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장에 관한 여러가지 조사
본 자료는 4페이지 의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이미지를 클릭하여 주세요.
닫기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해당 자료는 4페이지 까지만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4페이지 이후부터 다운로드 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소개글

순장에 관한 여러가지 조사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殉葬이란?

2. 殉葬에 관한 고서의 기록

3. 중국의 殉葬

4. 우리나라의 殉葬.

5. 그 밖의 다른 나라의 殉葬

6. 殉葬에 관한 문학

7.맺음말

본문내용

여서 끌려온 자들도 있었고, 두 손을 합장하고 제 발로 걸어온 자들도 있었다.... 순장자들은 하루 전 날 집사장의 인솔로 능선위에 모여 밤을 샌 뒤 밝는 날 왕의 상여를 맞아 세 번 절하고 왕보다 먼저 각자의 구덩이 속으로 들어가 왕의 하관을 맞게 되어 있었다.<나라>”
-가야 임금의 순장(殉葬)에 관한 연구와 묘사, 전투 묘사, 그리고 대장장이 야로가 쇠를 벼리는 장면에 대한 병장기 묘사, 우륵이 가야금을 만들고 각 고을의 소리를 담는 원리에 대한 묘사에 숨이 막힌다. <조선일보>
순장에 관한 성어
①未亡人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 내용이 보인다. 남편을 먼저 잃은 아내를 가리키고 있다.
魯나라 莊公 28년 조에 보면, 楚나라의 영윤 자원이 죽은 초 문왕의 부인을 유혹하기 위해 궁실 옆에다 건물을 짓고 은나라 탕왕이 시작했다는 만의춤을 추게 하였다. 그 음악 소리를 듣고 부인은 울면서, “돌아가신 왕께서는 이 춤을 군대를 훈련하는 데 사용하셨다. 지금 영윤은 원수들을 치는 데는 생각이 없고 미망인의 곁에서 하고 있으니 이상하지 아니한가.”라고 하였다. 시종 하나가 이 사실을 자원에게 알리니 자원이 “부인은 원수를 잊지 않고 있는데 오히려 내가 잊고 있구나.” 하며 군사를 동원하여 정나라를 쳤다고 한다.
노 성공 9년 조에는, 그 해 노나라의 백희가 송공에게 시집가게 되어 계문자라는 사람이 후행으로 송나라에 갔다가 임무를 무사히 마치고 돌아왔다. 성공은 위로의 연회를 베풀었는데, 계문자가 성공과 송공을 칭송한 후 출가한 희의 앞날을 축복하자, 선대 선공의 부인이자 백희 어머니인 목강이 “이번에 큰 신세를 졌습니다. 당신은 선대부터 지금까지 충성을 다하고, 미망인인 나에게까지 진력하여 주셔서 고맙기 그지없습니다.”고 하였다 한다.
노나라 성공 14년 조에도, 위나라의 정공이 병이 들자 공성자·복혜자)로 하여금 첩실인 경사의 아들 간을 태자로 삼게 하였다. 10월에 정공이 죽고, 부인 강씨가 곡을 마치고 쉬면서 보니 태자는 아무런 슬픈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부인은 이를 보고 식음을 전폐한 채 “저 못난 자식은 틀림없이 나라를 망칠 것이며, 먼저 미망인인 나를 학대하리라. 아, 하늘은 위를 저버렸는가?” 하였다는 기사가 보인다.
이처럼 미망인이란 순장의 풍습에 따라 남편이 먼저 죽은 부인을 가리키던 말이다.
②結草報恩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 내용이 보인다.
晉나라의 大夫 위무(魏武)가 妾이 있었는데 병으로 앓게 되자, 그 아들 위과(魏顆)에게 일러 말하되“내가 죽으면 이 첩을 다른 사람에게 개가를 시켜라.”하더니, 그 뒤 병이 심하여 죽게 되거늘 또 말하되“(내가 죽으면)죽여 순장을 시켜라.”고 유언을 하였다. 죽음에 이르러 과가 말하되“차라리 정신이 있을 때의 명령을 좇아서 이를 개가를 시키리라.”秦과 晉의 싸움에 이르러 위과가 노인이 풀을 묶는 것을 보고서 두회(杜回)에게 대항했는데 두회가 풀에 걸려 넘어지니 마침내 그를 사로잡았다. 후에 위과의 꿈에 노인이 이르기를“나는 개가를 시켜 준 부인의 아버지니라. 네가 너의 아버지의 정신이 있을 때의 유언을 좇아서 내 딸을 개가를 시켜 주어서 내가 이로써 너에게 은혜를 갚는다.”魏武有妾, 武子病, 謂其子顆曰“我死嫁此妾” 病極又曰“殺爲殉” .及死顆曰“寧從治時命而嫁之”及秦晉之戰 魏顆 見老人結草 以抗杜回 回跌而顚 遂獲之. 後顆夢老人云“我而所嫁婦人之父也. 爾從治命. 余是以報”
7. 맺음말
순장은 고대에 있었던 하나의 장례 풍습으로 그것으로 권력자들은 자신들의 권력을 표현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장례 풍습은 죄 없는 백성들을 자신들의 권력의 소유물로 생각하여 죽게 하였고, 차츰 그러한 정도가 심해져서 순장된 인원이 수백 명에 이르기도 하였다. 이러한 악습은 우리나라에서는 통일 신라 시대에 중국에서는 명나라 때 소멸되었는데, 이러한 제도가 있었다는 것은 지금은 있을 수 없는 일인 것으로 보아 역사는 변화하고 있고, 사람들의 생각도 변화하고 있음을 알았다. 그리고 지배층의 이데올로기가 사회적 약자인 노예나 여성에게 얼마나 큰 횡포로 작용할 수 있는 지를 보여주는 예가 바로 순장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중국을 위시하여 동양에서는 순장제가 일찍부터 있었고, 그것이 사라지고 난 다음에는 순장의 변형된 형태인 貞婦, 烈女등 남편이 죽은 후 따라 죽는 여인이 많아졌고, 사람들은 그러한 여인을 칭송하는 형태도 있었다. 이러한 풍습들은 여자를 남자의 소유물 정도로 보는 고대의 관점을 알 수 있고, 지금과는 아주 다르다. 순장을 조사하면서 지금은 이 풍습이 사라진 것이 아주 다행이라는 생각이 여러 번 들었다.
<참고문헌>
<한국고대사산책> 한국역사연구회 고대사분과|역사비평사
<한권으로 정리한 이야기 한국고대사> 최범서|청아출판사
<새롭게 쓴 한국고대사> 김기흥|역사비평사
<한권으로 정리한 이야기 중국사> 조관희|청아출판사
<한국사 101장면> 정성희|가람기획
<장례의 이론과 실제> 남민이|㈜학문사
<이야기 가야사> 김경복, 이희근|청아출판사
<유물은 스스로 말하지 않는다> 안경숙외 |푸른역사
<궁녀> 신명호 |시공사
<참고 사이트>
http://www.jongsu.pe.kr/dol/technote/read.cgi?board=dol_work&y_number=38&nnew=2
http://emerge.joins.com/200206/200206_13.asp
http://www.kory21.net/F/UpData/殉葬과大加耶王陵展示館.ppt
http://web.cnei.or.kr/jries/web/go/soc/his/wo97.htm
http://211.252.89.97/ban/sa/ex/h1220.htm
http://www.kory21.net/F/UpData/문화교실교재.hwp
http://php.chol.com/~noza/chungsonyun/cs28.htm
http://cont1.edunet4u.net/jgsoon/htm/buyo.htm
http://bluecabin.com.ne.kr/data_store/hanhistory_mystery.htm
http://old.kory21.net/intro/htm/trgwan7.htm
  • 가격2,000
  • 페이지수12페이지
  • 등록일2005.05.27
  • 저작시기2005.05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298933
본 자료는 최근 2주간 다운받은 회원이 없습니다.
다운로드 장바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