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개 요
Ⅱ. 서 론
ⅰ. 우리나라에서 유행되고 있는 할로윈 문화 도입배경
■ 클럽에서의 코스튬 파티문화
■ 유학 열풍
■ 대중매체를 통한 도입
■ 상업주의
Ⅲ. 본 론
ⅰ. 우리나라에서의 할로윈 문화의 사회적 인식 차이
■ 외국과 우리나라에서의 할로윈 문화인식 비교
ⅱ. 긍정적인 측면
■ 유쾌한 경험
■ 새로운 파티문화
ⅲ. 부정적인 측면
■ 무분별한 외래문화
■ 상업적 잠식
■ 계층간의 위화감 조성
ⅳ. 나아갈 방향
Ⅳ. 결 론
Ⅱ. 서 론
ⅰ. 우리나라에서 유행되고 있는 할로윈 문화 도입배경
■ 클럽에서의 코스튬 파티문화
■ 유학 열풍
■ 대중매체를 통한 도입
■ 상업주의
Ⅲ. 본 론
ⅰ. 우리나라에서의 할로윈 문화의 사회적 인식 차이
■ 외국과 우리나라에서의 할로윈 문화인식 비교
ⅱ. 긍정적인 측면
■ 유쾌한 경험
■ 새로운 파티문화
ⅲ. 부정적인 측면
■ 무분별한 외래문화
■ 상업적 잠식
■ 계층간의 위화감 조성
ⅳ. 나아갈 방향
Ⅳ. 결 론
본문내용
V에서 비추어지는 모습에 대한 동경과 환상으로 따라하기 쉽다. 부모세대들은 그들의 문화를 인식하고 이해한다는 측면이기보다는 위화감과 거부감을 인정하면서도 자식에 대한 애정으로 그런 문화를 교육 없이 그들에게 경제적으로 지원해준다.
ⅳ. 나아갈 방향
이미 우리 속에 들어와 자리 잡은 할로윈을 다시 밖으로 몰아낼 수만은 없다.
그렇다고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서양에만 귀신이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에게도 귀신이 있다. 서양의 할로윈 데이가 귀신을 몰아내는 축제인 만큼 우리에게도 귀신막이 풍습이 있다. 동지에 팥죽을 먹는 풍습이야말로 우리 민족 고유의 귀신막이 풍습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정월 대보름의 쥐불놀이도 귀신막이에서 비롯된 것이다. 휘휘 돌아가는 불을 보면 귀신이 놀라 달아나고 한 해의 액운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보통 우리 세시 풍속 중에 연말연시에 행해지는 풍습들은 거의 한 해의 액운을 막고 행운을 비는 뜻에서 나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지금도 학교에서 입이 닳도록 가르치는 내용이지만 이제 이것들이 생활 속에서, 우리의 놀이문화 속에서 실천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구체적으로 현재 우리의 실정에 맞게, 아이들 정서에 맞게 적용될 수 있도록 연구를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마치 실생활에서는 입기 불편한 한복을 ‘개량한복’이란 것을 통해 모든 사람들이 찾고, 애용할 수 있게 만들었듯이 말이다.
또한 기업가들의 생각도 바뀌어야 한다. 다행스러운 것은 수년 전 2월 14일, 바로 발렌타인 데이가 있던 날, 이 날 공교롭게도 우리의 명절 정월 대보름과 겹친 날이었다. 이 날 전국의 과자 업계에서는 초콜릿보다도 호두, 밤, 잣, 땅콩, 강정 등을 예쁘게 포장해 연인에게 선물하도록 세상에 내놓았다. 발렌타인 데이의 로맨틱함도 느끼고, 우리의 전통도 지키게 한 멋진 상술이 아니었나 싶다. 최근 에버랜드나 서울랜드 등 유명한 유원지에서는 한가위를 맞아 윷놀이, 널뛰기 등 우리의 민속놀이 이벤트를 만들어 사람들로 하여금 적극 참여토록 하는 대성과를 이루기도 하였다.
물론 이러한 문화의 상업화만이 상책이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외국의 문화이든, 우리의 전통문화이든 무분별한 상업화 속에 빠져들어 문화를 돈벌이 수단에 이용하게 해서는 절대 안 될 것이다. 시장 경제의 논리 속에 상업화되는 문화를, 그리고 그것에 빠져드는 우리 자신을 되돌아보며 과연 이것이 올바르게 즐기는 문화인지, 무분별한 장삿속에 이용당하고 있지는 않은 지 비판적인 시각으로 되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위에서 본 할로윈 데이는 서양에서 본래 아이들의 축제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나이트 클럽을 비롯한 유흥가에서 젊은이들의 흥청망청 술파티로 변질되었다. 발렌타인 데이는 본래 성 발렌타인을 기리는 성스런 날이었으나 이것이 우리나라에서는 초컬릿 업계들만 신나는 날이 되어 버렸다. 3월 14일인 화이트 데이의 경우에는 더 하다. 서양에 화이트 데이라는 것은 있지도 않다. 발렌타인 데이 풍습을 만들어 우리나라에 전파한 일본이 또 다른 상술로 만들어 전파한 것이 지금의 화이트 데이이다. 전 세계 어디에서도 그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사례이다.
문화를 비판적으로 바라볼 줄 아는 날카로운 시선과 올바른 소비자 교육이 절실히 필요한 때이다.
위화감 문제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냉정하게 바라볼 때 최근 수십 년 간 외국에서 흘러들어 온 문화들은 거의 젊은이들의 취향에 맞아 젊은이들만의 문화가 되었고, 반대로 우리의 전통문화들은 한없이 끓어오르는 젊은이들의 정서와는 많이 유리되어 역시 가족 모두가 흥겹게 즐기기에는 조금 문제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문화는 소비하는 자신이 주체가 되어야 한다. 놀이 문화이든 그냥 향유하는 문화이든 세대 격차를 심화시키는 것이라면 모두가 함께 즐길 수 있도록 바꾸어 나가야 한다. 외국에서는 할로윈 데이가 온 마을의 축제로서 아이들은 가면을 쓰고, 어른들은 사탕을 주며 모두가 함께 웃으며 즐기는 날이다. 우리 전통의 놀이인 윷놀이나 연날리기는 지금 우리가 느끼는 것처럼 아이들만 즐기는 놀이가 아니었다. 어른들도 연을 만들어 날리며 동심에 함께 젖던 시간이었다.
전통문화이건, 수입된 외국의 문화이건 우리의 정서와 현재의 실정에 맞추는 노력과 끊임없는 연구개량으로 우리만의 새로운 문화를 만드는 것이 이 시대 한국문화를 이끌어 나가는 주체로서의 올바른 역할일 것이다.
Ⅳ. 결 론
외국에 비해 적당히 ‘놀 만한’ 문화가 따로 없던 우리나라에 할로윈은 유학파대중 매체 등을 통해 너무나 쉽게 들어왔다. 50여 년이라는 길지 않은 세월 속에 해방과 정부 수립, 625, 419를 비롯, 이후 급격한 사회 변화를 겪은 우리였기에 그만큼 우리 나름대로의 현대적인 풍속을 세우기엔 너무나 여유가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틈만 나면 수입문화가 들어와 판을 쳤고, 그럴 때마다 위협받는 전통이니 하면서 시끄러운 진통이 뒤따랐다.
이제 어느 정도 일정한 경제 성장을 이룩한 지금 - 물론 요즘 경기가 다시 좋지 않아 이 말이 공감이 많이 가지는 않겠지만 - 우리는 우리 나름대로의 문화 체계를 수립해야 한다. 그리고 그 주체는 다름 아닌 이 시대의 학문을 주도하고 있는 우리 대학생들로부터 출발해야 한다고 본다.
수입 문화에 우리 젊은이의 정서에 맞는 신나는 요소가 있다면 그것을 미치도록 즐기는 것도 젊은이의 특권일 것이다. 문화란 당연히 느끼고 즐기라고 있는 것이니 말이다. 그러나 이 세상 모든 만물에 양면이 존재하듯이 그렇게 즐기는 만큼 명백히 드러난 단점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시각으로 단호히 대처해야하는 것이 또한 우리 젊은이들의 의무라 할 것이다.
수입 문화를 우리 실정에 맞게 만드는 것, 또한 전통 문화를 받아들이기 힘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아닌 현재의 우리 모습에 맞게 재창조하는 안목이 필요하다.
그러면서도 엉뚱한 상업 세계의 속임수에 빠져들지 않고 당당하게 한 길만을 걸어나가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런 것들은 우리의 생활 속에 하나 둘 실천되어야 할 것이다.
문화를 향유하는 우리 스스로가 올바른 문화를 만들고 실천하는 길, 그것이 진정한 문화의 주체가 되는 길일 것이다.
ⅳ. 나아갈 방향
이미 우리 속에 들어와 자리 잡은 할로윈을 다시 밖으로 몰아낼 수만은 없다.
그렇다고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서양에만 귀신이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에게도 귀신이 있다. 서양의 할로윈 데이가 귀신을 몰아내는 축제인 만큼 우리에게도 귀신막이 풍습이 있다. 동지에 팥죽을 먹는 풍습이야말로 우리 민족 고유의 귀신막이 풍습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정월 대보름의 쥐불놀이도 귀신막이에서 비롯된 것이다. 휘휘 돌아가는 불을 보면 귀신이 놀라 달아나고 한 해의 액운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보통 우리 세시 풍속 중에 연말연시에 행해지는 풍습들은 거의 한 해의 액운을 막고 행운을 비는 뜻에서 나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지금도 학교에서 입이 닳도록 가르치는 내용이지만 이제 이것들이 생활 속에서, 우리의 놀이문화 속에서 실천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구체적으로 현재 우리의 실정에 맞게, 아이들 정서에 맞게 적용될 수 있도록 연구를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마치 실생활에서는 입기 불편한 한복을 ‘개량한복’이란 것을 통해 모든 사람들이 찾고, 애용할 수 있게 만들었듯이 말이다.
또한 기업가들의 생각도 바뀌어야 한다. 다행스러운 것은 수년 전 2월 14일, 바로 발렌타인 데이가 있던 날, 이 날 공교롭게도 우리의 명절 정월 대보름과 겹친 날이었다. 이 날 전국의 과자 업계에서는 초콜릿보다도 호두, 밤, 잣, 땅콩, 강정 등을 예쁘게 포장해 연인에게 선물하도록 세상에 내놓았다. 발렌타인 데이의 로맨틱함도 느끼고, 우리의 전통도 지키게 한 멋진 상술이 아니었나 싶다. 최근 에버랜드나 서울랜드 등 유명한 유원지에서는 한가위를 맞아 윷놀이, 널뛰기 등 우리의 민속놀이 이벤트를 만들어 사람들로 하여금 적극 참여토록 하는 대성과를 이루기도 하였다.
물론 이러한 문화의 상업화만이 상책이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외국의 문화이든, 우리의 전통문화이든 무분별한 상업화 속에 빠져들어 문화를 돈벌이 수단에 이용하게 해서는 절대 안 될 것이다. 시장 경제의 논리 속에 상업화되는 문화를, 그리고 그것에 빠져드는 우리 자신을 되돌아보며 과연 이것이 올바르게 즐기는 문화인지, 무분별한 장삿속에 이용당하고 있지는 않은 지 비판적인 시각으로 되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위에서 본 할로윈 데이는 서양에서 본래 아이들의 축제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나이트 클럽을 비롯한 유흥가에서 젊은이들의 흥청망청 술파티로 변질되었다. 발렌타인 데이는 본래 성 발렌타인을 기리는 성스런 날이었으나 이것이 우리나라에서는 초컬릿 업계들만 신나는 날이 되어 버렸다. 3월 14일인 화이트 데이의 경우에는 더 하다. 서양에 화이트 데이라는 것은 있지도 않다. 발렌타인 데이 풍습을 만들어 우리나라에 전파한 일본이 또 다른 상술로 만들어 전파한 것이 지금의 화이트 데이이다. 전 세계 어디에서도 그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사례이다.
문화를 비판적으로 바라볼 줄 아는 날카로운 시선과 올바른 소비자 교육이 절실히 필요한 때이다.
위화감 문제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냉정하게 바라볼 때 최근 수십 년 간 외국에서 흘러들어 온 문화들은 거의 젊은이들의 취향에 맞아 젊은이들만의 문화가 되었고, 반대로 우리의 전통문화들은 한없이 끓어오르는 젊은이들의 정서와는 많이 유리되어 역시 가족 모두가 흥겹게 즐기기에는 조금 문제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문화는 소비하는 자신이 주체가 되어야 한다. 놀이 문화이든 그냥 향유하는 문화이든 세대 격차를 심화시키는 것이라면 모두가 함께 즐길 수 있도록 바꾸어 나가야 한다. 외국에서는 할로윈 데이가 온 마을의 축제로서 아이들은 가면을 쓰고, 어른들은 사탕을 주며 모두가 함께 웃으며 즐기는 날이다. 우리 전통의 놀이인 윷놀이나 연날리기는 지금 우리가 느끼는 것처럼 아이들만 즐기는 놀이가 아니었다. 어른들도 연을 만들어 날리며 동심에 함께 젖던 시간이었다.
전통문화이건, 수입된 외국의 문화이건 우리의 정서와 현재의 실정에 맞추는 노력과 끊임없는 연구개량으로 우리만의 새로운 문화를 만드는 것이 이 시대 한국문화를 이끌어 나가는 주체로서의 올바른 역할일 것이다.
Ⅳ. 결 론
외국에 비해 적당히 ‘놀 만한’ 문화가 따로 없던 우리나라에 할로윈은 유학파대중 매체 등을 통해 너무나 쉽게 들어왔다. 50여 년이라는 길지 않은 세월 속에 해방과 정부 수립, 625, 419를 비롯, 이후 급격한 사회 변화를 겪은 우리였기에 그만큼 우리 나름대로의 현대적인 풍속을 세우기엔 너무나 여유가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틈만 나면 수입문화가 들어와 판을 쳤고, 그럴 때마다 위협받는 전통이니 하면서 시끄러운 진통이 뒤따랐다.
이제 어느 정도 일정한 경제 성장을 이룩한 지금 - 물론 요즘 경기가 다시 좋지 않아 이 말이 공감이 많이 가지는 않겠지만 - 우리는 우리 나름대로의 문화 체계를 수립해야 한다. 그리고 그 주체는 다름 아닌 이 시대의 학문을 주도하고 있는 우리 대학생들로부터 출발해야 한다고 본다.
수입 문화에 우리 젊은이의 정서에 맞는 신나는 요소가 있다면 그것을 미치도록 즐기는 것도 젊은이의 특권일 것이다. 문화란 당연히 느끼고 즐기라고 있는 것이니 말이다. 그러나 이 세상 모든 만물에 양면이 존재하듯이 그렇게 즐기는 만큼 명백히 드러난 단점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시각으로 단호히 대처해야하는 것이 또한 우리 젊은이들의 의무라 할 것이다.
수입 문화를 우리 실정에 맞게 만드는 것, 또한 전통 문화를 받아들이기 힘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아닌 현재의 우리 모습에 맞게 재창조하는 안목이 필요하다.
그러면서도 엉뚱한 상업 세계의 속임수에 빠져들지 않고 당당하게 한 길만을 걸어나가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런 것들은 우리의 생활 속에 하나 둘 실천되어야 할 것이다.
문화를 향유하는 우리 스스로가 올바른 문화를 만들고 실천하는 길, 그것이 진정한 문화의 주체가 되는 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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