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위대한 기독교 사상가 10인」알리스터 맥그래스.
<요 약>
제 1 장 아타나시우스(Athanasius. 295-373) : 그리스도의 신성
제 2 장 히포의 어거스틴(Hippo Augustine. 354-430) : 하나님의 은혜
제 3 장 캔터베리의 안샘(1033-1109) : 그리스도의 죽음
제 4 장 토마스 아퀴나스(Tomas aquinas. 1225-1274) : 신앙과 이성
제 5 장 마르틴 루터(Martin Luder.1483-1546) : 신앙과경험
제 6 장 마르틴 루터 Ⅱ : 죄인의 정의
제 7 장 훌드리히 쯔빙글리(Huldrych Zwingli. 1484-1531) : 예수를 기억하라
제 8 장 존 칼빈(John Calvin. 1509-1564) : 하나님을 아는 지식
제 9 장 조나단 에드워즈(Jonathan Edwards. 1703-1758) : 현대 문화의 도전
제 10 장 칼 바르트(Karl Barth. 1886-1968) : 하나님은 하나님이시므로
제 11 장 시에스 루이스(1898-1963) : 하나님을 향한 갈망
<비 평>
「복음과 문화」
<요 약>
<비 평>
<요 약>
제 1 장 아타나시우스(Athanasius. 295-373) : 그리스도의 신성
제 2 장 히포의 어거스틴(Hippo Augustine. 354-430) : 하나님의 은혜
제 3 장 캔터베리의 안샘(1033-1109) : 그리스도의 죽음
제 4 장 토마스 아퀴나스(Tomas aquinas. 1225-1274) : 신앙과 이성
제 5 장 마르틴 루터(Martin Luder.1483-1546) : 신앙과경험
제 6 장 마르틴 루터 Ⅱ : 죄인의 정의
제 7 장 훌드리히 쯔빙글리(Huldrych Zwingli. 1484-1531) : 예수를 기억하라
제 8 장 존 칼빈(John Calvin. 1509-1564) : 하나님을 아는 지식
제 9 장 조나단 에드워즈(Jonathan Edwards. 1703-1758) : 현대 문화의 도전
제 10 장 칼 바르트(Karl Barth. 1886-1968) : 하나님은 하나님이시므로
제 11 장 시에스 루이스(1898-1963) : 하나님을 향한 갈망
<비 평>
「복음과 문화」
<요 약>
<비 평>
본문내용
성심의 급격한 변화이다. 일단 그리스도께서 정당한 위치를 차지하시게 되면, 그 밖의 다른 모든 것들이 자리를 이동하기 시작한다. 그러한 충격파는 중심으로부터 주변으로 퍼져 나간다. 여기에서 회심자는 이전에 자신이 가졌던 근본적인 확신에 대해서 재고해 보아야 한다. 이것이 회개(metanoia, 메타노이아) 이며, ‘마음의 변화’, 즉 ‘육신의 마음’을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대체하는 것이다.
복음을 전달하고 수용하는 과정과 마찬가지로, 교회를 형성하는 과정에서도 문화의 문제는 매우 중요하다. 현대는 고립된 핵사회(核社會)로 구성된 조직체가 아니라 경제적, 정치적, 기술 과학적 그리고 이념적인 거대한 구조 속에서 상호 관련을 갖는 전세계적 조직체이다. 따라서 이 안에는 많은 착취와 압제가 존재한다. 문화는 복음의 영향하에서 어떻게 변화하는가 하는 중요한 질문이 나오게 된다. 물론 사탄의 세력이 대부분의 문화 속에 깊숙히 침투해 있기는 하지만, 성경은 국가적인 회개와 개혁을 요구하고 있으며, 역사상에도 좀더 나은 문화를 향해 문화가 변천했던 수많은 사례를 볼 수 있다.
첫째로, 사람들은 그들이 원하는 대로 원하는 때에 변화한다. 거기에다 사람들은 변화로 인해서 그들이 얻게 될 긍정적인 이익을 인식할 때만 변화하기를 원한다.
둘째로, 제3세계에서 복음을 증거하는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사회 변화를 가져다 줄 수 있는 내적인 매개체들에 대해 존경심을 가져야 하고 또한 개개의 특수한 문화속에서 일어나는 ‘올바른 혁신의 절차’에 대해서도 존경심을 가져야 한다.
셋째로, 실제로 모든 관습이 그 문화 안에서 중요한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는 것과, 심지어는 사회적으로 바람직하지 못한 관습도 ‘건설적인’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다.
넷째로, 어떤 문화적 관습은 신학적인 뒷받침을 받고 행해진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이러한 경우에는 그 신학이 변해야만 그 문화도 변하게 될 것이다.
<비 평>
우리는 문화를 떠나서 살 수 없고 문화가운데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이 문화를 정복하며 살아야 한다. 이 말은 바꾸어 말하자면, 교회는 세상속에 있고 교회는 이 세상가운데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해야한다는 뜻이다. 하나님께서는 각 문화를 통해서 역사하셨다. 그리고 앞으로도 문화를 통해 역사하실 줄로 믿는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해야 할 일은 문화를 잘 이해하고 이것을 통해서 하나님의 좋고 선하신 일들이 나타나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각 문화에 대해서 각각 다르게 역사하신다. 우리는 이것에 대해서 민감해야 할 필요가 있다. 하나님의 복음이 이 땅에 편만하게 퍼지게 하려면 이러한 노력들이 절실히 요구된다. 결국 예수님께서 이땅에 문화의 변혁자요, 수용자로서 우리에게 다가 오셨다. 문화를 잘못 이해함으로써 생기게 되는 ‘기독교의 배척, 무관심’등등은 이제 없어져야만 한다. 철저히 예수님과 같이 그 문화에 동화되어 그 가운데 없어져할 것을 바르게 없애고, 또한 그들 가운데 필요한 것은 채우는 이러한 자세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이 책을 통해서 다시 한번 “복음과 문화”와의 관계를 살펴보는 계기를 갖게 되었다. 하나님의 복음을 들고 앞으로 나가게 될 우리들에게 참으로 귀중한 재산이 되는 것들이었다. 마지막으로 니이버의 말이 생각난다. “니이버는 인간에게 좋은 것을 추구하는 것이 문화의 주요한 목적임에는 틀림없으나 이 인간중심주의가 배타적인 것으로 규정할 수 없다고 함으로서 문화의 중심에는 인간이 아닌 하나님이 자리해야 함을 시사하고 있다.”고 말을 했다. 그렇다. 하나님께서 높임을 받지 않고서는 이 모든 일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하나님만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
복음을 전달하고 수용하는 과정과 마찬가지로, 교회를 형성하는 과정에서도 문화의 문제는 매우 중요하다. 현대는 고립된 핵사회(核社會)로 구성된 조직체가 아니라 경제적, 정치적, 기술 과학적 그리고 이념적인 거대한 구조 속에서 상호 관련을 갖는 전세계적 조직체이다. 따라서 이 안에는 많은 착취와 압제가 존재한다. 문화는 복음의 영향하에서 어떻게 변화하는가 하는 중요한 질문이 나오게 된다. 물론 사탄의 세력이 대부분의 문화 속에 깊숙히 침투해 있기는 하지만, 성경은 국가적인 회개와 개혁을 요구하고 있으며, 역사상에도 좀더 나은 문화를 향해 문화가 변천했던 수많은 사례를 볼 수 있다.
첫째로, 사람들은 그들이 원하는 대로 원하는 때에 변화한다. 거기에다 사람들은 변화로 인해서 그들이 얻게 될 긍정적인 이익을 인식할 때만 변화하기를 원한다.
둘째로, 제3세계에서 복음을 증거하는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사회 변화를 가져다 줄 수 있는 내적인 매개체들에 대해 존경심을 가져야 하고 또한 개개의 특수한 문화속에서 일어나는 ‘올바른 혁신의 절차’에 대해서도 존경심을 가져야 한다.
셋째로, 실제로 모든 관습이 그 문화 안에서 중요한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는 것과, 심지어는 사회적으로 바람직하지 못한 관습도 ‘건설적인’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이 중요하다.
넷째로, 어떤 문화적 관습은 신학적인 뒷받침을 받고 행해진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이러한 경우에는 그 신학이 변해야만 그 문화도 변하게 될 것이다.
<비 평>
우리는 문화를 떠나서 살 수 없고 문화가운데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이 문화를 정복하며 살아야 한다. 이 말은 바꾸어 말하자면, 교회는 세상속에 있고 교회는 이 세상가운데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해야한다는 뜻이다. 하나님께서는 각 문화를 통해서 역사하셨다. 그리고 앞으로도 문화를 통해 역사하실 줄로 믿는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해야 할 일은 문화를 잘 이해하고 이것을 통해서 하나님의 좋고 선하신 일들이 나타나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각 문화에 대해서 각각 다르게 역사하신다. 우리는 이것에 대해서 민감해야 할 필요가 있다. 하나님의 복음이 이 땅에 편만하게 퍼지게 하려면 이러한 노력들이 절실히 요구된다. 결국 예수님께서 이땅에 문화의 변혁자요, 수용자로서 우리에게 다가 오셨다. 문화를 잘못 이해함으로써 생기게 되는 ‘기독교의 배척, 무관심’등등은 이제 없어져야만 한다. 철저히 예수님과 같이 그 문화에 동화되어 그 가운데 없어져할 것을 바르게 없애고, 또한 그들 가운데 필요한 것은 채우는 이러한 자세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이 책을 통해서 다시 한번 “복음과 문화”와의 관계를 살펴보는 계기를 갖게 되었다. 하나님의 복음을 들고 앞으로 나가게 될 우리들에게 참으로 귀중한 재산이 되는 것들이었다. 마지막으로 니이버의 말이 생각난다. “니이버는 인간에게 좋은 것을 추구하는 것이 문화의 주요한 목적임에는 틀림없으나 이 인간중심주의가 배타적인 것으로 규정할 수 없다고 함으로서 문화의 중심에는 인간이 아닌 하나님이 자리해야 함을 시사하고 있다.”고 말을 했다. 그렇다. 하나님께서 높임을 받지 않고서는 이 모든 일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하나님만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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