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문제의식
2. 천황제란 무엇인가?
3.천황제의 연속
4. 쇼와천황의 전쟁책임론
5. 현대의 천황
6. 천황제에 대한 나의 생각
7. 참고문헌
2. 천황제란 무엇인가?
3.천황제의 연속
4. 쇼와천황의 전쟁책임론
5. 현대의 천황
6. 천황제에 대한 나의 생각
7. 참고문헌
본문내용
치코 황후의 친가인 쇼다씨는 평민이라는 신분상의 차이를 내세워 정중히 거절했으나 황태자는 끈질긴 프로포즈를 했고 이로 인해 미치 코가 결혼을 결심한다. 이 같이 민간에서 배우자를 선택한 것은 쇼오 무(聖武)천황(724∼749)이래 처음이었다. 아키히토 천황과 미치코 황후는 59년 4월 10일 결혼했다. 당시 결혼 식 장면을 보기 위해 텔리비젼의 판매량이 급증하고 테니스가 선풍적 인 인기를 끌 정도로 두 사람의 결혼식은 선풍적인 화제가 됐다.
아키히토 천황은 엄격한 형식과 전통을 중시했던 쇼와 천황과는 달리 보다 국민과 친밀한 서민적 천황의 이미지를 보여주기 위해 노력했다. 외출시 교통신호 통제를 폐지하고 지방여행시에도 수행원을 최소화하 는 등 가급적 국민 들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도록 각종 활동에 있어서 종래의 관습을 개선했다.
아키히토 천황은 일본 어류학회 회원으로 망둥이 연구 등에 연구논문 24편을 발표했다. 천황일가가 전통적으로 선호해온 테니스를 아키히토 천황도 좋아해 주말에는 늘 가족과 함 께 테니스 경기를 갖는다. 또 천 황가족의 악기연주는 `앙상블'이 완벽하다는 평이다. 천황은 첼로, 황 후는 피아노나 하프, 활태자는 비올라 또는 바이올린, 차남은 기타, 장 녀는 노래나 피아노를 연주한다.
적어도 일본인에게 있어 천황제는 논리가 아니다. 천황에 대한 열렬한 지지 기반이 조금씩 풍화되어 가고 있는 징후가 보이지만, 지금까지 존재해 왔던 제도를 없애도 좋다는 데까지 지지 기반이 가라앉을 조짐은 없다. 패전의 참담한 상황 속에서도 일본인들은 천황을 중심으로 똘똘 뭉쳐 오늘의 경제 대국을 이루었다고 믿고 싶어한다.
19세기 말 일본 근대화를 단기간 내에 실현시킬 수 있었던 기적도 천황을 구심점으로 한 노력의 결과라고 평가한다.일본인들은 천황의 전쟁책임 여부에 대한 관심보다는 항전파들이 일억옥쇄를 무모하게 주장하고 나섰을 때, 이른바 성단으로 무고한 희생을 막아준 역할을 더 평가하고 있다. 성단의 신화는 미화되어 전승되고 있다. 맥아더 사령관과의 첫회견에서 "나는 어떻게 되어도 좋으니 국민을 도와달라" 고 했다는 이 신화는 증폭되어 왔다. 마찬가지로 일본인들은 장차 유사한 경우가 다시 재현될 경우, 정치가들의 폭주를 견제해 줄 수 있는 마지막 권위는 역시 천황일 수 밖에 없다는 공통된 인식을 갖고 있다.
6. 천황제에 대한 나의 생각
현재의 일본사회의 분위기로 보아 과거와 같이 천황이 신격화되고 천황의 권한이 전면에 부각될 가능성은 적다.기성세대에는 아직 천황의 존재가 신격화되고 있는지 어떤지 모르지만 젊은 세대들은 천황의 대한 관심이 그리 많아 보이지는 않는다.그러나 만약 일본이 어려운 상황에 처한다면 다시 한번더 국민의 통합대상으로 떠오를 것이다.내가 걱정하고 싶은 것은 우익단체들의 자신들만의 논리로 천황을 자신들의 세계에 끌어 들이려는 것이다.
솔직히 정치에 관심이 별로 없고 알고싶지도 않지만,천황제 자체에 대하여 존폐여부를 논하고 싶지는 않다.천황제는 일본이란 나라의 역사속에서 존재해 왔고 앞으로도 어떠한 형태로든 존재할 것으로 보인다.우리나라가 천황에게 전쟁책임을 묻고 싶어하는 것은 당연한것이라 생각한다.그러나 일본천황의 방문을 막는다고 해서 해결된다고 생각하지않는다.천황이 방문하고 싶다면 방문하게하여 우리나라의 굴욕의 역사를 똑바로 알게하면 되지않는가?무턱대고 사과하라고 그러지 말고 그사람의 잘못이 무엇인지 그사람이 이해할수 있도록 설명 할수있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천황의 호칭에 대해 천황,일본천황,일왕등 다양한 호칭에 대하여 국내에서 많은 이야기가 있었다.내 생각으로는 천황이라 불러주는 것이 좋을 것 같다.우리나라 사람에게 과거의 굴욕의 역사를 잊지 않도록 하며,또한 천황이라 불러주며 천황이 일본에 있어서 천황이지 우리나라에서 까지 천황은 아니라고 말해주면 될 것 같다.그리고 일본의 천황을 천황이라 부르지 않으면 천황의 전쟁 책임을 물을 때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생각된다.일본인들은 분명 우리나라 사람들과 다르다.천황에게 전쟁에 대한 사과를 받아내려면 일본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그러한 논리를 내세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7. 참고문헌
: 무궁화와 사쿠라(21세기 한국과 일본의 이해) - 조선대학교 출판부,김인현 지음
: 이규형의 닛폰,닛폰 분카 - 동방미디어(주)
: 21세기 길목에서 생각하는 전후일본 - 도서출판 계명,김필동 지음
: 전체주의의 시대경험 - 창작과 비평사,후지와 쇼오조오 지음,이홍락 옮김
: 역사 비평 2000년 봄호
아키히토 천황은 엄격한 형식과 전통을 중시했던 쇼와 천황과는 달리 보다 국민과 친밀한 서민적 천황의 이미지를 보여주기 위해 노력했다. 외출시 교통신호 통제를 폐지하고 지방여행시에도 수행원을 최소화하 는 등 가급적 국민 들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도록 각종 활동에 있어서 종래의 관습을 개선했다.
아키히토 천황은 일본 어류학회 회원으로 망둥이 연구 등에 연구논문 24편을 발표했다. 천황일가가 전통적으로 선호해온 테니스를 아키히토 천황도 좋아해 주말에는 늘 가족과 함 께 테니스 경기를 갖는다. 또 천 황가족의 악기연주는 `앙상블'이 완벽하다는 평이다. 천황은 첼로, 황 후는 피아노나 하프, 활태자는 비올라 또는 바이올린, 차남은 기타, 장 녀는 노래나 피아노를 연주한다.
적어도 일본인에게 있어 천황제는 논리가 아니다. 천황에 대한 열렬한 지지 기반이 조금씩 풍화되어 가고 있는 징후가 보이지만, 지금까지 존재해 왔던 제도를 없애도 좋다는 데까지 지지 기반이 가라앉을 조짐은 없다. 패전의 참담한 상황 속에서도 일본인들은 천황을 중심으로 똘똘 뭉쳐 오늘의 경제 대국을 이루었다고 믿고 싶어한다.
19세기 말 일본 근대화를 단기간 내에 실현시킬 수 있었던 기적도 천황을 구심점으로 한 노력의 결과라고 평가한다.일본인들은 천황의 전쟁책임 여부에 대한 관심보다는 항전파들이 일억옥쇄를 무모하게 주장하고 나섰을 때, 이른바 성단으로 무고한 희생을 막아준 역할을 더 평가하고 있다. 성단의 신화는 미화되어 전승되고 있다. 맥아더 사령관과의 첫회견에서 "나는 어떻게 되어도 좋으니 국민을 도와달라" 고 했다는 이 신화는 증폭되어 왔다. 마찬가지로 일본인들은 장차 유사한 경우가 다시 재현될 경우, 정치가들의 폭주를 견제해 줄 수 있는 마지막 권위는 역시 천황일 수 밖에 없다는 공통된 인식을 갖고 있다.
6. 천황제에 대한 나의 생각
현재의 일본사회의 분위기로 보아 과거와 같이 천황이 신격화되고 천황의 권한이 전면에 부각될 가능성은 적다.기성세대에는 아직 천황의 존재가 신격화되고 있는지 어떤지 모르지만 젊은 세대들은 천황의 대한 관심이 그리 많아 보이지는 않는다.그러나 만약 일본이 어려운 상황에 처한다면 다시 한번더 국민의 통합대상으로 떠오를 것이다.내가 걱정하고 싶은 것은 우익단체들의 자신들만의 논리로 천황을 자신들의 세계에 끌어 들이려는 것이다.
솔직히 정치에 관심이 별로 없고 알고싶지도 않지만,천황제 자체에 대하여 존폐여부를 논하고 싶지는 않다.천황제는 일본이란 나라의 역사속에서 존재해 왔고 앞으로도 어떠한 형태로든 존재할 것으로 보인다.우리나라가 천황에게 전쟁책임을 묻고 싶어하는 것은 당연한것이라 생각한다.그러나 일본천황의 방문을 막는다고 해서 해결된다고 생각하지않는다.천황이 방문하고 싶다면 방문하게하여 우리나라의 굴욕의 역사를 똑바로 알게하면 되지않는가?무턱대고 사과하라고 그러지 말고 그사람의 잘못이 무엇인지 그사람이 이해할수 있도록 설명 할수있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천황의 호칭에 대해 천황,일본천황,일왕등 다양한 호칭에 대하여 국내에서 많은 이야기가 있었다.내 생각으로는 천황이라 불러주는 것이 좋을 것 같다.우리나라 사람에게 과거의 굴욕의 역사를 잊지 않도록 하며,또한 천황이라 불러주며 천황이 일본에 있어서 천황이지 우리나라에서 까지 천황은 아니라고 말해주면 될 것 같다.그리고 일본의 천황을 천황이라 부르지 않으면 천황의 전쟁 책임을 물을 때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생각된다.일본인들은 분명 우리나라 사람들과 다르다.천황에게 전쟁에 대한 사과를 받아내려면 일본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그러한 논리를 내세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7. 참고문헌
: 무궁화와 사쿠라(21세기 한국과 일본의 이해) - 조선대학교 출판부,김인현 지음
: 이규형의 닛폰,닛폰 분카 - 동방미디어(주)
: 21세기 길목에서 생각하는 전후일본 - 도서출판 계명,김필동 지음
: 전체주의의 시대경험 - 창작과 비평사,후지와 쇼오조오 지음,이홍락 옮김
: 역사 비평 2000년 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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