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우리 모두 속에 숨은 아이
2. 기억의 치유
3. 어린됨을 가로막는 어린아이의 좌우명
4. 또 다른 어린아이의 잘못된 생각
5. 사랑과 결혼에 대한 어린아이 같은 생각
6. 하나님의 뜻에 대한 어린아이 같은 생각
7. 기도에 대한 어린아이 같은 생각
8. 아동기의 혼란 대 성인의 특징
9. 어린아이같이 감정에 의지함
10. 자아와 자기 포기의 어린아이 같은 개념
11.삶의 궁극적인 고민
12. 재구성하시는 은혜
2. 기억의 치유
3. 어린됨을 가로막는 어린아이의 좌우명
4. 또 다른 어린아이의 잘못된 생각
5. 사랑과 결혼에 대한 어린아이 같은 생각
6. 하나님의 뜻에 대한 어린아이 같은 생각
7. 기도에 대한 어린아이 같은 생각
8. 아동기의 혼란 대 성인의 특징
9. 어린아이같이 감정에 의지함
10. 자아와 자기 포기의 어린아이 같은 개념
11.삶의 궁극적인 고민
12. 재구성하시는 은혜
본문내용
하나님은 그 분의 뜻을 어떻게 이루시는가? 내가 확언하건데 이것은 현실과 상관없는 동떨어진 질문이 아니다. 오히려 이것은 괜찮은 수준의 그리스도인의 삶이다. 우리는 이에 대한 어리석고 미성숙한 생각들을 버려야 한다.
세상에는 그분의 역사하심에 대한 오해로 인해 하나님을 미워하고 분노하고 있는 하나님 나라 밖의 수 많은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그 나라 안에 있으면서도 그것에 관해 혼동하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
계획된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뜻은 당신과 이 세계를 향하신 하나님의 완전하신 뜻이다. 이것은 당신을 향한 하나님의 가장 이상적인 목표이다. 우리는 이 계획으로서의 하나님의 뜻은 인간의 의지에 따라 얼마 동안 좌절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이것이 사실이 아니라면 인간은 진정으로 자유로운 존재가 아닐 것이다.
허락하시는 뜻
상황에 따라 변화될 수 있는 이 허락 가능한 하나님의 뜻은 이 타락한 우주에 작용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사용하실 수 있으므로 모든 것은 그분의 뜻을 위해 그분의 맷돌 속에서 갈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기독교 인이 아닌 사람은 이렇게 애기할 수 있다. “글세 난 이것도 하고 싶고 저것도 하고 싶은데 말이야, 난 가정 환경이 너무 좋지 않아. 참사나 질병 불공평한 것이나 상실 같은 것들이 끊이질 않았단 말이야. 그러니 내가 뭘 할 수 있었겠어?” 죽음이라 할지라도 그리스도인을 끌어내리거나 하나님을 이길 수 있는 상황은 아닌 것이다. 하나님은 그 어떤 복합적인 상황이라 할지라도 패배하지 않으신다.
궁극적인 하나님의 뜻
궁극적인 하나님의 뜻은 절대로 좌절되지 않는다. 우리의 생활 속에서 우리의 죄나 실수나 사고, 그리고 우리에게 짓는 타인들의 죄들이 잠깐 동안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과 목적을 패배시킬 수 있다. 그라나 악에 의한 어떤 새로운 환경이나 질병이나 사고라 할지라도 하나님은 그 분의 궁극적 뜻을 이루시기 위해 다른 채널을 찾으실 것이다.
하나님의 전능하심의 의미는 무엇인가?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 능력을 과시하시면서 그분의 뜻을 이루신다는 뜻이 아니다. 이것은 우리의 자유를 환상으로 만들었으며 도덕적 성장을 불가능한 것으로 보게 했다.
7. 기도에 대한 어린아이 같은 생각
하나님의 불가능성
이슬람에선 하나님은 어떤 것이든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한다. 그분의 능력은 절대적이고 임의적이기에 무제한이란 얘기가 된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다른 쪽에 서서 하나님의 능력은 그분 자신의 도덕적 성품과 그분이 창조하신 도덕적 존재를 포함한 그분의 세계에 심어 놓으신 어떤 자기 제한의 한계로 인해 제한된다라고 얘기한다. 그러므로 이 문제를 풀기 위해서 그 분이 하실 수 없는 것과 하지 않으시는 것들을 생각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자신의 성품을 거역하지 못하신다.
무엇보다 가장 명료하고 기독교 신론의 주춧돌인 것으로부터 시작해 보자. 하나님은 죄를 지으실 수 없다. 하나님은 그분의 완전한 도덕적 성품에 반대되는 어떤 악한 것도 하실 수 없다. 하나님은 하나님 되심을 잠시라도 쉬실 수 없다. 그분의 성격외에 다른 행동을 하실 수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거짓말하거나 죄를 범하거나 악한 것을 꾀하실 수 없다.
하나님의 성품을 우리의 수준으로 맞춘다는 것은 그분의 성품과 반대되므로 불가능한 것이다. 하나님은 거짓말을 하실 수도, 죄를 범할 수도, 그분의 신성 밖의 그 어떤 것을 하실 수도 없다. 그리고 그분의 순전하고 완전한 도덕적 성품에 거역되는 그 어떤 것도 하실 수 없다.
하나님은 자기의 법을 침해하실 수 없다.
이것이 기도에 대한 합당한 견지에서 생각해야 할 하나님이 하실 수 없는 것들에 대한 두 번째의 범주이다. 이러한 활동은 하나님 자신의 성품에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니라 그분이 창조하신 세계의 성질에 영향을 준다. 어떤 이들은 오직 그분이 창조하신 세게의 본질을 이야기 하면서 하나님께 이런 일이 불가능하다라고 단언하는 것은 어무 심한 것이라고 애기할 것이다.
그러나 이 세계 만이 인간인 우리가 사는 곳이며 우리만이 유일한 도덕적인 피조물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말씀으로 만드신 우리와 이 세계와 그 법은 창조 이후 실제적으로 우리에게만 적용되어 왔던 것이다.
하나님은 인간의 자유를 침해하실 수 없다.
이제 하나님의 법칙 중 세 번째에 이르게 되었다. 이것은 두 번째에서 도출되었으며 또한 이 세상 것들과 인간을 지으신 것처럼 자기 제어 적인 것이다. 하나님은 인간의 자유를 침해 하실 수 없다. 하나님은 선택의 자유를 가진 인류를 창조하셨다.
그분은 살갗으로 덮인 로봇이 그가 완전히 조종할 수 있는 기계적인 존재로 인간을 창조하신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여러 면에서 그 분을 닮은 또 그분의 닮은 영혼을 가진, 자기 인식이 있고 자기 결정이 있는 존재를 만드신 것이다. 그렇다. 우리가 사는 이세상의 상황으로 인해 제한되어 있기는 하지만, 우리 그분께 응답할 수 있을 만큼의 선택의 자유는 갖고 있다.
성숙한 기도
성숙하고 성경적인 기도에 대한 기본적인 기초 작업이 되기 때문에 상당히 자세한 부분까지 살펴보게 되었다. 이렇게 충분하게 이해된 기도 없이는 이것은 환상과 동화 우에 세워진 매우 유치한 문제로 남아 있게 된다. 어느날 갑자기 이것은 위험한 부메랑이 되어 돌아와 당신 믿음에 큰 상처를 입힐 수 있는 것이다.
응답되지 않은 기도의 문제
응답되지 않은 기도에 대해서 잠깐이라도 상펴보는 것이 좋을 듯하다. 잠시 우리가 기술 했던 성경적 원리가 대부분의 우리 상황을 이해 하는데 도움이 되긴 하지만 아직도 우리에겐 확실치 않게 혼동되는 것들이 수두룩하게 있다.
어린아이의 특징 중 하나는 기다릴 줄 모른다는 것이다. 그러니깐 즉석에서의 만족을 바라는 것이다. 기도에 대해 아직 어린아이의 관계를 가지고 있는 이들에게 주님을 상대로 기다린다는 것은 힘든 일이다. 그러므로 인내와 오래 참음은 하나님과의 성숙한 관계의 표시이며 그것은 하나님은 진정 신실하심을 믿는 우리의 신앙임을 나타낸다.
8. 아동기의 혼란 대 성인의 특징
수용됨과 인정됨의 차이
우리는 많은 복음적인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 수용됨과 인정됨 사시의 혼동을 발견하게 된다.
세상에는 그분의 역사하심에 대한 오해로 인해 하나님을 미워하고 분노하고 있는 하나님 나라 밖의 수 많은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그 나라 안에 있으면서도 그것에 관해 혼동하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
계획된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뜻은 당신과 이 세계를 향하신 하나님의 완전하신 뜻이다. 이것은 당신을 향한 하나님의 가장 이상적인 목표이다. 우리는 이 계획으로서의 하나님의 뜻은 인간의 의지에 따라 얼마 동안 좌절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이것이 사실이 아니라면 인간은 진정으로 자유로운 존재가 아닐 것이다.
허락하시는 뜻
상황에 따라 변화될 수 있는 이 허락 가능한 하나님의 뜻은 이 타락한 우주에 작용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사용하실 수 있으므로 모든 것은 그분의 뜻을 위해 그분의 맷돌 속에서 갈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기독교 인이 아닌 사람은 이렇게 애기할 수 있다. “글세 난 이것도 하고 싶고 저것도 하고 싶은데 말이야, 난 가정 환경이 너무 좋지 않아. 참사나 질병 불공평한 것이나 상실 같은 것들이 끊이질 않았단 말이야. 그러니 내가 뭘 할 수 있었겠어?” 죽음이라 할지라도 그리스도인을 끌어내리거나 하나님을 이길 수 있는 상황은 아닌 것이다. 하나님은 그 어떤 복합적인 상황이라 할지라도 패배하지 않으신다.
궁극적인 하나님의 뜻
궁극적인 하나님의 뜻은 절대로 좌절되지 않는다. 우리의 생활 속에서 우리의 죄나 실수나 사고, 그리고 우리에게 짓는 타인들의 죄들이 잠깐 동안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과 목적을 패배시킬 수 있다. 그라나 악에 의한 어떤 새로운 환경이나 질병이나 사고라 할지라도 하나님은 그 분의 궁극적 뜻을 이루시기 위해 다른 채널을 찾으실 것이다.
하나님의 전능하심의 의미는 무엇인가?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 능력을 과시하시면서 그분의 뜻을 이루신다는 뜻이 아니다. 이것은 우리의 자유를 환상으로 만들었으며 도덕적 성장을 불가능한 것으로 보게 했다.
7. 기도에 대한 어린아이 같은 생각
하나님의 불가능성
이슬람에선 하나님은 어떤 것이든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한다. 그분의 능력은 절대적이고 임의적이기에 무제한이란 얘기가 된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다른 쪽에 서서 하나님의 능력은 그분 자신의 도덕적 성품과 그분이 창조하신 도덕적 존재를 포함한 그분의 세계에 심어 놓으신 어떤 자기 제한의 한계로 인해 제한된다라고 얘기한다. 그러므로 이 문제를 풀기 위해서 그 분이 하실 수 없는 것과 하지 않으시는 것들을 생각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자신의 성품을 거역하지 못하신다.
무엇보다 가장 명료하고 기독교 신론의 주춧돌인 것으로부터 시작해 보자. 하나님은 죄를 지으실 수 없다. 하나님은 그분의 완전한 도덕적 성품에 반대되는 어떤 악한 것도 하실 수 없다. 하나님은 하나님 되심을 잠시라도 쉬실 수 없다. 그분의 성격외에 다른 행동을 하실 수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거짓말하거나 죄를 범하거나 악한 것을 꾀하실 수 없다.
하나님의 성품을 우리의 수준으로 맞춘다는 것은 그분의 성품과 반대되므로 불가능한 것이다. 하나님은 거짓말을 하실 수도, 죄를 범할 수도, 그분의 신성 밖의 그 어떤 것을 하실 수도 없다. 그리고 그분의 순전하고 완전한 도덕적 성품에 거역되는 그 어떤 것도 하실 수 없다.
하나님은 자기의 법을 침해하실 수 없다.
이것이 기도에 대한 합당한 견지에서 생각해야 할 하나님이 하실 수 없는 것들에 대한 두 번째의 범주이다. 이러한 활동은 하나님 자신의 성품에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니라 그분이 창조하신 세계의 성질에 영향을 준다. 어떤 이들은 오직 그분이 창조하신 세게의 본질을 이야기 하면서 하나님께 이런 일이 불가능하다라고 단언하는 것은 어무 심한 것이라고 애기할 것이다.
그러나 이 세계 만이 인간인 우리가 사는 곳이며 우리만이 유일한 도덕적인 피조물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말씀으로 만드신 우리와 이 세계와 그 법은 창조 이후 실제적으로 우리에게만 적용되어 왔던 것이다.
하나님은 인간의 자유를 침해하실 수 없다.
이제 하나님의 법칙 중 세 번째에 이르게 되었다. 이것은 두 번째에서 도출되었으며 또한 이 세상 것들과 인간을 지으신 것처럼 자기 제어 적인 것이다. 하나님은 인간의 자유를 침해 하실 수 없다. 하나님은 선택의 자유를 가진 인류를 창조하셨다.
그분은 살갗으로 덮인 로봇이 그가 완전히 조종할 수 있는 기계적인 존재로 인간을 창조하신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여러 면에서 그 분을 닮은 또 그분의 닮은 영혼을 가진, 자기 인식이 있고 자기 결정이 있는 존재를 만드신 것이다. 그렇다. 우리가 사는 이세상의 상황으로 인해 제한되어 있기는 하지만, 우리 그분께 응답할 수 있을 만큼의 선택의 자유는 갖고 있다.
성숙한 기도
성숙하고 성경적인 기도에 대한 기본적인 기초 작업이 되기 때문에 상당히 자세한 부분까지 살펴보게 되었다. 이렇게 충분하게 이해된 기도 없이는 이것은 환상과 동화 우에 세워진 매우 유치한 문제로 남아 있게 된다. 어느날 갑자기 이것은 위험한 부메랑이 되어 돌아와 당신 믿음에 큰 상처를 입힐 수 있는 것이다.
응답되지 않은 기도의 문제
응답되지 않은 기도에 대해서 잠깐이라도 상펴보는 것이 좋을 듯하다. 잠시 우리가 기술 했던 성경적 원리가 대부분의 우리 상황을 이해 하는데 도움이 되긴 하지만 아직도 우리에겐 확실치 않게 혼동되는 것들이 수두룩하게 있다.
어린아이의 특징 중 하나는 기다릴 줄 모른다는 것이다. 그러니깐 즉석에서의 만족을 바라는 것이다. 기도에 대해 아직 어린아이의 관계를 가지고 있는 이들에게 주님을 상대로 기다린다는 것은 힘든 일이다. 그러므로 인내와 오래 참음은 하나님과의 성숙한 관계의 표시이며 그것은 하나님은 진정 신실하심을 믿는 우리의 신앙임을 나타낸다.
8. 아동기의 혼란 대 성인의 특징
수용됨과 인정됨의 차이
우리는 많은 복음적인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 수용됨과 인정됨 사시의 혼동을 발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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