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헌영 사상에 대한 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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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박헌영 사상에 대한 고찰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서론

본론

결론

참고문헌

본문내용

의 이탈은 심화되고 빈궁화가 가속되어 농업생산력의 발전은커녕 단수재생산조차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풀이했다. 따라서 이와 같은 봉건적인 상태를 타파하지 않고는 진정한 해방은 불가능하다는 입장이었기에, 이들은 토지제도를 혁명적 수단으로 전면 개혁하고 소작제도를 완전 철폐할 것을 주장했다. 이런 경우에만 농민이 해방되어 생활이 향상되고 생산력이 발전되고 농촌구매력이 증대되어, 튼튼한 국내시장이 형성되며 외래 독점자본의 침략을 제거할 수 있는 민주경제가 확립된다는 것이다.
혁명의 추진세력문제에 대해서도 지주계급 즉 봉건세력은 본질적으로 반동세력이므로 이들을 배제할 것을 주장했다. 이 세력은 제국주의의 보호에 의해서만 그 지위를 유지할 수 있으며, 일제의 힘에 의해서만 고율의 소작료를 받을 수 있었고 농민의 투쟁을 막을 수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결코 이들이 주도세력이 될 수 없다는 논리였다.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론을 제창하면서 박헌영은 항간에 말하는 ‘프롤레타리아 혁명’이나 ‘사회주의 건설’이라는 것은 공산당의 주장과 정치노선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에서 나온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와 관련하여 공산당 측에서는 역사적 발전 과정의 추이로 보아 프롤레타리아 혁명이 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즉, 당면과업이 경제적 기본관계에서 모든 부자연한 봉건적 생산관계를 해결하는데 있기 때문에, 부르주아 민주주의혁명단계라는 것이다. 이를 통해 사회경제의 전반적인 정체성을 극복하고 생산력을 급속도로 발전시켜야 하므로, 현단계에서 모든 자본주의적인 것을 무조건 소탕하는 것이라고 기계적으로 규정한다면 프롤레타리아트는 완전히 혁명과정에서 고립될 것이라는 논리를 전개했다.
2)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론의 이론적 분석 및 비판
박헌영의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에서 ‘민족적 완전독립’과 ‘토지문제의 혁명적 해결’을 기본과업으로 설정한 것은 해방 당시의 정치 및 경제적 요구를 정확히 반영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자주독립국가의 건설과 봉건적인 토지소유관계의 철폐라고 하는 기본적인 과업을 완수하려고 한 것이다.
그러나 토지문제의 해결에서 궁극적으로 전토지의 국유화를 목표로 하고 있는데, 이는 부르주아 민주주의혁명단계를 훨씬 벗어난 보다 높은 단계의 과업으로서 극좌적인 노선을 표명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잇다. 또한 몰수한 토지를 농민에게 분배한다고 하면서도 농민위원회인민위원회가 이를 관리한다고 하는 것은 논리상의 모순이 아닐 수 없다. 토지의 소유형태를 근본적으로 개혁하여 사회화 함으로써 박헌영은 급진적인 오류를 범한 셈이 되었다.주 해방일보, 1945년 11월 5일
다음으로 부르주아 민주주의혁명의 동력에서 민족부르조아를 배제시킨 것은 이론상으로 모순된 것이다. 부르주아 민주주의혁명은 어디가지나 사회주의 혁명이 아니며,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를 전제로 한 부르주아 혁명의 범주에 속하는 것인 만큼 민족부르주아는 당연히 혁명의 동력에 포함되어야 한다. 민족부르주아는 대부분의 토지와 관련되어 있으며, 그 중 일부만이 일제와 결탁하여 친일행위를 했기 때문에, 극소수의 이들 친일파를 제외한 나머지 대다수에게는 부르주아 민주주의혁명에 참여할 것을 주장했어야 했다. 그러나 박헌영의 경우 이를 전체를 타도의 대상으로 설정하여 스스로 입지를 좁히고 말았다.
마지막으로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론에서 정권쟁취문제를 정확하게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점을 들 수 잇다. 공산주의 투쟁전술에서는 “정권에 관한 것은 혁명에서 기본문제이며 혁명의 승패를 좌우하는 사활적인 문제\"주 정치사전, 사회과학출판사, 1973, p1053.
라고 하면서 이를 가장 중요시하고 있다. 이는 정권을 장악해야만 독재체제를 수립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서 목적했던 사회개력을 단행하고 나아가서 새로운 사회건설을 추진해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정권을 장악하기 위한 정치투쟁을 가장 높은 형태의 투쟁으로 파악하고, 비정치적 투쟁을 정치투쟁에도 유도했던 것이다. 그러나 박헌영의 경우 정권쟁취에 관한 구체적인 언급이 없어 이론상의 결함으로 지적되고 있다.주 김남식심지연, 박헌영노선비판, 세계, 1986, p.37.
3) 백남운의 반론과 공산당의 대처
부르주아 민주주의혁명론은 박헌영이 공산당의 주도권을 장악한 이후 공산당의 공식노선으로서 자리잡게 된다. 그러나 뒤늦게 정계에 투신한 조선신민당의 백남운이 반론의 제기했다. 그가 조선의 경제사회의 성격과 발전 정도에 비추어 보아 부르주아 민주주의혁명론과 프롤레타리아 혁명론은 모두 적합하지 않다고 주장한 것이다.
백남운은 부르주아 민주주의혁명이 부적합한 이유를 두 가지 들었다. 첫째, 조선은 과거 일제의 식민지였던 만큼 일주의 유산자와 전체의 무산자는 ‘민족혁명’이라는 공통의 혁명적 목표를 가졌었기에, 양자는 민족독립을 위한 동맹을 결성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연합군의 승리로 해방은 되었지만 완전한 독립이 되지 않은 정치적 단계에서는 “일부의 자산가가 아직도 혁명성을 내포하고 잇다는 점을 무산층도 충분히 이해할 임무를 가진 것”주 백남운, 조선민족의 진로, 신건사, 1946, p9.
이며, 바로 이점을 간과한 부르주아 민주주의혁명론은 부적합하다는 것이다. 둘째, 조선은 부르주아의 일부와 무산계급이 연합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부르주아를 전적으로 배제하려는 부르주아 민주주의혁명론은 적합하지 않다는 것이다.
또한 백남운은 현단계는 연합성 신민주주의 단계이며주 백남운, 앞의 책, 신건사, 1946, p9.
민족해방과 사회해방이라는 이중적인 과제를 수행해야 하는 상황에서 무산계급과 일부 유산계급과는 연합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주독립이 실현되는 순간까지는 양심적인 일부 유산계급도 민족의 해방을 위한 혁명세력의 일부를 대표하고 있는 만큼 무산계급과 연합하는 과도적 형태를 취할 수 있으며, 민족의 정치문제는 어는 한 계급이나 한 정당만이 해결할 수 없으므로 좌익과 우익이 연합하여 수행해야 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주 백남운, 앞의 책, 신건사, 1946, p15~16.
연합민주정권의 수립을 골자로 하는 연합성 신민주주의론이 제기되자 공산당은 이에 대처할 필요성을 느꼈다. 이들은 좌익과 우익이 생사를 거고 투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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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5.12.14
  • 저작시기20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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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3257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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