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들어가며
Ⅱ. 엄마의 말뚝을 통해 보는 박완서 작품에 관한 편견
ⅰ.엄마의 말뚝1의 줄거리
ⅱ.엄마의 말뚝2.
Ⅲ. 그녀의 창작열에 관한 진실.
Ⅳ.끝맺으며
Ⅱ. 엄마의 말뚝을 통해 보는 박완서 작품에 관한 편견
ⅰ.엄마의 말뚝1의 줄거리
ⅱ.엄마의 말뚝2.
Ⅲ. 그녀의 창작열에 관한 진실.
Ⅳ.끝맺으며
본문내용
가신 아버지이자 나이들어서는 30도 안돼 세상에 의해 죽게 된 오빠의 존재였던 것이다.
그녀는 그 존재들을 끊임없이 갈구하고 자신의 상처를 되풀이하며 말하고 있는 과정의 어머니만을 보고 있을 뿐 그 외의 것은 자신도 굳이 말하고 있지 않다.
오히려 아이의 기억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얼마나 객관적으로 보고있나를 보여주기 위해 회상하는 어른으로서의 입장으로 글을 쓸 뿐이다. 이 것은 주요섭이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에서 아이의 순수한 눈으로 어머니의 사랑을 순수하게 꾸미려 했던 모습과 대조적으로 오히려 어머니를 객관적인 눈으로 단죄하려는 인상마저 보여주고 있다.
Ⅳ.끝맺으며
박완서 작품에서 어머니에 관한 모티프를 완전히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폐미니스트로서 여성성만을 강조하는 기존의 평가방식은 분명 문제가 있을 것이다. 작가는 분명 어머니에 대한 원망과 함께 숨길 수 없는 연민을 보이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그 것은 어쩔 수 없이 삶을 같이 해야했던 자의 단편일 뿐, 더욱 중요한 것은 그러한 원망이 드러날 수밖에 없었던 아버지의 부재와 그 대신이었던 하늘같은 오빠의 죽음에 있었다는 것이다.
작가에게 있어서 6.25는 그래서 잊을 수 없는 모습이고 사건이다. 6.25는 단순히 시대의 아픔이 아니라 작가의 직접적 충격이 되었기 때문이다. 빨갱이 취급 받는 오빠의 시신을 몰래 마당 뒤에 가매장시켰다가 화장하여 바다에 날려 버려야했던 그 마음이 무엇을 말하고 있었겠는가. 그녀는 자신의 속내였다고 말하고 있는 『부처님 근처』에서도 말하고 있다. 그냥 참고 있자니 속이 상했노라고...사람들은 모두 현실의 부에만 관심을 둘 뿐 고리타분한 전쟁의 아픔에 관해서는 듣고 싶어하지 않아 글을 쓰게 되었고 사람들이 좀 더 잘 들어주길 원해서 재미있게 쓰려 노력했노라고 말이다.
소설 속 '말뚝'이여던 '괴불마당집'은 아마 그 어머니 가슴속에 부재되어 있는 아버지의 존재와도 같은 것이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아버지없이 상경하여 처음으로 의지했던 집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믿음은 결국 6.25가 시작되어 수복된 서울을 버리고 피난가던 길에 지치고 힘들었을 때 평화로운 얼굴로 그 집으로 돌아가자 말할 수 있는 것은 대단한 결심을 보여주게 된다.
이는 말뚝1의 마지막부분에서도 보여주고 있는데, 잘살게 된 지금도 어머니는 서울에 처음 박은 말뚝인 '괴불마당집'을 잊지 못하고 그때와 비교하고 그리워하며 헤어 나오지 못한 체 그 말뚝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 그러하다.
박완서는 그런 엄마의 말뚝을 보며 자신의 말뚝을 보고 있었던 것 같다.
엄마가 말뚝이 된 그 배경이 자신의 말뚝을 찾는 배경이 되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녀의 말뚝은 아직도 이름지어지지는 못해 여전히 글만 쓰고 이다.
참고문헌
박완서, 『엄마의 말뚝1.2.3』,세계사,2002.
박완서 외 공저, 『박완서 문학앨범』웅진출판사,1992.
박완서, 『나목』세계사,1995.
강인숙, 「박완서론」인문과학논총,1994.
안남연, 「박완서 소설의 여성성」한국문예비평연구,1998.
그녀는 그 존재들을 끊임없이 갈구하고 자신의 상처를 되풀이하며 말하고 있는 과정의 어머니만을 보고 있을 뿐 그 외의 것은 자신도 굳이 말하고 있지 않다.
오히려 아이의 기억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얼마나 객관적으로 보고있나를 보여주기 위해 회상하는 어른으로서의 입장으로 글을 쓸 뿐이다. 이 것은 주요섭이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에서 아이의 순수한 눈으로 어머니의 사랑을 순수하게 꾸미려 했던 모습과 대조적으로 오히려 어머니를 객관적인 눈으로 단죄하려는 인상마저 보여주고 있다.
Ⅳ.끝맺으며
박완서 작품에서 어머니에 관한 모티프를 완전히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폐미니스트로서 여성성만을 강조하는 기존의 평가방식은 분명 문제가 있을 것이다. 작가는 분명 어머니에 대한 원망과 함께 숨길 수 없는 연민을 보이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그 것은 어쩔 수 없이 삶을 같이 해야했던 자의 단편일 뿐, 더욱 중요한 것은 그러한 원망이 드러날 수밖에 없었던 아버지의 부재와 그 대신이었던 하늘같은 오빠의 죽음에 있었다는 것이다.
작가에게 있어서 6.25는 그래서 잊을 수 없는 모습이고 사건이다. 6.25는 단순히 시대의 아픔이 아니라 작가의 직접적 충격이 되었기 때문이다. 빨갱이 취급 받는 오빠의 시신을 몰래 마당 뒤에 가매장시켰다가 화장하여 바다에 날려 버려야했던 그 마음이 무엇을 말하고 있었겠는가. 그녀는 자신의 속내였다고 말하고 있는 『부처님 근처』에서도 말하고 있다. 그냥 참고 있자니 속이 상했노라고...사람들은 모두 현실의 부에만 관심을 둘 뿐 고리타분한 전쟁의 아픔에 관해서는 듣고 싶어하지 않아 글을 쓰게 되었고 사람들이 좀 더 잘 들어주길 원해서 재미있게 쓰려 노력했노라고 말이다.
소설 속 '말뚝'이여던 '괴불마당집'은 아마 그 어머니 가슴속에 부재되어 있는 아버지의 존재와도 같은 것이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아버지없이 상경하여 처음으로 의지했던 집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믿음은 결국 6.25가 시작되어 수복된 서울을 버리고 피난가던 길에 지치고 힘들었을 때 평화로운 얼굴로 그 집으로 돌아가자 말할 수 있는 것은 대단한 결심을 보여주게 된다.
이는 말뚝1의 마지막부분에서도 보여주고 있는데, 잘살게 된 지금도 어머니는 서울에 처음 박은 말뚝인 '괴불마당집'을 잊지 못하고 그때와 비교하고 그리워하며 헤어 나오지 못한 체 그 말뚝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 그러하다.
박완서는 그런 엄마의 말뚝을 보며 자신의 말뚝을 보고 있었던 것 같다.
엄마가 말뚝이 된 그 배경이 자신의 말뚝을 찾는 배경이 되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녀의 말뚝은 아직도 이름지어지지는 못해 여전히 글만 쓰고 이다.
참고문헌
박완서, 『엄마의 말뚝1.2.3』,세계사,2002.
박완서 외 공저, 『박완서 문학앨범』웅진출판사,1992.
박완서, 『나목』세계사,1995.
강인숙, 「박완서론」인문과학논총,1994.
안남연, 「박완서 소설의 여성성」한국문예비평연구,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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