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종차별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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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교에서 6블록 떨어진 캔자스 주의사당을 찾은 케리의원은 “브라운 판결이 불평등의 벽을 허물기 시작했으며 미래의 더 큰도전은 모두를 위한 기회의 사다리를 세우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대선전이 불붙기 시작한 이래 두 후보가 같은 장소를 찾아 같은 주제를 얘기한 것은 처음있는 일이다. 흑인 표를 염두에 둔 행보이지만 이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과거 인종 격리 교육의 중심지를 찾은 데는 브라운 판결이들려주는 인권 존중의 교훈이 미국인들의 마음에 생생히 살아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1951년 여덟 살의 린다 브라운은 집에서 네 블록 떨어진 섬너 초등학교를놔두고 버스를 타고 1.6㎞를 가야 하는 학교에 다녀야 하는지를 이해할 수없었다. 린다의 아버지 올리버브라운은 딸을 그 백인학교로 전학시키려 했지만 교장이 허락하지 않았다. 린다의 검은 피부가 섬너에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브라운은 소송으로 맞섰고 연방 대법원은 ‘브라운 대 교육위원회’사건으로 불리는 이 소송을 3년간 심리한 끝에 “분리되더라도 평등하다”는 1896년 대법원 판결을 뒤집어버렸다.판결은 흑인과 백인 공학의 출발점이 됐고 다음 해 마틴 루터 킹 목사의 흑백 분리 버스 승차 거부 운동에 불을질렀다.
50년이 흐른 지금 역사적 판결의 의미를 기리는 행사들이 한창이다. 그러나 미국인들은 우울하다. 자국의 군인들이 이라크의 아부 그라이브 교도소에서 이라크인 포로들을 학대하고 그들의 인권을 짓밟은 사건은 미국인들에게서 브라운 판결에 대한 자부심을 앗아가 버렸다. 이제 그들은 인권의소중함을 다시 일깨울 브라운과 킹 목사의 출현을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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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5페이지
  • 등록일2006.01.18
  • 저작시기2006.01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3337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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