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서론 ----------------------------------- 3
Ⅱ. 본론 ----------------------------------- 3
1. 시대적 배경 -------------------------- 3
2. 전쟁가사 ---------------------------- 4
3. 규방가사 ---------------------------- 5
4. 서민가사 ---------------------------- 9
5. 잡가 ------------------------------- 14
Ⅲ. 결론 ---------------------------------- 15
Ⅳ. 참고문헌 ------------------------------- 16
Ⅱ. 본론 ----------------------------------- 3
1. 시대적 배경 -------------------------- 3
2. 전쟁가사 ---------------------------- 4
3. 규방가사 ---------------------------- 5
4. 서민가사 ---------------------------- 9
5. 잡가 ------------------------------- 14
Ⅲ. 결론 ---------------------------------- 15
Ⅳ. 참고문헌 ------------------------------- 16
본문내용
중략)..
이왕죽자 하였으면 만나지나 않았으면
이왕부부 되었거든 죽지말고 살었으면 ...(중략).
<과부가 규신, 과부가, p.365
>일부
조선시대는 부부의 절의와 정절을 중시하고 재가를 금지하였다. 또한 순수한 혈통으로 가통을 잇기 위해 부녀자들의 순결과 정절은 중시되었다. 개가를 하여 자손을 낳았다 하더라도 『경국대전』에서 ‘개가한 자의 자손은 동서반의 정직(正職)에 서용(敍用)하지 않는다.’는 법 때문에 제약을 받았다. 이순형. 『한국의 명문 종가』. (서울대학교출판부. 2000)
<과부가>청춘에 과부가 되어 독수공방의 외로움을 슬퍼하고 헛된 생각인 줄 알면서도 죽은 남편이 돌아오기를 염원하는 가사이다.
4. 서민가사
4.1. 서민가사의 개념
서민가사의 개념은 ‘서민이 직접 지었거나 서민의 생활 모습과 서민의식을 잘 드러낸 가사’라고 규정할 수 있다. 따라서 서민가사는 서민들이 직접 지은 가사도 있고 명분상 지배계층인 양반 또는 지방 하층사족층이 서민의 생활 모습과 서민의식을 잘 드러내어 읊은 가사도 있다. 그리고 만약 지배 계층인 양반사대부와 피지배 계층인 서민계층의 중간에 중인 계층을 설정한다면 중인들이 서민의 생활 모습과 서민의식을 잘 반영해 읊은 서민가사도 있을 수 있다. 이는 마치 규방가사의 경우, 규중의 여인들만이 지은 것이 아니라 남성들이 지은 것도 있으며 작자가 누구이든 규중 여인들의 삶의 모습과 의식의 세계를 읊은 가사로서 규중 여인들이 주로 향유한 가사를 뜻하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김문기, 『서민가사의 형성과 전개』, (국어교육학회,2003), p.19
흔히 평민가사라고도 불리우나, ‘서민’은 지배 계층인 양반사대부에 대하여 피지배 계층인 중인 이하 상민과 천민을 포괄적으로 지칭하는 말이므로 서민가사라는 용어가 더 적절하다고 할 수 있다.
4.2. 서민가사의 형성 배경
조선 후기에 접어들며 양대 전란을 그치는 동안 농촌경제는 피폐해졌으며 지배층의 수탈로 인해 민중 봉기가 이어졌다. 상품화폐경제의 발달로 중인층을 비롯한 서민들이 재산을 축적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됨으로써 신분의 변동이 일어났으며, 실사구시를 부르짖는 실학이 새로운 사상으로 등장하게 되었다. 이와 같은 서민의식의 성장과 신분 변동 속에서 서민의 문학의식이 성장함과 더불어 전대의 문학과는 다른 성격을 띠게 된다. 서민가사는 대부분이 작자미상이기 때문에 그 대두 시기가 분명하지 않지만, 내용이나 형식으로 보아 17세기 말엽에 나타나게 되었다고 본다. 류연석, 『가사문학의 연구』, (국학자료원,2003), p.161
그 근거로 『청구영언』 말미와 『고금가곡』에 서민가사가 실려 있고 17세기 초중엽에는 서민가사의 과도기적 성격을 지닌 작품이 많이 창작되어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4.3. 서민가사의 내용 및 작품해설
조선전기에는 유교 이념에 입각한 양반사대부 가사가 창작, 향유되었지만 17세기 이후, 봉건적 지배체제가 붕괴되면서 기존 가치관을 거부하고 인간의 본능을 추구하고자 하는 가사들이 나타나게 되었다. 현실적 사고가 대두하고 평민의 문학적 역할이 커진 시대사조와 결부되어 전 시대와는 다른 성격을 지녔다. 실학사상과 함께 등장한 산문 정신의 영향으로, 서정적인데서 서사적인 것으로 내용이 전환되었다. <노처녀가1>, <우부가>, <용부가>, <거사가>, <송녀승가>, <녀승답사>, <재송녀승가>, <녀승재답사>등의 서민가사가 이에 해당한다. 김문기, 위의 논문, p.35
또한 현실적 모순의 폭로와 비판, 기존 관념에의 도전과 인간 본성의 추구, 연정 및 신세한탄, 인생무상과 취락, 서민적인 꿈과 소망을 읊고 있다. 이와 같이 서민가사의 내용이 양반가사와 대조적인 것은 현실을 바라보는 관점과 의식의 차이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다. 김문기,『서민가사연구』, (서울출판사,1983), p.67
① 현실적 모순의 폭로와 비판
황구츙정 가련듕의 백골징포 무삼일고
일신양역 삼사역의 부O생남 중생여라
관문앞해 저송은 네쥬건제 몃해와도
주근영 다시내야 백골징포 말가
<거창가> 일부
관료들의 가렴주구는 족징, 인징뿐 아니라 백골징포, 백지징세, 각종 가포와 남살하는 데까지 이르렀고 서리의 갖은 토색질과 이권개입으로 서민들은 질곡에서 헤어나지 못했으며 원한은 뼈에 사무치게 되었다. 이러한 사정을 <거창가>에서는 아주 구체적이고 적나라하게 폭로하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양반 관료들의 횡포와 수탈상 및 사회의 부패상을 과감히 폭로하고 통렬히 비판하기는 했으나 문제의 근원을 파헤치거나 해결의 구체적인 방법을 찾지 못하는 한계를 노정시켰다. 김문기, 위의 책 p.77
② 기존 관념에의 도전과 인간 본성의 추구
양란을 겪으며, 서민들은 양반들의 허위와 공허한 유교적 이념이 결코 재난을 극복해 주거나 배고픔을 해결해 주지 못함을 확인할 수 있었다. 따라서 서민들은 차츰 기존 관념에 도전하게 되었고 새로운 가치관을 형성하게 되었다. 인간 본성의 추구와 실질 가치의 구현을 지향하게 된 것이다.
여긔저긔 무릅맛침 홈질노 세월이라
남의말 말전쥬와 들며는 음식공논
졔조상은 부지허고 불공허기 위업헐제
무당쇼경 푸닥거리 의복가지 다쥬고
남편모양 볼시면 삽살 뒷다리요
식거동 볼시면 털버슨 솔미라
<용부가> 일부
이 작품은 주인공의 이야기를 통해 그 당시 여성들의 비행을 열거하고 있어 서민층의 비판 의식을 엿볼 수 있다. 그러나 이 작품 속에는 이 시대 여인들의 생활과 감정을 과장하여 현실적 비난을 피하려는 의도도 숨어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한 용렬한 여자의 갖가지 부정적인 모습을 비판적으로 제시함으로써 여성의 바람직한 행실은 어떠해야 하는가를 깨우치고자 한 가사이다. 전체적으로 과장되어 있다는 느낌을 주지만, 그러면서도 생생한 실감을 만들어내는 사실적 묘사가 두드러진다. 그 같은 사실적 산문 정신이 가사의 산문화를 이끈 기본 동력이 되었던 것이다. 다른 한편 이 작품을 지배하는 미의식은 희극미(골계미)라 할 수 있는데, 그 이전 가사(주로 양반 가사)의 미의식과는 전혀 다른 서민적 미의식의 창출이라는 점에서 그 의미는 대단히 크다.
쥬체로 못먹든밥 녁보아 밥먹는다
양복기 어가고 쓴바귀를 단듯
이왕죽자 하였으면 만나지나 않았으면
이왕부부 되었거든 죽지말고 살었으면 ...(중략).
<과부가 규신, 과부가, p.365
>일부
조선시대는 부부의 절의와 정절을 중시하고 재가를 금지하였다. 또한 순수한 혈통으로 가통을 잇기 위해 부녀자들의 순결과 정절은 중시되었다. 개가를 하여 자손을 낳았다 하더라도 『경국대전』에서 ‘개가한 자의 자손은 동서반의 정직(正職)에 서용(敍用)하지 않는다.’는 법 때문에 제약을 받았다. 이순형. 『한국의 명문 종가』. (서울대학교출판부. 2000)
<과부가>청춘에 과부가 되어 독수공방의 외로움을 슬퍼하고 헛된 생각인 줄 알면서도 죽은 남편이 돌아오기를 염원하는 가사이다.
4. 서민가사
4.1. 서민가사의 개념
서민가사의 개념은 ‘서민이 직접 지었거나 서민의 생활 모습과 서민의식을 잘 드러낸 가사’라고 규정할 수 있다. 따라서 서민가사는 서민들이 직접 지은 가사도 있고 명분상 지배계층인 양반 또는 지방 하층사족층이 서민의 생활 모습과 서민의식을 잘 드러내어 읊은 가사도 있다. 그리고 만약 지배 계층인 양반사대부와 피지배 계층인 서민계층의 중간에 중인 계층을 설정한다면 중인들이 서민의 생활 모습과 서민의식을 잘 반영해 읊은 서민가사도 있을 수 있다. 이는 마치 규방가사의 경우, 규중의 여인들만이 지은 것이 아니라 남성들이 지은 것도 있으며 작자가 누구이든 규중 여인들의 삶의 모습과 의식의 세계를 읊은 가사로서 규중 여인들이 주로 향유한 가사를 뜻하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김문기, 『서민가사의 형성과 전개』, (국어교육학회,2003), p.19
흔히 평민가사라고도 불리우나, ‘서민’은 지배 계층인 양반사대부에 대하여 피지배 계층인 중인 이하 상민과 천민을 포괄적으로 지칭하는 말이므로 서민가사라는 용어가 더 적절하다고 할 수 있다.
4.2. 서민가사의 형성 배경
조선 후기에 접어들며 양대 전란을 그치는 동안 농촌경제는 피폐해졌으며 지배층의 수탈로 인해 민중 봉기가 이어졌다. 상품화폐경제의 발달로 중인층을 비롯한 서민들이 재산을 축적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됨으로써 신분의 변동이 일어났으며, 실사구시를 부르짖는 실학이 새로운 사상으로 등장하게 되었다. 이와 같은 서민의식의 성장과 신분 변동 속에서 서민의 문학의식이 성장함과 더불어 전대의 문학과는 다른 성격을 띠게 된다. 서민가사는 대부분이 작자미상이기 때문에 그 대두 시기가 분명하지 않지만, 내용이나 형식으로 보아 17세기 말엽에 나타나게 되었다고 본다. 류연석, 『가사문학의 연구』, (국학자료원,2003), p.161
그 근거로 『청구영언』 말미와 『고금가곡』에 서민가사가 실려 있고 17세기 초중엽에는 서민가사의 과도기적 성격을 지닌 작품이 많이 창작되어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4.3. 서민가사의 내용 및 작품해설
조선전기에는 유교 이념에 입각한 양반사대부 가사가 창작, 향유되었지만 17세기 이후, 봉건적 지배체제가 붕괴되면서 기존 가치관을 거부하고 인간의 본능을 추구하고자 하는 가사들이 나타나게 되었다. 현실적 사고가 대두하고 평민의 문학적 역할이 커진 시대사조와 결부되어 전 시대와는 다른 성격을 지녔다. 실학사상과 함께 등장한 산문 정신의 영향으로, 서정적인데서 서사적인 것으로 내용이 전환되었다. <노처녀가1>, <우부가>, <용부가>, <거사가>, <송녀승가>, <녀승답사>, <재송녀승가>, <녀승재답사>등의 서민가사가 이에 해당한다. 김문기, 위의 논문, p.35
또한 현실적 모순의 폭로와 비판, 기존 관념에의 도전과 인간 본성의 추구, 연정 및 신세한탄, 인생무상과 취락, 서민적인 꿈과 소망을 읊고 있다. 이와 같이 서민가사의 내용이 양반가사와 대조적인 것은 현실을 바라보는 관점과 의식의 차이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다. 김문기,『서민가사연구』, (서울출판사,1983), p.67
① 현실적 모순의 폭로와 비판
황구츙정 가련듕의 백골징포 무삼일고
일신양역 삼사역의 부O생남 중생여라
관문앞해 저송은 네쥬건제 몃해와도
주근영 다시내야 백골징포 말가
<거창가> 일부
관료들의 가렴주구는 족징, 인징뿐 아니라 백골징포, 백지징세, 각종 가포와 남살하는 데까지 이르렀고 서리의 갖은 토색질과 이권개입으로 서민들은 질곡에서 헤어나지 못했으며 원한은 뼈에 사무치게 되었다. 이러한 사정을 <거창가>에서는 아주 구체적이고 적나라하게 폭로하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양반 관료들의 횡포와 수탈상 및 사회의 부패상을 과감히 폭로하고 통렬히 비판하기는 했으나 문제의 근원을 파헤치거나 해결의 구체적인 방법을 찾지 못하는 한계를 노정시켰다. 김문기, 위의 책 p.77
② 기존 관념에의 도전과 인간 본성의 추구
양란을 겪으며, 서민들은 양반들의 허위와 공허한 유교적 이념이 결코 재난을 극복해 주거나 배고픔을 해결해 주지 못함을 확인할 수 있었다. 따라서 서민들은 차츰 기존 관념에 도전하게 되었고 새로운 가치관을 형성하게 되었다. 인간 본성의 추구와 실질 가치의 구현을 지향하게 된 것이다.
여긔저긔 무릅맛침 홈질노 세월이라
남의말 말전쥬와 들며는 음식공논
졔조상은 부지허고 불공허기 위업헐제
무당쇼경 푸닥거리 의복가지 다쥬고
남편모양 볼시면 삽살 뒷다리요
식거동 볼시면 털버슨 솔미라
<용부가> 일부
이 작품은 주인공의 이야기를 통해 그 당시 여성들의 비행을 열거하고 있어 서민층의 비판 의식을 엿볼 수 있다. 그러나 이 작품 속에는 이 시대 여인들의 생활과 감정을 과장하여 현실적 비난을 피하려는 의도도 숨어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한 용렬한 여자의 갖가지 부정적인 모습을 비판적으로 제시함으로써 여성의 바람직한 행실은 어떠해야 하는가를 깨우치고자 한 가사이다. 전체적으로 과장되어 있다는 느낌을 주지만, 그러면서도 생생한 실감을 만들어내는 사실적 묘사가 두드러진다. 그 같은 사실적 산문 정신이 가사의 산문화를 이끈 기본 동력이 되었던 것이다. 다른 한편 이 작품을 지배하는 미의식은 희극미(골계미)라 할 수 있는데, 그 이전 가사(주로 양반 가사)의 미의식과는 전혀 다른 서민적 미의식의 창출이라는 점에서 그 의미는 대단히 크다.
쥬체로 못먹든밥 녁보아 밥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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