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전시기 작가 및 문학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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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항전시기 작가 및 문학작품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소 설(小 說)
2. 시
3. 산 문
4.희극(戱劇)
5.문학비평

본문내용

하연(夏衍, 1900~1995 )
[포신공](包身工)ㅡ 작가의 유일한 보고문학 작품으로 상해에 있는 일본방적공장에서 일본인들이 어떻게 중국의 나이 어린 여공들을 혹사하고 착취하였는가를 폭로하였다.
이 작품에서 감정에 치우치거나 흥분하지 않고 사실적으로 기술하고 있어 보고문학의 새로운 경지를 열었다는 평을 들었다.
⑧구동평(丘東平, 1910~1941)
일본군이 상해를 침공한 전후 10년간 군에 복무하면서 그가 체험한 군대생활을 소재로 보고문학을 썼다. [우뤼순과 지쯔후](吳履遜和李子夫, 1937), [예팅인상기](葉印象記, 1937), [제7중대](第七連, 1937), [우리는 그곳에서 패했다](我們在那裏打了敗仗, 1938), [38구경 총을 탈취하다](把三八式槍奪過來, 1938), [왕링깡의 소전투](王凌崗的小戰鬪, 1938), [중대장의 전투기](一個連長的戰鬪遭遇, 1939), [반동파의 마수에서 벗어나다](逃出頑固分子的毒手, 1939), [우군 대대장](友軍的營長, 1940)등이 있다.
⑨벽야(碧野, 1916~ )
전쟁때 화북지방의 유격대에 가입하여 그곳에서 많은 보고문학을 썼다.
[화북의 벌판](北方的原野, 1938), [태항산변](太行山邊, 1938), [북방 전선에서](在北線, 1939)등이 있다.
⑩유백우(劉白羽, 1915~ )
[조국을 위해 싸우자, 1946~1949]ㅡ인민해방전쟁의 과정 속에서 군대와 인민들이 조국의 해방을 위하여 진행한 투쟁과 업적을 생동적으로 반영했다.
⑪곽말약
산문집 [불갱집], [천지현황] - 자기의 전투적 열정과 인민의 민주주의적 요구를 반영
회상기 [홍파곡]
기행문 [소련기행], [남경인상]
⑫모순
기행문 [소련견문], [소련잡기]
산문집 [속사와 수필], [견문잡기], [시간의 기록], [생활의 한 페이지], [탈험잡기]
⑬풍설봉(풍설봉, 1903~1976)
잡문집 [시골풍과 도시풍], [전진할 뿐 퇴각하지 않는다], [건너뛴 날]
♣보고문학작품집 [上海一日]
1938년 주간잡지 [화미](華美)에 상해가 일본군의 침공을 받기 시작한 1937년 8월 3일부터 1938년 8월 13일까지 1년동안 경험한 일을 기록한 글을 모집한다는 광고가 기재되었는데, 현역작가는 물론 응모자 연령 13세부터 60대의 노인까지 다양한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경험담이 응모되었다.
(제1부) ‘火線下’ - 전선에서의 전투상황을 기록한 것
(제2부) ‘苦難’ - 死地에서 도망하여 목숨을 구했던 위기상황에서 기록한 것
(제3부) ‘風火山上’ - 상해가 일본군에게 함락된 후 그곳에서의 생활상을 기록한 것
(제4부) ‘旋渦裏’ - 각 계층의 사람들이 일본군 치하에서 경험했던 갖가지 고난을 기록한 것
이것은 일본군이 상해를 점령했던 1년 동안의 산 역사의 기록이며 중국역사상 가장 많은 필자들이 모여 이룬 최대 작품집이다.
4.희극(戱劇)
전쟁발발후 상해극작가협회는 중국극작가협회로 확대하고.하연,우령,송지적,진백진,아영등 16명이 3막극<보위노구교(保衛蘆溝橋>>를 집단 창작한 뒤,항전 제1차년에 창출한 희곡만도 160여종이었고, 당시 활약한 작가만도 어림잡아 2백명에, 출판된 희곡집이 약 6백종에 달했다.그러나40년대 중국의 희곡계는 단순히 희곡을 창작할 뿐 아니라 희곡의 공연과 극작가의 조직 등 희곡운동을 병행했다. 항전 항전기문학 전반을 볼 때는, 희곡의 내용이 애국적이면서 통속적이고, 그 구성과 기법이 짧고 작으면서 공식화·개념화되는 현상을보였고, 40년대의 희곡만을 볼때는 민족화의 바탕에다 역사극과 풍자희극이 중심이 되는 현상을보였다. 전체 항일전쟁시기 동안 희극은 문학예술 가운데 그 성취가 가장 뛰어나고 사회적 영향이 가장 광범위했던 분야였다.
4-1. 국통구 희곡
1937전쟁발발후 처음 2~3년은 단순 격정의 항전극,다음 4~5년은 역사극·풍자희극이 성행을 보이다가, 막상 전쟁을 승리로 끝낸 1945년부터 3~4년은 심각한 국·공내전으로 극작의 침체 현상을 보인다.항일전쟁이 심화됨에따라 국민당 통치구역에서는 민주주의적 자유가 압살되었고 조금이라도 현실 문제를 비난한 작품은 출판을 금지당했다.이러한 정치환경에서 옛것을 빌어 오늘을 풍자하기에 편한 역사극 형식을 이용하였다.이시기 역사극 창작에 공헌한 극작가로는 곽말약과 양한생,아영, 구양예천등이 있다.
하연(夏衍,1900-1995)
항일전쟁 시기 극본창작에서 다수확을 거둔 영향있는 극작가의 한사람이다,본명은 심단선(沈端先).좌익문예 운동의 개척자 중 한사람으로 비교적늦은 1932년부터 영화극본을 창작하기 시작하여 1935년에는 4월(문학)지에 발표한 역사풍자극 <싸이진화>를집필했고, 이어 <츄진전>,<상하이의 집 처마 아래서>등을 발표했다.1936년에는 그의 유일한보고문학작품인 <포신공>을 발표하여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다.중일전쟁발발후 3년간이나 광주. 계림 등지로 떠다니며 생활을 하였으나, 그 가운데서도 그는 극본<1년간>(1938),하연의 극작품가운데서 가장드높은 투쟁정서를 일관시킨<마음속의방어선>(心防,1940),<수성기>를 써냈으며 1942년에는<파시스트세균>(법서기 ,1942),<수향음>(1942),만주지방의 민중이 일제의 잔혹한 통치에 무장으로 저항하는 이야기<이리초>(1994)를 창작하였다.그의 대표작으로는 전쟁전에 발표했던<상하이의 집 처마 아래서>와 전쟁중의 작품으로는 <파시스트 세균>이있다.<상하이의 집 처마 아래서>와<파시스트세균> 이 두 극본은 모두 공산주의운동을 선전하는 내용의 목적극으로 좌익계에서는 매우 높이 평가하고 있다.
②송지적(宋之的,1907-1956)
본명은 송여소(宋汝昭). 9.18 후에 혁명에 참가한 후 줄곧 연극사업을 하였다.항일전쟁 폭팔된 후 송지적은 구국연극대 제1대를 조직하여 많은 공연을 하였으며, 환남 사변후 한 때 홍콩에 갔다가 1942년에 귀국한 후 줄곧 연극사업에 참가하였다. 이시기에 그는 단막극 <미진>,<출정>.<개선가>,군민이 공동으로 항전에 참여한다는 국방희곡의 속편인 장막극<자위대>(1938),<형벌>,<안개낀중경>(일명<채찍>,1940),<춘한>(1944)등 20 여 부의 극작품을 내놓았다. 이 작품들은 그 대부분이 항일의 주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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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6.03.02
  • 저작시기20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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