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성전설교
본 자료는 5페이지 의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이미지를 클릭하여 주세요.
닫기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해당 자료는 5페이지 까지만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5페이지 이후부터 다운로드 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소개글

예레미야 성전설교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A. 성전설교와 시대적 상황

B. 성전설교에 관한 고찰

C. 다른 예비적 고찰

D. 렘7:1-8:3의 양식

E. 7:1-15 주해

F. 설교(렘7:1-15)

본문내용

에 있는지 모를 리가 없었다. 이미 오래 전 역사의 지평에서 사라져버린 이스라엘의 성소가 위치한 지명이었다. 일찍이 사사시대에는 언약궤와 함께 야웨의 성소가 있었던 곳이 실로였다. 이스라엘의 큰 축제일들이 되면 수많은 인파의 순례의 행렬이 그 끝이 보이지 않았던 장소이기도 하였다. 그곳에 하나님은 자기의 이름을 두시고 이스라엘의 하나님으로 자신을 나타내셨으며, 그의 백성들은 그들의 감사예물 가지고 하나님을 만나던 곳이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언약에 대한 철저하였는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다. 종종 주전 11세기 중반의 사사시대 마지막에 발생한 사건이 아닌가 하고 추측하지만 최근의 한 연구는 실로 성소의 멸망을 주전8세기 말엽의 앗시리아의 침공으로 인한 북 왕국 이스라엘의 유배와 연관이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좌우지간 한 시편의 시인도 이 불행한 역사적 사건을 되뇌이고 있는 것을 보면 이스라엘 역사에 있어서 의미 있는 큰 사건 중의 하나였음에 틀림없다. 특별히 예레미야 시대에 실로의 폐허물들이 아직도 남아 있었던 것 같으며, 예레미야의 고향인 아나돗으로부터 실로가 그리 멀지 않은 지역임을 감안해 볼 때 예레미야의 청중들에게도 매우 익숙한 장소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그들 눈앞에 분명하게 높여 있는 실로라는 장소, 그리고 그것이 지니고 있는 수 많은 역사적 잔해물들, 그것들이 불러일으키는 실로 몰락의 역사적 사건의 의미에 대해 잘못된 해석과 결론을 유추하였던 것 같다. 예언자는 바로 그러나 그들의 잘못된 역사의 교훈의 해석을 심각하게 질타하고 있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남북 분열 이후 남쪽의 유대인들과 예루살렘인들은 북쪽 이스라엘과 그들의 성소에 대해 우월감과 적대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러한 우월감과 적대감은 북 이스라엘의 멸망, 그리고 그들의 실로 성소의 파괴를 통해 보상 받고 있었다. 그들의 사고방식에 의하면, 실로는 야웨에 의해 배척당하고 멸망하였으나 예루살렘은 하나님에 의해 높이 평가되고 선택되어 지금까지 남아 있으므로 안전하다는 것이다. 실로와 예루살렘 사이의 날카로운 대조를 통한 이러한 잘못된 우월감과 오만한 비교의식은 강력한 세력이었다. 예루살렘의 기득권 층들인 종교지도자들과 그들의 아류들 중 그 누구도 예루살렘이 실로와 같은 운명을 맞게 될 것이라는 예언자의 주장을 결코 믿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실로의 파괴는 열방들 앞에서 행하신 하나님의 공개적인 언약 저주 행위였고 그와 동일한 운명을 예루살렘이 자초하고 있다는 것이 예언자의 시각이다. 더나아가 그는 예루살렘 성전은 세계 열방의 저주거리가 될 것이라는 예언적 메시지였다. 예루살렘은 더 이상 하나님의 특별한 총애와 호의를 받는 특권 부류가 아니었다. 그들은 토라의 요구와 언약의 의무조항들에 대해 응답하고 대답하여야만 한다. 만일 이러한 요구들에 대한 응답에 실패한다면 남는 것이라고는 죽음과 파멸뿐일 것이다. 예루살렘 성전은 언약적 저주로서의 사형선고 아래 놓이게 된 것이다. 예루살렘은 그들의 정책안 마련과 그 집행들, 신앙과 종교적 제의 사항들, 수많은 결정들 안에서 더 이상 ‘안전한 행위들’을 즐길 수 없게 된 것이다. 앗시리아 군대에 의한 사마리아 함락으로 그 종말을 본 북 이스라엘 왕국의 멸망 이 있은 지 백여 년 지난 오늘에 와서 남방 유대인들은 잘못된 선택 이념과 호국 종교화된 제의적 종교아래 하나님의 언약의 심판과 저주의 표현이었던 북 이스라엘의 몰락을 신학적으로 몰이해 하였던 것이다. 그래서 예언자 예레미야는 외친다. “실로에 가본 일이 있는가?” “북방 이스라엘의 몰락과 패망의 교훈을 아는가?” 역사를 되짚는 이유는 그 역사의 오류를 되 밟지 않기 위해서 이다. 이런 이유로 이스라엘의 자손들은 수많은 역사적 사건들이 있을 때 마다 다시금 낭송하고 기억하고 추억하여야만 했다. 이것이야 말로 그들의 신앙을 간직하는 길이요 그들의 신앙을 후손들에게 전수하는 유일한 수단이기도 하였다. 언약적 삶으로 돌아오라는 하나님의 부르짖음에 대해 삶을 개혁하고, 행위들을 바꾸고, 악한 길에서 떠나 “옛길”, 즉 시내 산 언약과 율법에서 제시되었던 삶의 길로 걷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심판은 분명히 임할 것이다. 오늘날에 이러한 역사적 교훈과 예언자의 설교를 적용하면 어떻게 할 수 있겠는가? 이 것은 단지 당시 이스라엘의 상황과 그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오늘날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될 수 있다. 오늘날 지상 교회의 그리스도인의 실상과 교회는 어떠한가? 신자들의 삶과 교회예배는 어떠한가? 정의와 공의가 실행되어야 하는 신자의 삶과 교회에서 얼마나 많은 악들이 행해지고 있는가? 우리가 예배하고 있는 우리의 모습 안에서 우리의 의식과 삶은 과연 올바로 이행되고 있는가? 우리가 아무리 주여 삼창을 외치고, 기도를 강하게 한다고 할지라도 우리의 바른 예배와 삶이 선행되지 안 는다면 기도는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다. 무엇보다 종교지도자들이라 자청하는 목사들과 소위 신학자들을 보라. 그들에게 있어서 종교는 좋은 직업이 된지 오래다. 누구나 공부를 많이 해서 좋은 자리를 들어가려는 머리싸움이 치열하고, 교회에서 박사와 석사, 연구원등의 차별을 둔지는 오래다. 아니 관행으로 굳어지고 있다. 교회 안에서 공평과 진리와 무장되어야할 지도자마저도 서로 아귀다툼과 권력싸움으로 지향되고 있는 오늘날의 세대도 예레미야 세대와 다를 바가 없다. 이런 통탄할 시대에 예레미야의 성전 설교는 주요하다. 또한 오늘날에도 성전을 우상화시켜서 마치 성전을 건축하는 것이 당시에 예루살렘 성전을 건축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성전을 신성화시키고, -사실 우리의 몸과 마음이 성전이 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성전을 지으면 하나님께 뭔가를 했다는 자만감과 성취감을 가져서 교회한번 지어보지 못하고 목회하는 시골목회자들과 부목사들에게 얼마나 큰 상실감과 자괴감을 주는지 모른다. 우리는 예레미야의 설교를 통하여 이러한 것이 죄이며 허물이며, 고쳐 나가야할 실상임을 깨달아 우리는 마음을 찢어야 한다. 회개의 열매를 통하여 주님께 나아가야 한다. 그것만이 주님 앞에서 바로 설 수 있는 길이며, 우리의 기득권을 버리는 일이요, 주님 앞에 선한 양으로 설 수 있는 길이다.
  • 가격2,000
  • 페이지수15페이지
  • 등록일2006.04.18
  • 저작시기2006.4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343931
본 자료는 최근 2주간 다운받은 회원이 없습니다.
청소해
다운로드 장바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