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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는 그림을 그려준 것으로 추측되는데, 대담하고 힘찬 감필로 달마의 내면정신가계를 훌륭히 표출하고 있으니 김명국 최고의 걸작이며 선종의 정신에 꼭 맞는 그림이다. 이와같은 김명국에 대한 평가는 반세기 후 윤두서가 <화단>을 통해 그를 높이 평가하면서 정상화 되었다. 특히 남태응은 <청죽화사>를 통해 이징, 김명국, 윤두서를 비교, 평하였는데 윤두서를 높이 평가하고 김명국 역시 신분적 제약만 없었더라면 그 이상 높은 수 있었을 것이라 하였다.
<청죽화가>에서는 김명국을 신품, 허주 이징을 법품, 공재 윤두서를 묘품이라고 각각 평하였다. 연담은 태어나면서부터 아는자로서 배워서 되는 것이 아니며, 허주는 간신히 아는 자로서 배워서 능히 알 수 있으며, 공재는 배워서 아는자로서 배울 수 있으나 이룰 수는 없다고 하였다.
김명국 사후, 인조년가 최고의 화가로 대접받던 이징에 관한 평가가 땅에 떨어지고 개성파 화가였던 연담의 평가가 오히려 올라간 것은 인조 화단의 보수화 경향 외에 1700년경 전후로 급격히 사회적 분위기가 자유로운 분위기로 변모하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라고도 하겠다.
이와 같이 김명국은 조선시대 화가 중 신필로 추앙받는 첫 번째 화가라 하겠다.
<청죽화가>에서는 김명국을 신품, 허주 이징을 법품, 공재 윤두서를 묘품이라고 각각 평하였다. 연담은 태어나면서부터 아는자로서 배워서 되는 것이 아니며, 허주는 간신히 아는 자로서 배워서 능히 알 수 있으며, 공재는 배워서 아는자로서 배울 수 있으나 이룰 수는 없다고 하였다.
김명국 사후, 인조년가 최고의 화가로 대접받던 이징에 관한 평가가 땅에 떨어지고 개성파 화가였던 연담의 평가가 오히려 올라간 것은 인조 화단의 보수화 경향 외에 1700년경 전후로 급격히 사회적 분위기가 자유로운 분위기로 변모하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라고도 하겠다.
이와 같이 김명국은 조선시대 화가 중 신필로 추앙받는 첫 번째 화가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