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들어가는 말
Ⅱ 불교의 역사
1. 부처의 생애
1.1 부처의 탄생
1.2 부처의 출가
1.3 부처의 깨달음
1.4 부처의 만년
2. 불교의 체계화
2.1 경전의 성립
2.2 마우리아 왕조
3. 불교의 전래
3.1 인도에서 중국으로
3.2 중국에서 한반도로
3.3 한반도에서 일본으로
Ⅲ 불교의 근본교리와 사상
1. 불교의 근본교리
1.1 사성제
1.1.1 고성제
1.1.2 집성제
1.1.3 멸성제
1.1.4 도성제
1.2 오온-무아
1.3 삼법인
1.3.1 제행무상인
1.3.2 제법무아인
1.3.3 열반적정인
1.4 일체법
1.4.1 오온
1.4.2 십이처
1.4.3 십팔계
1.5 윤회와 업
1.5.1 윤회
1.5.2 업
1.6 불교의 세계성과 보편성
2. 공사상
2.1 공의 의미
2.2 집착의 공
2.3 언어의 공
2.4 본체의 공
3. 선사상
3.1 출발점
3.2 선불교의 정신과 목적
3.3 선의 수행과 실천
3.3.1 선불교의 실천구조
3.3.2 선 수행의 구조
4. 요가
4.1 기원
4.2 상캬철학과 우파니샤드 사상
4.3 요가 수트라의 수행법
Ⅳ 불교의 상징들
1. 사찰의 상징들
2. 건물
2.1 불전
2.2 보살전
2.3 그 외 건물들
3. 건물 외에 가람을 이루는 것들
3.1 탑
3.2 사물(四物)
Ⅴ 나가는 말
Ⅱ 불교의 역사
1. 부처의 생애
1.1 부처의 탄생
1.2 부처의 출가
1.3 부처의 깨달음
1.4 부처의 만년
2. 불교의 체계화
2.1 경전의 성립
2.2 마우리아 왕조
3. 불교의 전래
3.1 인도에서 중국으로
3.2 중국에서 한반도로
3.3 한반도에서 일본으로
Ⅲ 불교의 근본교리와 사상
1. 불교의 근본교리
1.1 사성제
1.1.1 고성제
1.1.2 집성제
1.1.3 멸성제
1.1.4 도성제
1.2 오온-무아
1.3 삼법인
1.3.1 제행무상인
1.3.2 제법무아인
1.3.3 열반적정인
1.4 일체법
1.4.1 오온
1.4.2 십이처
1.4.3 십팔계
1.5 윤회와 업
1.5.1 윤회
1.5.2 업
1.6 불교의 세계성과 보편성
2. 공사상
2.1 공의 의미
2.2 집착의 공
2.3 언어의 공
2.4 본체의 공
3. 선사상
3.1 출발점
3.2 선불교의 정신과 목적
3.3 선의 수행과 실천
3.3.1 선불교의 실천구조
3.3.2 선 수행의 구조
4. 요가
4.1 기원
4.2 상캬철학과 우파니샤드 사상
4.3 요가 수트라의 수행법
Ⅳ 불교의 상징들
1. 사찰의 상징들
2. 건물
2.1 불전
2.2 보살전
2.3 그 외 건물들
3. 건물 외에 가람을 이루는 것들
3.1 탑
3.2 사물(四物)
Ⅴ 나가는 말
본문내용
붓다의 생애, 시공사, 1996, 29.
이렇게 부처가 태어난 직후, 히말라야 산에서 수행하고 있던 ‘아시타’라는 선인(仙人)이 왕자의 얼굴을 보고 그의 장래를 두 가지로 예언했다. 왕자가 왕위를 이을 경우 전 세계를 통일할 전륜성왕(轉輪聖王)이 될 것이고, 출가를 한다면 반드시 부처가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연로하여 부처가 설법할 때까지 살지 못하는 것을 한탄하며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참조 : 석지현(역), 불교경전 16 - 숫타니파타, 민족사, 1993, 173-177.
위의 이야기는 불교의 개조(開祖)인 ‘부처(佛陀, Buddha)’의 탄생 설화이다. 부처는 ‘석존’이라고도 호칭하는데 이 말은 ‘석가족 출신의 성자(석가모니)’라는 의미이다. 본래 부처라는 호칭은 ‘깨달은 사람(賢者)’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는 보통명사인데, 불교가 성행하면서 특별히 불교의 개조를 지칭하는 고유명사가 되었다. 부처의 본명은 고타마 싯다르타이며 아버지는 숫도다나(淨飯王)이고 어머니는 마야(摩耶)부인이었다. 부처가 태어난 곳은 지금의 네팔과 인도의 국경 부근인 히말라야 산기슭으로 어머니 마야부인의 고향 근처에 위치한 룸비니(Lumbini) 동산 현재 네팔의 룸비니주 카필라바스투 지구에 속하는 파데리아 촌락의 북방, 인도 비스티 지방의 투르와에서 동북방 5마일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참조 : 宮坂宥勝, 안양규(역), 만다라총서2 - 부처님의 생애, 47.)
이다. 후에 아소카 왕이 부처의 성지를 순례하면서 이곳에 탑과 석주를 세웠다. 중국의 현장(玄)도 그곳을 방문하였다는 기록을 남겼으며 1896년에 실제로 아소카왕의 석주가 발견되고 비문이 해독되어 그곳이 부처의 탄생지였음이 확인되었다. 부처의 생존연대에 대해서는 여러 학설이 있으나 대체로 기원전 6세기에 탄생하고 기원전 480년경에 입멸한 것으로 보고 있다.
1.2 부처의 출가
전승에 의하면 부처는 석가국을 지배하고 있었던 숫도다나를 아버지로 하고 마야부인을 어머니로 하여 태어났다. 그리고 어릴 때 이름을 싯다르타(義成)로 불렀으며 성씨는 고타마(瞿曇)였다. 부처가 성장하여 청년 시기를 보내고 곧 결혼생활에 들어갔던 무대는 석가족의 가비라위성(迦毘羅衛城, 카필라밧투)이었다. 부왕은 아들을 위해서 세 곳에 궁전을 세웠는데, 하나는 우기를 보내기 위한 것이었고, 하나는 여름을 보내기 위한 것이었으며, 또 하나는 겨울을 보내기 위한 것이었다. 그리고 각 궁전에는 모든 놀이 시설을 갖추어 놓았다. 이곳에서 왕자는 여자 악사들에게 둘러싸여 음악을 즐기느라 위층에서 아래층으로 내려오지 않았다고 한다.
부처 스스로도 극도의 사치를 했었던 청년시절의 왕궁생활을 회상하고 있지만, 이 내용을 그대로 받아들이기에 앞서 이러한 생활을 하였던 것은 마우리아 왕조 이후의 왕족들이 궁전에서 생활하는 모습을 투영한 것임을 알아야 한다. 현대의 연구 결과에 의하면 당시의 석가족은 왕정 제도를 갖추고 있던 나라가 아니라 코살라국에 예속된 하나의 작은 부족에 지나지 않았음이 밝혀졌다. 앞의 의견에 따르면, 부처는 석가족 족장의 가문 출신으로 아버지는 전설과 같이 숫도다나라고 불리었는데, ‘좋은 밥’이라는 이름 그대로 쌀을 생산하는 농경부족의 수장이었을 것으로 본다. 현재의 이 지역은 아직도 수전(水田) 경작을 하는 지역이다. 따라서 부처의 신분이 왕자였고 날마다 향락의 생활을 누렸다고 하는 전설은 아마도 인생의 허망함을 느끼고 속세를 벗어난 부처의 모습을 더욱 부각시키려는 후대의 덧붙임일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부처가 향락을 즐기던 시절을 배경으로 하는 사문유관(四門遊觀) 부처가 태자였을 때, 가비라성의 사방의 성문을 나오다가 늙음(東), 병듦(南), 죽음(西)을 접하고 번민하다가 북문에서 수행자를 만난 뒤 출가를 결심하였다는 이야기.
의 이야기는 생로병사의 사고(四苦)를 설한 부처의 가르침이 그대로 투영되고 있음은 분명하다.
1.3 부처의 깨달음
부처는 출가 이후 당시의 유명한 종교가였던 알라라 칼라마와 웃다카 라마풋타를 차례로 찾아가 수행하였다. 그러나 두 사람의 방법으로는 진리를 얻을 수 없음을 느끼고 숲으로 들어가 홀로 수행을 계속한다. 그는 호흡을 멈추고 정신을 집중하는 선(禪)을 행했고, 서서히 음식을 끊는 절식과 단식을 행하여 온 몸이 마르고 뼈가 드러나는 고행을 하였으나 이 두 가지 방법으로도 진리를 얻지 못하였다. 고통을 극도로 체험하는 길에서 깨달음을 얻지 못한 부처는 출가하기 전 아버지와 함께 있을 때 명상에 잠겨 기쁨을 얻었었던 경험을 살려 초선정(初禪定)의 방법을 사용한다. 네 번의 선정이 지난 후, 부처는 전생의 기억을 더듬기 시작하였다. 과거의 생애를 모두 기억해 낸 부처에게 첫 번째 밤에 첫 번째 깨달음이 왔다. 계속해서 부처는 윤회하는 모든 것을 바라보면서 두 번째 깨달음을 얻었다. 윤회하는 모든 것을 바라보며 마음의 때를 모두 제거한 부처는 괴로움을 없애는 데 마음을 집중한다.
“나는 진실을 있는 그대로 깨달았다.
‘이것이 괴로움이다.’
나는 진실을 있는 그대로 깨달았다.
‘이것이 괴로움의 원인이다.’
나는 진실을 있는 그대로 깨달았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이다.’
나는 진실을 있는 그대로 깨달았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이다.’
나는 진실을 있는 그대로 깨달았다.
‘이것이 번뇌이다.’
나는 진실을 있는 그대로 깨달았다.
‘이것이 번뇌의 원인이다.’
나는 진실을 있는 그대로 깨달았다.
‘이것이 번뇌의 소멸이다.’
나는 진실을 있는 그대로 깨달았다.
‘이것이 번뇌의 소멸에 이르는 길이다.’
그렇게 알고 그렇게 보니 내 마음은 감각적 인생이 갈망하던 환상으로부터, 존재들이 갈망하던 환상으로부터, 그리고 무지에서 오는 환상으로부터 자유로워졌다.
그러한 자유에서 자각이 일어났다.
‘이제 나에게 윤회는 없다. 성스러운 삶은 완성되었다.’” E.H.브루스터 편저, 시공불교총서1 - 고타마 붓다의 생애, 55-56. (참조 : 이것은 Majjhima-nikaya의 제 36경에 수록된 것으로 부처가 악기벳사나에게 자신의 깨달음을 추구하던 모습을 설법한 내용.)
깨달음이 있은 뒤에 부처는 고향에 돌아가서 다음과 같이
이렇게 부처가 태어난 직후, 히말라야 산에서 수행하고 있던 ‘아시타’라는 선인(仙人)이 왕자의 얼굴을 보고 그의 장래를 두 가지로 예언했다. 왕자가 왕위를 이을 경우 전 세계를 통일할 전륜성왕(轉輪聖王)이 될 것이고, 출가를 한다면 반드시 부처가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연로하여 부처가 설법할 때까지 살지 못하는 것을 한탄하며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참조 : 석지현(역), 불교경전 16 - 숫타니파타, 민족사, 1993, 173-177.
위의 이야기는 불교의 개조(開祖)인 ‘부처(佛陀, Buddha)’의 탄생 설화이다. 부처는 ‘석존’이라고도 호칭하는데 이 말은 ‘석가족 출신의 성자(석가모니)’라는 의미이다. 본래 부처라는 호칭은 ‘깨달은 사람(賢者)’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는 보통명사인데, 불교가 성행하면서 특별히 불교의 개조를 지칭하는 고유명사가 되었다. 부처의 본명은 고타마 싯다르타이며 아버지는 숫도다나(淨飯王)이고 어머니는 마야(摩耶)부인이었다. 부처가 태어난 곳은 지금의 네팔과 인도의 국경 부근인 히말라야 산기슭으로 어머니 마야부인의 고향 근처에 위치한 룸비니(Lumbini) 동산 현재 네팔의 룸비니주 카필라바스투 지구에 속하는 파데리아 촌락의 북방, 인도 비스티 지방의 투르와에서 동북방 5마일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참조 : 宮坂宥勝, 안양규(역), 만다라총서2 - 부처님의 생애, 47.)
이다. 후에 아소카 왕이 부처의 성지를 순례하면서 이곳에 탑과 석주를 세웠다. 중국의 현장(玄)도 그곳을 방문하였다는 기록을 남겼으며 1896년에 실제로 아소카왕의 석주가 발견되고 비문이 해독되어 그곳이 부처의 탄생지였음이 확인되었다. 부처의 생존연대에 대해서는 여러 학설이 있으나 대체로 기원전 6세기에 탄생하고 기원전 480년경에 입멸한 것으로 보고 있다.
1.2 부처의 출가
전승에 의하면 부처는 석가국을 지배하고 있었던 숫도다나를 아버지로 하고 마야부인을 어머니로 하여 태어났다. 그리고 어릴 때 이름을 싯다르타(義成)로 불렀으며 성씨는 고타마(瞿曇)였다. 부처가 성장하여 청년 시기를 보내고 곧 결혼생활에 들어갔던 무대는 석가족의 가비라위성(迦毘羅衛城, 카필라밧투)이었다. 부왕은 아들을 위해서 세 곳에 궁전을 세웠는데, 하나는 우기를 보내기 위한 것이었고, 하나는 여름을 보내기 위한 것이었으며, 또 하나는 겨울을 보내기 위한 것이었다. 그리고 각 궁전에는 모든 놀이 시설을 갖추어 놓았다. 이곳에서 왕자는 여자 악사들에게 둘러싸여 음악을 즐기느라 위층에서 아래층으로 내려오지 않았다고 한다.
부처 스스로도 극도의 사치를 했었던 청년시절의 왕궁생활을 회상하고 있지만, 이 내용을 그대로 받아들이기에 앞서 이러한 생활을 하였던 것은 마우리아 왕조 이후의 왕족들이 궁전에서 생활하는 모습을 투영한 것임을 알아야 한다. 현대의 연구 결과에 의하면 당시의 석가족은 왕정 제도를 갖추고 있던 나라가 아니라 코살라국에 예속된 하나의 작은 부족에 지나지 않았음이 밝혀졌다. 앞의 의견에 따르면, 부처는 석가족 족장의 가문 출신으로 아버지는 전설과 같이 숫도다나라고 불리었는데, ‘좋은 밥’이라는 이름 그대로 쌀을 생산하는 농경부족의 수장이었을 것으로 본다. 현재의 이 지역은 아직도 수전(水田) 경작을 하는 지역이다. 따라서 부처의 신분이 왕자였고 날마다 향락의 생활을 누렸다고 하는 전설은 아마도 인생의 허망함을 느끼고 속세를 벗어난 부처의 모습을 더욱 부각시키려는 후대의 덧붙임일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부처가 향락을 즐기던 시절을 배경으로 하는 사문유관(四門遊觀) 부처가 태자였을 때, 가비라성의 사방의 성문을 나오다가 늙음(東), 병듦(南), 죽음(西)을 접하고 번민하다가 북문에서 수행자를 만난 뒤 출가를 결심하였다는 이야기.
의 이야기는 생로병사의 사고(四苦)를 설한 부처의 가르침이 그대로 투영되고 있음은 분명하다.
1.3 부처의 깨달음
부처는 출가 이후 당시의 유명한 종교가였던 알라라 칼라마와 웃다카 라마풋타를 차례로 찾아가 수행하였다. 그러나 두 사람의 방법으로는 진리를 얻을 수 없음을 느끼고 숲으로 들어가 홀로 수행을 계속한다. 그는 호흡을 멈추고 정신을 집중하는 선(禪)을 행했고, 서서히 음식을 끊는 절식과 단식을 행하여 온 몸이 마르고 뼈가 드러나는 고행을 하였으나 이 두 가지 방법으로도 진리를 얻지 못하였다. 고통을 극도로 체험하는 길에서 깨달음을 얻지 못한 부처는 출가하기 전 아버지와 함께 있을 때 명상에 잠겨 기쁨을 얻었었던 경험을 살려 초선정(初禪定)의 방법을 사용한다. 네 번의 선정이 지난 후, 부처는 전생의 기억을 더듬기 시작하였다. 과거의 생애를 모두 기억해 낸 부처에게 첫 번째 밤에 첫 번째 깨달음이 왔다. 계속해서 부처는 윤회하는 모든 것을 바라보면서 두 번째 깨달음을 얻었다. 윤회하는 모든 것을 바라보며 마음의 때를 모두 제거한 부처는 괴로움을 없애는 데 마음을 집중한다.
“나는 진실을 있는 그대로 깨달았다.
‘이것이 괴로움이다.’
나는 진실을 있는 그대로 깨달았다.
‘이것이 괴로움의 원인이다.’
나는 진실을 있는 그대로 깨달았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이다.’
나는 진실을 있는 그대로 깨달았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이다.’
나는 진실을 있는 그대로 깨달았다.
‘이것이 번뇌이다.’
나는 진실을 있는 그대로 깨달았다.
‘이것이 번뇌의 원인이다.’
나는 진실을 있는 그대로 깨달았다.
‘이것이 번뇌의 소멸이다.’
나는 진실을 있는 그대로 깨달았다.
‘이것이 번뇌의 소멸에 이르는 길이다.’
그렇게 알고 그렇게 보니 내 마음은 감각적 인생이 갈망하던 환상으로부터, 존재들이 갈망하던 환상으로부터, 그리고 무지에서 오는 환상으로부터 자유로워졌다.
그러한 자유에서 자각이 일어났다.
‘이제 나에게 윤회는 없다. 성스러운 삶은 완성되었다.’” E.H.브루스터 편저, 시공불교총서1 - 고타마 붓다의 생애, 55-56. (참조 : 이것은 Majjhima-nikaya의 제 36경에 수록된 것으로 부처가 악기벳사나에게 자신의 깨달음을 추구하던 모습을 설법한 내용.)
깨달음이 있은 뒤에 부처는 고향에 돌아가서 다음과 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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