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실존주의 소설이라는 명칭에 대해...
1.철학과 문학과의 상통관계에 대한 실존주의의 역할
2.1950년 한국은 실존주의 소설의 전성기
3.문학사적 의의
◉관념소설의 사전적 의미
1. 정치적 관념소설의 발생이념: 문학은 왜 권력과 놀아나는가?
2.사상과 문학의 관련방식:아나키즘
3.벅찬 주제, 안이한 대결: 관념소설류의 맹점
1.철학과 문학과의 상통관계에 대한 실존주의의 역할
2.1950년 한국은 실존주의 소설의 전성기
3.문학사적 의의
◉관념소설의 사전적 의미
1. 정치적 관념소설의 발생이념: 문학은 왜 권력과 놀아나는가?
2.사상과 문학의 관련방식:아나키즘
3.벅찬 주제, 안이한 대결: 관념소설류의 맹점
본문내용
에 대해 실제적인 질문이 가능하다. 문제는 그 두 경우 아나키즘이 단지 정치사상의 차원에 머물러 버린 한계를 드러낸다는 점이다. 사상의 문학적 내재화 과정에 대한 고려가 없었다는 말이다. 이러한 문제로부터 벗어난 경우를 상정한다면, 작가의 사상 체험을 묻는 방식이 유력한 선택일 것이다.
(참고:조명희의 문학과 아나키즘 체험)
3.벅찬 주제, 안이한 대결: 관념소설류의 맹점
주제적 접근상 이러한 소설들과 대척되는 곳에 자리하고 있는 소설들이 일종의 담화로서의 소설이라고 할 수 있는 관념소설들이다.
이승우의 일련의 작업의 연장선상에 있는 「가시나무 그늘」과 이순원의 「압구정동엔 비상구가 없다」가 이런 소설의 단적인 예들이다. 작가 자신이 속한 사회에 대해 소설가가 사회과학적 해부의 시선을 던져 사회의 제반 모순된 구조를 이루는 힘들에 대해 고찰하는 것은 오랜 세월동안 사회적 자료로서 간주되어왔던 소설 고유의 특성에 비추어 볼 때 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이 경우도 역시 주안점은 사회를 보는 관념적 시선이 결코 선점된 관념이어서는 안된다는 전제가 필요하다. 즉, 소설이 궁극적으로 인간학인 이상, 사회 속에서 한 인물의 행위를 통제하고 제약을 가하는 사회적 힘들과 그 부조리한 영향관계에 대한 탐구 또한 언어적 형상의 과정을 통해서 찾아져야 하는 다소 새로운 시각에서의 탐구여야지 다른 사회과학적인 접근법으로 쉽게 환원될 성질의 관념으로 생경하게 남아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최소한 관념소설이라고 일컬어지는 소설들은 이런 당위의 구속으로 인해, 아무리 자체로 리얼리스틱한 재현을 표방한다고 해도 이미 자체 안에 모종의 상상적 해석의 공간을 담을 수밖에 없다. 이는 우리에게 친숙해져 있는 이청준의 소설이 직접 증거하고 있는 바다. 그의 소설은 관념을 추구하되 그것이 소설시학적으로 검증된 결과라는 것을 충분히 증거하고 있는 것이다.
사회에 대한 관념적 도해의 접근법은 작가 스스로 엄정한 분석의 시선을 견지하게 해준다는 점에서, 소설의 깊이의 측면과 진지성이라는 측면에서 일차적으로 그 정당한 값을 매겨주어야 할 덕목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소재상의 무게와 그 접근상에 있어서의 작가적 담화의 진지함이 소설의 깊이를 보장해 주지는 않는다. 날것 그대로의 사회적 자료와 분석의 태도로는 소설과 접맥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 경우 작가들은, 자신의 세계에 대한 이해의 과정 및 그 결과로서의 단언을 다른 무엇으로도 환원될 수 없는 소설적 진실로 확립해야 하는 부담을 떠맡게 된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젊은 작가들의 이러한 작업에서 그런 벅찬 주제와의 대결의식 같은 것은 찾을 수가 없었다. 압구정동으로 대표되는 부황에 빠진 90년대식 삶의 현실에 대한 답변으로, 책임회피적인 테러리즘을 지식인으로서의 마지막 행동 가능성으로 제시한 이순원의 작업이 그 안이한 대결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것이 아닌가 생각되는 것이다. 그것은 장편을 통해 추구해야 할 소설적 가치와는 전혀 다른 방향에 서 있는 작업일 뿐이다.
(참고:김경수 / 문학평론가, 서강대 강사 )
(참고:조명희의 문학과 아나키즘 체험)
3.벅찬 주제, 안이한 대결: 관념소설류의 맹점
주제적 접근상 이러한 소설들과 대척되는 곳에 자리하고 있는 소설들이 일종의 담화로서의 소설이라고 할 수 있는 관념소설들이다.
이승우의 일련의 작업의 연장선상에 있는 「가시나무 그늘」과 이순원의 「압구정동엔 비상구가 없다」가 이런 소설의 단적인 예들이다. 작가 자신이 속한 사회에 대해 소설가가 사회과학적 해부의 시선을 던져 사회의 제반 모순된 구조를 이루는 힘들에 대해 고찰하는 것은 오랜 세월동안 사회적 자료로서 간주되어왔던 소설 고유의 특성에 비추어 볼 때 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이 경우도 역시 주안점은 사회를 보는 관념적 시선이 결코 선점된 관념이어서는 안된다는 전제가 필요하다. 즉, 소설이 궁극적으로 인간학인 이상, 사회 속에서 한 인물의 행위를 통제하고 제약을 가하는 사회적 힘들과 그 부조리한 영향관계에 대한 탐구 또한 언어적 형상의 과정을 통해서 찾아져야 하는 다소 새로운 시각에서의 탐구여야지 다른 사회과학적인 접근법으로 쉽게 환원될 성질의 관념으로 생경하게 남아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최소한 관념소설이라고 일컬어지는 소설들은 이런 당위의 구속으로 인해, 아무리 자체로 리얼리스틱한 재현을 표방한다고 해도 이미 자체 안에 모종의 상상적 해석의 공간을 담을 수밖에 없다. 이는 우리에게 친숙해져 있는 이청준의 소설이 직접 증거하고 있는 바다. 그의 소설은 관념을 추구하되 그것이 소설시학적으로 검증된 결과라는 것을 충분히 증거하고 있는 것이다.
사회에 대한 관념적 도해의 접근법은 작가 스스로 엄정한 분석의 시선을 견지하게 해준다는 점에서, 소설의 깊이의 측면과 진지성이라는 측면에서 일차적으로 그 정당한 값을 매겨주어야 할 덕목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소재상의 무게와 그 접근상에 있어서의 작가적 담화의 진지함이 소설의 깊이를 보장해 주지는 않는다. 날것 그대로의 사회적 자료와 분석의 태도로는 소설과 접맥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 경우 작가들은, 자신의 세계에 대한 이해의 과정 및 그 결과로서의 단언을 다른 무엇으로도 환원될 수 없는 소설적 진실로 확립해야 하는 부담을 떠맡게 된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젊은 작가들의 이러한 작업에서 그런 벅찬 주제와의 대결의식 같은 것은 찾을 수가 없었다. 압구정동으로 대표되는 부황에 빠진 90년대식 삶의 현실에 대한 답변으로, 책임회피적인 테러리즘을 지식인으로서의 마지막 행동 가능성으로 제시한 이순원의 작업이 그 안이한 대결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것이 아닌가 생각되는 것이다. 그것은 장편을 통해 추구해야 할 소설적 가치와는 전혀 다른 방향에 서 있는 작업일 뿐이다.
(참고:김경수 / 문학평론가, 서강대 강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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