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최 북
눈 없는 최북과 귀 없는 반 고흐의 비교
화가 '최북'의 몇 일화
崔 北 歌 - 申 光 河
>>그림설명 <<
표훈사도 공산무인 수류화개 초옥산수 애련도 맹우도(猛牛圖) 조어산수(釣魚山水) 게
>> 참고하면 좋은문헌들<<
눈 없는 최북과 귀 없는 반 고흐의 비교
화가 '최북'의 몇 일화
崔 北 歌 - 申 光 河
>>그림설명 <<
표훈사도 공산무인 수류화개 초옥산수 애련도 맹우도(猛牛圖) 조어산수(釣魚山水) 게
>> 참고하면 좋은문헌들<<
본문내용
가 있었습니다.
그 곳에서 지내는 동안 사랑하는 여인이 있었습니다.
그런 어느 날 충선왕은 임금이 되기 위해 귀국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는 사랑하는 여인을 두고 떠나려 하니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는 그녀에게 연꽃 한 송이를 건네고 돌아설 수밖에 없었습니다.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꽃을 건네 줌으로써 사랑하는 마음을 전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고려로 돌아오는 도중에도 충선왕은 발길이 무거웠습니다.
마침 함께 돌아오던 충직한 신하인 이제현을 보내 그녀를 찾게 하였습니다.
이제현이 급히 말을 되돌려 그녀에게 가 보니, 놀랍게도 며칠 째 아무것도 먹지 않고 드러누워 있었습니다.
이제현은 돌아와 사실대로 보고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제가 가 보니, 그녀는 술집에서 젊은 사람들과 어울려 노느라 정신이 없었고, 만나 주지도 않았습니다. "라고 거짓말을 하였습니다.
충선왕은 너무 기가 막혀 침을 '탁' 뱉고 그녀를 잊기로 하였습니다.
이듬해 왕의 생일 때 일이었습니다.
이제현은 왕 앞에 무릎을 꿇고 비로소 사실대로 고백하였습니다.
왕은 이야기를 듣고 나서 눈물을 흘리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 때 바로 이 시를 보았더라면, 나는 당장 그녀 곁으로 달려갔을 것이다.
그대가 나와 나라를 걱정한 나머지 거짓으로 말했으니, 오히려 그 충성이 갸륵하다 하겠다. "일찍이 임금과 신하 사이에 있었던 아름다운 이야기 한 토막입니다.
게
정약용 ; 한번은 어느 재상댁에서,...그림을 펼쳐보는데,...
그 집 자제들 말인즉..
" 우린 도무지 그림은 모르겠어,?"..하고 말하니..
최북이 즉시로 발끈하여서,
" 그림은 모르겠다니. 그럼, 다른 것은 안다는 말이냐 ?"
하고, 칠칠이는 쏘아붙혔다.
맹우도(猛牛圖)
힘차게 고개를 위로 쳐들고 물을 건너는 황소와 그 위에 채찍을 두 손으로 잡고 떨어지지 않으려 몸을 꾸부린 목동으로 전체를 채운 간결한 구도의 그림이다.
물결의 무늬나 짐승의 털을 그리는데 있어 사실적 기법의 의도가 보이나 소털 하나하나의 올을 매우 굵게 그려 사실감이 많이 감소된 결과를 가져왔다.
이 그림은 소의 힘찬 운동감이나, 두 눈 사이가 아주 멀어서 대단히 해학적(諧謔的)으로 보이는 목동의 얼굴 등 매우 재미있는 작품으로 보인다.
종이에 채색 24.2*32.3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조어산수(釣魚山水)
최북은 여러 분야의 소재에 두루 능하였으며 전래된 작품도 적지 않다. 비교적 섬세하게 그린 실경산수는 당시의 화풍을 대변하며, 사의적(寫意的)인 산수는 활달한 필치로 두드러진 개성이 보인다. 최북의 모습을 그대로 반영하듯 대담하고 거친 필치, 빠른 속도로 그린 간일한 구성, 담청 황색의 대조적인 설채(設彩) 등 중국에 있어서도 양주팔괴(揚州八怪)에 비견되는 그림이다.
화원임에도 불구하고 문인화에 방불한 격조와 의취가 담긴 수작(秀作)을 남긴 최북은 신분에 아랑곳하지 않고 예인(藝人)의 긍지를 지니고 그림에 임했던 조선시대에 흔치 않은 화가 중의 한 사람이었다.
족자 종이에 담채 66.3*42.9cm 서울 개인 소장
>> 참고하면 좋은문헌들<<
金陵集, 壺山外史, 韓國繪畵史(安輝濬, 一志社, 1980)
韓國의 美 12―山水畵 下―(安輝濬監修, 中央日報社, 1982). 〈洪善杓〉
거지화가 최북 지은이 공석하 지음 출판사 뿌리
시를 어떻게 완성할 것인가 지은이 박제천 지음 출판사 문학아카데미
끝내지 않은 마침표 (유명인가 120인 그들이 묘비에 남긴 말) 박영만 지음 출판사 평단문화사
화승, 어머니를 그리다 2 - 어머니의 라훌라 지은이 김태신 지음 출판사 이른아침
인생이 그림 같다/ 손철주|생각의 나무
* 김용준의 '근원수필'
그 곳에서 지내는 동안 사랑하는 여인이 있었습니다.
그런 어느 날 충선왕은 임금이 되기 위해 귀국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는 사랑하는 여인을 두고 떠나려 하니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는 그녀에게 연꽃 한 송이를 건네고 돌아설 수밖에 없었습니다.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꽃을 건네 줌으로써 사랑하는 마음을 전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고려로 돌아오는 도중에도 충선왕은 발길이 무거웠습니다.
마침 함께 돌아오던 충직한 신하인 이제현을 보내 그녀를 찾게 하였습니다.
이제현이 급히 말을 되돌려 그녀에게 가 보니, 놀랍게도 며칠 째 아무것도 먹지 않고 드러누워 있었습니다.
이제현은 돌아와 사실대로 보고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제가 가 보니, 그녀는 술집에서 젊은 사람들과 어울려 노느라 정신이 없었고, 만나 주지도 않았습니다. "라고 거짓말을 하였습니다.
충선왕은 너무 기가 막혀 침을 '탁' 뱉고 그녀를 잊기로 하였습니다.
이듬해 왕의 생일 때 일이었습니다.
이제현은 왕 앞에 무릎을 꿇고 비로소 사실대로 고백하였습니다.
왕은 이야기를 듣고 나서 눈물을 흘리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 때 바로 이 시를 보았더라면, 나는 당장 그녀 곁으로 달려갔을 것이다.
그대가 나와 나라를 걱정한 나머지 거짓으로 말했으니, 오히려 그 충성이 갸륵하다 하겠다. "일찍이 임금과 신하 사이에 있었던 아름다운 이야기 한 토막입니다.
게
정약용 ; 한번은 어느 재상댁에서,...그림을 펼쳐보는데,...
그 집 자제들 말인즉..
" 우린 도무지 그림은 모르겠어,?"..하고 말하니..
최북이 즉시로 발끈하여서,
" 그림은 모르겠다니. 그럼, 다른 것은 안다는 말이냐 ?"
하고, 칠칠이는 쏘아붙혔다.
맹우도(猛牛圖)
힘차게 고개를 위로 쳐들고 물을 건너는 황소와 그 위에 채찍을 두 손으로 잡고 떨어지지 않으려 몸을 꾸부린 목동으로 전체를 채운 간결한 구도의 그림이다.
물결의 무늬나 짐승의 털을 그리는데 있어 사실적 기법의 의도가 보이나 소털 하나하나의 올을 매우 굵게 그려 사실감이 많이 감소된 결과를 가져왔다.
이 그림은 소의 힘찬 운동감이나, 두 눈 사이가 아주 멀어서 대단히 해학적(諧謔的)으로 보이는 목동의 얼굴 등 매우 재미있는 작품으로 보인다.
종이에 채색 24.2*32.3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조어산수(釣魚山水)
최북은 여러 분야의 소재에 두루 능하였으며 전래된 작품도 적지 않다. 비교적 섬세하게 그린 실경산수는 당시의 화풍을 대변하며, 사의적(寫意的)인 산수는 활달한 필치로 두드러진 개성이 보인다. 최북의 모습을 그대로 반영하듯 대담하고 거친 필치, 빠른 속도로 그린 간일한 구성, 담청 황색의 대조적인 설채(設彩) 등 중국에 있어서도 양주팔괴(揚州八怪)에 비견되는 그림이다.
화원임에도 불구하고 문인화에 방불한 격조와 의취가 담긴 수작(秀作)을 남긴 최북은 신분에 아랑곳하지 않고 예인(藝人)의 긍지를 지니고 그림에 임했던 조선시대에 흔치 않은 화가 중의 한 사람이었다.
족자 종이에 담채 66.3*42.9cm 서울 개인 소장
>> 참고하면 좋은문헌들<<
金陵集, 壺山外史, 韓國繪畵史(安輝濬, 一志社, 1980)
韓國의 美 12―山水畵 下―(安輝濬監修, 中央日報社, 1982). 〈洪善杓〉
거지화가 최북 지은이 공석하 지음 출판사 뿌리
시를 어떻게 완성할 것인가 지은이 박제천 지음 출판사 문학아카데미
끝내지 않은 마침표 (유명인가 120인 그들이 묘비에 남긴 말) 박영만 지음 출판사 평단문화사
화승, 어머니를 그리다 2 - 어머니의 라훌라 지은이 김태신 지음 출판사 이른아침
인생이 그림 같다/ 손철주|생각의 나무
* 김용준의 '근원수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