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ꊱ 김영하
ꊲ 386세대와 김영하 (전태일과 쇼걸)
ꊳ 작품론
Ⅰ. 몸담론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도마뱀)
Ⅱ. 나르시시즘 (호출), (거울에 대한 명상)
Ⅲ. 일상속의 허구 (엘리베이터.... ,당신의 나무)
Ⅳ. 메타소설 (아랑은 왜?)
ꊴ 정리하기
ꊵ 부록; 김영하에 대한 평가, 나르시시즘, 후일담소설
ꊲ 386세대와 김영하 (전태일과 쇼걸)
ꊳ 작품론
Ⅰ. 몸담론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도마뱀)
Ⅱ. 나르시시즘 (호출), (거울에 대한 명상)
Ⅲ. 일상속의 허구 (엘리베이터.... ,당신의 나무)
Ⅳ. 메타소설 (아랑은 왜?)
ꊴ 정리하기
ꊵ 부록; 김영하에 대한 평가, 나르시시즘, 후일담소설
본문내용
음:김영하의 소설관
글을 읽어내려 가면서 나는 이것이 \'이야기 그 자체에 대한 분석\'같다는 인상을 받았다. 처음부터 작가는 아랑 전설의 전말을 밝혀 내는 일보단 \'이야기가 어떻게 조작되는가\'에 초점을 둔 것 같다. 그는 끊임없이 이야기의 틈을 발
견하고 그 틈을 비집고 들어간다. 마치 소설 창작 강의라도 하는 듯이 그는 우리에게 이럴 땐 이렇게 풀어내는 것이라고, 여기선 이렇게 쓰면 된다고 가르쳐 주고 있다.
이야기는 사람이 지어내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지는 것이라는 김영하 특유의 소설관이 아마도 이 소설의 주제가 아니었나 생각된다.
작가의 말대로 이야기가 우리의 몸을 빌려 자신들의 유전자를 실어 나르고 있는 것이라면,
앞으로 세월이 지나 아랑전설을 새롭게 쓰고자 하는 누군가가 나타나도 그는 결코 이야기를 완성하지는 못할것이다. 김영하는 우리에게 이것을 알려주고 싶은 것이 아닐까?
이야기는 스스로 만들어지고 그저 그것을 실어나르는 징검다리의 역할을 하는 것이 이야기꾼, 즉, 소설가의 몫이기 때문이다.
정리하기
1995년 단편 “거울에 대한 명상”으로 데뷔하여 90년대 문학의 핵심주자로서 가장 광범위한 대중적 인기를 점유해온 신세대 작가 김영하, 하지만 그 또한 여전히 이념과 변혁에의 신념과 열망으로 불탔던 지난 80년대와 그시절의 자신을 생생히 기억한다. 어쩌면 그는 모든 투쟁과 결집의 근거가 명백했던 그때가 조금은 그리운것인지 모른다. 그러나 사실을 말하면, 그는 그 시절을 회고하는 이런저런 후일담 따위에는 관심이 없는쪽이다. 오히려 이제야말로 80년대인간의 저변에 풍기던 역겨운 냄새들을 까발릴 차례가 되었다고 믿고 있는 쪽이다. 그래서 그는 현실의 총체성, 역사적 전망등의 거대담론의 이면에 도사리고 있던 또 하나의 권력의 매커니즘을 자학하듯 천천히 곱씹는다.
그가 보기에는 필시 거기에도 기성사회 못지않은 음험함이 있었고, 그들이 애써 한손에 거머쥐었다고 자부하는 총체성과 전망이라는 것도 시효기간이 존재하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같은 진단은 역사 민족등의 80년대 준거틀이 헐거워진 틈새를 뚫고 여성, 육체, 환경, 욕망등의 새로운 문제들이 다양한 코드로 얽히며 활기를 띄게된 90년대 담론 상황의 한 단면을 드러내준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과거의 억압속에서 숨죽여야 했던 이 타자적인 영역들은 90년대 이후 우리사회의 일상으로 자리잡은 후기 산업사회적 특성들과 맞닥뜨려지면서 현 시대의 가장 의미심장한 담론들로 부상해왔다.
그러나 과거로부터 과감히 튕겨나와 달라진 현재에 가볍게 착지한 김영하는 뜻밖에도 현대로부터 무기력에 빠진 자페증 환자를 읽는다.
“객관적 거울”의 상실과 더불어 고립되어 가는 개개인의 나르시시즘, 날로 더해가는 섹스의 물화 현상,끝없이 자가증식하는 물질의 버전업 욕구 , 영상매체가 창출해낸 현란한 이미지들, 그리고 삐삐 증후군과 가상현실 중독증등 이러한 집단병리학적 세목들 속에서 김영하가 감지하는 것은 현대인의 심리 근처에 있는 죽음의 그림자다. 산업사회의 고독과 소외 그리고 끝없이 부추겨지는 물질적 욕망으로 얼룩진, 그리하여 차라리 죽음을 꿈꾸는 무기력한 현대적 나르시스들의 일상들..
현대에 대한 이런 암울한 인식위에서 김영하는 필연적으로 리얼리즘 미학과의 결별은 물론, 90년대 전반기의 문학적 경향과도 일정한 거리를 두고 출발한다. 첨단의 도시적 감수성과 새로운 문화의 전위를 몸소 체험한 그는 이들 문학의 섬세하고 따스한 감성과 신비주의 서정적 문체등의 미학조차도 시대착오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졌는지 모른다.
현대적 소재와 도시적 감수성 판타지 등의 대중적 양식을 특징으로하는 그의 문학은 차라리 첨단의 매체문화의 체험을 근가능로 창출된 백민석 송경아 배수아 등의 문학과 더 가깝다.
그러나 김영하는 이 신세대 작가들 가운데서도 비교적 온건한 편에 속한다.
이는 그의 소설이 근본적으로 전통적 정서를 전적으로 떠나고 있지않으며, 대체로 잘짜인 플롯과 속도감 있는 사건전개. 읽히기 쉬운 언어구사등의 대중적인 이야기 문법을 채택하고 있다는 점에서 알수있다.
하지만 김영하 소설의 매력은 뭐니뭐니 해도 새로움에 있다. 그것도 어딘가 아슬아슬한 느낌을 불러일으키는 새로움. 전통적이고 대중적인 소설문법의 지반위에 구축된 이 새로움은 그만큼의 독특한 묘미와 흡인력을 발산한다.
또한, 김영하의 소설에서 주목되는 것은 소재의 참신함과 풍부성이다. 그리고 발상과 기법의 기발함이다. 김영하는 회화와 조각 음악에서부터 삼국지 게임을 거쳐 동서양의 각종신화와 전설까지 이야기의 재료로 활용하며, 신체기관의 의미를 작가 특유의 상상력으로 한껏 확장시키기도 한다.
특히 사실적인 세계에 판타지적 요소를 결합시키는 서사기법은 김영하 소설에서 자주 사용되는 중요한 특징이며, 이안에 매우 의미심장한 물음들이 내제되어 있는데,그는 현실과 허구, 실재와 환상의 경계에 관한 문제나 사이버공간의 철학적 윤리적 문제등을 환기시켜준다.
김영하는 데뷔이후 네권의 책을 출간했다.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호출” “엘리베이터에 낀 그남자는 어떻게 되었을까” “아랑은왜”
그주제적 측면을 볼 때 우선 눈에 띄는 것은 80년대에 대한 환멸과 90년대에 대한 비판적 태도이다.
그런가 하면 김영하 소설은 인간, 특히 현대 예술가들의 심리 저변에 자리하고 있는 나르시시즘고과 죽음의 문제도 집중적으로 천작해 나간다. 가령 단편“ 나는 아름답다”나 장편 “나는 나를 파괴할..”에서 작가는 현대 산업사회속에서 점차 고립되고 단자화되어 가는 개개인의 폐쇄적이고 고착된 심리가 어떻게 죽음에 대한 강박관념과 탐미적 집착에 빠지게 되는가를 극히 냉담한 어조와 치밀한 구성방식으로 보여준다.
뿐만 아니라 김영하는 가부장적 상징계 질서에 억압된 몸과 욕망, 여성성, 자연과 같은 영역들이 기발한 서사전략에 의해 생동감있게 부활되는 것을 보여주기도 하는데 “도마뱀” “거울에 대한 명상” “손” 이나 “당신의 나무” “피뢰침”은 작가의 관심이 단지 나르시시즘 , 죽음등의 세기말적 징후를 포착하는데만 머무르지 않고, 새로운 세기에 펼쳐질 우리 사회의 새로운 존재 방식을 탐구하는 지점까지 나아갈수 있는 가능성을 농토
글을 읽어내려 가면서 나는 이것이 \'이야기 그 자체에 대한 분석\'같다는 인상을 받았다. 처음부터 작가는 아랑 전설의 전말을 밝혀 내는 일보단 \'이야기가 어떻게 조작되는가\'에 초점을 둔 것 같다. 그는 끊임없이 이야기의 틈을 발
견하고 그 틈을 비집고 들어간다. 마치 소설 창작 강의라도 하는 듯이 그는 우리에게 이럴 땐 이렇게 풀어내는 것이라고, 여기선 이렇게 쓰면 된다고 가르쳐 주고 있다.
이야기는 사람이 지어내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지는 것이라는 김영하 특유의 소설관이 아마도 이 소설의 주제가 아니었나 생각된다.
작가의 말대로 이야기가 우리의 몸을 빌려 자신들의 유전자를 실어 나르고 있는 것이라면,
앞으로 세월이 지나 아랑전설을 새롭게 쓰고자 하는 누군가가 나타나도 그는 결코 이야기를 완성하지는 못할것이다. 김영하는 우리에게 이것을 알려주고 싶은 것이 아닐까?
이야기는 스스로 만들어지고 그저 그것을 실어나르는 징검다리의 역할을 하는 것이 이야기꾼, 즉, 소설가의 몫이기 때문이다.
정리하기
1995년 단편 “거울에 대한 명상”으로 데뷔하여 90년대 문학의 핵심주자로서 가장 광범위한 대중적 인기를 점유해온 신세대 작가 김영하, 하지만 그 또한 여전히 이념과 변혁에의 신념과 열망으로 불탔던 지난 80년대와 그시절의 자신을 생생히 기억한다. 어쩌면 그는 모든 투쟁과 결집의 근거가 명백했던 그때가 조금은 그리운것인지 모른다. 그러나 사실을 말하면, 그는 그 시절을 회고하는 이런저런 후일담 따위에는 관심이 없는쪽이다. 오히려 이제야말로 80년대인간의 저변에 풍기던 역겨운 냄새들을 까발릴 차례가 되었다고 믿고 있는 쪽이다. 그래서 그는 현실의 총체성, 역사적 전망등의 거대담론의 이면에 도사리고 있던 또 하나의 권력의 매커니즘을 자학하듯 천천히 곱씹는다.
그가 보기에는 필시 거기에도 기성사회 못지않은 음험함이 있었고, 그들이 애써 한손에 거머쥐었다고 자부하는 총체성과 전망이라는 것도 시효기간이 존재하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같은 진단은 역사 민족등의 80년대 준거틀이 헐거워진 틈새를 뚫고 여성, 육체, 환경, 욕망등의 새로운 문제들이 다양한 코드로 얽히며 활기를 띄게된 90년대 담론 상황의 한 단면을 드러내준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과거의 억압속에서 숨죽여야 했던 이 타자적인 영역들은 90년대 이후 우리사회의 일상으로 자리잡은 후기 산업사회적 특성들과 맞닥뜨려지면서 현 시대의 가장 의미심장한 담론들로 부상해왔다.
그러나 과거로부터 과감히 튕겨나와 달라진 현재에 가볍게 착지한 김영하는 뜻밖에도 현대로부터 무기력에 빠진 자페증 환자를 읽는다.
“객관적 거울”의 상실과 더불어 고립되어 가는 개개인의 나르시시즘, 날로 더해가는 섹스의 물화 현상,끝없이 자가증식하는 물질의 버전업 욕구 , 영상매체가 창출해낸 현란한 이미지들, 그리고 삐삐 증후군과 가상현실 중독증등 이러한 집단병리학적 세목들 속에서 김영하가 감지하는 것은 현대인의 심리 근처에 있는 죽음의 그림자다. 산업사회의 고독과 소외 그리고 끝없이 부추겨지는 물질적 욕망으로 얼룩진, 그리하여 차라리 죽음을 꿈꾸는 무기력한 현대적 나르시스들의 일상들..
현대에 대한 이런 암울한 인식위에서 김영하는 필연적으로 리얼리즘 미학과의 결별은 물론, 90년대 전반기의 문학적 경향과도 일정한 거리를 두고 출발한다. 첨단의 도시적 감수성과 새로운 문화의 전위를 몸소 체험한 그는 이들 문학의 섬세하고 따스한 감성과 신비주의 서정적 문체등의 미학조차도 시대착오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졌는지 모른다.
현대적 소재와 도시적 감수성 판타지 등의 대중적 양식을 특징으로하는 그의 문학은 차라리 첨단의 매체문화의 체험을 근가능로 창출된 백민석 송경아 배수아 등의 문학과 더 가깝다.
그러나 김영하는 이 신세대 작가들 가운데서도 비교적 온건한 편에 속한다.
이는 그의 소설이 근본적으로 전통적 정서를 전적으로 떠나고 있지않으며, 대체로 잘짜인 플롯과 속도감 있는 사건전개. 읽히기 쉬운 언어구사등의 대중적인 이야기 문법을 채택하고 있다는 점에서 알수있다.
하지만 김영하 소설의 매력은 뭐니뭐니 해도 새로움에 있다. 그것도 어딘가 아슬아슬한 느낌을 불러일으키는 새로움. 전통적이고 대중적인 소설문법의 지반위에 구축된 이 새로움은 그만큼의 독특한 묘미와 흡인력을 발산한다.
또한, 김영하의 소설에서 주목되는 것은 소재의 참신함과 풍부성이다. 그리고 발상과 기법의 기발함이다. 김영하는 회화와 조각 음악에서부터 삼국지 게임을 거쳐 동서양의 각종신화와 전설까지 이야기의 재료로 활용하며, 신체기관의 의미를 작가 특유의 상상력으로 한껏 확장시키기도 한다.
특히 사실적인 세계에 판타지적 요소를 결합시키는 서사기법은 김영하 소설에서 자주 사용되는 중요한 특징이며, 이안에 매우 의미심장한 물음들이 내제되어 있는데,그는 현실과 허구, 실재와 환상의 경계에 관한 문제나 사이버공간의 철학적 윤리적 문제등을 환기시켜준다.
김영하는 데뷔이후 네권의 책을 출간했다.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호출” “엘리베이터에 낀 그남자는 어떻게 되었을까” “아랑은왜”
그주제적 측면을 볼 때 우선 눈에 띄는 것은 80년대에 대한 환멸과 90년대에 대한 비판적 태도이다.
그런가 하면 김영하 소설은 인간, 특히 현대 예술가들의 심리 저변에 자리하고 있는 나르시시즘고과 죽음의 문제도 집중적으로 천작해 나간다. 가령 단편“ 나는 아름답다”나 장편 “나는 나를 파괴할..”에서 작가는 현대 산업사회속에서 점차 고립되고 단자화되어 가는 개개인의 폐쇄적이고 고착된 심리가 어떻게 죽음에 대한 강박관념과 탐미적 집착에 빠지게 되는가를 극히 냉담한 어조와 치밀한 구성방식으로 보여준다.
뿐만 아니라 김영하는 가부장적 상징계 질서에 억압된 몸과 욕망, 여성성, 자연과 같은 영역들이 기발한 서사전략에 의해 생동감있게 부활되는 것을 보여주기도 하는데 “도마뱀” “거울에 대한 명상” “손” 이나 “당신의 나무” “피뢰침”은 작가의 관심이 단지 나르시시즘 , 죽음등의 세기말적 징후를 포착하는데만 머무르지 않고, 새로운 세기에 펼쳐질 우리 사회의 새로운 존재 방식을 탐구하는 지점까지 나아갈수 있는 가능성을 농토
소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