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일본 우익의 역사전개와 이념
1.서문
2.일본 우익의 정의와 역사
3.일본 우익에 대한 문제제기
Ⅱ.일본의 새로운 역사교과서 문제와 우익활동의 근원
1.일본의 새로운 역사교과서
1)일본 우익세력의 역사인식
2)자학사관에 대한 반동
3)자유주의 사관, 역사 수정주의 그리고 <국민의 역사>
4)<새역사교과서>에 대한 니시오 간지의 입장
2.종전 57년. 아직도 남아있는 전쟁전의 전쟁관
1)야스쿠니(靖國) 신사와 성전의식
2)미완의 도쿄전범재판
Ⅲ.일본 정계, 사회의 우경화
1.일본 정계의 우익, 우익성
2.일본사회의 우경화와 자유주의 사관
Ⅳ.일본우익 세력의 일본우경화추세의 구체화
1.자유주의사관론자 들이 추구하는 개헌과 정치, 군사대국화
2.의심받는 군대 자위대
Ⅴ.확산되는 우익의 원인 그리고 비판
1.90년대 일본 우경화의 배경과 요인
2.일본 우익단체의 성향에 대한 진보적 지식인들의 입장
Ⅵ.맺음말
※참고문헌
1.서문
2.일본 우익의 정의와 역사
3.일본 우익에 대한 문제제기
Ⅱ.일본의 새로운 역사교과서 문제와 우익활동의 근원
1.일본의 새로운 역사교과서
1)일본 우익세력의 역사인식
2)자학사관에 대한 반동
3)자유주의 사관, 역사 수정주의 그리고 <국민의 역사>
4)<새역사교과서>에 대한 니시오 간지의 입장
2.종전 57년. 아직도 남아있는 전쟁전의 전쟁관
1)야스쿠니(靖國) 신사와 성전의식
2)미완의 도쿄전범재판
Ⅲ.일본 정계, 사회의 우경화
1.일본 정계의 우익, 우익성
2.일본사회의 우경화와 자유주의 사관
Ⅳ.일본우익 세력의 일본우경화추세의 구체화
1.자유주의사관론자 들이 추구하는 개헌과 정치, 군사대국화
2.의심받는 군대 자위대
Ⅴ.확산되는 우익의 원인 그리고 비판
1.90년대 일본 우경화의 배경과 요인
2.일본 우익단체의 성향에 대한 진보적 지식인들의 입장
Ⅵ.맺음말
※참고문헌
본문내용
)시 오가사카(小鹿坂) 유적에서 발굴된 40~50만년전의 세계 최고급 유구 등 전기구석기시대 유물에 대한 전면적인 재조사가 이뤄질 전망이다. 후지무라 부이사장은 고교 졸업후 독학으로 고고학에 투신했다. 1972년부터 발굴 작업에 참가, 1981년 미야기현 자자라기(座散亂木) 유적에서 당시로서는 최고(最古)인 4만 수천년전의 석기를 발굴하면서 명성을 얻었다. 그동안의 발굴에서 그가 파 보라는 곳을 파면 늘 유물이 나와 `석기의 신\' `신의 손\'으로 불렸다. 그의 자작극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석기의 연대 측정법이 아직 애매한 데다 석기의 형식보다는 발굴된 지층의 연대를 최우선으로 삼았던 일본 고고학계의 해묵은 관행 때문이었다. 일본사의 연대를 위로 끌어 올리려는 일본 고고사학계의 퐁토도 일조했다. 일본에 12만년전 이전의 전기 구석기시대 문화가 있었느냐에 대한 오랜 논쟁이 매듭된 것도 자자라기 유적에서 그가 발굴한 석기에 의해서였다. 따라서 고교 역사 교과서에 실리고 대학입시에 출제되기까지 한 일본의 전기 구석기시대 문화 전체에 대한 재검토와 수정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이 발굴 성과가 그대로 반영된 책 <국민의 역사>는 1999년 발간돼 70만부 이상 팔린 베스트 셀러다. 이 책은 날조된 가미타카모리 유적 발굴성과를 그대로 인용해, 일본 열도 인류의 역사를 70만 년 전으로 앞당기고 있다. 또한 세계최고의 죠몬토기 문명은 세계 4대 문명에 견줄만한 수준이었다고 설명한다.(역사를 수정하는데있어서 이 경우는 너무 한 것 같다.) 이 책의 저자인 니시오 간지(西尾幹二)는 ‘새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이하 ‘새역모’)의 회장이다. 문제의 <새역사교과서>를 펴낸 ‘새역모’는 97년 결성되어서 이미 전국 47개현에 지부를 두고 있고, 만 명이 넘는 회원을 확보했다. <국민의 역사>의 니시오 간지를 사령탑으로 이 단체에는 이른 바 자유주의 사관에 찬동하는 우파 지식인들과 재계 인사 등이 포진해 있다. 새 역사 교과서 제작은 최근 수년 동안 이들이 각 분야에서 벌여온 우익활동의 결정판이다.
※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의 임원
회장 : 니시오 간지(교수, 독문학) 부회장 : 다카하시 시로(교수, 교육학)
이사 : 이토 다카시(교수, 일본사학/근대사), 사카모토 다카오(교수, 일본정치사상사), 타쿠보 타다에(교수, 국제정치학/국제관계론), 다나카 히데미치(교수, 미학/서양미술사), 타네가 시마케이(BMW동경주식회사전사장), 나카지마 슈조(변호사), 니시베 스스무(평론가), 하가 도로우(대학학장/교수, 비교문학), 후지오카 노부카츠(교수, 교육학)
이사대우 : 고바야시 요시노리(만화가)
이사,사무국장 : 다카모리 메이쵸쿠(대학강사, 신도학)
4) <새역사교과서>에 대한 니시오 간지의 입장
자국의 행동을 때로 비난하는 표현이 있어도 나쁘지 않고, 반성하는 표현이 있어도 자연스런 일이다. 하지만 일부러 자국을 의도적으로 나쁘게 말하고 조상의 과실을 지나치게 왜곡하고 필사적 노력을 악행으로 매도하고 일본의 교과서임에도 불구하고 외국의 반일 선전문구를 기꺼이 삽입하여 말도 안 되는 사진이나 만화를 선전이나 하듯이 내놓고 외국인이 느끼는 일본 역사에 대한 공감을 모두 삭제하는 이러한 정신구조는 도대체 무엇인가. 아이들이 이것을 읽으면 메이지시대 초기부터 일본 체제의 어딘가에 거대한 힘을 지닌 악마가 있어서 가난한 백성, 아시아의 백성을 고통스럽게 하고 있는 듯이 볼 수 밖에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그 악마의 이름은 적혀 있지 않으므로 어린이는 여우에 흘린 것으로 생각하게 될 뿐이다. 막연하게 일본은 나쁜 나라라고 걱정할 뿐일 것이다.
※ 새역사교과서에 대한 입장은 후에 일본사회의 우경화문제와 함께 다시 다루기로 한다.
2. 종전 57년. 아직도 남아있는 전쟁전의 전쟁관(우익활동의 끊기지 않은 원인)
2001년 4월 3일 일본의 기존 7종의 중학교 역사교과서외에 ‘새역모’에서 만든 ‘새로운 역사교과서’가 문부성의 검정을 통과했다. 이 문제의 역사교과서가 이렇게 당당히 만들어지고 검정을 통과하게된 데에는 학계 뿐 아니라, 언론계와 정치세력 등 거대한 조직체가 도사리고 있다. 언론계에서는 대표적인 극우언론인 산케이 신문이 나서고 있으며 교과서를 출판한 후소샤는 산케이 신문의 계열출판사이다. 또 정계의 지지세력은 자민당 보수파 의원들이다. 이런 조직을 통해, 금기시돼왔던 얘기들이 교과서 운동이라는 형식을 통해, 양지로 노출돼 나왔다는 점이다. 문제의 교과서에서는 “일본 정부는 대미 개전을 결의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라고 기술되어있다. 이는 태평양 전쟁은 방어를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시작한 것이라는 얘기가 된다. 그리고 “일본의 서전 승리는 동남아시아 사람들, 나아가서는 인도인들에게도 독립에의 꿈과 용기를 북돋웠다.”라고 기술하고 있다. 태평양 전쟁은 범죄가 아니라는 주장인 것이다. 이런 시각에서는 전쟁을 일으킨 사람들은 전범이 아니라 전쟁 영웅이 된다. 그렇다면 과연 종전 57년이 지났는데도 불구하고 아직도 이러한 일본 우익세력들의 주장이 남아 있는 이유는 무엇인지 살펴 보겠다.
1) 야스쿠니(靖國) 신사와 성전의식
2001년 8월 4일 일본 이시카와 현 가나자와시 호국신사에서 대동아 성전제라는 이름의 행사가 열렸다. 행사는 12미터 높이의 거대한 위령비 앞에서 진행됐다. 지난 해 일본 유족회 등은 모금운동을 거쳐 이 신사의 위령비를 세웠다. 태평양 전쟁 전몰자들의 영혼을 위로하는 이 비의 이름은 대동아 선정대비 이다. 태평양 전쟁은 아시아를 해방시키기 위한 성전이며, 따라서 전사자들은 전쟁 영웅이라는 이들의 생각은 ‘대동아 성전대비’라는 이름에 집약돼있다. 군국주의 시대의 낡은 역사관이 재현되고 있는 것이다.
(1) 야스쿠니 신사
도쿄 중심가 왕궁 북쪽에 자리 잡고 있는 야스쿠니 신사는 나라를 평안하게 한다는 뜻에 걸맞게 상징은 흰 비둘기이다. 신사 참배의 기원은 일본의 토속신앙인 신도에서 비롯됐다. 죽은 사람을 신으로 모셔 그의 영혼을 위로해주면, 재해를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일본인들은 결혼이나 출산 같은 인생의 중대사를 맞으면 맨 먼저 신사를 찾는다. 복을 구하고 화를
이 발굴 성과가 그대로 반영된 책 <국민의 역사>는 1999년 발간돼 70만부 이상 팔린 베스트 셀러다. 이 책은 날조된 가미타카모리 유적 발굴성과를 그대로 인용해, 일본 열도 인류의 역사를 70만 년 전으로 앞당기고 있다. 또한 세계최고의 죠몬토기 문명은 세계 4대 문명에 견줄만한 수준이었다고 설명한다.(역사를 수정하는데있어서 이 경우는 너무 한 것 같다.) 이 책의 저자인 니시오 간지(西尾幹二)는 ‘새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이하 ‘새역모’)의 회장이다. 문제의 <새역사교과서>를 펴낸 ‘새역모’는 97년 결성되어서 이미 전국 47개현에 지부를 두고 있고, 만 명이 넘는 회원을 확보했다. <국민의 역사>의 니시오 간지를 사령탑으로 이 단체에는 이른 바 자유주의 사관에 찬동하는 우파 지식인들과 재계 인사 등이 포진해 있다. 새 역사 교과서 제작은 최근 수년 동안 이들이 각 분야에서 벌여온 우익활동의 결정판이다.
※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의 임원
회장 : 니시오 간지(교수, 독문학) 부회장 : 다카하시 시로(교수, 교육학)
이사 : 이토 다카시(교수, 일본사학/근대사), 사카모토 다카오(교수, 일본정치사상사), 타쿠보 타다에(교수, 국제정치학/국제관계론), 다나카 히데미치(교수, 미학/서양미술사), 타네가 시마케이(BMW동경주식회사전사장), 나카지마 슈조(변호사), 니시베 스스무(평론가), 하가 도로우(대학학장/교수, 비교문학), 후지오카 노부카츠(교수, 교육학)
이사대우 : 고바야시 요시노리(만화가)
이사,사무국장 : 다카모리 메이쵸쿠(대학강사, 신도학)
4) <새역사교과서>에 대한 니시오 간지의 입장
자국의 행동을 때로 비난하는 표현이 있어도 나쁘지 않고, 반성하는 표현이 있어도 자연스런 일이다. 하지만 일부러 자국을 의도적으로 나쁘게 말하고 조상의 과실을 지나치게 왜곡하고 필사적 노력을 악행으로 매도하고 일본의 교과서임에도 불구하고 외국의 반일 선전문구를 기꺼이 삽입하여 말도 안 되는 사진이나 만화를 선전이나 하듯이 내놓고 외국인이 느끼는 일본 역사에 대한 공감을 모두 삭제하는 이러한 정신구조는 도대체 무엇인가. 아이들이 이것을 읽으면 메이지시대 초기부터 일본 체제의 어딘가에 거대한 힘을 지닌 악마가 있어서 가난한 백성, 아시아의 백성을 고통스럽게 하고 있는 듯이 볼 수 밖에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그 악마의 이름은 적혀 있지 않으므로 어린이는 여우에 흘린 것으로 생각하게 될 뿐이다. 막연하게 일본은 나쁜 나라라고 걱정할 뿐일 것이다.
※ 새역사교과서에 대한 입장은 후에 일본사회의 우경화문제와 함께 다시 다루기로 한다.
2. 종전 57년. 아직도 남아있는 전쟁전의 전쟁관(우익활동의 끊기지 않은 원인)
2001년 4월 3일 일본의 기존 7종의 중학교 역사교과서외에 ‘새역모’에서 만든 ‘새로운 역사교과서’가 문부성의 검정을 통과했다. 이 문제의 역사교과서가 이렇게 당당히 만들어지고 검정을 통과하게된 데에는 학계 뿐 아니라, 언론계와 정치세력 등 거대한 조직체가 도사리고 있다. 언론계에서는 대표적인 극우언론인 산케이 신문이 나서고 있으며 교과서를 출판한 후소샤는 산케이 신문의 계열출판사이다. 또 정계의 지지세력은 자민당 보수파 의원들이다. 이런 조직을 통해, 금기시돼왔던 얘기들이 교과서 운동이라는 형식을 통해, 양지로 노출돼 나왔다는 점이다. 문제의 교과서에서는 “일본 정부는 대미 개전을 결의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라고 기술되어있다. 이는 태평양 전쟁은 방어를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시작한 것이라는 얘기가 된다. 그리고 “일본의 서전 승리는 동남아시아 사람들, 나아가서는 인도인들에게도 독립에의 꿈과 용기를 북돋웠다.”라고 기술하고 있다. 태평양 전쟁은 범죄가 아니라는 주장인 것이다. 이런 시각에서는 전쟁을 일으킨 사람들은 전범이 아니라 전쟁 영웅이 된다. 그렇다면 과연 종전 57년이 지났는데도 불구하고 아직도 이러한 일본 우익세력들의 주장이 남아 있는 이유는 무엇인지 살펴 보겠다.
1) 야스쿠니(靖國) 신사와 성전의식
2001년 8월 4일 일본 이시카와 현 가나자와시 호국신사에서 대동아 성전제라는 이름의 행사가 열렸다. 행사는 12미터 높이의 거대한 위령비 앞에서 진행됐다. 지난 해 일본 유족회 등은 모금운동을 거쳐 이 신사의 위령비를 세웠다. 태평양 전쟁 전몰자들의 영혼을 위로하는 이 비의 이름은 대동아 선정대비 이다. 태평양 전쟁은 아시아를 해방시키기 위한 성전이며, 따라서 전사자들은 전쟁 영웅이라는 이들의 생각은 ‘대동아 성전대비’라는 이름에 집약돼있다. 군국주의 시대의 낡은 역사관이 재현되고 있는 것이다.
(1) 야스쿠니 신사
도쿄 중심가 왕궁 북쪽에 자리 잡고 있는 야스쿠니 신사는 나라를 평안하게 한다는 뜻에 걸맞게 상징은 흰 비둘기이다. 신사 참배의 기원은 일본의 토속신앙인 신도에서 비롯됐다. 죽은 사람을 신으로 모셔 그의 영혼을 위로해주면, 재해를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일본인들은 결혼이나 출산 같은 인생의 중대사를 맞으면 맨 먼저 신사를 찾는다. 복을 구하고 화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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