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서론
1.문제제기와 본 논문의 중요성
2.연구의 범위와 방법
Ⅱ.사복음서의 선교신학
1.사복음서의 주제
2.하나님나라의 신학과 선교
A. 나라 (Basileia)
B. 하나님 나라와 하늘 나라(천국)
1.하나님나라의 현재성
B. 하나님 나라의 미래성
Ⅲ.사복음서의 선교사상이해
1.복음서의 기록과 중요성
2) 전도와 선교와의 관계
A.성경적 기초
1.역사적 사실과 신앙
2.구약과의 관계
3.선교와 교회
Ⅲ.사복음서의 이방선교
1.요한복음
2.마가복음
1)마가복음서의 이적기사
3.마태복음의 선교사상
4.누가복음
Ⅳ.사복음서에 나타난 하나님 나라와 선교사상
1) 하나님 나라 와 비유를 통한 선교이해
(1) 씨 뿌리는 비유 ( 마 13:11, 막 4:11, 눅 8:10 )
(2)겨자씨 비유
(3)밀과 가라지 비유.( 마 13:24 )
(4)그물비유. ( 마 13:47 )
(5)감추인 보화와 귀한 진주의 비유.( 마 13:44, 45 )
(6)포도원 농부의 비유 ( 마 20:1 )
(6)포도원 농부의 비유 ( 마 20:1 )
(1)예수의 선포 ( 마 4:1아7, 막 1:15, 눅 4:43 ), 세례요한의
2.산상수훈과하나님 나라 .
3.어린 아이와하나님 나라 .
4.세례요한과하나님 나라 . ( 마 11:11, 눅 7:28 )
5.바리새인의 물음과하나님 나라 . ( 눅 17:20 )
6.세상의 일과하나님 나라 . ( 눅 9:60 - 62 )
7.유월절과하나님 나라 . ( 막 14:23, 눅 22:16,18 )
Ⅴ. 결 론
참 고 문 헌
1.문제제기와 본 논문의 중요성
2.연구의 범위와 방법
Ⅱ.사복음서의 선교신학
1.사복음서의 주제
2.하나님나라의 신학과 선교
A. 나라 (Basileia)
B. 하나님 나라와 하늘 나라(천국)
1.하나님나라의 현재성
B. 하나님 나라의 미래성
Ⅲ.사복음서의 선교사상이해
1.복음서의 기록과 중요성
2) 전도와 선교와의 관계
A.성경적 기초
1.역사적 사실과 신앙
2.구약과의 관계
3.선교와 교회
Ⅲ.사복음서의 이방선교
1.요한복음
2.마가복음
1)마가복음서의 이적기사
3.마태복음의 선교사상
4.누가복음
Ⅳ.사복음서에 나타난 하나님 나라와 선교사상
1) 하나님 나라 와 비유를 통한 선교이해
(1) 씨 뿌리는 비유 ( 마 13:11, 막 4:11, 눅 8:10 )
(2)겨자씨 비유
(3)밀과 가라지 비유.( 마 13:24 )
(4)그물비유. ( 마 13:47 )
(5)감추인 보화와 귀한 진주의 비유.( 마 13:44, 45 )
(6)포도원 농부의 비유 ( 마 20:1 )
(6)포도원 농부의 비유 ( 마 20:1 )
(1)예수의 선포 ( 마 4:1아7, 막 1:15, 눅 4:43 ), 세례요한의
2.산상수훈과하나님 나라 .
3.어린 아이와하나님 나라 .
4.세례요한과하나님 나라 . ( 마 11:11, 눅 7:28 )
5.바리새인의 물음과하나님 나라 . ( 눅 17:20 )
6.세상의 일과하나님 나라 . ( 눅 9:60 - 62 )
7.유월절과하나님 나라 . ( 막 14:23, 눅 22:16,18 )
Ⅴ. 결 론
참 고 문 헌
본문내용
들어가지 아니하고 배에 들어가 뒤로 나감이니라”하는 예수의 가르침과 “모든 식물을 깨끗하다 하셨느니라”하는 마가 자신의 언급을 구별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복음서 기자들이 그들의 복음서 보도에 있어서 그들이 살고 있던 초대교회의 “삶의 정황”을 반영하고 있다는 비평학자들의 주장도 조심스럽게 헤아려야 한다. 그들의 생각대로 만약 교회나 복음서 기자들이 이 말씀들을 예수의 입에 담아 예수가 말씀하신 것처럼 했다고 한다면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가르침난 남고 나사렛 예수의 가르침은 빛을 잃고 마는 것이다.그들에 의하자면 이것은 결국 교회의 가르침일 뿐인 것이다.비평학자들의 논의점은 “교회”(εκκλησια)라는 단어에 집중되어 나타난다. 마태복음 16장 18절과 17절에 나타나 있는 교회에 관한 말씀들은 실제로 예수의 가르침이 아니라 교회의 가르침을 반영하고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그들은 부활 이전에는 교회가 존재하지 않았으므로 예수가 “교회”라는 단어를 사용할 수 없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교회라는 단어는 예수가 이 땅에 오시기 200년전부터 보편화되어 있는 것이었다.구약의 70인역에서 100번정도 “회당”의 동의어로서도 상호 교환적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이렇게 볼 때 교회가 복음을 형성시켰다는 비평학자들의 주장은 지나친 추론이다. “삶의 정황”이란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그것이 설명하는 바는 그 이야기의 조작이 아니라 기록이다. 초대교회의 어떤 “삶의 정황”도 예수 생애의 “삶의 정황”을 배제하지 않는다. 초대교회의 “삶의 정황”은 예수 생애에 일어난 사건과 그의 말씀들을 생각나게 하는 것으로서 의미가 있을 뿐이다. 선교의 열정이 달아 올랐던 초대교회의 “삶의 정황”이 복음을 형성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삶의 정황”이 주님의 선교적 사역을 생각나게 하여 복음서에 기록하게 하였다고 말해야 옳을 것이다. 예수의 생애야말로 오직 참도니 선교의 기초가 된다. 그러므로 복음이 교회를 있게 했고 또 선교가 일어나도록 했다라고 말할 수 있다.
Ⅲ.사복음서의 이방선교
1.요한복음
우리가 아직 생각해보지 않은 것 가운데는 우리가 복음으로 알고 있는 네 번째 복음서가 있다. 이 복음서에서는 우리가 마태복음이나 마가복음 그리고 누가복음에서 볼 수 있는 것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예수님을 묘사하고 있다. 요한복음은 예수님을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과 그의 경험속에서 그가 발견한 것을 남에게 이해시키기 위한 노력에 자신을 전폭적으로 바쳤던 사람이 기록한 일생에 대한 명상록과도 같이 쓰였다고 막스 워렌은 이야기 한다. 이것을 기록한 사람은 분명히 제자들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 제자는 ‘함께 산다는 것’의 의미와 예수님과 함께 거한다는 것의 의미, 그리고 그의 생각을 따라서 예수님의 생각을 한다는 것, 또 끝임없는 사유로부터 다른 복음서의 저자들에 의해서 전수되어져 내려왔을 뿐만 아니라실로 자기 자신도 그것에 의하여 그리스도 교회가 갖는 체험에 대하여 알게 되었던바 예수님의 여러 가지 말씀들의 진정한 내면적인 의미가 무엇인지를 자신의 생애를 통하여 입증했었던 사람임에 틀림없다고 할 것이다. 사도 요한은 선교의 목적이 불신자들에게 믿음을 주기 위한 것이라고 말한다. 요한복음이 쓰여진 목적이 요한복음의 성격을 많이 알게 된다. 요한복음은 쓰여진 목적을 밝히는 구절이 20 : 30-31절에 나온다. 31절에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하고 말하므로 목적이 상당히 분명해진다. 에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아는 믿음이 모든 사람에게 필요하다. 특별히 요한복음은 전체적으로 헬라적인 색채가 많이 나타나 있다. 헬라인의 문화적 표현을 많이 사용한 것이다. 그것은 곧 헬라 문화권에 있는 사람들에게 예수를 그리스도(Christ)로 알고 구원을 받으라고 선언하기 위해서 이다. 요한의 선교사상의 요점은 다음과 같이 정리될 수 있을 것이다.
첫째로 요한에게 있어서 선교의 ㅈㅇ심 메시지는 그리스도가 육체를 입고 오셨음을 고백하는 신앙을 갖도록 하는 것이다. (참조;요한일서 4:2-3). 이것은 헬라인의 이원적인 사상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것이다.저들에게 있어서 말씀(Logos)이 사람의 몸으로 임하셨다는 것이 실로 혁명적인 선언과 같다. 곧 불가능을 현실화한 것이라고 할 수있을 것이다. 하나님의 성육(Incarnation)은 불가능을 가능케 하시는 사건이다. 실제적으로 그리스도의 성육은 복음의 핵심이며 선교 메시지의 주제이다. 둘째로 요한은 선교가 다른 다른 양들에게도 목자를 소개하는 것이라고 말한다(10:16). 불신자들은 아직 양의 우리안에 들어오지 않은 양들이지만 저들에게도 참목자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우리밖에 있는 양들은 곧 이방인을 가리킨다. 그리스도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모든 사람들에게 목자가 되신다고 선언하고 있는 것이다.셋째로 요한은 선교 행위가 그리스도의 복종을 배우고 실천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예수님처럼 하나님께 복종하는 것(5:19-20)이 선교이다. 또한 선교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보내신 것처럼 그리스도의 보냄을 받는 것이다(20:21). 선교라는 말 자체가 바로 “보낸다”라는 말에서 나온 것이다. 따라서 선교는 그리스도의 보내심에 순종하는 것이다.
넷째, 요한복음에는 보편성(Universalism)이 있다. 그래서 예수께서 세상의 모든 사람을 비추는 빛으로 오신 것이다(요 1 : 9). 예수는 세상죄를 지고 가는 어린 양이다(요 1: 29). 예수께서 자기가 십자가에 못박히면 모든 사람을 자기에게로 이끌게 될 것이며(요 12 : 32), 아주 역설적으로 예수가 이방세계에 가서 헬라인들을 가르칠 모양이라고 말한다(요 7 : 35). 예수의 공생애의 사역이 헬라인들의 예수를 보러 옴으로 절정에 이른다(요 12 : 20). 또 사마리아인들이 예수를 세상의 구주라고 선언한다( 요 4 :42). 마지막으로 빌라도는 예수를 이스라엘의 유대인의 왕이라고 팻말을 쓰는데 그것을 만방의 언어로 쓴다(요 19 : 19). 이런 것을 볼 때 헬라인들을 전도하기 위해 요한복음을
그러므로 복음서 기자들이 그들의 복음서 보도에 있어서 그들이 살고 있던 초대교회의 “삶의 정황”을 반영하고 있다는 비평학자들의 주장도 조심스럽게 헤아려야 한다. 그들의 생각대로 만약 교회나 복음서 기자들이 이 말씀들을 예수의 입에 담아 예수가 말씀하신 것처럼 했다고 한다면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가르침난 남고 나사렛 예수의 가르침은 빛을 잃고 마는 것이다.그들에 의하자면 이것은 결국 교회의 가르침일 뿐인 것이다.비평학자들의 논의점은 “교회”(εκκλησια)라는 단어에 집중되어 나타난다. 마태복음 16장 18절과 17절에 나타나 있는 교회에 관한 말씀들은 실제로 예수의 가르침이 아니라 교회의 가르침을 반영하고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그들은 부활 이전에는 교회가 존재하지 않았으므로 예수가 “교회”라는 단어를 사용할 수 없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교회라는 단어는 예수가 이 땅에 오시기 200년전부터 보편화되어 있는 것이었다.구약의 70인역에서 100번정도 “회당”의 동의어로서도 상호 교환적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이렇게 볼 때 교회가 복음을 형성시켰다는 비평학자들의 주장은 지나친 추론이다. “삶의 정황”이란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그것이 설명하는 바는 그 이야기의 조작이 아니라 기록이다. 초대교회의 어떤 “삶의 정황”도 예수 생애의 “삶의 정황”을 배제하지 않는다. 초대교회의 “삶의 정황”은 예수 생애에 일어난 사건과 그의 말씀들을 생각나게 하는 것으로서 의미가 있을 뿐이다. 선교의 열정이 달아 올랐던 초대교회의 “삶의 정황”이 복음을 형성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 “삶의 정황”이 주님의 선교적 사역을 생각나게 하여 복음서에 기록하게 하였다고 말해야 옳을 것이다. 예수의 생애야말로 오직 참도니 선교의 기초가 된다. 그러므로 복음이 교회를 있게 했고 또 선교가 일어나도록 했다라고 말할 수 있다.
Ⅲ.사복음서의 이방선교
1.요한복음
우리가 아직 생각해보지 않은 것 가운데는 우리가 복음으로 알고 있는 네 번째 복음서가 있다. 이 복음서에서는 우리가 마태복음이나 마가복음 그리고 누가복음에서 볼 수 있는 것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예수님을 묘사하고 있다. 요한복음은 예수님을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과 그의 경험속에서 그가 발견한 것을 남에게 이해시키기 위한 노력에 자신을 전폭적으로 바쳤던 사람이 기록한 일생에 대한 명상록과도 같이 쓰였다고 막스 워렌은 이야기 한다. 이것을 기록한 사람은 분명히 제자들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 제자는 ‘함께 산다는 것’의 의미와 예수님과 함께 거한다는 것의 의미, 그리고 그의 생각을 따라서 예수님의 생각을 한다는 것, 또 끝임없는 사유로부터 다른 복음서의 저자들에 의해서 전수되어져 내려왔을 뿐만 아니라실로 자기 자신도 그것에 의하여 그리스도 교회가 갖는 체험에 대하여 알게 되었던바 예수님의 여러 가지 말씀들의 진정한 내면적인 의미가 무엇인지를 자신의 생애를 통하여 입증했었던 사람임에 틀림없다고 할 것이다. 사도 요한은 선교의 목적이 불신자들에게 믿음을 주기 위한 것이라고 말한다. 요한복음이 쓰여진 목적이 요한복음의 성격을 많이 알게 된다. 요한복음은 쓰여진 목적을 밝히는 구절이 20 : 30-31절에 나온다. 31절에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하고 말하므로 목적이 상당히 분명해진다. 에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아는 믿음이 모든 사람에게 필요하다. 특별히 요한복음은 전체적으로 헬라적인 색채가 많이 나타나 있다. 헬라인의 문화적 표현을 많이 사용한 것이다. 그것은 곧 헬라 문화권에 있는 사람들에게 예수를 그리스도(Christ)로 알고 구원을 받으라고 선언하기 위해서 이다. 요한의 선교사상의 요점은 다음과 같이 정리될 수 있을 것이다.
첫째로 요한에게 있어서 선교의 ㅈㅇ심 메시지는 그리스도가 육체를 입고 오셨음을 고백하는 신앙을 갖도록 하는 것이다. (참조;요한일서 4:2-3). 이것은 헬라인의 이원적인 사상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것이다.저들에게 있어서 말씀(Logos)이 사람의 몸으로 임하셨다는 것이 실로 혁명적인 선언과 같다. 곧 불가능을 현실화한 것이라고 할 수있을 것이다. 하나님의 성육(Incarnation)은 불가능을 가능케 하시는 사건이다. 실제적으로 그리스도의 성육은 복음의 핵심이며 선교 메시지의 주제이다. 둘째로 요한은 선교가 다른 다른 양들에게도 목자를 소개하는 것이라고 말한다(10:16). 불신자들은 아직 양의 우리안에 들어오지 않은 양들이지만 저들에게도 참목자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우리밖에 있는 양들은 곧 이방인을 가리킨다. 그리스도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모든 사람들에게 목자가 되신다고 선언하고 있는 것이다.셋째로 요한은 선교 행위가 그리스도의 복종을 배우고 실천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예수님처럼 하나님께 복종하는 것(5:19-20)이 선교이다. 또한 선교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보내신 것처럼 그리스도의 보냄을 받는 것이다(20:21). 선교라는 말 자체가 바로 “보낸다”라는 말에서 나온 것이다. 따라서 선교는 그리스도의 보내심에 순종하는 것이다.
넷째, 요한복음에는 보편성(Universalism)이 있다. 그래서 예수께서 세상의 모든 사람을 비추는 빛으로 오신 것이다(요 1 : 9). 예수는 세상죄를 지고 가는 어린 양이다(요 1: 29). 예수께서 자기가 십자가에 못박히면 모든 사람을 자기에게로 이끌게 될 것이며(요 12 : 32), 아주 역설적으로 예수가 이방세계에 가서 헬라인들을 가르칠 모양이라고 말한다(요 7 : 35). 예수의 공생애의 사역이 헬라인들의 예수를 보러 옴으로 절정에 이른다(요 12 : 20). 또 사마리아인들이 예수를 세상의 구주라고 선언한다( 요 4 :42). 마지막으로 빌라도는 예수를 이스라엘의 유대인의 왕이라고 팻말을 쓰는데 그것을 만방의 언어로 쓴다(요 19 : 19). 이런 것을 볼 때 헬라인들을 전도하기 위해 요한복음을
추천자료
마태,마가,누가,요한 중요장 모음.hwp
누가의 성령론과 요한의 성령론 비교
성경 요한복음 독후감
성서(요한복음)를 읽고
'요한계시록은 어떤 책인가'에 대한 서평
『요한의 표적신학』을 읽고서
[서평] ‘요한복음 맥 잡기’ 를 읽고 _ 신인철 저
예수(예수그리스도)의 12제자 시몬베드로, 12제자 가롯유다, 예수(예수그리스도)의 12제자 요...
바울과 요한의 신비주의와 이단문제 _ 신비주의의 개념, 신비적인 경험의 한 형태(그리스도 ...
[성경말씀]설교말씀본문-요한계시록 6장 9-17절_ 순교자의 신앙
[성경말씀]설교말씀본문-요한복음 4장 14-19절_ 성령님을 찾고 성령의 충만을 구하고 성령으...
[서평] 김세윤의 요한복음 강해
06 요한계시록 개론
[독후감] 요한계시록 어떻게 읽을 것인가
소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