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산수화
2.겸재정선
1.서론
ⅰ.시대상황
ⅱ. 이전세기에 화풍
ⅲ. 겸재정선 대하여
ⅳ. 정선의 영향
ⅴ. 겸재의 화풍
ⅵ. 정선의 특징
ⅶ. 진 경 산 수
ⅷ. 정선의 진경산수
ⅸ. 정 선 이 후 화풍
ⅹ. 정선의 작품들
2.본론
3.결론
2.겸재정선
1.서론
ⅰ.시대상황
ⅱ. 이전세기에 화풍
ⅲ. 겸재정선 대하여
ⅳ. 정선의 영향
ⅴ. 겸재의 화풍
ⅵ. 정선의 특징
ⅶ. 진 경 산 수
ⅷ. 정선의 진경산수
ⅸ. 정 선 이 후 화풍
ⅹ. 정선의 작품들
2.본론
3.결론
본문내용
齋) 정선(鄭y)최북(崔北)김석신(金碩臣)심사정(沈師正) 이인문(李寅文) 등의 화가들이 모두 수묵화에 능했다. 조선 후기에 이르면서 남종화풍은 더욱 유행되어 황공망(黃公望)오진(吳鎭)예찬(倪瓚)왕몽(王蒙) 등 오파(吳派) 화가들과 청대(淸代)의 정통파인 사왕오운(四王吳5:王時敏王鑑王王原祁吳歷5壽平) 등의 화풍이 잘 알려지게 되었다. 특히 능호관(凌壺觀) 이인상(李麟祥)의 《송하관폭도(松下觀瀑圖)》 등에는 고아(古雅) 간담(簡淡)한 문기(文氣)가 먹의 다양한 변화에 의해 잘 나타나 있으며 그의 수묵화는 한결같이 청일한 느낌을 준다. 또한 강세황의 영향을 받은 자하(紫霞) 신위(申緯)가 18세기 말~19세기 전반에 활약하여 참신한 화풍의 대나무 그림을 남겼다. 그러다가 조선 후기의 학계와 서화계에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김정희(金正喜)와 그의 일파의 등장으로 남종화의 본격적인 유행과 토착화가 이루어지면서 문자향(文字香) 서권기(書卷氣)의 문기 짙은 묵란과 산수그림이 성하게 되었으며 담담하고 격조 높은 수묵화가 많이 제작되었다. 한편 김정희의 문하에 있었던 조희룡(趙熙龍)은 묵죽도(墨竹圖)에서 높은 경지의 독자적 세계를 개척하였고 19세기에 한국 회화를 꽃피운 장승업(張承業)에 의해 호방 활달한 기량이 발휘되면서 파격적이고도 개성 있는 화풍이 선보였다.
소재에 따른 분류
산수화 풍경화, 산과 계곡 등 자연의 경치를 그린 그림으로 남북조 시대부터 시작.
화조화 꽃과 새를 그린 그림.
영모도 새나 짐승을 그린 그림.
초충도 풀과 벌레를 그린 그림.
어해화 물고기, 게 등 물 속의 고기류를 표현.
화훼화 꽃, 꽃가지만을 그린 그림
인물화 초상화, 미인도, 신선도, 탱화(불교화).
풍속화 그 시대의 풍속, 생활상 등을 그린 그림.
문인화 선비들이 여가에 즐겨 그렸으며, 수묵이나 수묵담채 기법을 많이 이용하여 남화풍의 화면을 보여줌.
수묵 채색화
대개 그림이란 선과 색, 면으로 이루어진다. 그러나 수묵화(水墨畵)는 그런 상식과 달리 색을 쓰지 않는다. 먹으로만 그리는 탓이다. 이 먹을 물체 풀어 붓으로 그리는 것을 수묵화라 한다. 재료만 보면 남달리 복잡할 것도 없는 그림이 수묵화다. 그런데 보면 볼수록, 알면 알수록 복잡하다. 물을 많이 타 흥건한 먹이 있는가 하면 농도가 짙어 끈끈한 먹도 있다. 붓도 여러 가지고 불 놀리는 법도 많다. 산이나 계곡, 돌과 나무를 그럴듯하게 그리고 싶은데 재료가 지나칠 정도로 간단해서 꾀를 냈던 것이겠다.
채색화(彩色畵)란 사실 적절한 말이 아니다. 그게 바로 그림이기 때문에 채색화란 낱말을 굳이 써야 할 이유가 없는 탓이다. 하지만 우리 나라를 비롯해 중국과 일본을 포함한 동북아시아에서 왕궁 사대부를 비롯한 지식인들이 수묵화 양식을 오랜 세월 감싸고돌았다. 따라서 수묵화 양식은 미술 종류 체계에서 매우 높은 지위를 차지했다. 도리 없이 수묵화 양식 아닌 다른 것을 채색화라 부를 수밖에 없었다.
채색화란 고구려나 백제, 신라시대의 고분 벽화부터 화려하기 그지없는 불교회화, 궁중에서 필요로 했던 기록화를 비롯한 현란한 그림들, 꼼꼼히 그려 놀라운 초상화, 눈부신 장식화, 재미 넘치는 무속 회화와 민간인들이 사용했던 민화에 이르기까지 그 폭이 대단히 넓다. 그뿐 아니라 수묵 바탕에 엷은 색을 칠해 멋진 효과를 낸 그림도 대단히 많다. 이것을 흔히 수묵담채화(水墨淡彩畵)라 일컫는다.
옛날부터 수묵화와 채색화라고 나누어 부르진 않았다. 뒷날 새로 만든 낱말로 대개 남종문인화(南宗文人畵)와 북종화원화(北宗畵員畵)라고 하였다. 흔히 남종화와 문인화가 엇비슷하므로 한꺼번에 섞어 남종 문인화라 부르고, 북종화와 화원화가 엇비슷하니까 한꺼번에 북종 화원화라 부른다. 아무튼 남종화와 문인화쪽은 수묵 중심이고 북종화와 화원화쪽은 채색 중심으로 알려져 있으니 거기에 따르기로 한 것이다.
수묵화와 채색화를 한꺼번에 아우르는 낱말은 없다. 대개 그 모두를 도화(圖畵)라 했고 글씨와 묶어 서화(書畵)라 불렀다. 그러다가 조선시대 이후 일본 사람들이 우리 나라에 쳐들어온 뒤 동양화란 말이 생겼다. 일본인들은 자기네 그림을 일본화라 불렀으므로 조선의 그림은 조선화라 불러 마땅한 데도 우리의 그림을 동양화라 불렀다. 일제 강점하의 조선미술전람회에 일본인과 조선인이 모두 작품을 냈기 때문에 도저히 조선화부라고 이름지을 수 없었고 또 일본화부라고 하기도 어려웠던 모양이다. 아무튼 화려한 언론 지면을 타고 동양화란 낱말은 서양화란 낱말과 더불어 대중들 사이에 완전히 자리를 잡았다.
수묵 채색화의 용구
문방 사우 붓, 먹, 종이, 벼루
붓 끝이 모아지고 부드러운 것이 좋다.
먹 색이 곱고 냄새가 향기로운 것이 좋다.
벼 루 표면이 고르고 물이 잘 마르지 않는 것.
종 이 흡습성이 좋은 화선지같은 한지류 사용.
기타 서진(문진), 담요, 연적, 접시, 붓말이 등
먹의 사용법
삼묵법 농묵, 중묵, 담묵.
발묵법 번져가는 먹색, 구름, 안개 표현에 좋다.
파묵법 담묵 위에 농묵으로 처리, 중후함 표현.
<집 필 법1> <집 필 법2> <삼 묵 법>
<겸 재 정 선>
Ⅰ 서 론
조선왕조는 518년간의 역사동안에 수많은 화가를 배출하였다. 이 시대의 많은 화가들이 제일 많으 그렸던 분야는 산수화이다. 그렇기 때문에 산수화는 조선시대 회화의 대종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산수화 분야의 대가들은 조선초기의 현동자. 안견 겸재정선을 꼽을수 있는데 나는 정선에 대하여 조사해 본다.
안견은 북종화를 수용하여 높은 경지의 산수화를 이상적 산수화를 개척하였고 정선은 남종화를 받아들여 독보적인 진경산수화를 창출했다. 이들은 조선시대 산수화의 두가지 대조적인 측면을 시대를 달리하여 대표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안견의 이념적 산수화도 우리의 산천을 토대로 하고 정선의 진경산수화도 실경을 바탕으로 하여 이들이 화풍이 다르다고 하여 전혀 상반된다고 할 수는 없다. 이들은 누구보다 조선적 산수화를 창출에 크게 기여해 냈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띤다.
정선은 우리나라에 실제로 존재하는 명산승경을 주제로 하고 새로 수용된 남종화법과 화론을 소화하여 전엔 없었던 새로운 동국진경을 창
소재에 따른 분류
산수화 풍경화, 산과 계곡 등 자연의 경치를 그린 그림으로 남북조 시대부터 시작.
화조화 꽃과 새를 그린 그림.
영모도 새나 짐승을 그린 그림.
초충도 풀과 벌레를 그린 그림.
어해화 물고기, 게 등 물 속의 고기류를 표현.
화훼화 꽃, 꽃가지만을 그린 그림
인물화 초상화, 미인도, 신선도, 탱화(불교화).
풍속화 그 시대의 풍속, 생활상 등을 그린 그림.
문인화 선비들이 여가에 즐겨 그렸으며, 수묵이나 수묵담채 기법을 많이 이용하여 남화풍의 화면을 보여줌.
수묵 채색화
대개 그림이란 선과 색, 면으로 이루어진다. 그러나 수묵화(水墨畵)는 그런 상식과 달리 색을 쓰지 않는다. 먹으로만 그리는 탓이다. 이 먹을 물체 풀어 붓으로 그리는 것을 수묵화라 한다. 재료만 보면 남달리 복잡할 것도 없는 그림이 수묵화다. 그런데 보면 볼수록, 알면 알수록 복잡하다. 물을 많이 타 흥건한 먹이 있는가 하면 농도가 짙어 끈끈한 먹도 있다. 붓도 여러 가지고 불 놀리는 법도 많다. 산이나 계곡, 돌과 나무를 그럴듯하게 그리고 싶은데 재료가 지나칠 정도로 간단해서 꾀를 냈던 것이겠다.
채색화(彩色畵)란 사실 적절한 말이 아니다. 그게 바로 그림이기 때문에 채색화란 낱말을 굳이 써야 할 이유가 없는 탓이다. 하지만 우리 나라를 비롯해 중국과 일본을 포함한 동북아시아에서 왕궁 사대부를 비롯한 지식인들이 수묵화 양식을 오랜 세월 감싸고돌았다. 따라서 수묵화 양식은 미술 종류 체계에서 매우 높은 지위를 차지했다. 도리 없이 수묵화 양식 아닌 다른 것을 채색화라 부를 수밖에 없었다.
채색화란 고구려나 백제, 신라시대의 고분 벽화부터 화려하기 그지없는 불교회화, 궁중에서 필요로 했던 기록화를 비롯한 현란한 그림들, 꼼꼼히 그려 놀라운 초상화, 눈부신 장식화, 재미 넘치는 무속 회화와 민간인들이 사용했던 민화에 이르기까지 그 폭이 대단히 넓다. 그뿐 아니라 수묵 바탕에 엷은 색을 칠해 멋진 효과를 낸 그림도 대단히 많다. 이것을 흔히 수묵담채화(水墨淡彩畵)라 일컫는다.
옛날부터 수묵화와 채색화라고 나누어 부르진 않았다. 뒷날 새로 만든 낱말로 대개 남종문인화(南宗文人畵)와 북종화원화(北宗畵員畵)라고 하였다. 흔히 남종화와 문인화가 엇비슷하므로 한꺼번에 섞어 남종 문인화라 부르고, 북종화와 화원화가 엇비슷하니까 한꺼번에 북종 화원화라 부른다. 아무튼 남종화와 문인화쪽은 수묵 중심이고 북종화와 화원화쪽은 채색 중심으로 알려져 있으니 거기에 따르기로 한 것이다.
수묵화와 채색화를 한꺼번에 아우르는 낱말은 없다. 대개 그 모두를 도화(圖畵)라 했고 글씨와 묶어 서화(書畵)라 불렀다. 그러다가 조선시대 이후 일본 사람들이 우리 나라에 쳐들어온 뒤 동양화란 말이 생겼다. 일본인들은 자기네 그림을 일본화라 불렀으므로 조선의 그림은 조선화라 불러 마땅한 데도 우리의 그림을 동양화라 불렀다. 일제 강점하의 조선미술전람회에 일본인과 조선인이 모두 작품을 냈기 때문에 도저히 조선화부라고 이름지을 수 없었고 또 일본화부라고 하기도 어려웠던 모양이다. 아무튼 화려한 언론 지면을 타고 동양화란 낱말은 서양화란 낱말과 더불어 대중들 사이에 완전히 자리를 잡았다.
수묵 채색화의 용구
문방 사우 붓, 먹, 종이, 벼루
붓 끝이 모아지고 부드러운 것이 좋다.
먹 색이 곱고 냄새가 향기로운 것이 좋다.
벼 루 표면이 고르고 물이 잘 마르지 않는 것.
종 이 흡습성이 좋은 화선지같은 한지류 사용.
기타 서진(문진), 담요, 연적, 접시, 붓말이 등
먹의 사용법
삼묵법 농묵, 중묵, 담묵.
발묵법 번져가는 먹색, 구름, 안개 표현에 좋다.
파묵법 담묵 위에 농묵으로 처리, 중후함 표현.
<집 필 법1> <집 필 법2> <삼 묵 법>
<겸 재 정 선>
Ⅰ 서 론
조선왕조는 518년간의 역사동안에 수많은 화가를 배출하였다. 이 시대의 많은 화가들이 제일 많으 그렸던 분야는 산수화이다. 그렇기 때문에 산수화는 조선시대 회화의 대종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산수화 분야의 대가들은 조선초기의 현동자. 안견 겸재정선을 꼽을수 있는데 나는 정선에 대하여 조사해 본다.
안견은 북종화를 수용하여 높은 경지의 산수화를 이상적 산수화를 개척하였고 정선은 남종화를 받아들여 독보적인 진경산수화를 창출했다. 이들은 조선시대 산수화의 두가지 대조적인 측면을 시대를 달리하여 대표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안견의 이념적 산수화도 우리의 산천을 토대로 하고 정선의 진경산수화도 실경을 바탕으로 하여 이들이 화풍이 다르다고 하여 전혀 상반된다고 할 수는 없다. 이들은 누구보다 조선적 산수화를 창출에 크게 기여해 냈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띤다.
정선은 우리나라에 실제로 존재하는 명산승경을 주제로 하고 새로 수용된 남종화법과 화론을 소화하여 전엔 없었던 새로운 동국진경을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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