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동학농민운동 [ 東學農民運動 ]
1. 배경
2. 제1차농민운동
3. 제2차농민운동
1. 배경
2. 제1차농민운동
3. 제2차농민운동
본문내용
사용되었는데, 예컨대 주문을 외면서 칼춤을 추고 영부를 불에 태워, 그 재를 물에 타서 마시면 빈곤에서 해방되고, 병자는 병이 나아 장수하며 영세무궁(永世無窮)한다는 것이었다.
한편, 동학은 신분 적서(嫡庶)제도 등에도 반기를 들어 이를 비판하였으므로, 그 대중적이고 현실적인 교리는 당시 사회적 불안과 질병이 크게 유행하던 삼남지방에서 신속히 전파되었다. 포교를 시작한 지 불과 3,4년 사이에 교세는 경상도 충청도 전라도지방으로 확산되었으며, 이같은 추세를 지켜보던 조정에서는 동학도 서학과 마찬가지로 불온한 사상적 집단이며 민심을 현혹시키는 또 하나의 사교(邪敎)라고 단정하고 탄압을 가하기 시작하였고, 마침내 1863년에는 최제우를 비롯한 20여 명의 동학교도들이 혹세무민(惑世誣民)의 죄로 체포되어, 최제우는 이듬해 대구에서 사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최제우를 비롯한 많은 교인들이 순교한 후에도 조정의 탄압이 계속되자 교인들은 지하로 숨어들어가 신앙생활을 계속하게 되었고, 한편 최제우의 뒤를 이은 2세 교조 최시형(崔時亨:海月)은 태백산과 소백산 지역에서 은밀히 교세를 정비 강화하였다. 전부터 내려오던 접주(接主)제도를 확대 개편하여, 교인들의 일단(一團)을 포(包)라 하고 여기에 포주(包主)를 두었다. 포주 위에는 접주 대접주, 그 위에 도주(道主) 대도주를 두는 한편, 포주 접주 밑에는 육임(六任)이라 하여 교장(敎長) 교수(敎授) 교집(敎執) 교강(敎綱) 대중(大中) 중정(中正)을 두었다. 이와 같이 대중 속에 조직된 동학은 94년(고종 31)에 발생한 동학농민전쟁의 주체가 되었고, 이 때 사형을 당한 최시형의 뒤를 이은 3세 교주 손병희(孫秉熙)는 동학을 천도교(天道敎)로 개칭하여 계속 교세확장에 힘쓰게 되었다. 한편 동학은 이 때 시천교(侍天敎)라는 또 하나의 교파가 분리되었다.
←동학운동의 전개
내가 아는 시인 한사람 집에는 ... 춘하추동 녹두장군 초상화 만 덜렁 걸려 있다....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일어 났다가 정부와 일군의 합작으로 전라도 피노리에서 붙잡히어 들것위에 실려가는 녹두장군...하늘을 향해 부끄럼 없이 틀어 올린 상투며, 단정히 맨 옷고름,이제는 자유스러운 눈빛으로 산천초목을 끌어 안은 녹두장군...처음에는 아이들도 무섭다고 하였다지만 이제는 저 사람 우리 할아부지다 할아부지 다하며 자랑을 일삼는단다. 내가 아는 시인 한사람은..
-조태일의 '내가 아는 시인 한사람'시 중에서-
한편, 동학은 신분 적서(嫡庶)제도 등에도 반기를 들어 이를 비판하였으므로, 그 대중적이고 현실적인 교리는 당시 사회적 불안과 질병이 크게 유행하던 삼남지방에서 신속히 전파되었다. 포교를 시작한 지 불과 3,4년 사이에 교세는 경상도 충청도 전라도지방으로 확산되었으며, 이같은 추세를 지켜보던 조정에서는 동학도 서학과 마찬가지로 불온한 사상적 집단이며 민심을 현혹시키는 또 하나의 사교(邪敎)라고 단정하고 탄압을 가하기 시작하였고, 마침내 1863년에는 최제우를 비롯한 20여 명의 동학교도들이 혹세무민(惑世誣民)의 죄로 체포되어, 최제우는 이듬해 대구에서 사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최제우를 비롯한 많은 교인들이 순교한 후에도 조정의 탄압이 계속되자 교인들은 지하로 숨어들어가 신앙생활을 계속하게 되었고, 한편 최제우의 뒤를 이은 2세 교조 최시형(崔時亨:海月)은 태백산과 소백산 지역에서 은밀히 교세를 정비 강화하였다. 전부터 내려오던 접주(接主)제도를 확대 개편하여, 교인들의 일단(一團)을 포(包)라 하고 여기에 포주(包主)를 두었다. 포주 위에는 접주 대접주, 그 위에 도주(道主) 대도주를 두는 한편, 포주 접주 밑에는 육임(六任)이라 하여 교장(敎長) 교수(敎授) 교집(敎執) 교강(敎綱) 대중(大中) 중정(中正)을 두었다. 이와 같이 대중 속에 조직된 동학은 94년(고종 31)에 발생한 동학농민전쟁의 주체가 되었고, 이 때 사형을 당한 최시형의 뒤를 이은 3세 교주 손병희(孫秉熙)는 동학을 천도교(天道敎)로 개칭하여 계속 교세확장에 힘쓰게 되었다. 한편 동학은 이 때 시천교(侍天敎)라는 또 하나의 교파가 분리되었다.
←동학운동의 전개
내가 아는 시인 한사람 집에는 ... 춘하추동 녹두장군 초상화 만 덜렁 걸려 있다....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일어 났다가 정부와 일군의 합작으로 전라도 피노리에서 붙잡히어 들것위에 실려가는 녹두장군...하늘을 향해 부끄럼 없이 틀어 올린 상투며, 단정히 맨 옷고름,이제는 자유스러운 눈빛으로 산천초목을 끌어 안은 녹두장군...처음에는 아이들도 무섭다고 하였다지만 이제는 저 사람 우리 할아부지다 할아부지 다하며 자랑을 일삼는단다. 내가 아는 시인 한사람은..
-조태일의 '내가 아는 시인 한사람'시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