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을 지는 그는 그런 난세에 찾아보기 힘든 인재였다. 이는 천자로 하여금 스스로 그를 찾게 하며 혹여 ‘천자 스스로 원치 않더라도 풍도를 재상에 앉혀야만 일이 수습되는’ 경우도 있을 만큼 그 어지러운 시기에 954년 3월 7일 73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정치 일선에서 활약하고, “5왕조 11군주를 거치면서 온갖 비난을 뚫고 살아남은 사람, 자신의 신념하나로 오뚜기처럼 쓰러지지 않는 재상, 풍도” 책의 뒷 표지에 쓰여진 글귀
를 있게 한 원동력으로 풀이할 수 있었다.
평가
후대의 구양수歐陽修[1007~1072], 사마광司馬光[1019~1086]를 비롯한 여러 역사가歷史家들은 불사이군不事二君의 개념을 들어 여러 천자를 섬긴 풍도를 매우 냉혹하게 평가 하고 있다. 이는 아마도 송대宋代의 근본사상이던 유교의 충忠, 효孝 사상에 입각한 평가일 것이다.
하지만 현세現世를 사는 우리로서는 당나라나 송나라와 같은 시대의 재상으로서의 풍도가 아니라 5대10국이라는 난세를 헤쳐나간 재상, 풍도로서 그를 바라보는 각도를 달리해야 할 필요가 있다. 현세나 당시의 시대적 상황처럼 급변하는 시기에 고상하지만 현실과는 동떨어진 절개 따위 보다는 현실 직시적이고 자신의 신념을
를 있게 한 원동력으로 풀이할 수 있었다.
평가
후대의 구양수歐陽修[1007~1072], 사마광司馬光[1019~1086]를 비롯한 여러 역사가歷史家들은 불사이군不事二君의 개념을 들어 여러 천자를 섬긴 풍도를 매우 냉혹하게 평가 하고 있다. 이는 아마도 송대宋代의 근본사상이던 유교의 충忠, 효孝 사상에 입각한 평가일 것이다.
하지만 현세現世를 사는 우리로서는 당나라나 송나라와 같은 시대의 재상으로서의 풍도가 아니라 5대10국이라는 난세를 헤쳐나간 재상, 풍도로서 그를 바라보는 각도를 달리해야 할 필요가 있다. 현세나 당시의 시대적 상황처럼 급변하는 시기에 고상하지만 현실과는 동떨어진 절개 따위 보다는 현실 직시적이고 자신의 신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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