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지방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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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호남지방답사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 대흥사(大興寺)

♠ 녹우당(녹우당)

♠ 송광사(松廣寺)

♠ 쌍계사(雙磎寺)

♠ 화엄사(華嚴寺)

♠ 연곡사(鳶谷寺)

본문내용

이 크게 조각되었으며 상면의 얕은 굄 위에 운문이 조각된 하단과 8각 소로형인 상단에 2단의 높직한 간석 굄이 마련되었다.
▶화엄사대웅전
전라남도 구례군 마산면 황전리 화엄사 경내에 있는 조선중기의 목조불건물. 정면 5칸, 측면 3칸의 단층팔작지붕. 보물 제299호. 화엄사 경내에서 각황전 다음가는 큰 건물이며 그 전면에는 신라시대의 것으로 생각되는 대석단과 대석계가 있는데, 이 대웅전은 이 대석단 위에 남향으로 서 있다. 기둥 사이의 간격은 모두 동일하게 하고 높은 기둥을 사용하여 주열이 매우 정연한 느낌을 준다. 전면 주간에는 각각 세짝씩으로 된 문짝을 달았고 그 위에는 교창을 만들었다. 공포는 내외3출목의 갖은포작으로 외부에서는 쇠서를 윗부분에 조각한 장식적인 요소가 증가되고 내부에서는 대들보를 바친 공포의 살미첨차가 한몸으로 합쳐져서 장식판처럼 변형되어 시대적인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다. 지붕의 가구를 위하여 건물 내부에는 불단 후면 좌우에 2개의 고주를 배치하여 대들보를 받쳤다. 천장은 우물천장인데 주위의 외둘레간을 중앙부분보다 한층 낮게 만들었다. 불단 위에는 각각 J자형의 처마를 이룬 정교한 닫집을 3개 달았는데 전체가 매우 장엄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사적기에 의하면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1636 (인조 14)에 각성이 재건하였다고 한다. 이 건물은 규모뿐만 아니라 외관도 훌륭하여 조선 중기 이후의 건축으로서는 가장 우수한 대표적인 건물로 손꼽을 수 있다.
▶화엄사 동오층석탑
전라남도 구례군 마산면 황전리 화엄사 대웅전 앞에 있는 동서 쌍탑 가운데 동편에 위치하는 통일신라시대의 석탑. 높이 6.4. 보물 제132호. 남향한 대웅전과 동향한 각황전의 높은 석단 아래 서탑과 대립하여 건립되었다. 서탑은 각 면에 조각상의 장엄이 가득한 데 비하여 이 탑은 아무런 장식이 없다. 또 서탑이 2층기단임에 비하여 이 탑은 단층기단이다. 5층의 고준한 석탑이면서 단층기단을 형성하였으며 세부수법에서도 간략한 양식이 보여 이 탑의 조성연대는 서탑에 준하는 9세기경으로 추정된다.
▶화엄사사삼층석탑
전라남도 구례군 마산면 황전리 화엄사 경내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이형 석탑. 높이 5.5. 국보 제35호. 전체부재를 화강암으로 조성한 이 사자탑은 경주의 불국사다보탑과 더불어 우수한 걸작품으로 손꼽히고 있다. 기본조형을 2층기단 위에 3층탑신을 얹고 그 정상에 상륜부를 놓은 신라석탑의 전형적인 기본형을 따르고 있으나 상층기단에서 특이한 의장을 보이고 있다. 기단부는 지대석 위에 각형과 원호와 또 하나의 각형굄 순서로 높직한 3단의 굄대를 마련하여 하층기단을 받고 있다. 하층기단면석 각 면에는 양쪽 우주가 각출되었을 뿐 중간에는 탱주가 없다. 그러나 각 면에는 고식의 큼직한 안상을 3구씩 음각하고 그 안에 천인상을 1좌씩 12구를 양각하였다. 보관과 영락으로 동체를 장식하고 천의를 공중에 휘날리며 앉은 자세는 모두 같으나 연화대 위에 앉은 법석과 지물은 각기 다르다. 상층기단은 우주를 대신하여 연화대 위에 무릎을 꿇고 앉은 암수 두 쌍의 사자를 한 마리씩 지주 삼아 네귀에 배치하고 정상에도 하대와 대칭되게 연화대 위에 합장한 대덕의 입상을 안치하고 갑석의 하면 중앙에도 연화문을 장식하여 천개를 삼고 있다. 여기서 주목되는 것은 네 귀에 앉은 석사자상과 중앙에 서 있는 대덕의 모습인데 네마리의 석사자는 상하 앙복련화대 위에 앞발을 뻗고 뒷발을 구부려 앉아서 정면을 바라보며 입을 벌려 날카로운 이를 보이고 있는 작품이 곧 불국사다보탑의 석사자상을 연상하게 하고 있다. 그리고 원각한 대덕의 입상은 얼굴의 인상이나 몸에 걸친 가사의 의문과 균정한 체구 등이 당시의 불상과도 같은 조성수법을 보이고 있음을 직감할 수 있게 한다. 이 석탑의 건립연대는 각 부의 조각수법이나 건조양식으로 보아 통일신라 성대인 8세기 중엽으로 추정되며 신라시대의 사자탑으로는 유일하다.
♠ 연곡사(鳶谷寺)
전남 구례군 토지면 내동리 지리산 피아골 입구에 있는 사찰로 대한 불교 조계종 제 19교구 본사인 화엄사의 말사이다. 통일신라시대에 연기조사(緣起祖師)에 의해 창건되었으며 신라말 부터 고려 초기까지는 수선도량으로 이름높은 사찰이었다. 그 뒤 임진왜란때에 왜병에 의하여 전소된 뒤 복구되었으나 일제시대를 거치면서 손상을 입고 방화를 당하였다. 그 뒤 새로이 중건되었으나 6.25때 피아골 전투로 다시 폐사가 된 이후로 사찰분규와 교통사정 때문에 재흥을 보지 못하다가 1965년 소규모 대웅전이 요사채를 겸하여 지어졌고, 1981년 새 대웅전을 축조하였다. 이 절에는 국보 제53호인 동부도(東浮屠), 국보 제 54호인 북부도(北浮屠) 및 삼층석탑, 현각선사탑비(玄覺禪師塔碑), 동부도비(東浮屠碑), 서부도(西浮屠)등 많은 문화재들이 있다. 고려초기에 만든 도선국사의 부도로 추정되는 동부도가 있고, 또 통일 신라 말기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는 삼층석탑은 현재 대웅전 남쪽의 길옆에 있는데, 옛날 이 탑이 위치한 곳까지 건물이 있었다고 보면 그 때의 절 규모를 가히 짐작 할 수 있다. 또한 서부도의 문비(門扉)에는 ‘소요대사지탑 (逍遙大師之塔)’이라고 기록되어 있어, 이 절이 임진왜란후 소요대사에 의하여 중건된 것임을 추정할 수 있다.
▶연곡사 현각선사탑비(玄覺禪師塔碑)
고려 초기의 승려 현각선사의 탑비로서 979년 (경종4)에 건립되었다. 현재 비신은 없어지고 귀부와 이수만이 남아 있다. 조각 수법은 당대의 탑비양식을 잘 따르고 있는 데 몸체에 비해 큰 귀두(龜頭)나 비좌(碑座) 4면에 새긴 안상과 귀꽃이 특색이다. 이수 앞면 가운데에는 ‘현각왕사비명’이라는 전액(篆額)이 음각되어 있다. 기록이나 옛 탁본에 의하면 비문은 학사, 왕융(王融)이 지었고, 동정주국(同政柱國) 장신원(張信元)이 썼다고 한다. 글씨는 2센티미터 정도의 해서로 구양순체(歐陽詢體)를 바탕으로 하면서 자형을 바르게 하여 미를 나타내고 있다. 보물 152호로 지정되어 있다.
▶연곡사 삼층석탑
연곡사에서 남쪽으로 약간 거리를 두고 위치한 이 석탑은 3층기단의 전형적인 일반형 방탑으로 높이 6미터의 고려시대 탑이다. 지대석에 해당하는 석재 밑에 약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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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6.03.12
  • 저작시기20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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