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서 론
Ⅰ. 메시야 도래의 필연성
Ⅱ. 예수 실존의 역사적 논증
1. 야고보 단락에 언급된 예수(ant 20,200)
2.요세푸스의 예수 보도(ant 18,63-64): 소위 Testimonum Flavianum
3.TestFlav 원문 재고성 시도 방식들
4.TestFlav과 초기 기독교 저자들
5. TestFlav의 전후 문맥
6. TestFlav에 나타난 예수상(기적 수행자이신 지혜로운 자인 예수)
Ⅲ. 역사적 예수 사건의 영향
1. 유대인들이 예수를 죽인 이유와 과정
2. 십자가형은 유대인들이(세상) 지운 죄를 멸하기 위한 것이다.
Ⅰ. 메시야 도래의 필연성
Ⅱ. 예수 실존의 역사적 논증
1. 야고보 단락에 언급된 예수(ant 20,200)
2.요세푸스의 예수 보도(ant 18,63-64): 소위 Testimonum Flavianum
3.TestFlav 원문 재고성 시도 방식들
4.TestFlav과 초기 기독교 저자들
5. TestFlav의 전후 문맥
6. TestFlav에 나타난 예수상(기적 수행자이신 지혜로운 자인 예수)
Ⅲ. 역사적 예수 사건의 영향
1. 유대인들이 예수를 죽인 이유와 과정
2. 십자가형은 유대인들이(세상) 지운 죄를 멸하기 위한 것이다.
본문내용
금징수에서의 사형집행 권한만큼은 철저히 관리, 감도하였다. 이 같은 이유 때문에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사형에 처한다는 선고를 내렸으나 사형집행 권한이 없었기 때문에 당시 유대총독이었던 본디오 빌라도에게 예수님의 사형을 집행해줄 것을 요구했던 것이다. (막 15:1) 빌라도는 예수님을 조사했지만 그에게 아무런 사형에 해당하는 죄를 발견하지 못했다. 하지만, 빌라도는 또 다시 일어나는 유대인 소요를 진압시키기가 귀찮았던지 아니면 유대인들로부터 유대가 은30세겔을 받은 것처럼 뇌물을 받았던지, 결국 예수님을 십자가형에 처하라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
2. 십자가형은 유대인들이(세상) 지운 죄를 멸하기 위한 것이다.
예수님은 위와 같은 이유로 십자가형을 받게 된다. 그는 유대인들이 지운 모든 죄에 대한 대가로 십자가형을 받게 된 것이다. 하지만 유대인들이 지운 그 모든 죄는 결코 예수를 멸하지 못했다. 예수는 그들이 지운 죄가 결코 영혼을 멸할 수 없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그가 죽기 전에 말하던 것처럼 3일 만에 되살아난 것이다. 예수는 부활로 그들이 말하는 죄의 무효성을 증명하시고, 육체를 죽이는 세상을 두려워하지 말고, 영원한 것을 멸하시는 하나님을 두려워 할 것을 말하신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예수는 당시에 유대인들의 영의 자유를 얽어매고 있는 그 모든 죄를 패하신 것이다. 다음은 그것과 관련해서 1972년 감리교신학대 학장님이 말하는 예수님의 십자가형의 의미를 말한 것이다. 다음과 같은 이유로 예수님은 십자가형을 당하고 돌아가셔야만 했다는 것이다.
사람의 생명이 돈 두 푼에 팔리는 참새 한 마리보다 천하게 취급받는 사회에서 천하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인간 생명의 가치를 알려주기 위해서 예수는 나셔야만 했다.
안식일이 사람을 못살게 하는 타락된 제도화가 된 대해서 안식일의 참 주인이 누군가를 알려주기 위해서 예수는 나셔야만 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과 교법사들, 이들 기성 종교가들이 하나님을 독차지한 줄로 잘못 생각하고 갖은 횡포를 다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 예수는 나셔야만 했다.
갖가지 세금에 눌려서 허덕이는 사람들에게 가이사에게 보다 먼저 세금을 마쳐야 할 또 한분이 있음을 알려주기 위하여 예수는 나셔야만 했다.
종교는 허다한 율법과 계명의 준수가 아니라 피곤한 인생에게 참된 휴식을 주는 것임을 알려주기 위해서 예수는 나셔야만 했다.
항상 이웃 속에 파묻혀 살면서도 자기의 이웃이 누구인지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참 이웃이 누군가를 알려 주시기 위해서 예수는 나셔야만 했다.
참 종교는 경전과 신조와 의식에 있는 것이 아니고 사랑의 실천에 있다는 단순한 진리를 알려주시기 위해서 예수는 나셔야만 했다.
인간들이 찾고 있는 유토피아는 정치와 이상이 뒤범벅이 된 그런 나라가 아니고 하나님의 절대주권과 의지가 전적으로 지배하는 사회임을 알려주시기 위해서 예수는 나셔야만 했다.
같은 인간으로 태어났어도 어떤 부류의 인산은 개와 돼지처럼 취급받는 차별사회에 만인은 다 하나님의 아들들이므로 하나님 앞에서 절대로 동등한 인간임을 알려주시기 위해서 예수는 나셔야만 했다.
진리는 총 칼의 힘으로 수호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허심탄회한 어린애와 같은 마음으로만 소유할 수 있음을 알려주기 위해서 예수는 나셔야만 했다.
받는 것이 얻는 것이 아니고 주는 것이 곧 얻는 것임을 가르쳐 주기 위해서 예수는 나셔야만 했다.
인간 역사의 완성은 폭력이나 강제나 혁명으로써 이뤄지는 것이 아니고 조용하고 점진적인 설득과 평화적인 방법으로써만 이뤄질 수 있음을 가르쳐 주기 위해서 예수는 나셔야만 했다.
이 세상에서 어떤 무서운 폭력이나 신문이나 형벌로써도 인간의 마음속에 간직한 진리는 빼앗을 수 없음을 알려주시기 위해서 예수는 나셔야만 했다.
진리를 위해 죽는 것은 아주 죽는 것이 아니라 일시적으로는 죽는 것처럼 보이나 그러나 영원히 사는 길임을 보여주시기 위해서 예수는 나셔야만 했다.
진리의 길은 화려하고 즐거운 길이 아니라 고독하고 험준한 길임을 알려주기 위해서 예수는 나셔야만 했다.
인생으로서 성공하려면 여러 가지의 잡다한 목적을 통일해서 하나님의 목표를 가지고 전진해야 함을 가르쳐 주시기 위해서 예수는 나셔야만 했다.
이 세상의 아무런 힘이나 위협이나 수치나 모욕이나 절망을 가지고도 진리는 막을 수 없음을 가르쳐주시기 위해서 예수는 나셔야만 했다. (진리를 죽임은 곧, 진리를 영원히 해방하는 것임을 알려주기 위해서)
세계와 인류의 궁극적 목적은 대립이나 경쟁이나 정복보다는 화해와 일치와 평화실현에 있음을 알려주기 위해서 예수는 나셔야만 했다.
인생의 이해타산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자기의 전 생애를 불태우는 감격과 황홀의 순간 (어떤 진리의 대상을 위해서)을 위해서 산다는 것을 가르쳐주시기 위해서 예수는 나셔야만 했다.
모든 것을 운명이라고 체념하고 인생의 모든 의욕과 희망을 버리고 매일 매일 비굴한 삶을 살아가는 인간들에게 신앙의 세계에는 절망이란 있을 수 없는 것과 사람은 누구나가 자기만이 성취해야 할 공헌이 있음을 알려주기 위해서 예수는 나셔야만 했다.
이상 말한 것이 어찌 예수님께서 십자가형으로 증명하신 모든 회복을 말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어느 정도 그분이 하신 사역을 정확하게 집어 말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심으로 모든 세상의 죄를 멸하시고, 오직 사랑의 법만을 세우신 것으로 인해 지금의 우리들도 얼마나 많은 것들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는가? 그로인해 우리는 세상이 만들어놓은 모든 인위적이고 우리의 자유를 억압하는 모든 세상의 죄로부터 풀려날 수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의 그러한 사역이 우리를 이 땅에서 자유롭게 할 뿐만 아니라 우리의 영혼을 구원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예수님은 자기를 통하지 않고는 하나님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다고 말씀하셨다. 그분이 십자가에 돌아가시고 다시 부활하심으로 우리는 어떤 길이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인지 정확하게 분별할 수 있는 것이다. 세상의 거짓 진리로 빠지지 않고 그분께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그 길을 예수님 이외의 다른 존재로 알려주신 적이 없다고 말씀하셨다.
2. 십자가형은 유대인들이(세상) 지운 죄를 멸하기 위한 것이다.
예수님은 위와 같은 이유로 십자가형을 받게 된다. 그는 유대인들이 지운 모든 죄에 대한 대가로 십자가형을 받게 된 것이다. 하지만 유대인들이 지운 그 모든 죄는 결코 예수를 멸하지 못했다. 예수는 그들이 지운 죄가 결코 영혼을 멸할 수 없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그가 죽기 전에 말하던 것처럼 3일 만에 되살아난 것이다. 예수는 부활로 그들이 말하는 죄의 무효성을 증명하시고, 육체를 죽이는 세상을 두려워하지 말고, 영원한 것을 멸하시는 하나님을 두려워 할 것을 말하신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예수는 당시에 유대인들의 영의 자유를 얽어매고 있는 그 모든 죄를 패하신 것이다. 다음은 그것과 관련해서 1972년 감리교신학대 학장님이 말하는 예수님의 십자가형의 의미를 말한 것이다. 다음과 같은 이유로 예수님은 십자가형을 당하고 돌아가셔야만 했다는 것이다.
사람의 생명이 돈 두 푼에 팔리는 참새 한 마리보다 천하게 취급받는 사회에서 천하를 주고도 바꿀 수 없는 인간 생명의 가치를 알려주기 위해서 예수는 나셔야만 했다.
안식일이 사람을 못살게 하는 타락된 제도화가 된 대해서 안식일의 참 주인이 누군가를 알려주기 위해서 예수는 나셔야만 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과 교법사들, 이들 기성 종교가들이 하나님을 독차지한 줄로 잘못 생각하고 갖은 횡포를 다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 예수는 나셔야만 했다.
갖가지 세금에 눌려서 허덕이는 사람들에게 가이사에게 보다 먼저 세금을 마쳐야 할 또 한분이 있음을 알려주기 위하여 예수는 나셔야만 했다.
종교는 허다한 율법과 계명의 준수가 아니라 피곤한 인생에게 참된 휴식을 주는 것임을 알려주기 위해서 예수는 나셔야만 했다.
항상 이웃 속에 파묻혀 살면서도 자기의 이웃이 누구인지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참 이웃이 누군가를 알려 주시기 위해서 예수는 나셔야만 했다.
참 종교는 경전과 신조와 의식에 있는 것이 아니고 사랑의 실천에 있다는 단순한 진리를 알려주시기 위해서 예수는 나셔야만 했다.
인간들이 찾고 있는 유토피아는 정치와 이상이 뒤범벅이 된 그런 나라가 아니고 하나님의 절대주권과 의지가 전적으로 지배하는 사회임을 알려주시기 위해서 예수는 나셔야만 했다.
같은 인간으로 태어났어도 어떤 부류의 인산은 개와 돼지처럼 취급받는 차별사회에 만인은 다 하나님의 아들들이므로 하나님 앞에서 절대로 동등한 인간임을 알려주시기 위해서 예수는 나셔야만 했다.
진리는 총 칼의 힘으로 수호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허심탄회한 어린애와 같은 마음으로만 소유할 수 있음을 알려주기 위해서 예수는 나셔야만 했다.
받는 것이 얻는 것이 아니고 주는 것이 곧 얻는 것임을 가르쳐 주기 위해서 예수는 나셔야만 했다.
인간 역사의 완성은 폭력이나 강제나 혁명으로써 이뤄지는 것이 아니고 조용하고 점진적인 설득과 평화적인 방법으로써만 이뤄질 수 있음을 가르쳐 주기 위해서 예수는 나셔야만 했다.
이 세상에서 어떤 무서운 폭력이나 신문이나 형벌로써도 인간의 마음속에 간직한 진리는 빼앗을 수 없음을 알려주시기 위해서 예수는 나셔야만 했다.
진리를 위해 죽는 것은 아주 죽는 것이 아니라 일시적으로는 죽는 것처럼 보이나 그러나 영원히 사는 길임을 보여주시기 위해서 예수는 나셔야만 했다.
진리의 길은 화려하고 즐거운 길이 아니라 고독하고 험준한 길임을 알려주기 위해서 예수는 나셔야만 했다.
인생으로서 성공하려면 여러 가지의 잡다한 목적을 통일해서 하나님의 목표를 가지고 전진해야 함을 가르쳐 주시기 위해서 예수는 나셔야만 했다.
이 세상의 아무런 힘이나 위협이나 수치나 모욕이나 절망을 가지고도 진리는 막을 수 없음을 가르쳐주시기 위해서 예수는 나셔야만 했다. (진리를 죽임은 곧, 진리를 영원히 해방하는 것임을 알려주기 위해서)
세계와 인류의 궁극적 목적은 대립이나 경쟁이나 정복보다는 화해와 일치와 평화실현에 있음을 알려주기 위해서 예수는 나셔야만 했다.
인생의 이해타산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자기의 전 생애를 불태우는 감격과 황홀의 순간 (어떤 진리의 대상을 위해서)을 위해서 산다는 것을 가르쳐주시기 위해서 예수는 나셔야만 했다.
모든 것을 운명이라고 체념하고 인생의 모든 의욕과 희망을 버리고 매일 매일 비굴한 삶을 살아가는 인간들에게 신앙의 세계에는 절망이란 있을 수 없는 것과 사람은 누구나가 자기만이 성취해야 할 공헌이 있음을 알려주기 위해서 예수는 나셔야만 했다.
이상 말한 것이 어찌 예수님께서 십자가형으로 증명하신 모든 회복을 말할 수 있겠는가. 하지만 어느 정도 그분이 하신 사역을 정확하게 집어 말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심으로 모든 세상의 죄를 멸하시고, 오직 사랑의 법만을 세우신 것으로 인해 지금의 우리들도 얼마나 많은 것들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는가? 그로인해 우리는 세상이 만들어놓은 모든 인위적이고 우리의 자유를 억압하는 모든 세상의 죄로부터 풀려날 수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의 그러한 사역이 우리를 이 땅에서 자유롭게 할 뿐만 아니라 우리의 영혼을 구원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예수님은 자기를 통하지 않고는 하나님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다고 말씀하셨다. 그분이 십자가에 돌아가시고 다시 부활하심으로 우리는 어떤 길이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인지 정확하게 분별할 수 있는 것이다. 세상의 거짓 진리로 빠지지 않고 그분께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그 길을 예수님 이외의 다른 존재로 알려주신 적이 없다고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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