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의 수,당 항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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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고구려의 수,당 항쟁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서론

Ⅱ. 본론
ⅰ. 수양제의 2차침공
①인해전술
②공성전으로의 변화
③고구려 결사대
④살수대첩

ⅱ. 당태종의 등장
①태평성대와 교류
②새로운 전술의 변화
ⅲ. 전쟁의 시작
①당군의 전략
②안시성 싸움
Ⅲ. 결론

본문내용

기 승부를 내야 했던 수나라 군은 이 시점에서 작전을 바꾸었다. 그들은 전군을 공성군과 공격군 두 부대로 나누었다. 공성군은 현재 포위하고 있는 성들의 포위를 지속하되, 이들의 임무는 성의 함락이 아니라 성의 병력을 제자리에 묶어두는 것이었다. 공격군은 9군으로 나누어서 고구려의 수도인 평양(平壤)으로 직행하게 했다. 이때 9군이 각기 다른 길을 택하는 바람에 각 통로의 고구려군의 전략은 만약 적군이 공성을 포기하고 바로 진군하면 고구려군이 서로 연합하여 그들의 배후를 공격하고 보급을 끊는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수나라군은 35만의 대병력을 9개로 나누어 모든 통로로 일시에 진출시켰으므로 고구려군은 모두 현재의 위치에서 꼼짝할 수가 없게 되었다. 각지에 분산, 고립된 고구려군은 그래도 수군의 보급대열을 기습하는 게릴라 전술을 펴기는 했지만 행군을 저지할 수는 없었다. 난공불락을 자랑하던 고구려의 방어선이 엄청난 인해전술(人海戰術)로 한순간에 무력화되는 순간이었다. 이것이 100만대군의 진정한 힘이었다. 다만 중간의 고구려성들을 그대로 둔 채 진군하는 것이기 때문에 아무리 백만, 이백만 대군이라도 9군에게 지속적인 보급선을 유지해 줄만한 병력까지는 없었다. 그래서 병사들에게 100일치 식량을 지고 가게 했던 것이다. 그래도 후방 보급선이 막힌 상태에서 30만 대군을 무조건 앞으로 내몰 수는 없었으므로 별도로 해군이 장비와 식량을 싣고 대동 강 하구에 상륙하여 공격군과 합류하도록 했다.
③고구려 결사대
수군의 갑작스런 전술변화는 고구려 정부를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다. 평양의 방어선은 요동의 방어망처럼 주밀하지는 않았고 병력도 부족했던 같다. 이 시점에서 고구려에게 남은 작전은 최대한 시간을 끌어 적의 식량을 바닥내고, 대동강을 거슬러오는 해군을 저지하여 두 부대가 합류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뿐이었다. 고구려는 병력을 둘로 나누었다. 한 부대는
수상 을지문덕(乙支文德)의 지휘아래 압록강으로 올려 보내고 , 하나는 영양왕(榮養王)의 이복동생 건무(乾懋)에게 주어 대동강을 타고 들어올 수의 해군을 막게 했다. 을지문덕(乙支文德)이 인솔한 북상군은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수군과 대치했다. 이때 고구려군은 수나라에 항복협상을 걸었다. 이는 항복협상을 하게 되면 일단 모든 것이 수 양제에게 알려져야 하기 때문에 그만큼의 시간이 소모된다. 당연히 결렬될 협상이지만 시간을 벌기에는 이만큼 좋은 작전이 없었던 것 이다. 이때 수군은 이미 식량부족으로 고통을 받고 있었다. 고구려군은 이를 간파하고 싸움을 자주 걸고 일단 싸움이 시작되면 바로 도주하는 방식으로 최대한 시간을 끌면서 적을 피곤하게 만들었다. 그런데 고구려군의 지연전술(遲延戰術)은 수군을 지치게 하는 외에 뜻하지 않았던 수확을 얻어냈다. 먼저 대동강 하구로 상륙했던 수의 해군이 육군을 기다리다 못해 조급해져 버렸던 것이다. 대동강을 거슬러온 해군은 평양에서 약 60리 떨어진 지역에 상륙했다. 여기서 대기하던 건무(乾懋)의 고구려군이 상륙지점에서 충돌했으나 이번에도 수군이 크게 승리했다. 고구려군이

키워드

고구려,   ,   ,   을지문덕,   인해전술,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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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4.12.20
  • 저작시기2004.12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279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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