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I. 들어가는 말
II. 유럽통합의 이론적 배경
1. 연방주의적 통합
2. 기능주의적 통합
3. 신기능주의적 통합
III. 유럽통합의 역사적 배경
1. 초기단계
2. 2차 세계대전 직후
3. 1950년대 이후
4. 드골의 복귀
5. 유럽통합의 재도약
Ⅳ.유럽통합의 문화적 정체성에 대한 역사적 고찰
1. 유럽의 개념
2. 유럽인의 정체성과 기독교
3. 유럽인의 정체성과 헬레니즘 문화
4. 종교개혁과 유럽의 국가, 민족 문화의 시작
5. 유럽의 국가, 민족 문화의 발달
6. 민족주의에 대한 반성의 산물로서의 유럽통합과
문화
V. 유럽통합의 과제
1. 정치적 심화문제
2. 양적 확대문제
V. 맺는말
<참고문헌>
II. 유럽통합의 이론적 배경
1. 연방주의적 통합
2. 기능주의적 통합
3. 신기능주의적 통합
III. 유럽통합의 역사적 배경
1. 초기단계
2. 2차 세계대전 직후
3. 1950년대 이후
4. 드골의 복귀
5. 유럽통합의 재도약
Ⅳ.유럽통합의 문화적 정체성에 대한 역사적 고찰
1. 유럽의 개념
2. 유럽인의 정체성과 기독교
3. 유럽인의 정체성과 헬레니즘 문화
4. 종교개혁과 유럽의 국가, 민족 문화의 시작
5. 유럽의 국가, 민족 문화의 발달
6. 민족주의에 대한 반성의 산물로서의 유럽통합과
문화
V. 유럽통합의 과제
1. 정치적 심화문제
2. 양적 확대문제
V. 맺는말
<참고문헌>
본문내용
했을 때에도 기독교는 로마인과 게르만인을 묶어 하나의 유럽을 이루게 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즉 게르만의 대 이동과 그의 여파에서 서로마 제국이 몰락한 이후에 사회의 질서와 조직 그리고 제도의 형태를 이루고 있던 것은 교회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기독교 유럽세계의 정체성은 11~13세기에 걸친 십자군 전쟁을 통해 더욱 강화되었고 십자군 전쟁이후에 계속된 이슬람 세력의 침입은 유럽인들의 위기의식을 높이기에 충분하였고, 이에 따라 유럽인들은 더욱 강한 기독교 운명공동체 의식을 갖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 이후에 1492년에 기독교도들은 이베리아 반도를 복원하였고, 이슬람 세력은 서유럽에서 완전히 물러났다. 그 때부터 서유럽 지역에서 유럽은 곧 기독교 세계라는 동의어가 이루어질 정도로 유럽의 기독교 정체성은 강화되었고 이는 유럽은 하나로 묶는 중심이 되었다. 이러한 측면에서 당시 지식인들은 유럽을 ‘기독교 공화국’으로 불렀고, 당시 유럽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지식의 원천은 사제를 통해 듣는 성서의 내용이었으며, 기독교 윤리는 이들의 의식구조를 형성하는 초석이 되었다.
3.유럽인의 정체성과 헬레니즘 문화
기독교 중심 세계의 중세시대 후기에 이르러, 십자군 전쟁을 통해 동방문화에 접하게 되면서 유럽인들은 그리스, 로마의 고전에 다시 눈을 돌리게 되었다. 이는 르네상스라는 역사문화 변환으로 이어지고 지식인들 사이에서 그리스, 로마의 고전들이 폭넓게 학습되었는데 바로 이것을 통해 지역적인 차이를 넘어 공동의 지적 토양을 갖게 되고 공동 운명체 소속감을 고양시켜 나갔다. 유럽인들은 이런 유럽세계를 ‘학문공화국’이라고 불렀는데 이것은 ‘기독교 공화국’이라는 개념과 대비되는 것이었다. 이렇게 해서 그리스, 로마의 세계관과 사상들은 기독교 세계관과 더불어 유럽의식과 문화를 형성하는 유럽문화의 본질적인 두 기둥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이러한 유럽의 고전문화 체계는 ‘헬레니즘’으로 총칭되기도 한다.
또한 이러한 르네상스의 전개와 헬레니즘 문화의 발달은 유럽인이 유럽인인 것은 다른 지역에 비해 문명을 누린다는 우월의식을 가져와서 ‘문명인’이라는 개념을 만들어 내기에 이르렀다.
4.종교개혁과 유럽의 국가, 민족 문화의 시작
기독교와 헬레니즘이라는 유럽문화의 두 가지 기둥에 변화가 일어나는 것은 르네상스의 진행에 따라 나타나는 종교개혁에 의해서라고 할 수 있다. 종교개혁은 기독교 중심의 유럽 중세 사회질서에 근본적인 변혁을 일으키는데, 이는 결과적으로 유럽세계 전체를 포괄하는 가톨릭 교황의 권위를 약화시키고, 기독교 정체성의 약화를 가져왔다. 가톨릭에 저항하는 다양한 개신교들은 독특한 가치관과 종교의식을 가졌으며 어떤 종파가 어느 지역에 자리잡느냐에 따라 그 지역 문화 발전의 방향과 성격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종교개혁에 의해서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는 중요한 대립단위가 되었고,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 종교적 분파들의 성립과정과 당시에 진행되고 있던 중앙집권 체제의 세속 국가들의 발전 과정이 상호연관성을 가진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종교전쟁은 국가들이 전쟁을 의미하기도 하는 것이다. 이들 종교적, 세속 정치적 대립은 1618년에서 1648년까지의 30년 전쟁에서 극명하게 표현되고 있는데, 이 전쟁을 종식하는 1648년의 베스트팔렌 조약은 특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이 조약에서 국가이성(state reason)에 바탕을 둔 국가주권 개념이 도입되었으며 이 조약과 더불어 주권을 가진 국가들이 국제질서를 형성하는 시대가 열리게 되었다. 즉 이제는 기독교 유럽의 정체성으로서의 의미보다는 국가주권의 의미가 더욱 커지고 있는 것이었다. 이러한 경향이 유럽 공동의 소속감을 약화시키고 유럽 각국의 소속감(국가의식)을 강화시킨 것은 자명한 일이다.
5. 유럽의 국가, 민족 문화의 발달
위에서 말한 문명에 기초한 유럽의 정체성은 관념적인 것이 되어질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실질적인 문명개화의 기본 단위는 유럽이 아니라 유럽의 국가들이었기 때문이었다. 유럽의 각국은 치열한 경재을 벌였고, 이러한 경쟁은 중상주의라는 형태로 나타났고, 중상주의는 국가를 단위로 하는 자본주의를 발전시키기에 이르렀다.
시민혁명과 산업혁명은 국가의 테두리 안에서 수행되었고, 이러한 혁명의 진전은 각 국가의 독자적인 영역을 강화시켰다. 각 민족국가들은 유럽 공동의 요소를 자신 국가들의 고유한 것으로 정착시키고, 자신의 국가만이 유럽의 문화전통을 계승, 발전시키는 지도국이 될 수 있음을 주장하였다. 따라서 그들은 유럽 공동의 문화보다는 민족고유의 문화에 필사적인 관심을 모으게 되고, 국가에 대한 애국심이 가장 중요한 덕목 중 하나로 자리잡게 되었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유럽의식이란 추상적인 형태로서 유럽인의 잠재의식 속으로 들어가고 민족의식만이 현실적인 중요한 가치로 표면에 나타났다. 이러한 민족주의의 발전은 앞서 언급한 문명이론의 진전과 국가를 단위로 하는 자본주의의 발전 등과 더불어 제국주의의 역사로 이어졌고, 이것은 세계대전의 원인이 되었다.
6. 민족주의에 대한 반성의 산물로서의 유럽통합과 문화
민족주의를 원인으로 하는 세계대전을 겪고 나서 유럽에서는 민족주의와 제국주의에 대한 반성이 일어났으며 이는 실질적인 유럽통합 운동으로 나타났다. 이 과정에서 다시 유럽 공동의 문화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유럽통합이 진행되는 시기에 유럽인들에게 유럽의식이 다시 주요한 가치가 되었다.
그러나 현실의 유럽통합은 유럽국가들이 주체가 되어서 이루어지고 있고, 여전히 각국의 민족의식은 뿌리 깊게 자리하고 있기 때문에 유럽 각국의 민족의식 내지는 국가의식을 무시하고 유럽 공동의 의식과 문화를 발전시키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고 하겠다. 이러한 한계를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유럽통합의 문화정책은 ‘다양성 속의 통일’이라는 전제하에서 이루어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V. 유럽통합의 과제
1. 정치적 심화문제
유럽연합이 진정한 의미의 사회경제적 통합을 이루기 위해서는 시장의 힘만 키우는데 노력할 것이 아니라 다양한 사회정책적 수단을 통하여 공동체의 모든 시민이 높은 수준의 사회복지를 공유해야 한다고 생각되어진다.
범유럽적 차원에서 볼
기독교 유럽세계의 정체성은 11~13세기에 걸친 십자군 전쟁을 통해 더욱 강화되었고 십자군 전쟁이후에 계속된 이슬람 세력의 침입은 유럽인들의 위기의식을 높이기에 충분하였고, 이에 따라 유럽인들은 더욱 강한 기독교 운명공동체 의식을 갖게 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 이후에 1492년에 기독교도들은 이베리아 반도를 복원하였고, 이슬람 세력은 서유럽에서 완전히 물러났다. 그 때부터 서유럽 지역에서 유럽은 곧 기독교 세계라는 동의어가 이루어질 정도로 유럽의 기독교 정체성은 강화되었고 이는 유럽은 하나로 묶는 중심이 되었다. 이러한 측면에서 당시 지식인들은 유럽을 ‘기독교 공화국’으로 불렀고, 당시 유럽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지식의 원천은 사제를 통해 듣는 성서의 내용이었으며, 기독교 윤리는 이들의 의식구조를 형성하는 초석이 되었다.
3.유럽인의 정체성과 헬레니즘 문화
기독교 중심 세계의 중세시대 후기에 이르러, 십자군 전쟁을 통해 동방문화에 접하게 되면서 유럽인들은 그리스, 로마의 고전에 다시 눈을 돌리게 되었다. 이는 르네상스라는 역사문화 변환으로 이어지고 지식인들 사이에서 그리스, 로마의 고전들이 폭넓게 학습되었는데 바로 이것을 통해 지역적인 차이를 넘어 공동의 지적 토양을 갖게 되고 공동 운명체 소속감을 고양시켜 나갔다. 유럽인들은 이런 유럽세계를 ‘학문공화국’이라고 불렀는데 이것은 ‘기독교 공화국’이라는 개념과 대비되는 것이었다. 이렇게 해서 그리스, 로마의 세계관과 사상들은 기독교 세계관과 더불어 유럽의식과 문화를 형성하는 유럽문화의 본질적인 두 기둥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이러한 유럽의 고전문화 체계는 ‘헬레니즘’으로 총칭되기도 한다.
또한 이러한 르네상스의 전개와 헬레니즘 문화의 발달은 유럽인이 유럽인인 것은 다른 지역에 비해 문명을 누린다는 우월의식을 가져와서 ‘문명인’이라는 개념을 만들어 내기에 이르렀다.
4.종교개혁과 유럽의 국가, 민족 문화의 시작
기독교와 헬레니즘이라는 유럽문화의 두 가지 기둥에 변화가 일어나는 것은 르네상스의 진행에 따라 나타나는 종교개혁에 의해서라고 할 수 있다. 종교개혁은 기독교 중심의 유럽 중세 사회질서에 근본적인 변혁을 일으키는데, 이는 결과적으로 유럽세계 전체를 포괄하는 가톨릭 교황의 권위를 약화시키고, 기독교 정체성의 약화를 가져왔다. 가톨릭에 저항하는 다양한 개신교들은 독특한 가치관과 종교의식을 가졌으며 어떤 종파가 어느 지역에 자리잡느냐에 따라 그 지역 문화 발전의 방향과 성격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종교개혁에 의해서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는 중요한 대립단위가 되었고,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 종교적 분파들의 성립과정과 당시에 진행되고 있던 중앙집권 체제의 세속 국가들의 발전 과정이 상호연관성을 가진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종교전쟁은 국가들이 전쟁을 의미하기도 하는 것이다. 이들 종교적, 세속 정치적 대립은 1618년에서 1648년까지의 30년 전쟁에서 극명하게 표현되고 있는데, 이 전쟁을 종식하는 1648년의 베스트팔렌 조약은 특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이 조약에서 국가이성(state reason)에 바탕을 둔 국가주권 개념이 도입되었으며 이 조약과 더불어 주권을 가진 국가들이 국제질서를 형성하는 시대가 열리게 되었다. 즉 이제는 기독교 유럽의 정체성으로서의 의미보다는 국가주권의 의미가 더욱 커지고 있는 것이었다. 이러한 경향이 유럽 공동의 소속감을 약화시키고 유럽 각국의 소속감(국가의식)을 강화시킨 것은 자명한 일이다.
5. 유럽의 국가, 민족 문화의 발달
위에서 말한 문명에 기초한 유럽의 정체성은 관념적인 것이 되어질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실질적인 문명개화의 기본 단위는 유럽이 아니라 유럽의 국가들이었기 때문이었다. 유럽의 각국은 치열한 경재을 벌였고, 이러한 경쟁은 중상주의라는 형태로 나타났고, 중상주의는 국가를 단위로 하는 자본주의를 발전시키기에 이르렀다.
시민혁명과 산업혁명은 국가의 테두리 안에서 수행되었고, 이러한 혁명의 진전은 각 국가의 독자적인 영역을 강화시켰다. 각 민족국가들은 유럽 공동의 요소를 자신 국가들의 고유한 것으로 정착시키고, 자신의 국가만이 유럽의 문화전통을 계승, 발전시키는 지도국이 될 수 있음을 주장하였다. 따라서 그들은 유럽 공동의 문화보다는 민족고유의 문화에 필사적인 관심을 모으게 되고, 국가에 대한 애국심이 가장 중요한 덕목 중 하나로 자리잡게 되었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유럽의식이란 추상적인 형태로서 유럽인의 잠재의식 속으로 들어가고 민족의식만이 현실적인 중요한 가치로 표면에 나타났다. 이러한 민족주의의 발전은 앞서 언급한 문명이론의 진전과 국가를 단위로 하는 자본주의의 발전 등과 더불어 제국주의의 역사로 이어졌고, 이것은 세계대전의 원인이 되었다.
6. 민족주의에 대한 반성의 산물로서의 유럽통합과 문화
민족주의를 원인으로 하는 세계대전을 겪고 나서 유럽에서는 민족주의와 제국주의에 대한 반성이 일어났으며 이는 실질적인 유럽통합 운동으로 나타났다. 이 과정에서 다시 유럽 공동의 문화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유럽통합이 진행되는 시기에 유럽인들에게 유럽의식이 다시 주요한 가치가 되었다.
그러나 현실의 유럽통합은 유럽국가들이 주체가 되어서 이루어지고 있고, 여전히 각국의 민족의식은 뿌리 깊게 자리하고 있기 때문에 유럽 각국의 민족의식 내지는 국가의식을 무시하고 유럽 공동의 의식과 문화를 발전시키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고 하겠다. 이러한 한계를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유럽통합의 문화정책은 ‘다양성 속의 통일’이라는 전제하에서 이루어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V. 유럽통합의 과제
1. 정치적 심화문제
유럽연합이 진정한 의미의 사회경제적 통합을 이루기 위해서는 시장의 힘만 키우는데 노력할 것이 아니라 다양한 사회정책적 수단을 통하여 공동체의 모든 시민이 높은 수준의 사회복지를 공유해야 한다고 생각되어진다.
범유럽적 차원에서 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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