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들어가기
1. 시조의 명칭
2. 시조의 기원
3. 시조의 발생시기
4. 시조의 형식상 분류
5. 구성요소로서의 문형
6. 율격
7. 시조의 전개과정
Ⅲ.나가기
1. 시조의 명칭
2. 시조의 기원
3. 시조의 발생시기
4. 시조의 형식상 분류
5. 구성요소로서의 문형
6. 율격
7. 시조의 전개과정
Ⅲ.나가기
본문내용
것이다.
3) 사설시조(장시조)의 형성
사설시조의 발생에 관한 문제는 결국 언제 이러한 시가형식이 형성되었는가 하는 시기를 밝히는 일이 된다. 이에 대해서 많은 연구가 계속되어 오는 터이지만 그 발생시기를 최초로 언급하고 있는 『청구영언』「蔓橫淸類(만횡청류)」서문은 사설시조가 퍽 오래 전부터 있어 왔음을 시사해 주고 있다.
- 만횡청류는 그 말이 음란하고 그 뜻도 천박하여 규범이 되기에는 부족하지만 그 유래가 이미 오래되었으므로 일시에 폐기할 수 없어 특별히 제하여 여기에 싣는다.
그러나 이 기록은 다만 오래되었다고 했을 뿐 그 시기를 말하고 있지 않을 뿐 아니라 樂戱之曲(악희지곡)으로 불리워 오던 악조로서의 만횡청류(사설시조)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이로부터 이 문제는 논자들의 관점에 따라 서로 다른 견해를 보여 왔다.
장시조가 언제 발생했느냐 하는 문제에 대해서 이제까지의 견해를 보면 대체로 고려말의 발생설과 병자호란 이전의 설과 이후의 설로 대별된다고 하겠다. 그 주장을 보면 다음과 같다.
1) 고려시대 발생설
가. 손진태
그는 각 가집에 무명씨의 작품으로 되어 있고 『樂學拾零』에만 이규보의 작으로 되어 있는 “팔만대 부처님께 비나이다 나와 님을 다시 나게 하오소셔.” 와 주시본 『해동가요』에서만 김수장의 작으로 되어있는 “우사월 첫 여드릿날에 관등하려고 하니.”.의 2수를 들어
이들 작품은 불교색채가 농후한 것과 그 시조 중에는 소극적 은둔적도 아니요, 또한 흥탈적도 아닌 감정을 가진 평화스럽고 유창한 감정을 가진 작풍의 일대조류가 있다. 나는 이것을 가리켜 고려나 이 전의 작풍이며 그들의 생활의 표현이라고 한다. 손 태“시조와 시조에 표현된 조선사람”『신민』1926
라고 하여 이 작품들이 고려시대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하였으나, 이 글이 발표될 당시에는 이정보나 김수장의 작품으로 표기된 가집들이 발굴되기 이전이라 다만 내용이 불교적이고, 유창한 감정과 비속적이 아닌 해학을 가졌다고 해서 고려시대에 발생했다고 하는 것은 추측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겠다. 조선시대에는 억불숭유 정책으로 불교가 공식적으로 용인되지 못하고 유교를 신봉하기는 하였으나 민간에서는 오랫동안 불교를 계속해서 믿고 있던 사실을 감안한다면 비록 내용이 불교적이고 평화스럽고 유창한 감정을 지닌 작품이라 해서 이것이 고려시대 이루어진 작품이란 견해는 수긍하기가 곤란하다고 하겠다.
나. 안자선
손진태는 작품의 내용을 가지고 고려시대에 지어진 것이라고 주장한 것이라면, 안자선은 시조의 형태면에서 고려 중엽에 사설시조가 발생했다고 주장하면서
국문학사에서 평시조와 사설시조의 발생년대를 명명 각각 고려말(14세기)과 이조중엽(17세기)으로 잡는 것이 일반적이나 작자의 생각으로는 문학형식의 발생사적 고찰과 가사에 나타난 고시어사의 전형으로 미루어서 평시조는 고려초엽 이전으로 사설시조는 고려중엽 이전으로 그 발생시대를 치켜 올려야 할 것이 아닌가 한다.
요컨대 사설시조는 평시조보다 장형이어서 구비문학시조에는 그것이 문자에 정착될 수 없었기 때문에 널리 애송될 수 없어서 작품도 국한된 사람뿐이었을 것이다. 따라서 그 형식이 빨리 세련되지 못해서 무명씨 작품 속에서 사설시조가 평시조보다 좀 더 고형이 유지되었다는 것뿐이며 본질적으로 이들 두 문학형식은 동일형식에서의 발달형임이 분명하다.
따라서 문제는 사설시조와 평시조의 어느 것이 선행 문학형식이냐 하는 것인데, 이들이 모두 서정적이고 다 같이 시행이 6음보형식을 지니고 있으므로 단형인 평시조가 장형인 사설시조보다 오래된 원초적인 문학형식이라고 추정된다. 생활환경 다양화는 사상과 감정을 풍부하게 만드므로 그것의 반영인 시도 그러한 사상감정을 담기 위해 시형식을 장형화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고하여 문학형식의 발생사적 입장에서 본다면 평시조형은 고려 초엽에 사설시조형의 시가는 고려 중엽에 발생하였다고 하였다. 시조의 형식이 고려 중엽에 이루어졌으리라는 종래의 주장보다 더 앞서 고려 초엽에 이루어졌다고 주장하고, 사설시조는 아무래도 평시조형에서 발전하여 사람들의 생활환경에 다양화하면서 사상감정을 풍부하게 만들어 자연스럽게 시형식을 장형화 할 수밖에 없으므로 평시조보다 그리 뒤지지 않는 고려 중엽에 와서 시형이 이루어진 것이라 주장하였다.
2) 임병란 이전 발생설
새로운 자료의 출현으로 종전에 임병양란 이후에 발생했다고 주장하던 분들이 임병란 이전으로 수정하는 경우가 있으며, 오히려 임병란 이전의 발생설이 더 우세한 편이라 하겠다.
임병란 이전의 발생설을 주장한 분들은 조윤제를 비롯하여, 이태극이능우김준영김 동욱 최동원과 ‘우리어문학회’가 있다.
이들의 공통적 주장은 송강 정철의 「장진주사」와 다른 시조 작품 1수(深意山 세네바회.....)가 장시조인 점을 들어서 적어도 송강을 최초의 장시조 작가로 보고 있으며, 특히 이태극은 권호문(1532~1587)의 연시조「한거십팔곡」가운데
行藏有道하니 버리면 구테 구하랴
산지남 수지북 병 들고 늘근 날을 뉘라셔 懷寶迷邦(회보미방)하니 오라 말라 하느뇨 성현의 가신 길 히 萬古애 한가지라 隱커나 見커나 道이 얻디 다르리
一道 이오 다르리 아니커니 아모커니 아모딘들 엇더리.
를 들고서 이를 知名작가의 장시조 작품으로는 最古의 것이라 주장하고 이를 근거로
가사는 장시조의 확대요, 장시조는 가사의 축소라 말함을 증명하여 주는 실증인 것이다. 그러므로 초기에는 二大 대표적인 시가형식인 시조(단시조)와 가사와로 창작되어 오던 것이, 어느 사이인지 그 접선이 응결되어서 그 중간존재인 장시조형태를 산출하였던 것이다.
이것이 적어도 명종대까지는 기어 오를 수 잇다고 본다. 이러한 출발을 한 장시조가 먼저 말한 二大 戰亂(이대전란)으로 평민문학의 진출과 그 형식상 특징이 부합되는 바가 커서, 그 발전에 더욱 박차를 가한 것만은 사실이다.
라 하였으나 권호문의 「한거십팔곡」은 제 16곡과 17곡이 합쳐진 것으로 실제로는 18곡이 아닌 19곡이며 이에 대해서는 가람이 밝힌 바가 있다. 가람은 “송강가사연구”에서 『송강가사』(성주본)에서 단가“南山뫼 어디뫼만 고학사 초당 지어 곳두고 달두고 바회두고 물둔난이 술조차 둔난양하아야 나를 오라 하거니
3) 사설시조(장시조)의 형성
사설시조의 발생에 관한 문제는 결국 언제 이러한 시가형식이 형성되었는가 하는 시기를 밝히는 일이 된다. 이에 대해서 많은 연구가 계속되어 오는 터이지만 그 발생시기를 최초로 언급하고 있는 『청구영언』「蔓橫淸類(만횡청류)」서문은 사설시조가 퍽 오래 전부터 있어 왔음을 시사해 주고 있다.
- 만횡청류는 그 말이 음란하고 그 뜻도 천박하여 규범이 되기에는 부족하지만 그 유래가 이미 오래되었으므로 일시에 폐기할 수 없어 특별히 제하여 여기에 싣는다.
그러나 이 기록은 다만 오래되었다고 했을 뿐 그 시기를 말하고 있지 않을 뿐 아니라 樂戱之曲(악희지곡)으로 불리워 오던 악조로서의 만횡청류(사설시조)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이로부터 이 문제는 논자들의 관점에 따라 서로 다른 견해를 보여 왔다.
장시조가 언제 발생했느냐 하는 문제에 대해서 이제까지의 견해를 보면 대체로 고려말의 발생설과 병자호란 이전의 설과 이후의 설로 대별된다고 하겠다. 그 주장을 보면 다음과 같다.
1) 고려시대 발생설
가. 손진태
그는 각 가집에 무명씨의 작품으로 되어 있고 『樂學拾零』에만 이규보의 작으로 되어 있는 “팔만대 부처님께 비나이다 나와 님을 다시 나게 하오소셔.” 와 주시본 『해동가요』에서만 김수장의 작으로 되어있는 “우사월 첫 여드릿날에 관등하려고 하니.”.의 2수를 들어
이들 작품은 불교색채가 농후한 것과 그 시조 중에는 소극적 은둔적도 아니요, 또한 흥탈적도 아닌 감정을 가진 평화스럽고 유창한 감정을 가진 작풍의 일대조류가 있다. 나는 이것을 가리켜 고려나 이 전의 작풍이며 그들의 생활의 표현이라고 한다. 손 태“시조와 시조에 표현된 조선사람”『신민』1926
라고 하여 이 작품들이 고려시대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하였으나, 이 글이 발표될 당시에는 이정보나 김수장의 작품으로 표기된 가집들이 발굴되기 이전이라 다만 내용이 불교적이고, 유창한 감정과 비속적이 아닌 해학을 가졌다고 해서 고려시대에 발생했다고 하는 것은 추측에 지나지 않는다고 하겠다. 조선시대에는 억불숭유 정책으로 불교가 공식적으로 용인되지 못하고 유교를 신봉하기는 하였으나 민간에서는 오랫동안 불교를 계속해서 믿고 있던 사실을 감안한다면 비록 내용이 불교적이고 평화스럽고 유창한 감정을 지닌 작품이라 해서 이것이 고려시대 이루어진 작품이란 견해는 수긍하기가 곤란하다고 하겠다.
나. 안자선
손진태는 작품의 내용을 가지고 고려시대에 지어진 것이라고 주장한 것이라면, 안자선은 시조의 형태면에서 고려 중엽에 사설시조가 발생했다고 주장하면서
국문학사에서 평시조와 사설시조의 발생년대를 명명 각각 고려말(14세기)과 이조중엽(17세기)으로 잡는 것이 일반적이나 작자의 생각으로는 문학형식의 발생사적 고찰과 가사에 나타난 고시어사의 전형으로 미루어서 평시조는 고려초엽 이전으로 사설시조는 고려중엽 이전으로 그 발생시대를 치켜 올려야 할 것이 아닌가 한다.
요컨대 사설시조는 평시조보다 장형이어서 구비문학시조에는 그것이 문자에 정착될 수 없었기 때문에 널리 애송될 수 없어서 작품도 국한된 사람뿐이었을 것이다. 따라서 그 형식이 빨리 세련되지 못해서 무명씨 작품 속에서 사설시조가 평시조보다 좀 더 고형이 유지되었다는 것뿐이며 본질적으로 이들 두 문학형식은 동일형식에서의 발달형임이 분명하다.
따라서 문제는 사설시조와 평시조의 어느 것이 선행 문학형식이냐 하는 것인데, 이들이 모두 서정적이고 다 같이 시행이 6음보형식을 지니고 있으므로 단형인 평시조가 장형인 사설시조보다 오래된 원초적인 문학형식이라고 추정된다. 생활환경 다양화는 사상과 감정을 풍부하게 만드므로 그것의 반영인 시도 그러한 사상감정을 담기 위해 시형식을 장형화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고하여 문학형식의 발생사적 입장에서 본다면 평시조형은 고려 초엽에 사설시조형의 시가는 고려 중엽에 발생하였다고 하였다. 시조의 형식이 고려 중엽에 이루어졌으리라는 종래의 주장보다 더 앞서 고려 초엽에 이루어졌다고 주장하고, 사설시조는 아무래도 평시조형에서 발전하여 사람들의 생활환경에 다양화하면서 사상감정을 풍부하게 만들어 자연스럽게 시형식을 장형화 할 수밖에 없으므로 평시조보다 그리 뒤지지 않는 고려 중엽에 와서 시형이 이루어진 것이라 주장하였다.
2) 임병란 이전 발생설
새로운 자료의 출현으로 종전에 임병양란 이후에 발생했다고 주장하던 분들이 임병란 이전으로 수정하는 경우가 있으며, 오히려 임병란 이전의 발생설이 더 우세한 편이라 하겠다.
임병란 이전의 발생설을 주장한 분들은 조윤제를 비롯하여, 이태극이능우김준영김 동욱 최동원과 ‘우리어문학회’가 있다.
이들의 공통적 주장은 송강 정철의 「장진주사」와 다른 시조 작품 1수(深意山 세네바회.....)가 장시조인 점을 들어서 적어도 송강을 최초의 장시조 작가로 보고 있으며, 특히 이태극은 권호문(1532~1587)의 연시조「한거십팔곡」가운데
行藏有道하니 버리면 구테 구하랴
산지남 수지북 병 들고 늘근 날을 뉘라셔 懷寶迷邦(회보미방)하니 오라 말라 하느뇨 성현의 가신 길 히 萬古애 한가지라 隱커나 見커나 道이 얻디 다르리
一道 이오 다르리 아니커니 아모커니 아모딘들 엇더리.
를 들고서 이를 知名작가의 장시조 작품으로는 最古의 것이라 주장하고 이를 근거로
가사는 장시조의 확대요, 장시조는 가사의 축소라 말함을 증명하여 주는 실증인 것이다. 그러므로 초기에는 二大 대표적인 시가형식인 시조(단시조)와 가사와로 창작되어 오던 것이, 어느 사이인지 그 접선이 응결되어서 그 중간존재인 장시조형태를 산출하였던 것이다.
이것이 적어도 명종대까지는 기어 오를 수 잇다고 본다. 이러한 출발을 한 장시조가 먼저 말한 二大 戰亂(이대전란)으로 평민문학의 진출과 그 형식상 특징이 부합되는 바가 커서, 그 발전에 더욱 박차를 가한 것만은 사실이다.
라 하였으나 권호문의 「한거십팔곡」은 제 16곡과 17곡이 합쳐진 것으로 실제로는 18곡이 아닌 19곡이며 이에 대해서는 가람이 밝힌 바가 있다. 가람은 “송강가사연구”에서 『송강가사』(성주본)에서 단가“南山뫼 어디뫼만 고학사 초당 지어 곳두고 달두고 바회두고 물둔난이 술조차 둔난양하아야 나를 오라 하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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