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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서론
Ⅱ.본론
1. 해방 후 ~ 1969년의 한국 영화의 흐름
2. 1970~1989년의 한국 영화의 흐름
3. 1990~1999년의 한국 영화의 흐름
4. 2000, 2001년의 한국 영화의 흐름
5. 2002, 2003년의 한국 영화의 흐름
6. 2004, 2005년의 한국 영화의 흐름
7. 설문조사
Ⅲ.결론
참고문헌
Ⅱ.본론
1. 해방 후 ~ 1969년의 한국 영화의 흐름
2. 1970~1989년의 한국 영화의 흐름
3. 1990~1999년의 한국 영화의 흐름
4. 2000, 2001년의 한국 영화의 흐름
5. 2002, 2003년의 한국 영화의 흐름
6. 2004, 2005년의 한국 영화의 흐름
7. 설문조사
Ⅲ.결론
참고문헌
본문내용
작
1995년 3월, 케이블 TV가 본 방송에 들어가면서 우리나라도 다매체 시대를 열었다. 초기에 21의 채널로 출범한 프로그램 공급사 중에는 영화전용 채널 2개, 만화영화전문 채널 1개가 포함되었고, 기타 채널에서도 영화 편성의 폭이 넓어져 영상매체 전반에 큰 영향을 주었다. 케이블 TV의 시작 전 영화계에 대한 악영향의 우려는 다행이도 빗나갔고 오히려 케이블TV의 등장이 영화의 관객층을 확보하고 영화를 좀 더 생활에 가깝게 하므로서 영화계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또한 영화를 공중파 TV뿐 아니라 케이블, 위성 TV에도 공급함으로써 영화시장이 더욱 확대 되었고 다양성이 확보되었다.
3.1.2 자유로의 한걸음, 영화 사전심의 위헌 판결
1996년 영화계에 가히 혁명적이라 할 수 있는 일이 일어났다. 영화의 사전심의제도가 위헌 판결을 받은 것이다. 헌법재판소 전원재판부(주심 심창언김문희)는 10월 4일, 영화사‘장산곶매’ 대표 강헌의 신청에 따라 서울지법이 낸 위헌법률 심판제청과 영화인 유이택 등 2명이 낸 헌법 소원에 대한 결정 선고에서, 영화 상영 전 공연윤리위원회의 심의를 받도록 지정한 영화법 12조1항은 헌법이 금지한 언론출판 활동의 사전검열에 해당하므로 위헌이라는 결정을 내렸다. 이로써 62년 영화법이 제정된 이후 시행된 공륜의 사전심의제가 34년 만에 효력을 잃고, ‘가위질’로 표현되던 검열이 폐지되는 등 가히 ‘혁명적 변화’가 일어났다.
3.1.3 출품에서 개최까지, 부산국제영화제의 창설
이병일 감독의 「시집가는 날」이 아시아 태평양 영화제 특별희극상을 받은 것을 시초로 1961년 강대진 감독의 「마부」가 베를린영화제에서 특별은곰상을 타는 등 국제영화제에 참가하며 영향력을 높여오던 한국영화계에 드디어 국제영화제인 제1회 부산국제영화제가 창설되었다. 1996년 9월 13일부터 21일까지 부산 시내 7개 극장과 수영만 야외극장에서 열린 첫 회에는 7개 부문에 초대된 31개국의 극영화ㆍ단편영화ㆍ다큐멘터리 등 신작 160여 편을 상영 했다.
연도
참가영화제 횟수
출품작품수
출품횟수
1990
제27회 카를로비바리영화제 등 39개 처
59
165
1991
제15회 몬트리올영화제 들 40개 처
77
190
1992
제5회 동경국제영화제 등 41개 처
59
133
1993
제 18회 모스크바영화제 등 58개 처
51
103
1994
제 16회 낭트3대륙영화제 등 54개 처
39
90
1995
제45회 베를린영화ㅣ제 등 60개 처
48
124
1996
제20회 몬트리올영화제 등 53개 처
78
160
1997
제50회 칸트국제영화제 등 54개 처
40
123
1998
제11회 동경국제영화제 등 68개 처
72
187
1999
제12회 동경국제영화제 등 73개 처
72
187
계
682
771
1888
이후 부산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영화축제로 자리매김한 부산국제영화제는 ‘열린 영화, 세계를 향해 가는 영화 축제’를 지향함으로써 아시아 지역의 영화 견본서 역할은 물론 대표적인 영화 축제로 자리 잡았다. 2000년 제5회 때는, 77개국 79명의 해외 취재진을 포함해서 411개 매체, 1,400여명의 취재진이 몰릴 정도로 부산국제영화제는 아시아를 대표하는 영화제로 급성장했다.
3.1.4 좀 더 가까이좀 더 다양하게, 복합상영관의 등장
복합상영관이란 흔히 말하는 멀티플렉스로 첨단 시설을 갖춘 6개 이상의 상영관에 외식ㆍ쇼핑ㆍ위락 시설이 함께 들어서 다양한 편의를 제공하는 극장을 일컫는다. 1998년 4월 국내 첫 복합상영관인 CGV강변11이 서울 구의동 강변역 근처 테크노마트 10층에 들어섰다. 94석 소극장에서 300석 중극장까지 11개의 상영관 총 1922석을 한 층에 모아놓은 대규모 시설이었다. 24시간 전산예매ㆍ좌석선택 발권장치 등 첨단시설도 갖췄다.
이러한 복합상연관의 등장으로 사람들이 영화를 문화의 한 부분으로 더 가까이서 편리하게 이용 할 수 있게 되었고 영화의 다양성 또한 확보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흥행위주의 작품선정에 치우쳐 예술영화나 독립영화를 상영하는 전용관 확보가 과제로 대두되고 있다.
3.2 90년대의 한국 영화의 흐름
90년대를 한 문장으로 표현하자면 ‘다양한 소재’를 ‘다양한 형식’으로 풀어냈다고 할 수 있겠다. 시대별로 한두 개의 장르에 국한되어 영화가 제작되던 이전과는 달리 다양한 장르에서 다양한 영화가 만들어졌다. 각 연도별로 흥행작들을 살펴보면 이러한 현상을 확인 할 수 있다. 따라서 특정 장르의 흥행이 아닌 각 영화의 흥행을 살펴보는 것이 더 바람직하겠다.
3.2.1 장군의 아들
1990년대에 들어서도 한국영화는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할리우드 대작영화와 홍콩 오락 영화에만 관객이 몰려 한국 영화는 여전히 외면을 받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임권택 감도ㆍ태흥영화사 제작의 「장군의 아들」이 대성공을 했다는 것은 하나의 사건이었다. 서울 단성사에서만 67만 8946명의 관객을 동원하여 77년 9월 김호선 감독의 「겨울여자」가 세운 58만 5775명의 흥행 기록을 13년 만에 경신하여 한국영화 71년 사상 최대의 흥행 신기록을 수립한 것이다. 매년 100편 넘게 쏟아져 나오는 한국영화중에서 10만 명 이상을 동원한 작품은 손꼽을 정도에서 「장군의 아들」이 세운 기록은 놀라울뿐 아니라 불황의 터널을 벗어날 청신호를 켰다는데 있다.
「장군의 아들」은 일제 강점기를 배경으로 김좌진 장군의 아들 김두환의 활약상을 그린 영화인데 짜임새 있는 구성, 탄탄한 연출력, 신인들의 신선미가 돋보여 관객들의 구미를 돋구었다. 결국 한국영화도 잘 만들기만 하면 관객의 호응을 얻을 수 있다는 평범하지만 결코 평범하지 않은 진리를 확인해 준 것이다.
3.2.2 100만관객의 시대, 서편제
1993년 4월 10일 서울 단성사에서 개봉된 임권택 감독의 「서편제」는 8월17일 그가 「장군의 아들」에서 세운 68만의 흥행 성적을 깨고 연일 기록을 경신 했다. 단성사 상영은 10월 22에 끝났으나, 10월 14일부터 시네하우스 등 서울 시내 8개 극장에서 확대 상영하여 총 103만 5741명이 이 영화를 관람했다. 정치인으로부터 중학생까지 관람자의 폭이 넓었을 뿐 아니라
1995년 3월, 케이블 TV가 본 방송에 들어가면서 우리나라도 다매체 시대를 열었다. 초기에 21의 채널로 출범한 프로그램 공급사 중에는 영화전용 채널 2개, 만화영화전문 채널 1개가 포함되었고, 기타 채널에서도 영화 편성의 폭이 넓어져 영상매체 전반에 큰 영향을 주었다. 케이블 TV의 시작 전 영화계에 대한 악영향의 우려는 다행이도 빗나갔고 오히려 케이블TV의 등장이 영화의 관객층을 확보하고 영화를 좀 더 생활에 가깝게 하므로서 영화계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또한 영화를 공중파 TV뿐 아니라 케이블, 위성 TV에도 공급함으로써 영화시장이 더욱 확대 되었고 다양성이 확보되었다.
3.1.2 자유로의 한걸음, 영화 사전심의 위헌 판결
1996년 영화계에 가히 혁명적이라 할 수 있는 일이 일어났다. 영화의 사전심의제도가 위헌 판결을 받은 것이다. 헌법재판소 전원재판부(주심 심창언김문희)는 10월 4일, 영화사‘장산곶매’ 대표 강헌의 신청에 따라 서울지법이 낸 위헌법률 심판제청과 영화인 유이택 등 2명이 낸 헌법 소원에 대한 결정 선고에서, 영화 상영 전 공연윤리위원회의 심의를 받도록 지정한 영화법 12조1항은 헌법이 금지한 언론출판 활동의 사전검열에 해당하므로 위헌이라는 결정을 내렸다. 이로써 62년 영화법이 제정된 이후 시행된 공륜의 사전심의제가 34년 만에 효력을 잃고, ‘가위질’로 표현되던 검열이 폐지되는 등 가히 ‘혁명적 변화’가 일어났다.
3.1.3 출품에서 개최까지, 부산국제영화제의 창설
이병일 감독의 「시집가는 날」이 아시아 태평양 영화제 특별희극상을 받은 것을 시초로 1961년 강대진 감독의 「마부」가 베를린영화제에서 특별은곰상을 타는 등 국제영화제에 참가하며 영향력을 높여오던 한국영화계에 드디어 국제영화제인 제1회 부산국제영화제가 창설되었다. 1996년 9월 13일부터 21일까지 부산 시내 7개 극장과 수영만 야외극장에서 열린 첫 회에는 7개 부문에 초대된 31개국의 극영화ㆍ단편영화ㆍ다큐멘터리 등 신작 160여 편을 상영 했다.
연도
참가영화제 횟수
출품작품수
출품횟수
1990
제27회 카를로비바리영화제 등 39개 처
59
165
1991
제15회 몬트리올영화제 들 40개 처
77
190
1992
제5회 동경국제영화제 등 41개 처
59
133
1993
제 18회 모스크바영화제 등 58개 처
51
103
1994
제 16회 낭트3대륙영화제 등 54개 처
39
90
1995
제45회 베를린영화ㅣ제 등 60개 처
48
124
1996
제20회 몬트리올영화제 등 53개 처
78
160
1997
제50회 칸트국제영화제 등 54개 처
40
123
1998
제11회 동경국제영화제 등 68개 처
72
187
1999
제12회 동경국제영화제 등 73개 처
72
187
계
682
771
1888
이후 부산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영화축제로 자리매김한 부산국제영화제는 ‘열린 영화, 세계를 향해 가는 영화 축제’를 지향함으로써 아시아 지역의 영화 견본서 역할은 물론 대표적인 영화 축제로 자리 잡았다. 2000년 제5회 때는, 77개국 79명의 해외 취재진을 포함해서 411개 매체, 1,400여명의 취재진이 몰릴 정도로 부산국제영화제는 아시아를 대표하는 영화제로 급성장했다.
3.1.4 좀 더 가까이좀 더 다양하게, 복합상영관의 등장
복합상영관이란 흔히 말하는 멀티플렉스로 첨단 시설을 갖춘 6개 이상의 상영관에 외식ㆍ쇼핑ㆍ위락 시설이 함께 들어서 다양한 편의를 제공하는 극장을 일컫는다. 1998년 4월 국내 첫 복합상영관인 CGV강변11이 서울 구의동 강변역 근처 테크노마트 10층에 들어섰다. 94석 소극장에서 300석 중극장까지 11개의 상영관 총 1922석을 한 층에 모아놓은 대규모 시설이었다. 24시간 전산예매ㆍ좌석선택 발권장치 등 첨단시설도 갖췄다.
이러한 복합상연관의 등장으로 사람들이 영화를 문화의 한 부분으로 더 가까이서 편리하게 이용 할 수 있게 되었고 영화의 다양성 또한 확보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흥행위주의 작품선정에 치우쳐 예술영화나 독립영화를 상영하는 전용관 확보가 과제로 대두되고 있다.
3.2 90년대의 한국 영화의 흐름
90년대를 한 문장으로 표현하자면 ‘다양한 소재’를 ‘다양한 형식’으로 풀어냈다고 할 수 있겠다. 시대별로 한두 개의 장르에 국한되어 영화가 제작되던 이전과는 달리 다양한 장르에서 다양한 영화가 만들어졌다. 각 연도별로 흥행작들을 살펴보면 이러한 현상을 확인 할 수 있다. 따라서 특정 장르의 흥행이 아닌 각 영화의 흥행을 살펴보는 것이 더 바람직하겠다.
3.2.1 장군의 아들
1990년대에 들어서도 한국영화는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할리우드 대작영화와 홍콩 오락 영화에만 관객이 몰려 한국 영화는 여전히 외면을 받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임권택 감도ㆍ태흥영화사 제작의 「장군의 아들」이 대성공을 했다는 것은 하나의 사건이었다. 서울 단성사에서만 67만 8946명의 관객을 동원하여 77년 9월 김호선 감독의 「겨울여자」가 세운 58만 5775명의 흥행 기록을 13년 만에 경신하여 한국영화 71년 사상 최대의 흥행 신기록을 수립한 것이다. 매년 100편 넘게 쏟아져 나오는 한국영화중에서 10만 명 이상을 동원한 작품은 손꼽을 정도에서 「장군의 아들」이 세운 기록은 놀라울뿐 아니라 불황의 터널을 벗어날 청신호를 켰다는데 있다.
「장군의 아들」은 일제 강점기를 배경으로 김좌진 장군의 아들 김두환의 활약상을 그린 영화인데 짜임새 있는 구성, 탄탄한 연출력, 신인들의 신선미가 돋보여 관객들의 구미를 돋구었다. 결국 한국영화도 잘 만들기만 하면 관객의 호응을 얻을 수 있다는 평범하지만 결코 평범하지 않은 진리를 확인해 준 것이다.
3.2.2 100만관객의 시대, 서편제
1993년 4월 10일 서울 단성사에서 개봉된 임권택 감독의 「서편제」는 8월17일 그가 「장군의 아들」에서 세운 68만의 흥행 성적을 깨고 연일 기록을 경신 했다. 단성사 상영은 10월 22에 끝났으나, 10월 14일부터 시네하우스 등 서울 시내 8개 극장에서 확대 상영하여 총 103만 5741명이 이 영화를 관람했다. 정치인으로부터 중학생까지 관람자의 폭이 넓었을 뿐 아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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