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오토모 가츠히로의 세계
현재에 침입한 기억, 기억에서 현실을 보다
일상에 갇힌 소외된 개인의 위험성
강요된 희망, 나는 어디에 있는가
미지로부터 오는 3개의 몽환세계
현재에 침입한 기억, 기억에서 현실을 보다
일상에 갇힌 소외된 개인의 위험성
강요된 희망, 나는 어디에 있는가
미지로부터 오는 3개의 몽환세계
본문내용
기성세대이다. 아이는 이러한 아버지와는 다른, 보다 멋진 미래를 꿈꾼다. 그러나 이상에 대한 무목적적인 맹종은 현실을 가리고, 현실을 보지 못하는 아이는 결국 개성을 잃고 반복되는 사회에 종속되고 말 것이다. 이 작품의 영어 제목인 'cannon fodder'는 적의 포화에 희생물이 되는 병사들을 의미한다. 누구와 무엇 때문에 싸우는지도 모르고 싸우는 것만이 삶인 이 도시의 모든 시민들은 무차별적 파시즘에 희생되는 병사들인 것이다.
미지로부터 오는 3개의 몽환세계
이 문구는 '메모리즈'의 홍보 카피였다. 애니메이션에는 실사영화에 비해 환상적 내용을 효과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장치와 기법들이 있다. 이 작품의 장점은 바로 이러한 애니메이션의 특성을 십분 살린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세 편의 에피소드는 애니메이션 특유의 환상적 영상과 분위기로 관객을 흡입한다. '그녀의 추억'에서는 과거의 기억에 사로잡혀 현재를 사랑할 줄 모르는 한 여인의 한이 얼마나 파괴적일 수 있는가를 통해, 현재와 연결되지 못하는 추억이라는 것의 허위를 보여준다. '최취병기'에서는 눈 앞의 것에만 집착하는 인물들을 그림으로써 현실문제의 핵심을 파악하지 못하는 사회를 비판한다. '대포의 거리'는 자신들이 무엇을 원하는지도 모르는 채 주입된 미래에 대한 꿈의 무의미함을 보여준다. 관객은 과거와 현재, 미래에 집착하는 각각의 주인공들에게 빨려들어간다. 이 세 편의 작품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것은 피상적인 과거와 현재와 미래에 사로잡혀 현실을 인식하지 못하는 소외된 개인들, 혹은 이들의 의식을 단절시키는 사회이다.
관객에게 미지의 몽환세계를 제시함으로써 감독이 보여주려 하는 것은 무엇인가. '기억들(memories)'이라는 복수의 제목에서 의도한 것은 단순히 세 작품의 묶음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기억이란 분절된 채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지속되어야 하는 것임을 말하는 것이다. 단절되는 기억 속에서 개인은 소외될 수 밖에 없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또한 세계와 시간속에서 단절된 채 각자의 몽환에 사로잡혀 현실을 보지 못하는 것은 아닌가. 오토모 가츠히로는 관객들에게 그러한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이다.
※참고문헌※
박인하 외,『아니메가 보고 싶다』, 교보문고, 1999
황의웅,『아니메를 이끄는 7인의 사무라이』, 시공사, 1999
김준양,「재패니메이션 베스트 34, 11-메모리즈」,『월간 키노』(1996년 12월 통권 21호)
미지로부터 오는 3개의 몽환세계
이 문구는 '메모리즈'의 홍보 카피였다. 애니메이션에는 실사영화에 비해 환상적 내용을 효과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장치와 기법들이 있다. 이 작품의 장점은 바로 이러한 애니메이션의 특성을 십분 살린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세 편의 에피소드는 애니메이션 특유의 환상적 영상과 분위기로 관객을 흡입한다. '그녀의 추억'에서는 과거의 기억에 사로잡혀 현재를 사랑할 줄 모르는 한 여인의 한이 얼마나 파괴적일 수 있는가를 통해, 현재와 연결되지 못하는 추억이라는 것의 허위를 보여준다. '최취병기'에서는 눈 앞의 것에만 집착하는 인물들을 그림으로써 현실문제의 핵심을 파악하지 못하는 사회를 비판한다. '대포의 거리'는 자신들이 무엇을 원하는지도 모르는 채 주입된 미래에 대한 꿈의 무의미함을 보여준다. 관객은 과거와 현재, 미래에 집착하는 각각의 주인공들에게 빨려들어간다. 이 세 편의 작품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것은 피상적인 과거와 현재와 미래에 사로잡혀 현실을 인식하지 못하는 소외된 개인들, 혹은 이들의 의식을 단절시키는 사회이다.
관객에게 미지의 몽환세계를 제시함으로써 감독이 보여주려 하는 것은 무엇인가. '기억들(memories)'이라는 복수의 제목에서 의도한 것은 단순히 세 작품의 묶음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기억이란 분절된 채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지속되어야 하는 것임을 말하는 것이다. 단절되는 기억 속에서 개인은 소외될 수 밖에 없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또한 세계와 시간속에서 단절된 채 각자의 몽환에 사로잡혀 현실을 보지 못하는 것은 아닌가. 오토모 가츠히로는 관객들에게 그러한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이다.
※참고문헌※
박인하 외,『아니메가 보고 싶다』, 교보문고, 1999
황의웅,『아니메를 이끄는 7인의 사무라이』, 시공사, 1999
김준양,「재패니메이션 베스트 34, 11-메모리즈」,『월간 키노』(1996년 12월 통권 21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