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인회와 작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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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인회와 작가들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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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예를 들면 백철은 구인회의 출현을 “「무의지파」내지「자유주의」”의 대두로 규정하고 이를 무시하려 하고, 홍효민은 “「구인회」이것은 이 새로운 반동 시대에 가장 「캐스팅 뽀트」를 쥐고 있는 동반자류의 문학행동으로, 다음 모멘트를 위하여 커다란 역할을 하게 될 것” 이지만 “「파쇼」의 길로 가는 한 개의 매개형태인 예술단체”가 될 것이라고 점치고, 김두용은 그것이 “개인주의적 순수예술” 조직이어서 그 작가들의 민중의식이 결여되어 있음은 사실이지만, 홍효민의 “파쇼 운운” 은 그 실체를 오해한 무책임한 것임을 지적하면서, 카프가 해체된 현금에는 “구인회 작가와 손을 잡고 이를 지도하면서 전진하여야 될 것”을 요구한다. 김두용이 ‘지도’ ‘전진’ 이란 용어를 사용한 것은, 동인 박팔양 등을 염두 해 둔 것으로 보이지만, 1934~5년경 잠시 문단 일각에서 거론된 ‘조선 문예가 협회’ 조직 논의가 김남천 등의 반대로 새로운 활동 거점 확보를 위한 다분히 전략전인 대응방식으로 평가된다. 박승극이 구인회가 말하는 “소위「신문예」는 신흥 부르주아의 문예”를 지칭한다는 것, 회원들이 “양심”이 있다면 조직을 “해체하든지 방향을 전화하는 대변혁”을 보여야 한다는 것을 각각 지적, 충고하면서도 “구인회는 조선 문학계에 있어서 「카프」에 버금가는 문제의 문학단체”라고 인정하기에 이르는 것도 그 때문이리라.
둘째, 구인회는 이론과 실천을 겸비한 모더니즘 문학단체이자 모더니즘 운동의 매개체이다. 구인회가 없었다면 김기림, 정지용, 이상, 박태원, 이태준의 관계 정립이 어려웠을 것이며, 작품 활동을 위한 저널리즘 확보도 곤란하였을 것이다. 그것은 동인들의 문학적 비상을 가능하게 한 ‘활주로’요, 문학 ‘캠프’이다. 그것을 매개로 하여, 다시 말해 그 힘을 바탕삼아, 김광균, 오장환 등등의 신인들에게 비평적 영향을 행사할 수 있었고 드디어 모더니즘의 문단전파를 실현시키게 된다. 『단층』지와의 관계도 마찬가지이다. 『시와 소설』의 종간은 『단층』(1937)지의 출현으로 이어졌고, 『시인부락』(1936) 『자오선』(1937) 등의 동인지도 그런 측면에서 파악되어야 한다. 구인회를 빼놓고서는 30년대 후반의 문학 동향을 제대로 설명하기 어렵게 되어 있다.
구인회를 중심으로 한 모더니즘 시인, 작가들은 미술, 영화 등 현대예술과 활발하게 교류하는 가운데 그들의 미적 감각을 단련시키고 문학이론을 발전시킨다. 김기림이 ‘문학 써클을 분명히 하자’고 했을 때, 그가 마티스의 야수파, 수포의 초현실주의 운동 등을 실례로 들었다. 야수파, 초현실주의 운동은 새로운 감수성을 지닌 전위 화가들의 집단이거나 시인과 화가들이 손잡고 벌인 예술운동이거니와, 미술과 문학의 교류는 피카소와 아폴리네르가 협력하여 전개한 입체파 운동에서도 있었다.
1930년대 한국의 역사적 모더니즘은 일본 자본주의 전성기하에서의 사회, 문화적 충격에 대한 젊은 시인, 작가들의 문학적 대응 형식이었다. 그것은 1930년대 초기의 정치적 상황의 약화에 따른 카프 중심의 리얼리즘 문학이 상대적 침체기에 접어들면서 대두된 문학으로서 그 이면에 작용하고 있는 문학과 사회와의 긴장관계를 고려하지 않고서는 제대로 파악되지 않는다.
모더니즘 문학은 현실의 충실한 반영과 역사 속에 상승하는 집단의 세계관의 표현보다는 문학적 대상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그 미적 가공 기술의 혁신 및 언어의 세련성을 추구하여, 문학의 새로운 활로를 모색하고자 한, 몇 사람의 진보적인 시인, 작가들에 의해 추진된 당대의 제도권 내에서의 새로운 문학으로서 1941년 태평양 전쟁이 일어나기 전까지 지속되었다.
그것은 파리, 베를린, 런던 등을 중심으로 전개된 동시대 서구의 모더니즘 문학과 접맥된 도시문학의 일종이었으나, 근대라는 특수한 상황 속에서 일제에 의해 타율적으로 건설된 근대 도시 서울을 중심으로 확산된 문학운동이었다는 점에서 그 양상과 성격은 서구의 그것과 다른 점이 있다.
그것은 급격한 도시화의 과정 속에서 자라난 근대 도시 제 1세대 시인, 작가들의 집단인 ‘구인회’(1933)를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김기림, 정지용, 박태원, 이상, 이효석 등은 그 대표적인 인물로서 이들은 시대적 변화 -바야흐로 닥친 근대 문명의 제징후를 인식하면서, 영화, 미술 등 기술복제시대의 예술과 교류하면서 그 새로운 예술 정신과 함께 호흡하고 근대 사회에 부응하는 새로운 문학 형식을 모색하였다. 김광균, 오장환, 최명익 등은 구인회가 열어 놓은 새로운 문학의 길을 따라갔던 작가들이다.
문학 작품 면에서 볼 때 김기림, 정지용, 박태원, 이상, 이효석 등의 구인회 동인들과 그들이 개척한 문학의 길을 따라갔던 김광균, 오장환, 최명익 등의 작품에서 나타나는 바와 같이 , 도시적 생존 방식과 새로운 언어감각과 실험의식을 결합한 일종의 도시문학을 탄생시켰다. 이들은 도시적 소재의 작품만을 제작한 것은 아니었지만, 모더니즘 문학의 성격은 도시적 소재를 새로운 각도에서 인식하고 새로운 방법으로 가공한 산문시, 장시, 심경소설 등의 도시 문학 형식에서 생생하게 드러난다. 이들은 도시를 중심으로 한 근대 문명을 작품 속에 적극 수용하였는데, 그 결과 문학에 대한 관념과 작품 자체의 질적인 변모를 가져왔다.
근대문명의 감각적 인상을 묘사한 풍경시 (정지용, 김광균), 문학에 대한 물신주의적 태도와 퇴폐적인 세계에의 탐닉 (이상, 오장환), 문명비판적인 장시 (김기림, 오장환), 의식의 흐름과 내적 독백을 서술한 심리 소설 (박태원, 이상, 최명익), 세련된 이야기로서의 소설 (이효석), 주체의 윤리의식을 배제한 순수한 객관 세계의 묘사 (박태원) 등이 그것이다. 일본 자본주의의 충격으로 나타난 이러한 문학에 대한 과념과 문학 자체의 변모는 문학적 표현과정에서 야기되었는데, 30년대 모더니즘 문학의 가장 중요한 특성을 이루는 것이 이것이다. 이런 현상은 전통적인 효용론적, 공리주의적인 문학전통에 대한 거부와 부정의 결과로써 나타났는바 그것은 문학에 대한 관념의 해체와 재편성을 의미하는 것이다.
참고문헌: 서주섭, 「한국 모더니즘 문학 연구」, 일지사, 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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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4.11.30
  • 저작시기2004.11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276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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