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서 언
Ⅱ. 생명법학의 위상
Ⅲ. 생명과학의 발달과 법의 대응
Ⅱ. 생명법학의 위상
Ⅲ. 생명과학의 발달과 법의 대응
본문내용
자, 난자 및 수정란에 대한 유전자분석에 대하여는 형법의 해석상 상해죄가 성립하지 않는다. 개인 유전정보에 관하여는 현행 형법상으로는 일정한 신분자(의사등)에 한하여 이를 누설할 경우에는 업무상비밀누설죄가 성립한다(형법 제318조). 업무상비밀누설죄는 행위의 주체가 제한되어 있어서 일정한 신분자가 업무처리중 지득한 타인의 비밀을 누설할 때 성립하고, 일반인에 의할 경우는 성립하지 않는다. 유전공학의 발달로 유전자분석은 이미 의사 등 특정신분을 가진 자만이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며, 일반 실험실에서도 가능해졌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이에 관한 포괄적 처벌규정을 두어야 하리라고 생각된다.
태아진단에 의한 출생의 선택행위에 있어서 우선 태아의 성감별에 대하여는 이미 현행 <의료법>에 금지규정(제19조의 2)을 두고 있다. 따라서 이에 대하여는 우리나라 특유의 남아선호사상에도 불구하고 금지되어야 한다는 외견상의 사회적 합의가 존재하고 있는 셈이다.
다음으로 유전적 질환에 의한 선별적 임신중절에 대하여는 이를 허용하는 현행 모자보건법상의 이른바 '우생학적 적응' 규정이 존재하고 있다. 이 규정의 당부는 논외로 한다면, 현재 '대통령령이 정하는 우생학적 또는 유전학적 정신장애나 신체질환이 있는 경우'(제14조 1항 1호)에는 임신중절을 허용하고 있다. 따라서 이 한계내에서는 선별적 임신중절이 허용된다.
V. 결론에 대신하여
법은 사회의 가치의 합의를 표현한다. 그러나 생명과학의 눈부신 발전에 대하여 사회 일반의 의식은 이에 관한 가치합의를 보지 못하고 있으며 오히려 법의 결단을 통한 가치(합의)의 향도를 바라고 있는 것 같이 생각되기도 한다. 그러나 법은 다른 사회규범과는 다른 성질을 가진다. 법은 강제적 관철력을 가진 규범이기 때문에 법을 제정함으로써 일정한 행위규범을 정립하고 행위를 향도하기 위하여는 세심한 고찰이 필요하다.
생명과학의 눈부신 발달에 비하여 이에 대한 법의 대응은 이와 같이 기민하지 못하고, 느린 감이 있다. 이것은 법의 제정자가 생명과학의 출현에 따라 새로운 규제원리를 우선적으로 모색하는 것이 아니라, 헌법적 확인을 거친 합의된 가치관의 틀 속에서 새로운 사태 전개를 관찰하여 헌법원리의 구현가능성을 찾고 이를 관철시키려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충격적인 새로운 사태가 발생하였을 때 우선 법률의 제정을 요구하고 이를 통해서 행위규범을 얻고자 하는 태도는 지나치게 성급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생명과학의 성과가 이 기존의 법제도 내지 법의 틀 속에서 대응할 수 있는 한은 이 한에서 대응을 하여야 하며, 하나의 사건이 나타날 때 마다 하나의 법을 낳는 일은 실효적이지도 않고 타당하지도 않다. 법을 제정하는 일은 사회적 비용을 별로 들이지 않고 문제를 해결한 것과 같은 착각을 불러 일으킬 수 있다. 인간복제를 금지하고 이러한 행위를 처벌하는 법을 제정한다고 하여 인간복제가 실험실에서 전혀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은 지나치게 단순한 생각이다. 이 경우 연구자, 의사 등 전문가의 자체 통제가 가능하게 하여야 한다. 따라서 연구자 공동체, 즉 연구조직이나 병원 별로 조직되어 있는 윤리위원회의 통제기능을 강화하여야 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기구는 통제뿐 아니라 규범적 결정을 하는 경우도 있다. 즉 사안에 대한 의견이 갈려서 획일적인 보편적 규범을 도출해 내기 어려울 때에는 이 기구에서 논의를 하고 결정을 내려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합리적으로 마련된 논의의 장에서 충분한 참여와 논의의 절차를 거친 후에 얻은 결론은 결정으로서 존중해야 할 것이다. 설사 이것이 극심한 가치관의 대립 속에서 이루어진 것이고 따라서 반론의 가능성이 전제되어 있는 것이어서, 다시 반대론이 우위에 놓이는 것도 항상 잠정적인 것이라 하더라도 이러한 결정은 당해 사안에 관한 그 사회의 합리적인 결정으로서 당분간은 존중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결단의 칼자루를 쥔 것 같이 보이는 법은 오히려 나름의 합리적인 의견개진의 장으로 작용하고 있다. 생명과학의 제 측면을 고찰하고 전체적으로 법적 통제를 최소한에 그쳐야 한다고 주장하는 Roger Dworkin과 같은 학자는 '법은 절차이다'라고 주장하면서, 제도적으로 확립된 절차속에서 법적 논의의 방법으로 문제를 대부분 해소할 수 있음을 주장한다. 이는 '법철학이 힘은 없지만 실천이성이라는 패를 가지고 있다'고 강조하는 카우프만의 주장과도 상통한다. 이러한 실천이성의 발현의 장이야 말로 법의 장인 것이다. 따라서 법에 대하여 조급하게 행동강령을 제시하라는 식의 요구는 사실에 대하여 더 파악하고 그 해악에 대하여 더 조사하고 그리고 결단을 내릴 합의를 한다는 태도에 자리를 내주어야 할 것이다. 따라서 법정에서는 물론, 생명과학의 갈 길을 모색하는 장에서도, 입법의 과정에서도, 전문가와 합리적인 장의 형성을 통하여 합의가능한 법적 판단을 이끌어 낼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생명과학의 발달에 따라 법의 대응양상으로서의 생명법(학)이라는 것을 생각할 수 있다면, 그것은 반생명과학의 법학은 아니다. 그것은 우선 우리가 합의를 가지고 그 위에 질서를 세우고 있는 헌법상의 인간상을 전제로 하여, 인간의 존엄을 침해-훼손하지 않는 틀 안에서 과학의 발달을 수용하는 형태의 법이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법은 따라서 현재의 헌법을 정점으로 한 각 법 영역에서 형성되어 존재하고 있는 원리들을 재확인하고 이를 토대로 편성된 법제도의 구체적 해석을 통하여 해결할 수 있으며, 생명법학에서 법해석 내지 적용으로서가 아니라 입법이 필요한 부분은 바로 이러한 법영역에서 명확히 하지 못한 분야들에 대하여는 입법을 통해서 허용과 금지의 틀을 정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예컨대 잉여수정란의 이용과 관리에 관하여는 이를 단순히 적출물이나 폐기물 또는 재물에 준하여 다룰 것이 아니라 별도의 지위를 부여할 필요가 있을지를 검토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생명법이란 결국 생명과학의 발달을 규범적 테두리 내에서 향도하여 자연과학적 인식관심 속에 맹목성이 있을 수 있음을 환기하는 한편, 무조건적인 윤리감의 관철로 현대의 삶을 공허화하지 않는 조화의 시도 그것에 다름 아니라 할 것이다.
태아진단에 의한 출생의 선택행위에 있어서 우선 태아의 성감별에 대하여는 이미 현행 <의료법>에 금지규정(제19조의 2)을 두고 있다. 따라서 이에 대하여는 우리나라 특유의 남아선호사상에도 불구하고 금지되어야 한다는 외견상의 사회적 합의가 존재하고 있는 셈이다.
다음으로 유전적 질환에 의한 선별적 임신중절에 대하여는 이를 허용하는 현행 모자보건법상의 이른바 '우생학적 적응' 규정이 존재하고 있다. 이 규정의 당부는 논외로 한다면, 현재 '대통령령이 정하는 우생학적 또는 유전학적 정신장애나 신체질환이 있는 경우'(제14조 1항 1호)에는 임신중절을 허용하고 있다. 따라서 이 한계내에서는 선별적 임신중절이 허용된다.
V. 결론에 대신하여
법은 사회의 가치의 합의를 표현한다. 그러나 생명과학의 눈부신 발전에 대하여 사회 일반의 의식은 이에 관한 가치합의를 보지 못하고 있으며 오히려 법의 결단을 통한 가치(합의)의 향도를 바라고 있는 것 같이 생각되기도 한다. 그러나 법은 다른 사회규범과는 다른 성질을 가진다. 법은 강제적 관철력을 가진 규범이기 때문에 법을 제정함으로써 일정한 행위규범을 정립하고 행위를 향도하기 위하여는 세심한 고찰이 필요하다.
생명과학의 눈부신 발달에 비하여 이에 대한 법의 대응은 이와 같이 기민하지 못하고, 느린 감이 있다. 이것은 법의 제정자가 생명과학의 출현에 따라 새로운 규제원리를 우선적으로 모색하는 것이 아니라, 헌법적 확인을 거친 합의된 가치관의 틀 속에서 새로운 사태 전개를 관찰하여 헌법원리의 구현가능성을 찾고 이를 관철시키려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충격적인 새로운 사태가 발생하였을 때 우선 법률의 제정을 요구하고 이를 통해서 행위규범을 얻고자 하는 태도는 지나치게 성급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생명과학의 성과가 이 기존의 법제도 내지 법의 틀 속에서 대응할 수 있는 한은 이 한에서 대응을 하여야 하며, 하나의 사건이 나타날 때 마다 하나의 법을 낳는 일은 실효적이지도 않고 타당하지도 않다. 법을 제정하는 일은 사회적 비용을 별로 들이지 않고 문제를 해결한 것과 같은 착각을 불러 일으킬 수 있다. 인간복제를 금지하고 이러한 행위를 처벌하는 법을 제정한다고 하여 인간복제가 실험실에서 전혀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은 지나치게 단순한 생각이다. 이 경우 연구자, 의사 등 전문가의 자체 통제가 가능하게 하여야 한다. 따라서 연구자 공동체, 즉 연구조직이나 병원 별로 조직되어 있는 윤리위원회의 통제기능을 강화하여야 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기구는 통제뿐 아니라 규범적 결정을 하는 경우도 있다. 즉 사안에 대한 의견이 갈려서 획일적인 보편적 규범을 도출해 내기 어려울 때에는 이 기구에서 논의를 하고 결정을 내려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합리적으로 마련된 논의의 장에서 충분한 참여와 논의의 절차를 거친 후에 얻은 결론은 결정으로서 존중해야 할 것이다. 설사 이것이 극심한 가치관의 대립 속에서 이루어진 것이고 따라서 반론의 가능성이 전제되어 있는 것이어서, 다시 반대론이 우위에 놓이는 것도 항상 잠정적인 것이라 하더라도 이러한 결정은 당해 사안에 관한 그 사회의 합리적인 결정으로서 당분간은 존중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결단의 칼자루를 쥔 것 같이 보이는 법은 오히려 나름의 합리적인 의견개진의 장으로 작용하고 있다. 생명과학의 제 측면을 고찰하고 전체적으로 법적 통제를 최소한에 그쳐야 한다고 주장하는 Roger Dworkin과 같은 학자는 '법은 절차이다'라고 주장하면서, 제도적으로 확립된 절차속에서 법적 논의의 방법으로 문제를 대부분 해소할 수 있음을 주장한다. 이는 '법철학이 힘은 없지만 실천이성이라는 패를 가지고 있다'고 강조하는 카우프만의 주장과도 상통한다. 이러한 실천이성의 발현의 장이야 말로 법의 장인 것이다. 따라서 법에 대하여 조급하게 행동강령을 제시하라는 식의 요구는 사실에 대하여 더 파악하고 그 해악에 대하여 더 조사하고 그리고 결단을 내릴 합의를 한다는 태도에 자리를 내주어야 할 것이다. 따라서 법정에서는 물론, 생명과학의 갈 길을 모색하는 장에서도, 입법의 과정에서도, 전문가와 합리적인 장의 형성을 통하여 합의가능한 법적 판단을 이끌어 낼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생명과학의 발달에 따라 법의 대응양상으로서의 생명법(학)이라는 것을 생각할 수 있다면, 그것은 반생명과학의 법학은 아니다. 그것은 우선 우리가 합의를 가지고 그 위에 질서를 세우고 있는 헌법상의 인간상을 전제로 하여, 인간의 존엄을 침해-훼손하지 않는 틀 안에서 과학의 발달을 수용하는 형태의 법이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법은 따라서 현재의 헌법을 정점으로 한 각 법 영역에서 형성되어 존재하고 있는 원리들을 재확인하고 이를 토대로 편성된 법제도의 구체적 해석을 통하여 해결할 수 있으며, 생명법학에서 법해석 내지 적용으로서가 아니라 입법이 필요한 부분은 바로 이러한 법영역에서 명확히 하지 못한 분야들에 대하여는 입법을 통해서 허용과 금지의 틀을 정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예컨대 잉여수정란의 이용과 관리에 관하여는 이를 단순히 적출물이나 폐기물 또는 재물에 준하여 다룰 것이 아니라 별도의 지위를 부여할 필요가 있을지를 검토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생명법이란 결국 생명과학의 발달을 규범적 테두리 내에서 향도하여 자연과학적 인식관심 속에 맹목성이 있을 수 있음을 환기하는 한편, 무조건적인 윤리감의 관철로 현대의 삶을 공허화하지 않는 조화의 시도 그것에 다름 아니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