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과학] 안토니아스 라인
본 자료는 3페이지 의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이미지를 클릭하여 주세요.
닫기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해당 자료는 3페이지 까지만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3페이지 이후부터 다운로드 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소개글

[사회과학] 안토니아스 라인 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프롤로그

2. 안토니아는 돌아온다

3. 마를린 고리스의 선택

4. 가해자와 피해자들

5. 굽은 손가락:"언젠가 나아지리라는 희망을 갖는 오류를 참을 수 없다"

6. 안토니아의 세계

7. 에필로그

본문내용

는 핍박하는 자들, 그리고 핍박받고 소외된 자들, 그리고 그 너머의 굽은 손가락과 안토니아네 사람들.
많은 사람들이 <안토니아스 라인>을 여성주의 시각으로 독해하는데, 그러한 독법을 따를 경우, 이 영화의 인물군 중에서 농부 댄 일가는 전형적으로 남성 위주의 질서를 상징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폭력과 강제의 원리가 지배하는 그 세계의 희생자인 디디는 안토니아네 사람들에 의해 구조된다. 댄-피트 라인의 세계와 안토니아의 라인 간의 갈등은, 안토니아가 돌아와 처음으로 까페에서 마주쳤을 때, `여전히 못생기고, 성질이 더럽군\'하는 댄의 일갈로부터 시작되어, 댄의 아들 피트가 안토니아의 손녀 테레사를 강간하는 데 이르러 극점에 달한다. 이때 가하는 안토니아의 응징 역시 비남성적 세계의 그것이다. 이 밖에도 이 영화를 여성주의 시각으로 볼 수 있는 요소는 한두가지가 아니다. 안토니아네 가계가 기존의 인간사와는 달리 여성 중심의 역사가 된다는 것은 물론 시사적이다. 안토니아네는 기꺼이 아비 모를 자식을 낳으며, 안토니아 스스로 아들과 남편이 필요하지 않느냐는 농부 바스의 질문에 그런 것이 왜 필요하느냐고 반문한다. 그런데 정작 <안토니아스 라인>에서 특징적인 것은 그러한 여성주의적 요소를 여느 유사한 경우에서보다 아주 심오한 지점으로부터 확보하였다는 점이다. 그것은 명시적인 남성적 악과 대결하는 에피소드에서보다는 안토니아의 세계관과 굽은 손가락의 세계관이 변별력을 가지게 되는 지점에서 확인하게 될 것이다.
그밖에 영화에서 가해자들에 속하는 인물군들로는 경직되고 위선적인 신앙에 사로잡혀 있는 성직자들이 있다. 위선에 찬 마을의 신부에 관한 에피소드, 교회에서 가르치는 죽음의 행복을 떠나 삶의 행복을 찾아가는 신부. 그는 세속의 욕망을 긍정하여 환속한 끝에 임신장이 레타와 결혼한다. 그리고 카톨릭 계율 때문에 아래층 사는 신교도와 사랑을 이루지 못하고 보름달이 뜨면 늑대울음을 울다 죽고마는 미친 마돈나 이야기. 이 에피소드들은 모두 자연스러운 삶을 제약해온 종교적 요소에 대한 비판을 수행하고 있다.
그리고 이 영화에서는 주류로부터 핍박받는 많은 방외자들이 나온다. 이들은 앞서 거론한 가해자들의 대척점에 서 있다. 댄-피트네서 고통받는 디디, 아이들에게마저 늘 당하고 사는 마을 삼룡이 루니 립스, 마을에서 이십년 동안 살고도 이방인 취급을 받는 홀아비 농부 바스, 기꺼이 애비없는 모르는 자식을 만들며 나중에는 동성애자가 되는 다니엘라... 이들은 모두 안토니아로 말미암아 새로운 삶의 진경을 맛보게 된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들은 모두 안토니아네의 그 너른 앞마당의 회식자리로 초대된다.
이와같은 인물군들이 설득력있게 그려지긴 했지만, 악을 상징하는 무리들과, 그로부터 핍박받고 주류질서로부터 밀려난 무리들로 대별되는 대칭적 구도는 사실 새로운 것이 아니다. 이제 이 영화를 기존의 것들과는 다른 것으로 만드는 두가지 유형의 인간들을 살펴볼 때가 되었다. 그것은 굽은 손가락과 안토니아이다.
5. 굽은 손가락:\"언젠가 나아지리라는 희망을 갖는 오류를 참을 수 없다\"
핍박하고 핍박당하는 이러한 미만한 악의 세계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아마도 우선 싸우는 일일 것이다. 우리는 굽은 손가락이 전쟁내내 레지스탕스로 싸웠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세상의 악은 여전히 계속된다. 그래서 굽은 손가락은 말한다, \"고통은 예외가 아니라 일상적이다.\" \"변하는 것은 없고 달라지는 것만이 있을 뿐이다.\" 심지어 사람들은 악을 좋아하는 것처럼 보이기조차 한다.
굽은 손가락은 단순한 행동가가 아니라 그것에 대해 생각하는 사유의 전문가이기도 하였다. 굽은 손가락은 말한다, \"이렇게 힘들게 살아가는 것이 우연때문이라니 불합리하다.\" 이 영화에서 굽은 손가락은 고전적 의미의 철학자상을 상징하는 듯이 보인다. 그는 분과학문의 하나로 물러앉기 전 포괄학으로서 철학을 하는 이처럼 인간의 뭇 지식을 망라하고 있다. 그 지식을 꿰는 힘은 이성이다. 그는 사후의 구원같은 것은 믿지 않는다. 그것은 이성적으로 정당화되지 않는 믿음이기 때문이며, 현실적으로 그러한 믿음은 도리어 인간세에 재앙이나 초래해왔다는 것이 그의 역사적 통찰이다. 그의 이성으로 보건대, 인류는 전혀 진보하지 않았다, 세계는 여전히 악으로 미만하다, 우리는 이 세계를 선택한 적이 없다, 이 모든 악은 존재의 우연성에 기초해 있다.... 굽은 손가락은 쇼펜하우어를 빌려 말한다. \"이 세상은 고뇌하는 영혼과 악마로 가득찬 지옥이다.\" 굽은 손가락의 딜레마는 끝이 없다. 하여, 그는 이 고뇌로서 자신의 집을 만들고, 들어가 스스로 목숨을 끊을 때까지 밖으로 영영 나오지 아니하였다.
굽은 손가락의 고뇌와 관련하여, 영화를 보면서 내가 숨죽이며 지켜보았던 장면은 굽은 손가락의 제자이자 안토니아의 손녀인 테레사가 과연 아이를 낳을 것인가 말 것인가 고민에서 결국 출산하기로 결심하기까지의 과정이었다. 세상은 지옥이며, 여기에 새로운 생명을 던진다는 것은 곧 태어날 누군가에게 고통을 부여한다는 의미와도 같다. 사는 것이 고통스럽다는 전제를 인정하는 한 그것은 너무도 논리적인 결론으로 보이기 때문에. 사실 어쩌면 우리가 인생에서 할 수 있는 유일한 진정한 판단과 선택이란 아이를 낳을 것인가 말 것인가의 결정뿐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어떤 환경 속으로 자신의 선택과 무관히 떨어진다. 물론 우리는 그 속에서 살면서 나름대로 자잘한 판단들을 하고 살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이미 주어져 있는 커다란 삶의 조건 속에서의 선택들이다. 사실 그 조건 자체에 대한 선택과 판단은 배제되어 있다. 새로운 생명을 이 세계에 들어서게 할 것인가 하는 판단이야말로 유일하게 그 조건에 대한 판단일 수 있다. 비록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그 조건이 가진 경우의 수를 늘리는 것이 아니라, 그 삶이라는 조건을 받아들일 것인가 말 것인가 하는 이분법적 판단에 불과하긴 해도, 그것은 정말 유일한, 조건 자체에 대한 판단인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보자면 아이의 출산은 적어도 그 순간까지 자신이 살아온 생에 대한, 세상에 대한 평가의 순간이기도 한 것이다. 아이를 낳는다는 것은 어찌

키워드

  • 가격1,000
  • 페이지수10페이지
  • 등록일2005.02.03
  • 저작시기2005.02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284769
본 자료는 최근 2주간 다운받은 회원이 없습니다.
다운로드 장바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