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물론]우에쓰기 요잔(上杉鷹山) - 봉건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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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봉건제

2. 사람과 사업

3. 행정개혁

4. 산업개혁

5. 사회및 도덕의 개혁

6. 사람이 되어

본문내용

기가 찾아오면 반드시 요잔는 토지와 절을 지키는 신에게 찾아갔다. 그것은 감히 말한다면 요잔의 약점이었다. 에도집에 있을때 어느날 효자인 부하에게 상을 주기위해 그 명부에 기록된 문서를 번주의 검열과 승인을 구하기 위해 보내졌다. 요잔는 대충 읽고 스승의 강의가 끝날때까지 서랍에 넣어두도록 명했다. 강의는 끝났지만 요잔는 그 중요한 일을 깜박하고 잊어버렸다. 가까이에 있는 아랫사람이 군자의 입장으로서 용서되기 힘든 태만행위다라고 엄하게 꾸짖었다. 번주는 부끄럽기 이를데 없었다. 그 자리에 앉은 채로 밤을 세워 울며 부끄러움으로 인해 아침식사에 손조차 대지 않았다. 다음날 아침 초대받은 스승이 공자의 책 한 구절을 인용해서 과실을 용서했다. 이렇게해서 겨우 밥을 먹었다. 이정도로 예민한 감성을 가진 주인에 대해서 지나친 역사비평을 가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요잔는 고결한 인격이 가장 빛나게 보이는 것은 그 가정과 가족관계에 있다. 검소한 모습은 앞서 언급했다. 요네자와의 재정상의 신용이 충분히 회복되고 풍족한 생활의 자유가 보장되는 시대가 되었지만 요잔는 생애를 통해서 무명옷과 가난한 식사를 계속했다. 낡은 다다미는 거의 수리가 안될때까지 바꾸지 않고 찢어진 다다미에 자기가 직접 종이를 대는 광경이 여러번 목격되었다. 요잔의 가정관은 실제로 훌륭했다. 성인이 말한 "자기를 수양하는 자는 처음으로 다스릴수 있고 가정을 정돈하는 자에게 있어서는 처음으로 국가를 통치할 수 있다" 라는 말을 문자그대로 실행했다. 특별히 요잔같은 사회적 신분이 있는 사람의 첩을 둘 권리는 누구도 의심없이 당연하게 여기는 것이고 무사라면 대부분 네,다섯명도 첩을 두는 시대에 요잔는 열살 연상인 첩을 한명밖에 두지 않았다. 이것도 다음과 같은 특별한 사정때문이었다. 요잔이 성인이 되기 전 당시의 우리 나라의 습관에 따라서 양부모가 정해준 대로 받아들여 결혼을 했던 여성은 선천적으로 지적장애가 있었다. 여성의 앎은 10세의 아이에도 미치지 못했다. 그러나 요잔은 마음에서 우러난 애정과 존경을 정성을 다해 대하였고 그 여성을 위해서 놀 기구랑 인형을 만들고. 온갖 방법을 다해서 위안해 주었다. 20년의 결혼생활을 지내고 자신의 남겨진 운명에 대해서 조금의 불만도 보이지 않았다. 두 사람은 오로지 에도에서 살았지만 첩을 요네자와에 남아있게 하여 장애가 있는 부인에게 견주는 지위를 허락하지 않았다. 물론 부인에게는 자식을 두지 않았다. 당연, 요잔은 자상한 아빠여서 자신의 아이의 교육에는 한결같이 노력했다. 세습제의 봉건시대에 있어서 백성의 장래에 대한 행복은, 번주가 어떤 후계자를 남겨두는가에 크게 좌우시키는 것부터였다. 요잔은 그 임무의 중요성을 잘 분별하고 있었다. 요잔은 아이들에게 「큰 사명을 잊어버리고 자신의 이익욕심의 희생하지 않기 위함」, 「가난한 사람들 생각하기」를 가르쳤다. 요잔의 아이를 양육하는 방법을 보기 위해서 손녀들에게 써 준 수 많은 따뜻한 편지 중에서 여기에 한 구절을 소개해보자. 이 편지는 남편과 에도에서 생활하기 위해 양부모의 저택을 나오도록 하는 나이 많은 손녀에게 주는 것이다.
사람은 세 가지의 은혜에 의무를 주어진다. 부모와 스승과 너에게 있다, 각자 은혜에 대한 의무이기 짝이 없지만 특히 남보다 더한 부모의 은혜에 있다. 이 세상에 생을 받았다는 것은 부모의 은혜에 의한 것이다. 이 신체가 부모의 일부분에서 있는 것을 결코 잊어버리면 안된다. 부모를 섬길 때에는 더할 나위 없는 마음에서 행동하는 것 같은 거요. 혹시 실수를 범했어도 진심이라도 있는 거라면 큰 실수는 아니다. 지혜부족을 위해서 할 수 없는 것이라는 생각이나! (그 부족은 진심이 보충한다).
영내를 다스리는 일은 많이 미치지 않는 것처럼 생각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영내를 다스리는 것은 아주 화목한 가정에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좋다. 아주 화목한 가정은 아내의 남편에 대한 관계가 정확히 하지 않고는 성립될 수 없다. 물의 원천이 더러워져 있는 물에서 어떻게 깨끗한 흐름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젊은 여성이면 기모노에 특히 마음이 얽매이기 쉬운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배웠던 검약의 습관을 잊어버리는 것은 아니다. 양잠을 처음 여성의 일로 노력하고 동시에 와카(和歌, 일본고유 형식의 노래)와 가서에 대를 잇고 마음을 닦는 것이 좋다. 문화와 교양은 그것만을 목적으로 하지 않으면 안된다. 전체 학문의 목적은 덕을 수양하는 것으로 통하고 있다. 선을 권하고 악을 피하도록 가르쳐주는 학문을 고르는 것이 좋다. 화가는 마음을 위로하는 것이다. 그것에 보다 달과 꽃이 인간의 마음의 양식이기도 하고 정조를 높인다. 그대의 남편은 아버지라 하여 백성을 따르고, 그대의 어머니라 하여 백성을 사랑하는 것이 좋다. 그때 백성은 너희들을 부모라 하여 존경한다. 그것에 더한 기쁨이 있을까.
남편의 부모는 아무쪼록 교양을 애쓰지 않으면 안된다. 진심을 담은 주인이 된 남편이라도 있는 사람에게 섬기고 번영을 제한하지 않는 것, 우리 아가씨가 태어난 나라에 어울리는 정숙한 여성이라 하여 우러러 볼 수 있기를 기원한다.
서울로 여행떠난 사랑하는 내딸에게
봄이 되어 꽃장식을 한 의복을 겹쳐입더라도 내고향의 추위를 잊지말아라
(봄이 찾아와 꽃의 의상을 몸에 감는 시절이 되어도 산골 아빠집에서 지냈던 겨울을 잊지말길)
하루노리(治憲)
이 근면한 절제가의 인생은 건강으로 혜택받은 70년이었다. 젊은날의 희망은 거의 들어맞았다. 번은 안정하고 백성은 풍족하고 나라안이 풍족하여 충족 시킬 수 있었다. 모든 번이 주어도 5량의 금을 마련할 수 없었기 때문에 이제는 한마디소리로 1만냥도 모을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을 이루고 달성한 인물의 최후가 편안하지 않을리는 없다. 분세이(文政) 5년(1822)3월 19일 요잔은 최후의 숨을 거두었다. 백성은 자신의 조부모를 여윈 것처럼 울었다. 계층을 불문하고 슬퍼하였고, 그 모습은 붓으로 표현하기 어렵다. 장례식날에는 몇만명에 달하는 장례식 참석자로 거리가 넘쳤다. 합장하고 머리숙이고 깊게 한탄하면서 슬픈 목소리가 모두로부터 새어 나왔다. 산천초목도 모두 이같은 슬픔에 화답하였다. 라고 전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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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5.11.11
  • 저작시기20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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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3200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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