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민중사에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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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우리에게 역사는 무엇이었나?

2. 우리는 왜 이렇게 되었을까?

본문내용

주관하여 사회문화 발전에 큰 공헌을 하였다. 이들 언론의 활동에 대해서 일제는 기사의 검열과 삭제, 휴간 및 정간 등의 갖은 탄압을 가하였다. (중학교 국사 하권 145쪽 아랫쪽 - '민족실력 양성운동' 중에서)”
“조선일보는 문자 보급운동을 주도하고, 동아일보사는 문맹퇴치 운동을 주도하였다”(2002년판)
② 실상
-김동인: 1944년 1월 20일 매일신보에 ‘일장기의 물결’이라는 사설을 기고. 학병을 찬 양.
“침침한 가운데서도 뚜렷이 보이고 저어지고 흔들려지는 거룩한 표식인 ‘히노마루(일장기)’--히노마루를 두르며 외치는 만세성은 세상이 떠나 갈 듯, 천황폐하 만세, 대일본제국 만세, 학병만세”
-김활란: 여성학 박사 1호, 여성교장, YWCA의 창설자, 등등으로 교육계와 기독교계를 대표. 3.1운동과 신간회의 여성조직(좌우합작조직)인 근우회에서 활동하였으나 36년 들어 총독부 사회교육과가 ‘가정의 개선과 부인교화운동의 촉진을 목적으로 주최한 사회교화간담회에 참석하였고, 37년 황민화정책을 철저히 하는 방법의 일환으로 방송에도 참여하면서 친일활동을 시작하였다. 41년 ‘야마기 카스란’으로 창씨개명하여 조선임전 보국단 부인대 지도위원이 되어 조선의 청년들을 제국주의 전쟁으로 몰아넣었다. 이화여대에는 김활란상이 있다.
“이제야 기다리고 기다리던 징병제라는 커다란 감격이 왔다. --- 지금까지 우리는 나라를 위해서 귀한 아들을 즐겁게 전장으로 내보내는 內地의 어머니들을 물끄러미 바라만 보고 있었다. -- 그러나 반도여성 자신들이 그 어머니, 그 아내가 된 것이다. 이제 우리도 국민으로서의 책임을 다할 기회가 왔고, 그 책임을 다함으로써 진정한 황국신민으로서의 영광을 누리게 되는 것이다. (‘징병제와 반도여성의 각오’ 『신세대)』
-조선일보
“천황폐하와 황실가족의 만수무강을 기원하며 충과 의를 다 바치겠습니다.”[조선일보 1939. 4. 29]
“한일합방은 조선의 행복을 위한 조약” [조광(월간조선의 전신) 1940. 10]
“조선인들의 국방헌금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조선일보 1937. 7. 19]
“먹을 것 입을 것을 모두 바치고 그 처분만 바라라.” [조광 1941. 2]
“일본군 입대는 조선인의 의무이자 영광된 일” [조선일보 1938. 6. 15]
“국어(일본어) 해독자가 적어 황국신민의 의무를 다하지 못하고 있다. 국어(일본어)를 상용해야 한다.” [조광 1944. 8]
-홍난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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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6페이지
  • 등록일2005.11.15
  • 저작시기2005.11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3209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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