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안나수이에 대한 평판과 간단한 소개.
사진6장수록(안나수이 모습과 그녀가좋아하는 장식물, 보라색)
2. 출생과 유년시절
3. 10대, 그리고 대학시절의 안나수이
4. 디자이너 안나수이 (사진 수록)
5. 안나수이 패션쇼 1997부터 2005년까지 빠짐없이 컬렉션 사진 수록
(40장 이상의 사진)
6. 안나수이 컨셉
7. 안나수이 코스메틱
(향수, 코스메틱, 악세서리 각각의 다양한 사진수록 )
8. 현재 안나수이의 근황과 성공
( 안나수이의 특색있는 화장실, 방, 거실 등 사진 수록)
사진6장수록(안나수이 모습과 그녀가좋아하는 장식물, 보라색)
2. 출생과 유년시절
3. 10대, 그리고 대학시절의 안나수이
4. 디자이너 안나수이 (사진 수록)
5. 안나수이 패션쇼 1997부터 2005년까지 빠짐없이 컬렉션 사진 수록
(40장 이상의 사진)
6. 안나수이 컨셉
7. 안나수이 코스메틱
(향수, 코스메틱, 악세서리 각각의 다양한 사진수록 )
8. 현재 안나수이의 근황과 성공
( 안나수이의 특색있는 화장실, 방, 거실 등 사진 수록)
본문내용
\"오랫동안 난 스타일리스트와 디자이너 사이에서 어느 한쪽으로도 결정을 내리지 못했어요. 그건 일종의 환상 같은 거였죠. 난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그러나 난 기본적인, 그리고 아주 중요한 건 약속한 시간에 좋은 퀼리티의 옷들을 선적해야 한다는 걸 전 그 기간을 통해서 배웠죠.\" 이 기간은 또한 수이가 그녀만의 디자인 컨셉트를 발견한 시기이기도 하다.
1980년 처음으로 그녀만의 오리지널을 발표하면서 패션 사업에 도전한다. 그녀는 부티크 쇼에서 6벌의 라이크라 소재 의상을 선보였다. 그리고 곧 메이시(Macy\'s) 백화점으로부터 주문을 받았으며 그녀의 옷은 메이시 백화점의 광고에 등장했다. 이때부터 그녀는 회사에서 독립하고 본격적인 크리에이션을 통해 그녀의 생동감 넘치는 상상력을 발휘하기 시작한다. 여기서 힘을 얻은 안나수이는 자신의 아파트를 작업실로 옷을 만들기 시작한다.
1983년 가을 컬렉션에서 그녀는 크고 늘어진 주머니가 달린 블랙 튜닉, 블랙 베스트, 물결치는 듯한 블랙 스커트, 그리고 형광 빛의 코튼 셔츠를 발표했고 이듬해에는 몬드리안의
그림에서 힌트를 얻은 loose-but-lean look을 발표했다.
수이의 각 시즌 컬렉션을 돌아보면 그녀의 디자인 경향과 더불어 대중문화의 흐름을 한눈에 볼 수가 있다. 어떤 해에는 1970년대의 패션이 그녀의 상상력을 사로잡았다. 밑단 부분에 긴 술을 늘어뜨린 짧은 스웨이드 드레스가 바로 70년대 패션에서 영감을 얻은 작품이다. 다른 해에는 짧은 스커트나 주름 장식을 넣은 쇼트 팬츠와 같은 코코 샤넬 스타일을 발표했다. 그녀는 또 과거 한 시대를 풍미했던 유행 스타일을 변형, 리바이벌해서 발표하기도 했다. 1950년대의 남성복 스타일 롱 재킷 수트와 카프리 팬츠(몸에 꼭 끼는 바지), 힙 허깅 팬츠등이 그녀를 통해 새롭게 재현된 아이템들이다. 직장 생활을 그만 둔 이후 자신의 아파트에서 시작한 그녀의 사업은 80년대를 통해 이렇듯 꾸준히 성장했던 것이다.
1991년에는 드디어 사무실을 얻어 나오게 되는데 그녀의 동기가 너무나 소박하다. 어느 날 벼룩시장에서 너무 맘에 드는, 자신의 작업대로 쓰기에 적합한 테이블을 발견하였는데 그녀의 아파트에는 너무 큰 사이즈여서 할 수 없이 사무실을 구하게 되었단다. 어쨌거나 뉴욕7번가로 옮겨온 뒤로 그녀는 자신의 옷에 더욱 충실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1991년 4월, 수이는 친구 스티븐 마이젤과 홍보 담당 폴카바코 (Paul Cavaco)의 격려로 첫 번째 정식 컬렉션(수이만의 단독 쇼)을 시도한다. 이 쇼에는 나오미 갬벨, 린다에반젤리스타 등의 슈퍼 모델들이 참여했는데, 이들은 스티븐 마이젤의 소개로 출연료 없이, 수이의 의상과 소품을 받는 조건으로 출연했다.
11년 준비 끝에 진출한 이 뉴욕컬렉션에서 그녀는 대성공을 거뒀다. 뉴욕 타임즈에 의하면 그녀의 이 데뷔 무대는 \'히피 스타일과 하이 패션이 성공적으로 어우러진 무대였다. 원색의 비닐 재킷, 얼룩 무늬 플리츠 스커트와 모자, 골드 체인으로 턱 아래를 묶게 되어 있는 스컬 캡 (skull cap. 테두리 없는 실내 모자)과 한 세트를 이룬 베이비 돌 드레스와 샤넬 스타일의 수트, 모터 사이클 재킷 등이 그 무대를 통해 발표되었다. 또 다른 작품들로 60년대의 스트레치 레이스 타이츠, 부츠, 코트 등도 있었다. 그녀는 그 컬렉션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60년대를 제대로 보내지 못한 것이 안타까워요. 그래서 의상을 통해서 그 시대를 지금 다시 살고 있죠 나는 그 시절의 제품과 패턴을 좋아합니다.\" 또 오토바이와 인형, 레이스 타이츠와 샤넬을 섞어놓은 그의 의상은 스타일이 젊고 재단이 혁신적이라는 평을 받았으며, 어린 시절부터 그녀의 생활 속에서 떠나지 않던 지미 헨드릭스등의 의상에서 영감을 받은 록엔롤 스타일을 제시하여 호평을 받는다.
데뷔 무대의 성공은 그녀에게 전환점이 되었다. 같은 해, 수이는 그녀의 비좁은 아파트에서 나와 맨해튼의 유명한 부티크 거리에 사무실을 오픈한다. 안나수이는 자신의 부티크를 두고 자신의 의상은 모두 네 블럭 이내에서 만든다며 품질에 관한 한 전 엄격한 걸 제 신조로 삼고 있다고 한다. 작은 공간에서 작업하기 때문에 모든 것을 직접 감독할 수 있고 어떤 실수라도 문제가 되기 전에 잡아낼 수 있기 때문이란다. 그 부티크 오프닝은 간단한 패션쇼와 수이의 직접 인사말로 이루어 졌는데, 오픈식이 열린 90분 동안 메이시 측은 1만불에 달하는 매출을 올렸다. 그해 말, 수이는 ‘메이시’보다 더욱 수준 높은 백화점인 버그도프 굿맨(Bergdorf Goodman)백화점에 픽업 되었다. 그리고 두 번째 부티크를 1998 년 L.A.에서 개장했다.
1992년, 메이시 측은 브로드웨이 매장 쇼윈도에 수이의 의상을 1주일 동안 전시한 것은 물론 헤럴드 스퀘어에 부티크를 내주었다. 또 그 해 9월, 젊은이들과 예술인들의 거리인 소호에 지점을 오픈한다.
1992년의 봄 컬렉션은 그녀에게 또다시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했다. 이 두 번째 쇼에서 그녀는 독특한 소재에 시선을 끄는 액세서리를 매치한 개성 있는 의상들을 선보이면서 그녀의 관중들을 즐겁게 만들었다. 뉴욕 타임즈는 \'패선에 관심은 많지만 의미 있게 받아들이지는 않는 젊고 모험적인 기질을 가진 이들을 봄의 쾌활한 열정으로 사로잡았다\'라고 그녀의 컬렉션을 평했다.
그 해에 안나수이는 1970년대 스타일을 지향하고 유행시키는 디자이너로서 다시 한번 인정받았다고 할 수 있겠다. 그녀는 벨보템, 힙허거, 비틀즈 재킷, 프린지, 시폰등을 다른 디자이너들보다 한발 앞서 발표했다. 안나수이가 발표한 이 작품들은 패션계에 70년대 복고풍 바람이 일기 시작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 됐다. 그녀는 한물 간 스타일에 생기를 불어넣어 현대적으로 변형시키는 장기를 지녔다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1993년에는 가수 \'코트니 러브\'의 <킨더호어(kinderwhore)>에서 영감을 받은 \'94 봄/여름 베이비 돌 컬렉션을 선보여 최고의 찬사를 받으며 그녀의 명성을 꾸준히 지켜 나갔다. 그 베이비 돌 컬렉션은 환상이 두드러진 무대였다. 미시건주에서 보냈던 어린 시절에서 영감을 얻은
1980년 처음으로 그녀만의 오리지널을 발표하면서 패션 사업에 도전한다. 그녀는 부티크 쇼에서 6벌의 라이크라 소재 의상을 선보였다. 그리고 곧 메이시(Macy\'s) 백화점으로부터 주문을 받았으며 그녀의 옷은 메이시 백화점의 광고에 등장했다. 이때부터 그녀는 회사에서 독립하고 본격적인 크리에이션을 통해 그녀의 생동감 넘치는 상상력을 발휘하기 시작한다. 여기서 힘을 얻은 안나수이는 자신의 아파트를 작업실로 옷을 만들기 시작한다.
1983년 가을 컬렉션에서 그녀는 크고 늘어진 주머니가 달린 블랙 튜닉, 블랙 베스트, 물결치는 듯한 블랙 스커트, 그리고 형광 빛의 코튼 셔츠를 발표했고 이듬해에는 몬드리안의
그림에서 힌트를 얻은 loose-but-lean look을 발표했다.
수이의 각 시즌 컬렉션을 돌아보면 그녀의 디자인 경향과 더불어 대중문화의 흐름을 한눈에 볼 수가 있다. 어떤 해에는 1970년대의 패션이 그녀의 상상력을 사로잡았다. 밑단 부분에 긴 술을 늘어뜨린 짧은 스웨이드 드레스가 바로 70년대 패션에서 영감을 얻은 작품이다. 다른 해에는 짧은 스커트나 주름 장식을 넣은 쇼트 팬츠와 같은 코코 샤넬 스타일을 발표했다. 그녀는 또 과거 한 시대를 풍미했던 유행 스타일을 변형, 리바이벌해서 발표하기도 했다. 1950년대의 남성복 스타일 롱 재킷 수트와 카프리 팬츠(몸에 꼭 끼는 바지), 힙 허깅 팬츠등이 그녀를 통해 새롭게 재현된 아이템들이다. 직장 생활을 그만 둔 이후 자신의 아파트에서 시작한 그녀의 사업은 80년대를 통해 이렇듯 꾸준히 성장했던 것이다.
1991년에는 드디어 사무실을 얻어 나오게 되는데 그녀의 동기가 너무나 소박하다. 어느 날 벼룩시장에서 너무 맘에 드는, 자신의 작업대로 쓰기에 적합한 테이블을 발견하였는데 그녀의 아파트에는 너무 큰 사이즈여서 할 수 없이 사무실을 구하게 되었단다. 어쨌거나 뉴욕7번가로 옮겨온 뒤로 그녀는 자신의 옷에 더욱 충실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1991년 4월, 수이는 친구 스티븐 마이젤과 홍보 담당 폴카바코 (Paul Cavaco)의 격려로 첫 번째 정식 컬렉션(수이만의 단독 쇼)을 시도한다. 이 쇼에는 나오미 갬벨, 린다에반젤리스타 등의 슈퍼 모델들이 참여했는데, 이들은 스티븐 마이젤의 소개로 출연료 없이, 수이의 의상과 소품을 받는 조건으로 출연했다.
11년 준비 끝에 진출한 이 뉴욕컬렉션에서 그녀는 대성공을 거뒀다. 뉴욕 타임즈에 의하면 그녀의 이 데뷔 무대는 \'히피 스타일과 하이 패션이 성공적으로 어우러진 무대였다. 원색의 비닐 재킷, 얼룩 무늬 플리츠 스커트와 모자, 골드 체인으로 턱 아래를 묶게 되어 있는 스컬 캡 (skull cap. 테두리 없는 실내 모자)과 한 세트를 이룬 베이비 돌 드레스와 샤넬 스타일의 수트, 모터 사이클 재킷 등이 그 무대를 통해 발표되었다. 또 다른 작품들로 60년대의 스트레치 레이스 타이츠, 부츠, 코트 등도 있었다. 그녀는 그 컬렉션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60년대를 제대로 보내지 못한 것이 안타까워요. 그래서 의상을 통해서 그 시대를 지금 다시 살고 있죠 나는 그 시절의 제품과 패턴을 좋아합니다.\" 또 오토바이와 인형, 레이스 타이츠와 샤넬을 섞어놓은 그의 의상은 스타일이 젊고 재단이 혁신적이라는 평을 받았으며, 어린 시절부터 그녀의 생활 속에서 떠나지 않던 지미 헨드릭스등의 의상에서 영감을 받은 록엔롤 스타일을 제시하여 호평을 받는다.
데뷔 무대의 성공은 그녀에게 전환점이 되었다. 같은 해, 수이는 그녀의 비좁은 아파트에서 나와 맨해튼의 유명한 부티크 거리에 사무실을 오픈한다. 안나수이는 자신의 부티크를 두고 자신의 의상은 모두 네 블럭 이내에서 만든다며 품질에 관한 한 전 엄격한 걸 제 신조로 삼고 있다고 한다. 작은 공간에서 작업하기 때문에 모든 것을 직접 감독할 수 있고 어떤 실수라도 문제가 되기 전에 잡아낼 수 있기 때문이란다. 그 부티크 오프닝은 간단한 패션쇼와 수이의 직접 인사말로 이루어 졌는데, 오픈식이 열린 90분 동안 메이시 측은 1만불에 달하는 매출을 올렸다. 그해 말, 수이는 ‘메이시’보다 더욱 수준 높은 백화점인 버그도프 굿맨(Bergdorf Goodman)백화점에 픽업 되었다. 그리고 두 번째 부티크를 1998 년 L.A.에서 개장했다.
1992년, 메이시 측은 브로드웨이 매장 쇼윈도에 수이의 의상을 1주일 동안 전시한 것은 물론 헤럴드 스퀘어에 부티크를 내주었다. 또 그 해 9월, 젊은이들과 예술인들의 거리인 소호에 지점을 오픈한다.
1992년의 봄 컬렉션은 그녀에게 또다시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했다. 이 두 번째 쇼에서 그녀는 독특한 소재에 시선을 끄는 액세서리를 매치한 개성 있는 의상들을 선보이면서 그녀의 관중들을 즐겁게 만들었다. 뉴욕 타임즈는 \'패선에 관심은 많지만 의미 있게 받아들이지는 않는 젊고 모험적인 기질을 가진 이들을 봄의 쾌활한 열정으로 사로잡았다\'라고 그녀의 컬렉션을 평했다.
그 해에 안나수이는 1970년대 스타일을 지향하고 유행시키는 디자이너로서 다시 한번 인정받았다고 할 수 있겠다. 그녀는 벨보템, 힙허거, 비틀즈 재킷, 프린지, 시폰등을 다른 디자이너들보다 한발 앞서 발표했다. 안나수이가 발표한 이 작품들은 패션계에 70년대 복고풍 바람이 일기 시작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 됐다. 그녀는 한물 간 스타일에 생기를 불어넣어 현대적으로 변형시키는 장기를 지녔다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1993년에는 가수 \'코트니 러브\'의 <킨더호어(kinderwhore)>에서 영감을 받은 \'94 봄/여름 베이비 돌 컬렉션을 선보여 최고의 찬사를 받으며 그녀의 명성을 꾸준히 지켜 나갔다. 그 베이비 돌 컬렉션은 환상이 두드러진 무대였다. 미시건주에서 보냈던 어린 시절에서 영감을 얻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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