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목차--
서론 -경산시 문화재에 대하여 인식
본론 - 경산시 문화재 탐방
제1절 국가 지정문화재
제 2 절 도지정 문화재
제 3 절 기타 문화 유적
제 4 절 관광상품화 방안
결론 - 내가 경산시 문화재에 대해 공부하고 나서 종합하여 결론내림.
서론 -경산시 문화재에 대하여 인식
본론 - 경산시 문화재 탐방
제1절 국가 지정문화재
제 2 절 도지정 문화재
제 3 절 기타 문화 유적
제 4 절 관광상품화 방안
결론 - 내가 경산시 문화재에 대해 공부하고 나서 종합하여 결론내림.
본문내용
르게 하였는는데, 여기서는 같은 높이로 처리하고 있어 주목된다.
선본암 삼층석탑
지정번호: 경북 유형문화재 제 115호
지정연도: 1979년 1월25일
소재지: 경북 경산시 와촌면 대한리 산 41
시대: 통일신라시대
분류: 석탑
경상북도 경산시 와촌면 대한리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석탑 1979년 1월 25일 경상북도유형문화재 제115호로 지정되었다. 491년에 극달대사가 창건한 선본사에서 소유, 관리한다. 삼층석탑은 선본사와 관통여래석조좌상 사이의 산기슭 능선에 보존되고 있는 석탑으로 이중 기단 위에 방형의 3층 탑신부를 세웠다. 상하 기단에는 탱주와 우주가 새겨져 있으며 옥개석에는 5단 받침에 2단 괴임을 조각하였다.간결하면서도 장중함을 보이는 이 탑은 도굴로 무너진 것을 1979년에 복원한 것이다. 원래 1층 탑신에 사리공과 사리함이 있었으나 도굴되어 없어졌고, 탑 주변에 석등의 유물인 석등연화대석(石燈蓮花臺石)과 팔각옥개석(八角屋蓋石) 등이 있다.
제 3 절 기타 문화 유적
1.천성사
문화재등록번호 :
소재지 : 경산시 와촌면 대리 산 30-1
참고문헌 : 경산문화유적총람팔공산 동편 능선에 자리잡고 있으며, 확실한 창건연대는 전해지지 않으나, 신라 흥덕왕 때 의상대사가 창건하였다고 전한다. 사방 어느 곳에서 바라보아도 바위암반이 가리워져 사찰을 찾지 못하는게 특징이다. 법당의 창건기로 미루어보면, 관음전은 1959년에 신축하여 이듬해 단청을 하였으며, 요사체는 1954에, 산령각은 1960년에 신축한 것이다.
2. 하양포교당.
문화재등록번호 :
소재지 : 경산시 하양읍 도리리 91-2
참고문헌 : 경산문화유적총람
1927년 영천 은해사에서 중수, 포교당으로 활용하였던 것이 현재에 이른다. 창건연대와 창건자는 밝혀지지 않으나 조선시대 건물로서 객사로 활용되어 오던 것을1927년 영천 은해사에서 중수하여 하양포교당으로 활용하여 왔다. 1927년에 중수한 극락전과 1974년에 창건한 칠성각이 있다. 극락전에 봉안된 석조불상은 이 절의 창건주라 전하는 은해사 주지를지낸 지석담스님이 은해사에서 모셔 왔다는데 불상의 조각 기법으로 보아 고려말 또는 조선초기의 것으로 추정된다. 좌측의 관음보살과 우측의 지장보살은 1970년 일섭스님이 조성하였고, 범종은 1970년 동호스님이 조성했다고 한다. 1982년에는 경우스님이 태국에서 모셔운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당시 주지 심수스님이 5층 석탑을 조성하여 봉안하고 있다.
3.반룡사
문화재등록번호 :
소재지 : 경산시 용성면 용전리 118
참고문헌 : 경산문화유적총람
신라문무왕대에 원효대사가 창건한 사찰로 알려지고 있으며 지금의 건물은 그 후대에 중수한 것이다. 구룡산 자락에 있는 반룡사는 현재는 대웅전과 가건물인 요사채만이 잇는 아주 작고 쇠락한 모습이다. 신라왕을 비롯하여 왕후 왕녀가 이 절을 자주 찾았는데 드 때 경주에서 왕이 넘어 왔다고 전하는 고개를 지금도 왕재라고 부르고 있다. 고려 문종시대에는 화엄 천태종의 고승으로 운문사 주지를 지낸 원응 국사가 이곳에 주석하며 대중창을 하여, 고승 대덕이 구름처럼 모이고 석학 명사가 줄을 이어 찾아들었다고 한다. 『동국여지승람』에 보면 고려중기의 대표적인 석학 이인로 선생도 반룡사를 찾아\"봄은 가도 꽃은 아름답게 피어있고 맑은 하늘 깊은 골에 간직한 마음을 비로소 느끼게 하네.\"라는 감회어린 시를 남긴 바 있다. 고려말기의 몽고의 행패와 어지러운 정치시대를 거쳐 조선에 들어서 쇠퇴의 일로를 걷다가 급기야는 임진왜란을 만나 대가람이 하루 아침에 소실되었다. 그 후 조선 인조 19년(서기 1641)에 계운명언대사가 중창하였으며, 부속암자로 내원암벽운암대적암은서암아적암 등 다섯 암자도 중창 또는 창건되었다. 그러나 조선 말기 흑시한 배불정책과 지방이속의 행패로 줄지어 없어지고 지금의 건물은 화재 이후 신도들의 발원과 뜨거운 신심으로 겨우 지어지고 지금도 사찰 중흥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중이다. 현전하는 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 겹처마 팔작지붕이다. 이 대웅전에 봉안된 삼존불 중 모조관세음보살상과 재세지보살상은 화재 이후 청도의 모사찰에 옮겨져 있으며, 범종 또한 보경사에 옮겼다고 한다. 현불상은 향나무로 조성한 것인데 그 규모가 크고 상호가 원만하다. 절 주변에는 창건 당시의 것으로 추정되는 주춧돌과 화재시 부서진 석불 조각, 고승의 부도 조각들이 군데군데 흩어져 있으며, 유일하게 \"법성당태민대사지탑\"이라 새겨진 부도 한 기가 전한다.
제 4 절 관광상품화 방안
첫째, 관광문화재공원 및 관광민박사업에 대한 정책 및 제도개선, 시설설치 규정 개선등 시대 여건변화에 탄력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제도적 적응장치와 함께 뒷받침이 있어야 할 것이다.
둘째, 관광문화재공원의 전문화 특성화가 요구된다. 지역적 특성을 가미하여 문화재 및 민박마을등 문화재가 가진 특성과 이에 다양한 기능을 잘 살려서 지역의 문화재들이 지닌 고유한 자원들을 제공하며 체험할 수 있게 하여야 할 것이다. 따라서 현행의 식당, 휴게소, 주차장 등의 소비시설 집중 설치와 도시적 위락시설을 거대로 이 지역에 옮겨다 놓은 듯한 모습은 문화재와 문화재민박마을을 이용하는 이용자들의 다양한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셋째, 문화재에 대한 경영능력 및 경영활성화 노력을 돕기 위해 문화재, 민박사업의 이해를 목적으로 하는 자료집이나 교육의 기회를 늘려야 하고 새로운 경영 기법을 위해 외부와의 연계가 필요하다고 본다.
결론
나는 이상으로 내가 지금 대구대학교 다니면서 현재 거주하고 있는 경산시의 모든 문화재와 관광상품들을 심도있게 연구하고 탐구하고 공부하면서 내가 전공하고 있는 관광학과 밀접하게 연결시켜 더욱더 재미있게 공부할수 있었다. 앞으로 경산시 뿐만아니라 우리나라 전체 문화재와 관광상품들을 내가 스스로 조사하여 연구하고 공부하여 내가 앞으로 사회에 진출했을 때 관광학쪽으로 취업했을 때 나에게 있어서 이런것들이 큰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큰 바램이다. 아울러 나는 앞으로 관광학 쪽으로 더욱더 열심히 공부하고 심도있게 탐구하여 앞으로 우리나라 관광산업의 발전에 기여할수 있는 사회인이 되고자하는 작은 소망이 있다.
선본암 삼층석탑
지정번호: 경북 유형문화재 제 115호
지정연도: 1979년 1월25일
소재지: 경북 경산시 와촌면 대한리 산 41
시대: 통일신라시대
분류: 석탑
경상북도 경산시 와촌면 대한리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석탑 1979년 1월 25일 경상북도유형문화재 제115호로 지정되었다. 491년에 극달대사가 창건한 선본사에서 소유, 관리한다. 삼층석탑은 선본사와 관통여래석조좌상 사이의 산기슭 능선에 보존되고 있는 석탑으로 이중 기단 위에 방형의 3층 탑신부를 세웠다. 상하 기단에는 탱주와 우주가 새겨져 있으며 옥개석에는 5단 받침에 2단 괴임을 조각하였다.간결하면서도 장중함을 보이는 이 탑은 도굴로 무너진 것을 1979년에 복원한 것이다. 원래 1층 탑신에 사리공과 사리함이 있었으나 도굴되어 없어졌고, 탑 주변에 석등의 유물인 석등연화대석(石燈蓮花臺石)과 팔각옥개석(八角屋蓋石) 등이 있다.
제 3 절 기타 문화 유적
1.천성사
문화재등록번호 :
소재지 : 경산시 와촌면 대리 산 30-1
참고문헌 : 경산문화유적총람팔공산 동편 능선에 자리잡고 있으며, 확실한 창건연대는 전해지지 않으나, 신라 흥덕왕 때 의상대사가 창건하였다고 전한다. 사방 어느 곳에서 바라보아도 바위암반이 가리워져 사찰을 찾지 못하는게 특징이다. 법당의 창건기로 미루어보면, 관음전은 1959년에 신축하여 이듬해 단청을 하였으며, 요사체는 1954에, 산령각은 1960년에 신축한 것이다.
2. 하양포교당.
문화재등록번호 :
소재지 : 경산시 하양읍 도리리 91-2
참고문헌 : 경산문화유적총람
1927년 영천 은해사에서 중수, 포교당으로 활용하였던 것이 현재에 이른다. 창건연대와 창건자는 밝혀지지 않으나 조선시대 건물로서 객사로 활용되어 오던 것을1927년 영천 은해사에서 중수하여 하양포교당으로 활용하여 왔다. 1927년에 중수한 극락전과 1974년에 창건한 칠성각이 있다. 극락전에 봉안된 석조불상은 이 절의 창건주라 전하는 은해사 주지를지낸 지석담스님이 은해사에서 모셔 왔다는데 불상의 조각 기법으로 보아 고려말 또는 조선초기의 것으로 추정된다. 좌측의 관음보살과 우측의 지장보살은 1970년 일섭스님이 조성하였고, 범종은 1970년 동호스님이 조성했다고 한다. 1982년에는 경우스님이 태국에서 모셔운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당시 주지 심수스님이 5층 석탑을 조성하여 봉안하고 있다.
3.반룡사
문화재등록번호 :
소재지 : 경산시 용성면 용전리 118
참고문헌 : 경산문화유적총람
신라문무왕대에 원효대사가 창건한 사찰로 알려지고 있으며 지금의 건물은 그 후대에 중수한 것이다. 구룡산 자락에 있는 반룡사는 현재는 대웅전과 가건물인 요사채만이 잇는 아주 작고 쇠락한 모습이다. 신라왕을 비롯하여 왕후 왕녀가 이 절을 자주 찾았는데 드 때 경주에서 왕이 넘어 왔다고 전하는 고개를 지금도 왕재라고 부르고 있다. 고려 문종시대에는 화엄 천태종의 고승으로 운문사 주지를 지낸 원응 국사가 이곳에 주석하며 대중창을 하여, 고승 대덕이 구름처럼 모이고 석학 명사가 줄을 이어 찾아들었다고 한다. 『동국여지승람』에 보면 고려중기의 대표적인 석학 이인로 선생도 반룡사를 찾아\"봄은 가도 꽃은 아름답게 피어있고 맑은 하늘 깊은 골에 간직한 마음을 비로소 느끼게 하네.\"라는 감회어린 시를 남긴 바 있다. 고려말기의 몽고의 행패와 어지러운 정치시대를 거쳐 조선에 들어서 쇠퇴의 일로를 걷다가 급기야는 임진왜란을 만나 대가람이 하루 아침에 소실되었다. 그 후 조선 인조 19년(서기 1641)에 계운명언대사가 중창하였으며, 부속암자로 내원암벽운암대적암은서암아적암 등 다섯 암자도 중창 또는 창건되었다. 그러나 조선 말기 흑시한 배불정책과 지방이속의 행패로 줄지어 없어지고 지금의 건물은 화재 이후 신도들의 발원과 뜨거운 신심으로 겨우 지어지고 지금도 사찰 중흥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중이다. 현전하는 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 겹처마 팔작지붕이다. 이 대웅전에 봉안된 삼존불 중 모조관세음보살상과 재세지보살상은 화재 이후 청도의 모사찰에 옮겨져 있으며, 범종 또한 보경사에 옮겼다고 한다. 현불상은 향나무로 조성한 것인데 그 규모가 크고 상호가 원만하다. 절 주변에는 창건 당시의 것으로 추정되는 주춧돌과 화재시 부서진 석불 조각, 고승의 부도 조각들이 군데군데 흩어져 있으며, 유일하게 \"법성당태민대사지탑\"이라 새겨진 부도 한 기가 전한다.
제 4 절 관광상품화 방안
첫째, 관광문화재공원 및 관광민박사업에 대한 정책 및 제도개선, 시설설치 규정 개선등 시대 여건변화에 탄력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제도적 적응장치와 함께 뒷받침이 있어야 할 것이다.
둘째, 관광문화재공원의 전문화 특성화가 요구된다. 지역적 특성을 가미하여 문화재 및 민박마을등 문화재가 가진 특성과 이에 다양한 기능을 잘 살려서 지역의 문화재들이 지닌 고유한 자원들을 제공하며 체험할 수 있게 하여야 할 것이다. 따라서 현행의 식당, 휴게소, 주차장 등의 소비시설 집중 설치와 도시적 위락시설을 거대로 이 지역에 옮겨다 놓은 듯한 모습은 문화재와 문화재민박마을을 이용하는 이용자들의 다양한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셋째, 문화재에 대한 경영능력 및 경영활성화 노력을 돕기 위해 문화재, 민박사업의 이해를 목적으로 하는 자료집이나 교육의 기회를 늘려야 하고 새로운 경영 기법을 위해 외부와의 연계가 필요하다고 본다.
결론
나는 이상으로 내가 지금 대구대학교 다니면서 현재 거주하고 있는 경산시의 모든 문화재와 관광상품들을 심도있게 연구하고 탐구하고 공부하면서 내가 전공하고 있는 관광학과 밀접하게 연결시켜 더욱더 재미있게 공부할수 있었다. 앞으로 경산시 뿐만아니라 우리나라 전체 문화재와 관광상품들을 내가 스스로 조사하여 연구하고 공부하여 내가 앞으로 사회에 진출했을 때 관광학쪽으로 취업했을 때 나에게 있어서 이런것들이 큰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큰 바램이다. 아울러 나는 앞으로 관광학 쪽으로 더욱더 열심히 공부하고 심도있게 탐구하여 앞으로 우리나라 관광산업의 발전에 기여할수 있는 사회인이 되고자하는 작은 소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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