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시작하며...
Ⅱ. 들어가며...
1. 고조선 시대
2. 삼국시대
(1) 고구려 시대
(2) 백제 시대
(3) 신라 시대
3. 통일신라 시대
4. 고려시대
5. 조선시대
(1) 조선전기
(2) 조선중기
(3) 조선후기
6. 일제침략기
7. 현대
8. 마치며...
Ⅱ. 들어가며...
1. 고조선 시대
2. 삼국시대
(1) 고구려 시대
(2) 백제 시대
(3) 신라 시대
3. 통일신라 시대
4. 고려시대
5. 조선시대
(1) 조선전기
(2) 조선중기
(3) 조선후기
6. 일제침략기
7. 현대
8. 마치며...
본문내용
했다.
관상감에서는 매일 밤 훈련을 받은 천문학자들이 3명씩 여러 조로 나누어 성실하고 치밀한 천문관측을 하는 것을 법으로 정해 놓을 만큼 훌륭한 조직과 관측 열의를 지니고 있었다. 성주덕이 편찬한「서운관지」에는 관상감(또는 서운관)의 규칙이 서술되어 있는데, 그것에 의하면, 하늘에 이상한 천문 현상이 발생하면 관측자 수를 늘리고, 천문 관측의 대가들을 불러 모아 관측을 수행한 후, 날마다 성변의 변동 상황을 왕과 고위 관료들과 관청에 보고서로 작성하여 알리도록 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보고서 문건을성변측후단자라고 하였는데, 이러한 관측을 수행하여 천체의 이상 현상이 사라지게 되면, 관측에 참여한 모든 사람들이 모여「성변등록」이라는 보고서 묶음을 만들어 최종 보고한다.
(2) 조선 중기
1592년에 일본의 토요토미 히데요시는 일본 전국시대를 통일하고, 다이묘오들의 불만을 밖으로 돌리고, 발달한 조선의 문화를 강탈하기 위한 목적으로 임진왜란을 일으켰다. 1636년에는 북방의 여진 족이 누르하치를 중심으로 후금을 세우더니 명나라를 치기 전에 뒷탈이 없게 하기 위한 목적으로 병자호란을 일으키며 침략해 왔다. 이 와중에 조선의 문화적인 업적들은 많은 손실을 입게 되었는데, 천문학도 예외는 아니었다. 양란 이후, 수많은 학자들과 관료들이 복구에 힘을 쏟았으나 큰 진전은 없었고, 이러한 와중에 중국으로부터는 점차 서양 천문학이 들어 오고 있었다. 당시에는 중국의 명과 청에 서양인 신부들과 선교사들이 포교를 위해 들어와 있었는데, 이들이 포교 통로로 삼은 것이 바로 천문학이었다.
1631년에는 청나라에 사신으로 갔던 정두원이 한국 역사상 최초로 천리경과 자명종을 들여 왔다. 그 이후, 몇몇 사신들이 천리경을 들여 왔으나, 이것을 천문 관측에 사용했다는 기록은 아직 발견되지 않고 있다.
실학자들 가운데 하나가 담헌 홍대용이다. 그는 그의 사촌 형을 따라 청나라의 수도인 베이징에 다녀 온 적이 있는데, 그의 저서인「을병연행록」에는 당시 벌어졌던 일들이 상세하게 적혀 있다. 그는 베이징에서 서양인 선교사들을 만나 천체 망원경으로 해를 관찰하기도 하고, 약간의 학술 교류를 하기도 했다. 그는 친구인 박지원과 담론하면서우주는 무한하며, 지구는 그 속에서 자전하는 둥근 천체이며, 하늘의 달이나 별들도 또 하나의 새로운 세계로 거기에는 외계 생명체가 존재할 것이라는 주장을 펴기도 했다. 또한, 그의 저서에는 갈릴레오의 상대론 개념을 담은 이야기가 나오기도 한다. 그는 자신의 고향인 천안에농수각이라는 천문 관측소를 세우고 관측을 즐기기도 하였다.
이 시기에는 또한 많은 관료 천문학자들이 활약하기도 했다. 가 가운데 하나가 안국빈이다. 그는 관측의 대가로 청나라를 내왕하면서 서양 천문 역법의 수입과 서양의 천문 지식이 담긴 중국 천문도 등을 모사하는 일을 주도하였다. 그는 황도남북양총성도라는 이름을 가진 신법 천문도를 만들었던 것이다. 이 천문도는 중국에 들어와 있던 서양인 신부가 만든 전천 성도를 모사한 것인데, 왕명으로 1741년에 만들어서 지금은 법주사에 보관되어 있다.
또 한 사람은 정조 때의 수학자요 천문학자였던 김영이다. 그는 정조에게 발탁되어 물시계의 원리와 별자리로 시간을 정하는 법 등에 대한 내용을 담은「누주통의」를 지었고, 별자리를 관측하여 시간을 정하기 위한 작업으로 별들의 위치를 측정하여「신법중성기」를 지었다.
(4) 조선 후기
19세기에는 조선이 극도로 혼란한 시기였다. 세도정치로 국정이 극도로 혼란했고, 이에 따라 봉기가 일어났으며, 밖으로부터는 서양인들의 출현과 천주교의 전파 등으로 사상적인 혼란을 겪었고, 급기야 동학이라는 내적인 혁명까지 나타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문 관측 활동은 계속되었다.
남병길은 그의 동료들과 함께「성경」이라는 별목록을 간행하였는데, 중국에 와있던 서양 천문학자들이 만든 별목록을 1861년 좌표로 세차 보정하여 펴낸 것이다. 중국의 별목록은 전통적인 별자리에다 망원경으로 관측하여 추가한 별자리들이 들어 있었는데,「성경」에서는 중국 고유의 별자리들만을 뽑아서 별목록을 만들었다.「성경」에는 먼저 이준양의 서문이 나오고, 뒤이어 별들의 적경과 거극도(90-적위)가 열거되어 있다. 그 다음에는 별의 등급이 나오고 다음에 천체의 위치를 관측하는 도구의 그림과 그 사용법이 적혀 있다. 별의 총 수는 정좌의 별들이 1319개이고, 여기에 남반구의 별 130개를 합쳐서 총 1449개의 별들을 수록하였다.
구한말에는 서양 열강들의 막강한 국력이 자연 과학과 기술에 바탕을 두고 있음을 알고 이를 받아 들이기 위한 노력을 하였다. 천문학에서는 1908년에 정영택이 서양 천문학 책을 번역하였다. 그러나, 과학을 부르짓는 구호뿐, 실제 행동은 없었다.
(6) 일제 강점기
한국 역사상 현대 천문학으로 박사가 된 최초의 인물은 이원철 박사다. 그는 미국에서 박천문학 박사학위를 취득해 연희전문학교에서 교수가되었지만 가혹한 일본의 탄압으로 교수직을 그만두게 되었다. 문학, 예술과 마찬가지로 이시기에 천문학 역시 암흑기였다.
(7) 현대
1958년에 서울대학교에 천문기상학과가 설립되었고 1973년 한국천문학회가 국제 천문연맹에 정식 회원국으로 가입했다. 1974년 한국 천문대가 창립되었고 1985년 대덕 전파 천문대가 1996년 보현산 천문대가 완공되었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한국 천문대, 대덕 전파 천문대, 보현산 천문대, 서울대 천문대 등 10개의 천문대가 있으며 향후 2015년에는 세계 10위권의 선진우주국에 진입한다는 목표를 설정하고, 우주개발에 대한 국가적 차원의 정책추진방향과 함께 단계별 기술개발분야 및 전략에 대한우주개발중장기기본계획을 수립하여 실천중에 있다.
위성체분야는 2015년까지 국내에서 수요가 예상되는 통신방송위성(무궁화위성) 5기, 다목적 실용위성(아리랑위성) 7기, 그리고 과학위성 7기 등 총 19기의 위성을 개발하고 국제공동위성개발사업에 주도적으로 참여하기 위한 기술개발 우선순위 및 목표를 제시하였다.
발사체분야는 2005년까지 국내기술에 의한 저궤도위성 및 발사체를 개발하여 저궤도위성의 자력발사를 달성한다는
관상감에서는 매일 밤 훈련을 받은 천문학자들이 3명씩 여러 조로 나누어 성실하고 치밀한 천문관측을 하는 것을 법으로 정해 놓을 만큼 훌륭한 조직과 관측 열의를 지니고 있었다. 성주덕이 편찬한「서운관지」에는 관상감(또는 서운관)의 규칙이 서술되어 있는데, 그것에 의하면, 하늘에 이상한 천문 현상이 발생하면 관측자 수를 늘리고, 천문 관측의 대가들을 불러 모아 관측을 수행한 후, 날마다 성변의 변동 상황을 왕과 고위 관료들과 관청에 보고서로 작성하여 알리도록 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보고서 문건을성변측후단자라고 하였는데, 이러한 관측을 수행하여 천체의 이상 현상이 사라지게 되면, 관측에 참여한 모든 사람들이 모여「성변등록」이라는 보고서 묶음을 만들어 최종 보고한다.
(2) 조선 중기
1592년에 일본의 토요토미 히데요시는 일본 전국시대를 통일하고, 다이묘오들의 불만을 밖으로 돌리고, 발달한 조선의 문화를 강탈하기 위한 목적으로 임진왜란을 일으켰다. 1636년에는 북방의 여진 족이 누르하치를 중심으로 후금을 세우더니 명나라를 치기 전에 뒷탈이 없게 하기 위한 목적으로 병자호란을 일으키며 침략해 왔다. 이 와중에 조선의 문화적인 업적들은 많은 손실을 입게 되었는데, 천문학도 예외는 아니었다. 양란 이후, 수많은 학자들과 관료들이 복구에 힘을 쏟았으나 큰 진전은 없었고, 이러한 와중에 중국으로부터는 점차 서양 천문학이 들어 오고 있었다. 당시에는 중국의 명과 청에 서양인 신부들과 선교사들이 포교를 위해 들어와 있었는데, 이들이 포교 통로로 삼은 것이 바로 천문학이었다.
1631년에는 청나라에 사신으로 갔던 정두원이 한국 역사상 최초로 천리경과 자명종을 들여 왔다. 그 이후, 몇몇 사신들이 천리경을 들여 왔으나, 이것을 천문 관측에 사용했다는 기록은 아직 발견되지 않고 있다.
실학자들 가운데 하나가 담헌 홍대용이다. 그는 그의 사촌 형을 따라 청나라의 수도인 베이징에 다녀 온 적이 있는데, 그의 저서인「을병연행록」에는 당시 벌어졌던 일들이 상세하게 적혀 있다. 그는 베이징에서 서양인 선교사들을 만나 천체 망원경으로 해를 관찰하기도 하고, 약간의 학술 교류를 하기도 했다. 그는 친구인 박지원과 담론하면서우주는 무한하며, 지구는 그 속에서 자전하는 둥근 천체이며, 하늘의 달이나 별들도 또 하나의 새로운 세계로 거기에는 외계 생명체가 존재할 것이라는 주장을 펴기도 했다. 또한, 그의 저서에는 갈릴레오의 상대론 개념을 담은 이야기가 나오기도 한다. 그는 자신의 고향인 천안에농수각이라는 천문 관측소를 세우고 관측을 즐기기도 하였다.
이 시기에는 또한 많은 관료 천문학자들이 활약하기도 했다. 가 가운데 하나가 안국빈이다. 그는 관측의 대가로 청나라를 내왕하면서 서양 천문 역법의 수입과 서양의 천문 지식이 담긴 중국 천문도 등을 모사하는 일을 주도하였다. 그는 황도남북양총성도라는 이름을 가진 신법 천문도를 만들었던 것이다. 이 천문도는 중국에 들어와 있던 서양인 신부가 만든 전천 성도를 모사한 것인데, 왕명으로 1741년에 만들어서 지금은 법주사에 보관되어 있다.
또 한 사람은 정조 때의 수학자요 천문학자였던 김영이다. 그는 정조에게 발탁되어 물시계의 원리와 별자리로 시간을 정하는 법 등에 대한 내용을 담은「누주통의」를 지었고, 별자리를 관측하여 시간을 정하기 위한 작업으로 별들의 위치를 측정하여「신법중성기」를 지었다.
(4) 조선 후기
19세기에는 조선이 극도로 혼란한 시기였다. 세도정치로 국정이 극도로 혼란했고, 이에 따라 봉기가 일어났으며, 밖으로부터는 서양인들의 출현과 천주교의 전파 등으로 사상적인 혼란을 겪었고, 급기야 동학이라는 내적인 혁명까지 나타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문 관측 활동은 계속되었다.
남병길은 그의 동료들과 함께「성경」이라는 별목록을 간행하였는데, 중국에 와있던 서양 천문학자들이 만든 별목록을 1861년 좌표로 세차 보정하여 펴낸 것이다. 중국의 별목록은 전통적인 별자리에다 망원경으로 관측하여 추가한 별자리들이 들어 있었는데,「성경」에서는 중국 고유의 별자리들만을 뽑아서 별목록을 만들었다.「성경」에는 먼저 이준양의 서문이 나오고, 뒤이어 별들의 적경과 거극도(90-적위)가 열거되어 있다. 그 다음에는 별의 등급이 나오고 다음에 천체의 위치를 관측하는 도구의 그림과 그 사용법이 적혀 있다. 별의 총 수는 정좌의 별들이 1319개이고, 여기에 남반구의 별 130개를 합쳐서 총 1449개의 별들을 수록하였다.
구한말에는 서양 열강들의 막강한 국력이 자연 과학과 기술에 바탕을 두고 있음을 알고 이를 받아 들이기 위한 노력을 하였다. 천문학에서는 1908년에 정영택이 서양 천문학 책을 번역하였다. 그러나, 과학을 부르짓는 구호뿐, 실제 행동은 없었다.
(6) 일제 강점기
한국 역사상 현대 천문학으로 박사가 된 최초의 인물은 이원철 박사다. 그는 미국에서 박천문학 박사학위를 취득해 연희전문학교에서 교수가되었지만 가혹한 일본의 탄압으로 교수직을 그만두게 되었다. 문학, 예술과 마찬가지로 이시기에 천문학 역시 암흑기였다.
(7) 현대
1958년에 서울대학교에 천문기상학과가 설립되었고 1973년 한국천문학회가 국제 천문연맹에 정식 회원국으로 가입했다. 1974년 한국 천문대가 창립되었고 1985년 대덕 전파 천문대가 1996년 보현산 천문대가 완공되었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한국 천문대, 대덕 전파 천문대, 보현산 천문대, 서울대 천문대 등 10개의 천문대가 있으며 향후 2015년에는 세계 10위권의 선진우주국에 진입한다는 목표를 설정하고, 우주개발에 대한 국가적 차원의 정책추진방향과 함께 단계별 기술개발분야 및 전략에 대한우주개발중장기기본계획을 수립하여 실천중에 있다.
위성체분야는 2015년까지 국내에서 수요가 예상되는 통신방송위성(무궁화위성) 5기, 다목적 실용위성(아리랑위성) 7기, 그리고 과학위성 7기 등 총 19기의 위성을 개발하고 국제공동위성개발사업에 주도적으로 참여하기 위한 기술개발 우선순위 및 목표를 제시하였다.
발사체분야는 2005년까지 국내기술에 의한 저궤도위성 및 발사체를 개발하여 저궤도위성의 자력발사를 달성한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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