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신라의 왕계표
문무왕
신문왕
대왕암
감은사
감은사터
만파식적
만파식적의 이름유래
이름유래의 노랫말
만파식적의 설화(1)
만파식적의 설화(2)
문무왕
신문왕
대왕암
감은사
감은사터
만파식적
만파식적의 이름유래
이름유래의 노랫말
만파식적의 설화(1)
만파식적의 설화(2)
본문내용
있어 불국토가 시작되는 곳이라 믿었다. 이 설화를 통해 낭산을 수미산으로 생각했던 신라인들의 불국토사상을 엿볼 수 있다.
이상 오늘의 대왕암과 만파식적에 대한 수업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龍神祭
만상의 지배자인 君主, 王者는 그 통치권의 위엄과 상대적인 권위를 인식시키기 위하여 초인적인 힘을 가진 용에 견주어 군림하려는 의식에서 용과 왕을 동일시했다.
중국의 용신은 天上과 관련된 반면 우리나라의 용신은 물과 불가분의 관계를 가진 동물로 표현된다. 용과 물과의 관계는 용이 해중, 심연, 하천을 무대로 활동하면서 풍우뢰정(바람.비,우뢰.천둥)을 주관하는 존재로 공경되어 왔으며 고대사회에서 왕의 선정으로 백성이 안락한 생활을 하는 것은 천변지이가 없고 우순풍조(雨順風調)하여 풍년이 이루어졌을 때 군왕의 성덕이 칭송되었거니와 군왕은 용의 위력을 빌어 민생안정을 이루려고 스스로 용을 자처하게 되었다고 보여진다. 이런 수덕(水德)의 지배자가 되려는 관념은 문무왕이 사후 용이 되고자 했던 사실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현재에는 우리나라 각해안, 섬은 물론 내륙지방까지도 용신은 위대한 신으로 추앙되고 있다. 용신사상은 군왕에 제한된 것이 아니고 민간에도 널리 전승 유포된 관념이니 민속의 용왕제가 그것이다. 동내의 냇가, 우물, 샘터에서 지내는 용왕제는 집안의 행운을 빌기 위한 것이며 사공들은 이 제의로써 고기잡이의 무사와 만선을 빌었다. 이러한 민간의 용신권, 용왕제는 문무왕의 호국방왜의 사상에 이어지고 대왕암도 용신제장으로 사용되었을 가능성과 연관시킬 수도 있겠다. 대왕암과 제의적으로 연결되었던 감은사는 신라왕실의 왕권적인 제장이었고 왕자가 행하는 우주의례로서의 용왕제의 제장이었고, 비와 물의 책임자 수덕(水德)의 구원자로서의 신라왕의 자격을 갖추기 위한 의식의 표현장이었다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 고대의 용신사상은 좌불교대 이후에도 불교적으로 윤색전승되고 이 전통 위에서 문무왕이 용이 되고자 했던 기원은 방왜수국의 의지와 수덕의 조절자로서의 권능을 갖추려는 생각이 혼합되었고 이 호국의지는 통일후 국민사상으로 승화되었다.
‘한국전통문화의 이해’
(대왕암과 만파식적)
국어국문학과
20060012
김유진
---------- 차례 ----------
신라의 왕계표
문무왕
신문왕
대왕암
감은사
감은사터
만파식적
만파식적의 이름유래
이름유래의 노랫말
만파식적의 설화(1)
만파식적의 설화(2)
<보충자료 : 사천왕사지,龍神祭>
이상 오늘의 대왕암과 만파식적에 대한 수업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龍神祭
만상의 지배자인 君主, 王者는 그 통치권의 위엄과 상대적인 권위를 인식시키기 위하여 초인적인 힘을 가진 용에 견주어 군림하려는 의식에서 용과 왕을 동일시했다.
중국의 용신은 天上과 관련된 반면 우리나라의 용신은 물과 불가분의 관계를 가진 동물로 표현된다. 용과 물과의 관계는 용이 해중, 심연, 하천을 무대로 활동하면서 풍우뢰정(바람.비,우뢰.천둥)을 주관하는 존재로 공경되어 왔으며 고대사회에서 왕의 선정으로 백성이 안락한 생활을 하는 것은 천변지이가 없고 우순풍조(雨順風調)하여 풍년이 이루어졌을 때 군왕의 성덕이 칭송되었거니와 군왕은 용의 위력을 빌어 민생안정을 이루려고 스스로 용을 자처하게 되었다고 보여진다. 이런 수덕(水德)의 지배자가 되려는 관념은 문무왕이 사후 용이 되고자 했던 사실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현재에는 우리나라 각해안, 섬은 물론 내륙지방까지도 용신은 위대한 신으로 추앙되고 있다. 용신사상은 군왕에 제한된 것이 아니고 민간에도 널리 전승 유포된 관념이니 민속의 용왕제가 그것이다. 동내의 냇가, 우물, 샘터에서 지내는 용왕제는 집안의 행운을 빌기 위한 것이며 사공들은 이 제의로써 고기잡이의 무사와 만선을 빌었다. 이러한 민간의 용신권, 용왕제는 문무왕의 호국방왜의 사상에 이어지고 대왕암도 용신제장으로 사용되었을 가능성과 연관시킬 수도 있겠다. 대왕암과 제의적으로 연결되었던 감은사는 신라왕실의 왕권적인 제장이었고 왕자가 행하는 우주의례로서의 용왕제의 제장이었고, 비와 물의 책임자 수덕(水德)의 구원자로서의 신라왕의 자격을 갖추기 위한 의식의 표현장이었다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 고대의 용신사상은 좌불교대 이후에도 불교적으로 윤색전승되고 이 전통 위에서 문무왕이 용이 되고자 했던 기원은 방왜수국의 의지와 수덕의 조절자로서의 권능을 갖추려는 생각이 혼합되었고 이 호국의지는 통일후 국민사상으로 승화되었다.
‘한국전통문화의 이해’
(대왕암과 만파식적)
국어국문학과
20060012
김유진
---------- 차례 ----------
신라의 왕계표
문무왕
신문왕
대왕암
감은사
감은사터
만파식적
만파식적의 이름유래
이름유래의 노랫말
만파식적의 설화(1)
만파식적의 설화(2)
<보충자료 : 사천왕사지,龍神祭>
소개글