 우리 경제사의 저편으로 스러지는 달로, 반 강제적으로 정부가 기획한 워크아웃에 신청서를 제출하는 것으로 장식하게 된다.
워크아웃에 강제편입 시키기 위해 정부가 대우그룹 각 사별 공략을 강화는 가운데, 대우경영진들은 “이럴 바엔 차라리 법정관리로 가자”는 기류가 강하게 형성돼 있었다. 8월20일 경부터 워크아웃 신청서 양식과 내용을 수시로 바꾸며 신청을 종용해온 금감위는 마침내 8월26일을 D-day로 잡고 신청서에 Sign을 해서 갖고 들어오라는 통보를 해왔다. 이에 당시 장병주(주)대우사장과 정주호 구조조정 본부장이 함께 26일 오전 금감위의 서근우를 만나 신청 거부의사를 분명하게 전달한다. 그러나 서근우는 이미 오후 4시에 채권단회의를 소집해 놓고 있어 안 된다며, 예정된 수순을 밟았다. 어쩔 수없이 이날 오후 4시30분 신청서 양식을 Fax로 금감위에 보냄으로써 30년 한결같이 한국경제의 세계화에 앞장서온 대우그룹은 사실상 문을 닫게 된다.
6. 교훈
먼저 그동안 김우중 회장의 노고와 그룹해체 당시 겪어야 했을 고통에 대해서 감사와 위로를 드리는 바 입니다.
이번과제를 수행하면서 기업가의 자질과 순간적인 판단, 또한 모든 발생가능한 문제에 대한 대처능력이 얼마나 중요한 가를 알게되었다. 김우중회장은 누구보다 뛰어난 기업가였으나, IMF라는 극한 상황속에서 적절한 대처를 하지 못함으로써 유동성을 악화시키는 빌미를 만들고, 나아가서는 대우라는 거대기업을 망하게 하는 우를 범하고 말았다. 이러한 점에서 기업가로써 냉철하고 객관적으로 현실 직시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다소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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