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의 절대`와 `나의 절대`가 다를 수도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포스트모더니즘이지요.
김기봉절대란 이미 유일한 것인데 `다양한` 절대가 가능하다는 데는 동의할 수 없군요. 더 큰 문제는 포스트모던 시대의 인물인 D와 A의 사랑을 중세의 독실한 기독교인의 사랑이라는 거울에 비추어보았다는 겁니다. 이건 시대착오적인 것이 아닌가요?
김현식이 책은 해석된 역사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사료를 가지고 사고 훈련을 하면서 독자가 만들어 나가는 게임입니다. 시대에 얽매일 필요는 없지요.
김기봉그런데 엘로이즈와 아벨라르가 역사의 거울로 제시됐으면서도 마지막에 D가 A와의 죽음을 택하는 것을 보면 D는 실상 역사에서 배운 것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역사는 왜 필요한가`라는 근본적 물음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김현식역사에서 배운다고 해서 역사를 그대로 본받아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엘로이즈와 아벨라르의 사랑이라는 역사에서 배운다고 해서 반드시 그들처럼 사랑해야하는 것은 아니라는 겁니다. 그들의 사랑을 보며 자신의 사랑을 반성하고 자기 나름의 사랑을 찾아갈 수도 있는 것이지요. 기본적으로 어떻게 읽는가는 독자의 몫입니다.-《동아일보》 김형찬 기자 (2001년 1월 5
김기봉절대란 이미 유일한 것인데 `다양한` 절대가 가능하다는 데는 동의할 수 없군요. 더 큰 문제는 포스트모던 시대의 인물인 D와 A의 사랑을 중세의 독실한 기독교인의 사랑이라는 거울에 비추어보았다는 겁니다. 이건 시대착오적인 것이 아닌가요?
김현식이 책은 해석된 역사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사료를 가지고 사고 훈련을 하면서 독자가 만들어 나가는 게임입니다. 시대에 얽매일 필요는 없지요.
김기봉그런데 엘로이즈와 아벨라르가 역사의 거울로 제시됐으면서도 마지막에 D가 A와의 죽음을 택하는 것을 보면 D는 실상 역사에서 배운 것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역사는 왜 필요한가`라는 근본적 물음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김현식역사에서 배운다고 해서 역사를 그대로 본받아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엘로이즈와 아벨라르의 사랑이라는 역사에서 배운다고 해서 반드시 그들처럼 사랑해야하는 것은 아니라는 겁니다. 그들의 사랑을 보며 자신의 사랑을 반성하고 자기 나름의 사랑을 찾아갈 수도 있는 것이지요. 기본적으로 어떻게 읽는가는 독자의 몫입니다.-《동아일보》 김형찬 기자 (2001년 1월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